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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6화 (76/92)

〈 76화 〉 대성당

* * *

제1 사도 천사의 검인 가브리엘, 제3 사도 천사의 검인인 교황.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성장을 했다고는 하나 상대는 앙겔로크라티카의 최대 전력이다.

쉽게 접근하지도 못하거니와 접근한다고 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이니, 애런이 긴장을 하는 건 당연하였다.

"오빠, 모노크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못 도와줘."

아일라는 가브리엘을 상대하러 가는 애런을 보면서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가브리엘은 가끔 용사인 아일라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모노크롬에 들렀었다.

그걸 하러 오는 데에는 많은 일정을 취소할 필요가 있었지만, 아일라의 수련을 돕는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닌 일이었다.

아일라가 강해진다면 그것만큼 인간계에 있어서 든든한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가브리엘과 검을 몇 번이나 맞댄 아일라는 그의 강함을 알고 있다.

용사로 각성한 아일라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압도하지는 못했다.

이기는 것 정도는 이제 가능하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대륙을 통째로 소멸시킬 각오를 하고 마법전을 펼쳐야하는 수준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한참은 약해 보이는 애런이 가브리엘을 만난다고 가는 것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말린다면 이자벨라를 영영 구할 수 없다. 애런이 성장하기를 기다린다면 이자벨라는 오랜 시간을 더 고통받아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애런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애런은 얼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 아일라를 보며 말했다.

안심시키려는 듯 머리에 손을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불안하기는 하다. 아일라가 도와줬으면 수월할 텐데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아일라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20살까지는 2년 남았네. 뭐, 너도 성녀님처럼 성인이 되기 전에 나올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 보는 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응."

아일라는 침울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 관리를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다시 만나러 올게."

애런은 미안하지만, 또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일라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뾰로통하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싫네요. 이번엔 내가 만나러 갈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이제 지쳤다구."

"그래? 그럼 최소 2년은 안 보겠다는 뜻인가?"

"그런 말이 아니잖아. 성녀님처럼 빨리 나갈 거라고."

아일라는 다 알아들었으면서 장난치는 애런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힘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용사의 주먹은 꽤 아팠다.

성녀처럼 빨리 나가겠다.

그건 완전한 성녀를 가려내기 위해서 특별히 허락된 것이었지만, 용사인 아일라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애런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일찍 만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니 그러기를 바라면서.

"어쨌든, 이제는 가볼게."

"응, 이번에는 진짜 몸조심하고. 영 안 될 것 같으면 수정 구슬로 나한테 연락하고. 알겠지?"

"알겠어, 알겠어."

어느새 걱정해주는 처지가 바뀌어버린 것에 씁쓸하게 웃으며 애런은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

앙겔로크라티카의 중심이자 상징인 대성당.

새하얀 지붕 위에 있는 천사 동상은 들고 있는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대성당을 비췄다.

하얀 외벽은 햇빛을 받아 빛나며, 이곳은 신정 국가 앙겔로크라티카의 수장인 교황이 있는 곳이라는 듯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신성하기는."

애런이 보기에 대성당은 하늘에 있는 태양을 모방해 눈이 찌푸려지도록 밝은, 눈에 거슬리는 건물일 뿐이었다.

"음, 상당히 많구나."

대성당을 둘러싼 은빛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을 보며 미호가 말했다.

미호의 말대로 대성당 주변에는 전에 애런이 이단심문관의 입장으로 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기사의 수가 많았다.

대체 무엇을 경계해서 저렇게 수를 늘렸을까.

"알아챘나 봐."

그건 뻔하다. 모노크롬에서 제4 사도를 죽이고, 성녀 이자벨라의 신체를 회수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도도 죽이는 자를 성기사로 막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들은 그저 상대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깎아내리기 위한 버림 말일 뿐이며, 몰래 침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심어둔 가브리엘의 눈이다.

"눈치챘다면 시간이 별로 없을 거예요."

도로시가 말했다.

교황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까.

그건 세계 곳곳에 파견을 나가 있는 사도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제는 죽어 공석이 된 제4 사도와 제12 사도를 제외한다면 10명의 사도가 남았다.

가브리엘과 교황을 또 제외한 8명의 사도까지 이곳에 모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자벨라의 신체를 되돌려받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다른 사도들이 오기 전에 가브리엘과 교황을 죽이고 이자벨라를 되찾아야한다.

애런은 안 그래도 심적인 부담이 되는 일이었는데, 도로시의 말까지 들으니 더더욱 부담이 되었다.

"흠… 급할수록 돌아가라였나."

언젠가 마왕이 했던 말.

그때는 일을 서두르다 죽을 뻔한 것을 미호가 구해줬지만, 이번에는 잘못하다가 모두 죽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무얼 고민하느냐. 저 대성당을 통째로 없앨 마법을 사용한다면, 주변에 있는 성기사들 정도는 손쉽게 없앨 수 있겠지."

애런의 신중함을 이해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미호는 쉽게 중얼거렸다.

"너 말이야…"

하지만 듣고 보니 좋은 계획인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성기사들을 상대하며 체력을 소모할 바에는 한꺼번에 처리해 온존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괜찮은데?"

"그렇지?"

"뭐가 괜찮다는 건가요…"

도로시만이 그 계획의 문제점을 알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런과 미호는 감정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좀 덜떨어진 부분까지 공유하는 걸까 생각하며 도로시가 말했다.

"가브리엘의 신성 마법을 막으려면 미호 님의 마나를 최대한 보존해두는 게 중요하잖아요. 아닌가요?"

"그건… 괜찮다 계약을 했으니, 실시간으로 받는 거로 보충하면 된다!"

"진짜요?"

미호는 애런의 등에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군."

"너, 미호... 네 감정이 공유돼서 나까지 멍청해진 기분이었어."

애런은 무안함에 괜히 미호 탓을 하며 선을 그었다.

"애, 애런 이 자식 날 바로 버리다니…"

"어쨌든, 미호 님의 마나를 보존하는 것은 최우선이라고요. 그게 안 된다면 애런 님도 가브리엘을 상대할 때 무리가 있을 거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거대한 태양을 만들어 떨어뜨리는 신성 마법은 애런으로서는 막아내기 버거운 공격이었다.

그걸 생각해본다면 애런의 체력보다는 미호의 마나를 온존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럼 결국 제가 성기사를 상대해야 하나 보네요."

그렇게 생각하며 나서려는 순간.

멀리서 급하게 대성당 쪽으로 뛰어오는 많은 수의 시민들이 보였다.

그들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허겁지겁 질서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크게 외쳤다.

"악마의 아이다­! 대량의 악마의 아이가 생겼다­!"

대성당을 둘러싼 성기사들은 사람들이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섰다.

사람들은 벽처럼 자신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성기사에게 매달리고, 소리치고, 지나가려고 몸을 부딪쳤다.

"살려주세요!"

"곳곳에 있던 성기사들은 이미 당했어요…!"

"빨리 대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각자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성기사들에게 호소했다.

갑자기 파도처럼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성기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교황이 있는 대성당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앙겔로크라티카 시내에는 악마의 아이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원래 성기사는 교황만을 지키는 것이 아닌, 앙겔로크라티카 전체를 지키는 기사인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것을 지킬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애런 님, 어떻게 된 걸까요? 갑자기 악마의 아이가 생겼다니."

"이상하기는 하네요. 악마의 아이가 되는 10대 아이들은 전부 모노크롬에 갇혀있을 텐데요."

애런은 그렇게 말하면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최근에 아일라도 말했던, 말셀러스 저택에서 악마의 아이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

분명 그곳에는 성인들도 어깨에 역십자가의 흉터를 가지고 악마의 아이가 되었었다.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10대는 모노크롬에 갇혀있으니, 앙겔로크라티카 시내에 생겨난 악마의 아이는 성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어찌 됐든 좋은 일이다."

주변이 시끄러운 탓에 미호는 애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면 대성당에 힘을 빼지 않고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

애런에게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성인마저 악마의 아이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제 전생 용사처럼 모두를 구할 힘은 없으니, 지킬 수 있는 주변 사람만 지키자고 했으니 잠깐은 눈을 돌리는 것이다.

"으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이 하나둘 들리기 시작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것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그워어어­!"

인파가 몰린 곳에서 마기에 피부가 침식되어 보라색으로 물든 악마의 아이가 튀어나왔다.

근육이 부풀어 올라서 덩치가 3m에 가까워 보이는 악마의 아이가 커다란 손을 휘두르자 사람들이 힘없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저건… 뭐야?"

악마의 아이보다는 마물에 가까운 형태였다.

분명 어깨에 역십자가의 흉터가 있지만, 애런이 알던 악마의 아이와는 어딘가 달랐다.

결국 인파를 뚫고 나온 악마의 아이를 본 성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겹의 벽을 이루고 있던 성기사들 중 1겹의 성기사들이 사람들을 지나가며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기 위해서 달려갔다.

"아아악­!"

비명은 점점 다양해지며, 혼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람들은 2겹만 남은 성기사의 벽에 매달리며 진열을 흩트려놨고, 결국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애런은 성기사들을 지나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악마의 아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로시 님, 꽉 잡아요."

"네?"

애런은 도로시를 안아 들고 마기를 발에 집중시켰다.

사람들과 악마의 아이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빠르게 지나가기 위함이었다.

쿠웅­!

발을 구르자 큰 소리가 났지만, 사람들의 비명과 성기사들이 싸우는 소리에 묻혔다.

빠르게 튀어 오른 애런은 성기사들의 진열이 무너지고, 그들이 검을 빼 들어서 사람들을 제압하기 시작했을 때 한 줄기의 어둠이 되어 대성당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을 지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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