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80화 (80/92)

〈 80화 〉 대성당

* * *

"이 질긴 새끼."

애런은 빛의 입자가 되어 상자 밖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가브리엘을 보고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 카펠라의 도움으로 처리한 줄 알았는데 어째서?

이자벨라의 눈을 빼내었는데 어떻게 재생되고 있단 말인가?

"놀랐습니까?"

이제 두개골이 생기고 얼굴 가죽이 붙고 있는 가브리엘의 하관이 히죽 웃는 것처럼 보였다.

"바퀴벌레 같은 녀석."

콰득!

애런은 가브리엘이 완전히 재생되기 전에 마기를 담은 마검을 휘둘러서 몸을 양단했다.

뼈가 으스러지고 썩어들어가며 가브리엘은 힘없이 툭 떨어졌다.

하지만 또다시 빛의 입자가 되어 재생되었다.

그 속도는 조금 전보다 더 빨라 순식간에 가브리엘의 몸이 만들어졌다.

"도로시 마이어가 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6장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도로시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로봇처럼 부자연스럽게 돌리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도로시 님!"

애런은 미호를 들어 등에 매달고 아직 성치 않은 몸을 강제로 움직여 도로시에게로 뛰어갔다.

가브리엘도 전보다는 속도가 줄어서 지금 몸으로도 충분히 뒤를 쫓을 수 있었다.

"...!"

도로시는 예상하지 못한 가브리엘의 공격에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능력을 발동한 것은 카펠라가 생명의 위험이 느껴질 시를 대비했던 수련 덕이리라.

파스슷!

빛의 검이 도로시의 목을 베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가브리엘은 얼굴을 콱 구기더니 도로시가 들고 있는 이자벨라의 뇌만을 들고 자기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꿈틀.

가브리엘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꺾이며 꿈틀거렸다.

눈과 코, 입에서는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가 순식간에 멎어 들었다.

그는 도로시와 거리를 벌린 채 상황을 살폈다.

"애런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당황한 도로시가 경계를 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애런도 알지 못해서 쉽게 입을 떼지는 못했다.

"권능이 아니겠느냐."

그때 미호가 말했다.

"권능?"

"그래, 사도들은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느냐. 어떤 권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월적인 회복력 같은 것 아니겠느냐."

"..."

애런은 생각했다.

조금 전부터 가브리엘은 눈앞에 있는 자신보다도 더 도로시를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지천사로 노릴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 몸이 재생성되자마자 도로시를 향해 먼저 날아갔다.

별거 없는 단서지만, 애런은 확신했다.

죽이는 것이 아닌 소멸하는 것이라면 가브리엘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로시 님, 가브리엘을 죽이려면 도로시 님의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 능력이요?"

"네, 저놈은 이제 죽여도 죽지 않아요. 그런데 도로시 님은 두려워하는 것 같네요."

"마치 교황 같네요."

화악­!

도로시는 6장의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애런도 이자벨라에게 교황의 존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으므로 그 권능은 대충 예상하였던 것이다.

"회귀… 교황의 권능…"

애런은 떠오르는 바가 있어서 중얼거렸다.

"정화의 불꽃… 그레이슨의 권능."

가브리엘이 행하는 권능은 이미 죽은 사도들의 거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맞습니다."

몸에 정화의 불꽃을 두른 가브리엘이 이미 모든 걸 들켰다고 생각해서 저벅저벅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제 권능은 회수입니다. 치천사 미카엘 님의 기적을 부여받은 사도들의 권능을 대행자인 제가 회수하는 것. 그것이 제 역할입니다."

가브리엘이 손을 휘두르자 하늘에 수많은 태양이 떠올랐다.

"하지만 알아차렸다고 해서 저를 도로시 마이어가 소멸시키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교황은 말로써 믿음을 없애 사람으로 전락시켰다지만, 저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습니다."

본디, 가장 신실한 신자였던 가브리엘이었기에 사도로 선택받았다.

사람을 죽이고, 믿음을 강탈했던 교황과는 다르게 순수하게 자신의 믿음만으로 사도에 이른 자.

그것이 바로 가브리엘 플라벨룸이다.

그의 순수한 믿음은 만년설과 같이 사라지지 않고 쌓여있으며, 상록수처럼 남들이 다 변하고 바스러지더라도 항상 푸르른 모습을 유지했다.

그런 믿음을 거짓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호, 이제 마나는 충분해졌어?"

"꼬리 9개분은 다 모였다. 다만, 네 몸에 남은 마나가 얼마 없어서 이게 거의 끝이라고 생각하거라."

쿠구구구…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앙겔로크라티카가 어떻게 되는지 상관하지 않고 날린 신성력 덩어리들은 마천루를 빨갛게 달아오르게 하고 얼음처럼 녹여갔다.

"나한테 맡기거라."

미호가 꼬리 9개를 활짝 펼치고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균열이 생기며 어둡고 허무의 공간이 퍼져나갔다.

그것들은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태양을 받아먹었다.

허무의 공간에 들어간 태양은 밖으로 빛을 내지 못했으며 그대로 집어 삼켜졌다.

"... 애런, 끝이 아니다."

모든 태양을 다 집어삼키고 균열이 다시 메꿔질 때, 하늘은 다시 밝아졌다.

또다시 하늘을 가득 채운 태양과 무수한 빛의 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로시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음에도 가브리엘은 철저하게 거리를 벌리고 신성 마법만으로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애런은 그 의도를 읽어내고 가브리엘을 향해 달려갔다.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분명 애런은 땅을 박차고 달려가고 있지만, 가브리엘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르도 왕국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방진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저에게 좋게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가브리엘의 그 말.

오르도 왕국에 파견을 하였던 사도가 죽었고, 그 권능을 회수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본 적이 없는 권능이지만, 아마 하늘에서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천사의 오만함이 묻어난 권능일 거라 예상했다.

*

"자애로운 천사님, 당신의 기적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다시 바라옵건대, 인간들을 해하려는 악한 자의 공격을 막아낼 힘을 주시옵소서."

도로시의 기적으로부터 빛이 퍼져나갔다.

이윽고 빛은 서로 실처럼 엮이더니 금빛 방어막을 이뤄냈고, 그 범위는 앙겔로크라티카 전체를 덮을 정도였다.

반구 형태의 금빛 방어막에 쇠사슬이 감기며 더더욱 충격에 강하게 보강되었다.

쿠과과과과광­!

대기를 떨게 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빛 방어막과 쇠사슬은 충격에 몇 번이고 출렁거렸다.

쩌적…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빛이 그곳을 다시 뒤덮으며 깨지지 않도록 했다.

파괴와 창조는 폭발 소리가 멎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이미 앙겔로크라티카의 주변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녹아버린 지표면에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눌어붙어있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빛의 창에 꿰뚫려 꼬챙이가 되어 죽어있었다.

앙겔러크라티카의 사람들은 지켰지만, 그 이상으로는 도로시의 힘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

도로시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또.

또.

또 태양이 떨어지고 있다.

저 태양은 언제까지 떨어지는 거지?

가브리엘의 신성력은 무한한 건가?

도로시는 아연실색하여 펙토랄레를 쥐고 다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윽…!"

하지만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과 아득해지는 정신이 기도를 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완전하지 않은 성녀였던 도로시의 몸은 이미 받아들일 수 있는 신성력을 한계 이상으로 받아들였고, 언제 정신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해… 애런 님과 미호 님의 마나는 유한한 거라고.…"

신성력은 믿음이 있는 한 무한하다.

도로시는 이를 꽉 깨물고 아직 남아있는 대성당의 벽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천사님에게 바랍니다…."

입이 너무 무겁다.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나로 있지 못할 것 같았다.

더 기도를 올린다면 도로시 마이어라는 존재는 사라질 걸 확신했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적을.…"

"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대성당 근처에 멀쩡한 사람은 없을 텐데 생각하면서 도로시가 눈을 돌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금발이 폭발의 후폭풍으로 휘날리고 있었고, 자색의 눈동자가 도로시를 향하고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오는 수녀복을 입은 여성의 그 모습은 완벽한 성녀, 혹은 천사라 부를만하였다.

"그만하렴. 이미 몸이 한계잖니?"

여성은 도로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뇌를 탐하려던 신성력들이 빠져나가 몸이 진정되었다.

"안 돼요. 저는 가브리엘의 공격을 막아내야.…"

"그러니까 안 된다니까."

딱.

여성은 손가락을 튕겨서 도로시의 이마를 때렸다.

도로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마를 맞고 나니 입이 열리지 않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으러 왔더니, 반가운 사람을 다 보게 되네."

"... 당신은 누구신가요?"

"응? 한동안 말을 못 하게 할 심산이었는데 말이야."

여성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 선배란다."

"선배요?"

쿠구구구구…

태양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도로시는 가브리엘의 공격이 떨어지고 있었음을 깨닫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 아이가 죽으면 카펠라가 슬퍼하잖니? 나도 죽지 않았으면 하고… 그러니 조금은 도와줄게."

여성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네 주인을 잊지는 않았겠지?"

여성은 무너진 대성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개."

콰르르르.

무너진 대성당의 파편들에 묻혀있던 거대한 날개 달린 바퀴가 떠올랐다.

쿠구구구…!

태양은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졌고, 도로시는 뜨거운 공기에 폐가 타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만개."

촤르르르르­!

새하얀 바퀴가 팽글팽글 돌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바퀴는 꽃이 피듯 점점 그 크기가 커졌고, 대성당만 하던 바퀴는 하늘 덮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하늘을 덮을 것만 같이 커졌다.

그 덕에 앙겔로크라티카는 햇빛을 받지 못하고 천개의 그림자에 덮여버렸다.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천개와 부딪치며 일어났을 폭발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도로시는 입을 쩍 벌리고 눈앞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좋아, 하늘은 천개한테 맡겨놓고 오랜만에 애런을 도와주러 가볼까."

화아악!

도로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성의 등에서 돋아난 날개.

그 날개는 분명한 천사의 것이었고, 수는 가브리엘이나 자신보다도 더 많은 12장의 날개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위쪽에 있는 6장은 순백의 날개이고, 아래쪽에 있는 날개는 빛을 모두 흡수한 듯한 칠흑의 날개였다.

"후배, 다음에 또 봐."

여성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한 걸음을 떼자,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 뭐였던 거지…?"

도로시는 가브리엘에게 죽을 뻔한 것도,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잊고 멍하니 여성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날개를 바라봤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