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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9화 (79/92)

〈 79화 〉 대성당

* * *

압도적인 존재감은 때로는 아일라처럼 빛을 왜곡시키고 대기마저 가라앉게 한다.

애런이 봤던 마왕은 빛마저 어둠으로 집어삼키는 존재였다.

그런 것을 봐왔기에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믿고 싶지는 않았다.

제1사도 천사의 검, 가브리엘 플라벨룸이 그 정도의 존재감을 뿜고 있다는 것은 영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의 존재감은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태양과 같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되었다.

태양보다도 환한 그 모습은 눈을 뜨고 보기 어려워서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고, 가브리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은 피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긴장을 놓지말거라."

미호의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호했다.

자신에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애런에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둘 다에게였다.

오감 중 시야는 가려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상대가 어떤 짓을 하려는지는 매우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애런이 계약한 정령, 아르카나를 실현한 방법에 있었다.

머리에 돋아난 작은 뿔은 마기를 조종하는 것을 도우며, 주변에 뿌린 마기가 돌아오는 것을 통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었다.

즉, 시야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애런은 눈을 감고 다른 감각들을 극대화했다.

"사라지십시오."

가브리엘의 한 마디에 금빛의 신성력들이 날개에서부터 뿜어져나왔다.

신성력은 뭉쳐져서 창이 되었고, 저 하늘에서부터 모래알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

무조건 막는다는 선택지 밖에 없는 창의 비였다.

"애런, 조금 전에 마나를 많이 소모한 탓에 규모가 큰 마법은 사용하지 못한다."

"알겠어."

애런은 이제껏 쌓아왔던 마기를 남기지 않고 몸에 둘렀다.

심장은 쿵쿵대며 온몸으로 마기를 공급했고, 도로시에게 받은 신성력으로 그것들을 제어했다.

둘을 제어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그것은 아르카나의 도움 덕이며, 뿔이 마기의 제어를 맡았기 때문에 애런은 신성력에만 집중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마기에서 흘러나온 불길한 기운이 대성당을 덮었다.

그것들은 대성당 근처에서 꿈틀거리며 마치 마물처럼 보였다.

"집어삼켜라."

애런의 명령에 아르카나가 용처럼 생긴 마기를 하늘에 쏘아올렸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마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을 받아먹었으며, 창이 모두 사라질 때 즈음 기세가 줄어들었다.

이윽고 마기는 공중에서 흩날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그가 그 정도 공격으로 당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찰나.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애런의 옆에서 느껴졌다.

"...!"

그는 빛의 검을 크게 휘둘러 애런의 목을 노렸다.

촤르르르­!

하지만 그 검은 목에 닿기 전에 멈추었다.

대성당에서 교황을 소멸시킨 도로시가 신성 마법으로 만들어낸 쇠사슬이 검을 옭아맸기 때문이다.

"6장의 날개."

가브리엘은 잠깐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다가 금방 진정했다.

도로시가 자신과 똑같은 치천사의 대행자가 된 것은 못마땅하지만 죽이면 된다.

그리 생각하고 성가신 도로시를 먼저 죽이려고 몸을 틀었다.

"어딜 가려고."

푸푸푹!

이번에는 애런이 만들어낸 가시가 가브리엘을 꿰뚫었다.

넘치는 신성력이 금방 회복시켰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상처였지만, 불쾌감이 밀어닥쳤다.

"감히!"

가브리엘은 빛의 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을 막으려는 애런을 향해 뻗었다.

투웅­!

허공을 내지른 일격은 직접 닿지 않더라도 공간을 타고 충격이 흘러왔다.

애런은 보이지 않는 그 공격을 아르카나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막는 것은 안 된다.

이건 피해야 하는 종류의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을 홱 돌렸다.

쿠구구구...

애런이 있었던 자리에서 일직선으로 있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었다.

거인이 주먹을 내지른 것처럼 주먹 모양으로 자국이 남아있었고, 한 끗 차이로 피했다는 것에 식은땀이 흘렀다.

"죽이십시오."

가브리엘의 명령에 창을 들고 있던 지천사들이 도로시를 향해 날아갔다.

어떻게든 치천사의 대행자는 자신 하나뿐이어야 한다는 가브리엘의 눈빛에는 광기가 깃들어있었다.

애런은 순간 도로시를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홱 돌리려고 했으나, 미호가 머리를 잡고 앞만을 보게 했다.

"애런, 앞을 봐라. 우리는 여유가 있는 줄 아는 것이냐?"

"그 말이 맞네."

한눈팔고 있을 틈은 없다.

방금만 해도 도로시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목이 베여 죽었을 것이다.

애런은 마기를 충분히 머금은 마검을 휘둘렀다.

보랏빛 마석이 빛나며 가브리엘을 향한 살의를 드러내며, 허공을 갈랐다.

아르카나의 도움으로 시커먼 마기가 초승달 모양으로 날아갔다.

"그 정도 공격이 통할 것 같습니까?"

가브리엘은 손에 검을 하나 만들어내어 무심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초승달을 베어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빛의 검이 마기에 잡아먹혔다.

불길한 기운이 검을 넘어 팔까지 집어삼키려 했기에 가브리엘은 검을 던졌다.

"쓸데없는 짓을."

그리고 그 틈.

가브리엘이 검을 놓은 순간 애런은 횡 베기와 종 베기를 하였다.

방어할 수단을 방금 잃었다.

도망치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공격이었다.

일섬과 함께 공간이 일렁이며 그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냈다.

그중에는 가브리엘의 상체가 있었다.

가브리엘이 공격당한 것을 깨닫고 눈을 크게 뜬 순간.

후속타가 이어졌다.

세로로 날아온 어둠이 머리와 양단되었던 몸을 한 번 더 갈라버렸다.

어둠은 가브리엘의 몸과 빛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상상 이상으로 끈질겼다.

우드드득… 우드득.

비틀리고 부러졌던 뼈들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찢어지고 베어졌던 피부들이 말끔하게 돌아왔다.

산산조각이 났던 내장은 꿈틀거리며 몸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저 녀석, 이자벨라 님의 능력을 흡수한 거야?"

"애런, 잘 봐라. 드문드문 회복되지 않은 부분은 신성 마법으로 회복시키고 있다. 잘 보이지 않게 다른 것들로 가려서 하고 있기는 하다만."

미호의 말대로 가브리엘은 피부가 벗겨져 근육과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런 것은 정화의 불꽃이 피부가 되고, 근육이 되어 순식간에 멀쩡하게 만들었다.

"괴물 놈이."

베어도 죽지 않는다.

공간이 뒤틀려 찢어놔도 다시 붙는다.

마치 마왕을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게 끝입니까?"

가브리엘은 목을 움직여서 뚜둑 소리를 내며 빛의 검을 만들어냈다.

"훌륭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치명상을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찢어졌던 날개 6장도 어느새 깃털이 다시 붙으며 재생되었다.

가브리엘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고, 크게 날갯짓을 했다.

펄럭­!

"크윽!"

그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가브리엘은 애런의 배에 검을 쑤셔 넣었다.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을 살짝 비틀어 치명상만큼은 피했다.

"애런!"

퍼버벙­!

미호가 만들어낸 푸른 불꽃이 가브리엘에게 쇄도했다.

가브리엘은 피할 생각도 없이, 모든 불꽃을 몸으로 받아내었다.

얼굴의 절반이 사라지고 뇌는 익는 것을 넘어서 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근육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까보다 더 빨라졌어."

애런에게 익숙한 속도보다 조금 더 빨랐다.

그 차이가 애런이 공격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도로시 마이어의 도움이 없다면 스스로 치료를 하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가브리엘이 히죽 웃으면서 저벅저벅 다가왔다.

애런은 배를 부여잡고 검을 들었지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 전처럼 움직일 수 없다.

이 깊지 않은 상처에도 평범한 애런의 몸은 삐걱거리며 고장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상처가 평범하지가 않다.

미세한 빛의 입자가 몸을 갉아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기로 어떻게든 몸 안에 들어온 것은 없앴다지만, 겉으로 보는 것보다 상처는 심각했다.

"애런,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한다!"

미호가 만들어낸 방어막도 하나둘 깨지며 점점 가브리엘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

애런의 품속에 있는 수정 구슬이 작동되며 카펠라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

라는 한 마디.

그 말에 애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티 없이 맑은 하늘.

그리고 언젠가 카펠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날씨가 좋다면 마탑에서 앙겔로크라티카와 오르도 왕국도 보인다는 그 말이.

준비하고 있어요.

카펠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애런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마검을 꽉 쥐었다.

"설마."

콰드득!

가브리엘이 미호가 쳐놓은 마지막 방어막을 손으로 비틀었다.

곳곳에 금이 가며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지만, 애런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애런, 카펠라가 뭐라고 했느냐?"

미호는 이런 상황임에도 너무 평온한 애런을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애런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준비하고 있으래."

"준비? 무얼 말이냐? 지금 눈앞에 가브리엘이 있건만 무슨 준비…?"

그리고 미호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별에서 떨어진 푸른 빛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빛에 담긴 강대한 마나를 눈치챈 가브리엘도 방어막을 쥔 상태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콰지지지직­!

빛은 순식간에 지상을 폭격하며 가브리엘을 감싼 날개를 태우고 꿰뚫었다.

그 기세는 줄지 않고 작은 빛줄기로 나뉘어지더니 가브리엘의 몸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미호, 가브리엘을 담을 상자!"

"상자?"

"전에 저놈이 이자벨라 님의 머리를 담았던 상자처럼 붙지 못하도록 칸막이가 있는 상자가 필요해."

"아, 이해했다."

미호는 큰 방어막 안에 작은 방어막들을 만들어 공간을 분리한 상자를 만들어냈다.

이윽고 빛이 멎어 들자 움푹 패인 대지와 온몸이 토막이 나 있는 가브리엘이 보였다.

마왕의 회복력마저도 억제한 카펠라의 마법은 가브리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고, 몸이 재생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처럼 보였다.

"미호, 빨리 담아놓자."

"으으… 저걸 만지고 싶지는 않다만."

미호는 가브리엘의 파편을 기겁을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상자에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애런과 미호는 이자벨라의 눈을 제외한 가브리엘 몸의 파편을 상자 안에 모두 담았다.

"하아…"

가브리엘이 소환했던 천사가 사라진 것까지 확인을 하고서,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 애런은 다리에 힘이 풀려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마기와 신성력을 사용한 대가 때문에 온몸이 찌뿌둥하고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보다는 덜한 걸 보니 그사이에 성장을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다 찾았네."

이자벨라에게 부족했던 마지막 신체인 눈과 뇌를 되찾았다.

이제 이자벨라와 도로시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어? 어? 애런, 이상하니라!"

그때 미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채고 애런은 미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야."

상자에 갇혀있던 가브리엘의 신체가 사르르 사라지고, 빛의 입자가 되어 재구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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