〈 89화 〉 인색의 마왕
* * *
전초기지.
그곳에는 홀로 남은 카펠라가 마법으로 푸른 화면을 만들어내 전장의 상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전선은 없다.
그것이 꽤 위안이 되었지만, 슬슬 불안해지는 곳은 있기는 했다.
두 성녀가 향했던 오르도 왕국이 맡은 전선.
갑자기 나타난 악마의 아이가 전열을 무너뜨려 이미 개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녀의 신성 마법으로 치료를 해서 어찌어찌 죽지 않고 버텨내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성녀에게 무리를 준다면 많은 신성력을 받아들인 성녀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었다.
"벌써 핵심 전력이 나가떨어지는 건 안 되지."
성녀는 더 오랜 시간 전장에 서 있어야 하고 더 성장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나중에 마왕이나 마신과 싸울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치천사에게 선택받은 성녀 없이 싸운다는 건 무기를 내려놓고 맨주먹으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카펠라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전력을 분산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치직.
수정 구슬이 작동했다.
이자벨라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안 그래도 연락을 할 생각이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말해."
수정 구슬이 연결되고 이자벨라 주변이 화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피부가 보랏빛으로 물들고 근육이 비대해져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악마의 아이가 꽤 많이 보였다.
자신의 동료였던 것이어서 그런지, 기사들은 악마의 아이를 죽이는 걸 망설였다.
모든 악마의 아이는 앙겔로크라티카에서 관리했으니, 그들은 악마의 아이를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거였다.
악마의 아이를 악마로 보고 가차 없이 죽였던 성기사나 이자벨라처럼 할 수 없었다.
대충 전선이 밀려나기 시작한 이유를 짐작한 카펠라는 눈썹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불안하기만 하다.
"카펠라 님, 전에 베네쿠스에서 도로시의 신성 마법을 광범위하게 펼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베로니카를 잡기 위해서 펼쳐두었던 결계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베로니카를 놓쳤던 것이 떠올라 이가 갈렸다.
그때 놓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전면전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하며.
"지금도 가능하신가요? 인간과 마족이 이루고 있는 전선 전체에 말이죠."
"가능해. 그런 마법을 사용하려고 전선 곳곳에 마탑주들을 배치했던 것이니까."
"그렇다면 제 신성 마법을 전선에 흩뿌려주세요."
"어떤 마법인데."
"마기를 정화할 거에요."
툭툭….
카펠라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치면서 생각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 마기를 정화할 필요가 있을까.
소모한 것 이상으로 리턴이 돌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고작 악마의 아이가 생겨나는 것을 막고자 그런 마법을 펼칠 필요가 있을까.
"이유도 말해봐."
그런 마법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면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판단했을 때 괜찮은 것 같다면 해주겠다는 의미가 담긴 짧은 한마디.
"제가 성녀로 지내면서 경험한 것들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용한 것이 분위기예요."
"그래."
"분위기는 중요해요. 밝은 곳에서보다 어두운 곳에서 작은 빛이 더 눈에 띄는 듯이, 지금 사람들이 동료들을 베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가장 충격을 받은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죠. 익숙해지기 전에 마법을 사용한다면 더 많은 믿음을 줄 수 있고, 그건 곧 저의 힘이 되어주겠죠."
흐음.
카펠라는 수정 구슬로 각 전선에 있는 마탑주들에게 연락을 했다.
모든 연결이 된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좋아. 전선에 성녀의 신성 마법을 펼칠 거야. 다들 협력하도록 해."
마탑주들은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카펠라가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적절한 대처고, 미래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만한 신뢰는 카펠라가 과거의 전쟁 영웅이기도 하고, 베네쿠스에 지내면서 여러 사람과 잘 어울려 다닌 덕분이었다.
카펠라는 수정 구슬에 손을 올려놓고 각 수정 구슬과 마법적 연결을 했다.
곧 카펠라의 수정 구슬에 마법진이 새겨지자 그것과 연결된 마탑주들의 수정 구슬에도 똑같은 것이 떠올랐다.
"이자벨라, 수정 구슬에 대고 마법을 사용하도록 해."
"네."
곧 이자벨라의 기도가 이어졌다.
마법진은 점점 밝은 빛을 발하더니 곧 푸른 빛기둥을 만들어냈다.
빛기둥들은 비스듬하게 날아가 한점에서 만났고 하늘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고, 사선을 긋고, 그 사이에 글자를 빼곡하게 써놓았다.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마법진도 완성되어 하늘에서 새장을 만들듯이 빛줄기가 내려왔다.
그것은 마법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역을 뜻하는 것이었고, 이자벨라의 신성 마법을 펼쳐내었다.
하늘에서 새하얀 깃털이 눈처럼 내렸다.
모노크롬을 정화할 때 사용했던 정화 마법은 전선 곳곳에 퍼져나갔다.
마족들이 이끌고 온 검은 마기가 천천히 정화되기 시작했다.
턱턱 막히던 숨을 시원하게 쉴 수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기운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마족에게서 느껴지던 공포가 사라졌다.
마기는 생각보다 사람들을 옭아매고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됐다…."
수정 구슬을 통해 이자벨라가 한 안도의 말이 들려왔다.
분명 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마기에서 벗어나고, 천사에 대한 신앙심이 이자벨라에게 강한 신성력이 되어 돌아왔지만, 모든 상황은 끝이 난 게 아니었다.
카펠라에게는 느껴졌다.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은 마기가.
인류를 향한 끝없는 악의와 살의가.
전장의 한복판.
한 악마가 나타났다.
그의 두꺼운 팔뼈에는 사람의 뼈와 용의 갈비뼈가 둘러져있고, 그의 목에는 사람의 두개골이 꿰어져 목걸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는 붉은 용의 심장이 장식되어있었으며, 신생아의 작은 팔이 그것을 떠받들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그 무엇도 주지 않겠다는 듯 두꺼운 로브를 두르고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리치.
자신의 힘을, 타인에게서 훔친 힘을, 자신의 것이 아닌 힘조차 남들과 나누지 않으려는 인색함이 보이는 모습이다.
남달리 강한 마기, 인간의 칠죄종 중 인색을 나타낸다면 분명 저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
카펠라는 그것들로 저 리치가 인색의 마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타난 위치는… 두 성녀가 있는 전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위태로웠던 그곳에 가장 먼저 마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인색의 마왕은 본디 사람이었다.
그는 흑마법사였고, 먼 옛날 베네쿠스의 마탑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식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신이 고생해서 얻은 지식과 힘이다.
이걸 왜 남에게 알려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제자를 받는다고 한들,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제자가 떠난다면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제자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지식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힘을 주겠다는 말.
그 말에 현혹된 많은 사람이 그의 마탑을 찾아왔다.
… 물론, 힘을 주겠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은 실제로 힘을 얻었다.
그것이 생체실험을 통해 일시적으로 얻게 된 힘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들은 제자 따위가 아니었다.
실험용 쥐였다.
인색한 마탑주가 자신의 힘을 더더욱 기르기 위한 제물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또 새로운 실험용 쥐들이 자신을 찾아왔다.
마탑주라는 위대한 마법사는 나방을 유혹하는 불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마법사가 목숨을 잃고 나서야, 그의 악행은 세상에 드러났다.
베네쿠스의 다른 마탑주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 당시의 마법사들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적어도 사람으로서 진리를 탐구할 것.
마법사는 사람이어야지만 마법사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 악마의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마녀고 리치나 다름이 없다.
인색한 마탑주는 그런 비난과 자신을 노리는 마법사들을 피해 도망쳤다.
실험용 쥐가 알아서 기어들어 오는 마탑주라는 자리를 잃은 것은 뼈가 아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자신만 살아있다면 아직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는 늙어서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를 악마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그는 인간을 벗어난 리치가 되었다.
오랜 세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수많은 인간을 납치하고 마족들을 분해했다.
하지만 진리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점점 진리와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왜지?
왜 인간을 초월해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왜 자신은 진리의 편린조차 알지 못하는 것인가.
"아."
곧 그는 깨달았다.
진리라는 것은 마법이 발전함에 따라 덩달아 발전하는 것이라고.
진리는 닿을 수 없기에 진리인 것이라고.
그것은 진리에 닿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에서 눈을 돌리고 한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
인색의 마왕이 되었음에도 자신은 목표에 닿지 못한다.
하지만 진리에 가장 가까운 마법사는 자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멍청한 개새끼군."
… 탐욕의 마왕 베로니카가 자신을 쓰러뜨리고 했던 말이었다.
"오래 살아서 마법 지식이 많다고 해서 내가 몸소 찾아왔더니, 카펠라나 미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머저리였나."
아?
"거기다가 인색함에 자신의 지식을 베풀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군. 그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다."
무슨 소리를.
"그따위로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만 했겠군. 너는 다른 사람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겠다만… 뭐, 쓰레기는 고쳐 쓰는 게 아니지."
베로니카는 인색의 마왕인 자신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더러운 땅바닥에 머리가 부딪쳤지만, 리치가 된 자신은 피 따위는 흘리지 않았다.
굴욕적이었다.
머리를 짓밟혀서가 아니다.
머리 따위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이미 몇 번이고 땅에 박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굴욕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개새끼한테 배울 것은 없다. 내버려 둬도 쓸모가 없을 테니."
퍼억.
베로니카는 내 등 위에 올라탔다.
몸집은 크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 등을 짓누르는 존재감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이었다.
"자, 가자 개새끼야. 발푸르기스에 늦는다면 모두 네 탓이다."
*
"카펠라… 미호… 그 둘을 죽이고 내가 더 위대하고 진리에 가까운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리치가 입을 열자 두개골 목걸이에 성에가 끼었다.
그의 텅 빈 눈구멍이 저 멀리 인간들의 전초기지를 향했다.
비록 눈은 없지만, 그는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증스러운 마법사가.
그녀는 아이보리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자색 눈동자로 자신을 평가하듯 보고 있었다.
베로니카처럼 자신을 내려다보듯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