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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4화 (74/92)

〈 74화 〉 납치

* * *

"..."

애런은 창밖으로 악마의 아이가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를 맞는 모습을 지켜봤다.

언제나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사도나 몇몇 이단심문관이 가졌던 광기가 앙겔로크라티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많아?"

아일라는 자기와는 관련이 없다는 듯 애런이 태워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옆으로 다가왔다.

성기사들이 일손이 부족해 아일라를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 부탁을 거절했다.

오늘만큼은 성기사들의 일손이 더더욱 부족해져야 하니까.

"많네. 백 명은 족히 넘겠어."

모노크롬 곳곳에서 사람을 태워서 피어오르는 새카만 연기가 악마의 아이 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줬다.

바로 창밖에 십자가에 걸린 악마의 아이도 서서히 수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30명 정도가 되었다.

"계속해서 일손이 부족할 때 납치하자."

"응."

그렇게 말하며 애런은 창밖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

가짜 성녀 라즈니는 바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가짜라고는 하나 진짜 성녀의 일정을 그래도 소화해내고 있으니, 몸이 남아나지를 않는 것 같았다.

"몸은 나 죽어. 이러는데 뇌는 멀쩡하다고 하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야."

몸이 무리라고 말해도 뇌는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뇌는 새겨진 습관처럼 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어?"

라즈니는 손목시계를 보며 투덜거렸다. 시계를 고장 내서 초침이 움직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뇌를 속여서 조금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이 뇌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일 것 같지만…"

한숨을 쉬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환한 햇빛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뇌는 성녀답지 않게 얼굴을 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식된 성녀의 뇌는 사람들 앞에서는 철저하게 완벽한 성녀로서 행동하기를 강제했다.

그것이 빠듯한 일정 속에서 라즈니의 몸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항상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항상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성녀…"

씨발.

뇌는 이제는 사람들이 있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성녀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사람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였나?'

라즈니는 자신을 호위하러 온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성녀답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거울로 본다면 분명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진 미소였다.

이럴 때마다 자신이 라즈니가 아니라 뇌의 주인에게 자신이 집어 삼켜지는 것만 같아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 마차로 이동한 곳은 앙겔로크라티카에 존재하지만, 섬처럼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곳인 모노크롬이었다.

갑작스레 많이 생기는 악마의 아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불안함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불안, 공포…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진 인간에게 천사의 기적을 행하는 성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강한 믿음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래,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네.'

라즈니는 자신을 동경하듯이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즐거웠다. 항상 모멸 받으며 자랐던 자신이 유일하게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 라즈니는 뇌가 시키는 짓을 아주 잘 따랐다.

이 뇌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만들어주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뇌가 시켜 몸이 가는 대로 행동하면 어느새 성녀 라즈니가 되어있었다.

평범한 자신도 성녀답게 만들어주는 뇌. 처음 이식을 하려고 할 때는 거북했지만, 이럴 때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라즈니는 자신을 호위하는 성기사의 수가 평소보다 적은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성기사가 적네요?"

"네, 모노크롬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긴 악마의 아이 때문에 손이 비는 자가 적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성기사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라즈니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걸었다.

성녀인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데, 고작 이 정도 수로 지키겠다고?

자신의 가치가 저평가받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났다.

'이러다가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당신들은 모두 참수형이야. 그걸 알고 일하란 말이야.'

성녀 역할에 너무 심취해 자신이 진짜 성녀라도 된 것처럼 속으로 투덜거렸다.

거기다가 악마의 아이가 많이 생겼다고…? 그건 곧 라즈니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는 소리다.

그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성기사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

"이건…"

무슨 빨래를 널어놓은 것처럼 악마의 아이들이 줄줄이 십자가에 매달린 채 축 늘어져 있다.

온몸에는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생긴 시퍼런 피멍이 가득했고, 얼굴은 퉁퉁 부어서 사람인지 마물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라즈니는 인상을 쓰고 싶었지만, 이건 뇌가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많네요… 상태도 심각해 보이고요."

"네, 이때까지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수가 백은 가뿐하게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네…"

오늘은 수명이 일 년은 줄어들겠다고 생각하며 라즈니는 제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악마의 아이 앞으로 걸어갔다.

돌멩이에 맞아 정신을 잃은 녀석은 상대하기가 쉬웠다.

아직 정신이 멀쩡한 녀석들 같은 경우에는 꼭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라즈니는 사람들에게 이 자를 악마처럼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나나 둘이면 상관없지만, 매번 다르게 똑같은 내용을 말하려면 입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일이었다.

'자, 계속해서 정신을 잃은 녀석들만 나와주라.'

라즈니는 정화의 불을 붙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앞으로는 귀찮게 말하지 않아도 되도록 악마의 아이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돌을 던져달라고 말을 해볼까?'

"..."

악마의 아이를 무자비하게 정화하는 주제에 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대체 성녀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인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스스럼없이 사람을 죽여서 감정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떨 때는 남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성녀님, 저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하아…"

드디어 아직 정신을 붙잡고 있는 녀석이 나타났다. 라즈니는 귀찮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무런 죄가 없다면 정화의 불이 당신을 태우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불탄다면 당신이 악마라는 증거겠지요."

"거짓말쟁이!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잖아!!"

"..."

라즈니는 눈살을 찌푸리고 악마의 아이를 노려봤다. 귀찮게 만들지 말고 적당히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악마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너희들은 정화의 불에서 살아남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이건 거짓말이야! 그 빌어먹을 불은 사람이고 악마고 모두 불태운다고!"

"아닙니다. 정화의 불은 악마만을 불태운답니다."

"정말이요…?"

라즈니의 말에 십자가에 걸려있는 악마의 아이와 비슷하게 생긴 소녀가 걸어왔다.

성기사들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듯 검을 세워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상태였지만, 소녀는 그 상태로 말했다.

"그, 그렇다면 저에게 정화의 불을 붙여보세요…! 성녀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는 불타지 않는 것 아닌가요?"

"..."

라즈니의 몸이 살짝 떨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정화의 불이 악마만을 태운다는 거짓말이 들통나게 생겼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는커녕 불신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왜 가만히 계시죠? 설마 성녀님이 거짓말을 하신 건가요?!"

"... 좋아요… 정화의 불을 붙여드리도록 하죠… 이리로 다가와 보세요."

성기사들은 검을 집어넣고 소녀가 라즈니에게 다가가는 것을 허락했다.

지르고 보자. 일단 이 소녀를 불태우고 이 소녀가 악마였던 것처럼 몰아가자.

라즈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에게 정화의 불을 지르려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심판을 할 불꽃을 내려주소서."

화륵­! 라즈니의 손에서 벗어난 불꽃은 소녀의 몸에 옮겨붙었다.

"... 아?"

소녀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의 몸이 불에 타는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서서히 녹아가는 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성녀, 이 거짓말쟁이!! 악마만 불태운다고 했잖아! 왜, 왜 내 여동생이 불타고 있는 건데?!"

"여동생이 악마였네요. 어쩐지 성녀인 저를 의심하는 느낌이다 싶었는데, 악마여서 그런 것이었군요."

뻔뻔하게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거짓말인 것 같은데?"

"쟤 어깨에는 흉터가 없었어…"

"그럼 진짜 악마가 아니어도 불에 탄다는 거야?"

술렁임은 금방 퍼져나갔다. 라즈니는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소녀의 몸이 녹아갈수록 아이들의 반응은 점점 격해졌다.

툭!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라즈니의 머리를 때렸다.

"거짓말이다! 성녀가 거짓말을 했어!"

"어쩐지 내가 아는 성녀님이랑 모습도 달랐어. 이자벨라 님은 어디 간 거야."

격해진 분위기에 라즈니를 호위하던 성기사들은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움직였다.

"움직이지 마라! 성녀님을 공격하는 자는 악마인 것으로 간주하고 당장 목을 베겠다!"

한 성기사가 모든 아이에게 들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위협에 겁을 먹은 아이들은 던지려던 돌멩이를 손에서 놓고 그저 불타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성기사가 아이들을 막아서느라 라즈니에게서 떨어진 순간.

얼굴을 가린 사람 4명이 하늘 위에서 태양을 가리며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은 착지하자마자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로시 님, 지금이라면 저 아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도로시가 불타고 있는 소녀에게 손을 뻗자 정화의 불만이 소멸했다. 그리고 짧은 기도와 함께 소녀의 녹아내린 피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잠깐 기절을 했을 뿐이에요."

"좋아요."

성기사가 자리를 비운 틈에 누군가가 라즈니의 곁에 접근했다.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눈빛에 겁을 먹은 라즈니가 물었다.

"누, 누구야?!"

"너 납치하러 온 사람."

"꺄아악?!"

애런은 라즈니를 어깨에 들쳐메고 순식간에 도약했다.

"성녀님!"

눈 깜빡할 사이에 이루어진 계획적인 납치. 성기사들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오빠, 일이 잘 풀렸네."

도로시를 안아 들고 있는 아일라가 말했다.

"그러게. 저 꼬마에게 감사를 해야겠어…"

애런은 라즈니에게 의심을 한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감사를 표하듯 고개만을 까닥 숙였다. 악마의 아이인 그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여동생은 구해줬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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