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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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의 방으로 돌아온 도로시는 근육이 훤하게 드러났던 이자벨라의 몸이 새하얀 피부가 붙은 것을 보며, 조금이지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이자벨라의 신체를 되찾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던 이자벨라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아직 자신의 능력에 확신이 없는 도로시는 피부가 붙은 이자벨라를 만지지는 않았지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제 부족한 것은 눈과 뇌인가…"
애런은 메꿔지지 않고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눈구멍을 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눈인지 뇌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녀 행세를 하고 있던 라즈니에게 둘 중 하나가 이식되어있다는 것은 분명해."
그래야지만 성녀가 아님에도 성녀에 버금가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설명된다.
며칠 전에 봤던 라즈니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자벨라처럼 눈동자가 파란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말은 뇌를 이식받은 것은 라즈니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하는데, 그렇다면 눈은 누구에게 이식되었을까.
"제1 사도나 제3 사도겠지."
애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읽어낸 미호가 말했다.
"그 말은 가브리엘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소리겠네."
눈이 교황에게 이식되어있다고 한들 교황을 지키는 가브리엘을 쓰러뜨려야지만 이자벨라의 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애런은 1년 전에 있었던 가브리엘과의 전투를 떠올렸다.
공간을 벤다고 해도 그것마저 눈으로 좇을 수 있는 동체 시력 그리고 그걸 피하는 재빠른 움직임.
하늘에 수많은 태양을 만들어 떨어뜨리는 재앙과도 같은 신성 마법.
과연 지금이라면 가브리엘에게 검이 닿을 수 있을까. 애런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의 아일라가 도와준다면 가브리엘을 이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20살이 될 때까지 아일라는 모노크롬에 있어야만 했다.
몰래 데리고 나가는 건 가능하겠지만, 만약 그랬다가 가브리엘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아일라도 자신처럼 쫓기는 인생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피곤하게 쫓기고, 사람들이 알아볼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애런 혼자만으로 충분했다.
"하아…"
이자벨라를 구하기는 해야하지만, 너무 높은 난도에 애런은 한숨을 쉬었다.
도로시는 난감해하고 있는 애런을 보고 마음이 답답해져 숨 쉬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자신의 언니를 구하기 위해서 애런이 목숨을 걸어가면서 가브리엘과 맞설 이유가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걸 어떻게 보답해줘야 할까…
자신은 항상 애런과 이자벨라에게 받기만 했고, 무언가를 준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이렇게 된 것도 전부 자기탓이 아닌가. 괜히 치천사에게 선택받아 성녀가 되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하흐…"
도로시는 눈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숨을 골랐다.
'왜 나는 우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자책감이 밀려오고 자신이 싫어만졌다. 차라리 자신이 소멸해서 이자벨라가 완전한 성녀가 된다면 없는 신체까지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대로 자신을 소멸시킨다면 이자벨라가 돌아올까. 도로시가 능력을 발동한 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도로시 님."
애런이 도로시의 팔을 붙잡았다.
능력을 발동한 도로시와 접촉하느라 짜릿짜릿한 고통을 느끼는 애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이런 건 이자벨라 님이 바라지 않아요."
"하지만 가브리엘과 싸우는 건 무모한 짓이에요… 애런 님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는 모든 일의 원흉인 제가 사라지는 편이 나을 거예요."
"이자벨라 님이 완전한 성녀가 된다고 한들 신체가 복구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애런은 부드럽지만, 어딘가 날이 선 목소리로 도로시를 꾸짖었다.
"왜 가브리엘과 싸우는 것이 무모하다는 거죠? 저랑 미호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요?"
"두 분이 못 미덥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저는…"
도로시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분이 위험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 말은 두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걱정과는 다른 것이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믿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로시가 조용히 있자, 애런이 입을 열었다.
"... 이자벨라 님이 하셨던 말은 잊으셨나요?"
도로시는 고개만 살짝 들어서 애런을 올려다보았다. 애런의 눈은 자신에게 실망을 한 것이 아니었다.
1년 전 이자벨라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신을 믿는 눈빛이었다.
왜 자신은 저런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으며 애런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성녀로 생각하게 만들라는 말… 도로시 님은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1년간 노력했잖아요?"
밤새 잠을 줄여가며, 때로는 코피를 쏟아가며, 몸을 혹사하는 것이라 카펠라에게 꾸중을 들어가며 했던 노력들.
그 모든 것들은 이자벨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지, 이렇게 포기하기 위해서 했던 노력이 아니었다.
"저와 미호가 못 미덥더라도 도로시 님이 도와준다면 할 수 있어요. 저에게 강화 마법을 걸어줘도 좋고, 직접 가브리엘과 맞서는 것도 좋아요."
애런은 땅에 주저앉아 있는 도로시의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도로시 님은 지켜지는 존재가 아니에요. 저와 미호의 옆에 서서 저희를 도울 수 있는 성녀고, 언니를 돕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저와 미호를 도와주세요."
어떻게 하면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못 미더운 사람에게 이런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일까.
도로시는 약한 소리만 하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받는 자신이 좋기도 했다.
그 덕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은 것만 같아서, 절벽 끝에 내몰렸던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자벨라와 애런의 믿음에 보답하자.
한계에 다다른 정신력이지만, 마음은 곧 부서질 것만 같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으니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애런 님, 고마워요…"
자신의 운명은 항상 부정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죄송해요…! 제 능력 때문에 고통을 느끼셨을 텐데… 얼른 해제할게요!"
도로시는 뒤늦게 애런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런의 손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고통은 무슨… 그냥 정신 차리기 좋게 따끔하네요."
애런은 피식 웃으며 손을 놓지 않았다.
"뭘 허세를 부리느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는 게 다 공유되고 있건만."
"너, 미호… 지금 그런 말을 꼭 해야겠어?"
"꼴사납게 정신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어찌됐든, 나에게도 고통이 공유되고 있으니 빨리 손 놓거라."
애런은 눈치 없이 말을 하는 미호를 골리려는 듯, 도로시를 확 껴안았다.
"애, 애런 님?!"
"으아아아!! 애런, 개자식아!! 그만, 그만하거라아아앗!"
미호는 애런의 등에 매달린 채로 다리를 버둥거리며 고통을 표현했다. 얼굴은 콱 구겨졌고, 팔에는 힘이 들어가서 애런의 목을 꾹 눌렀다.
"미안, 미안하다!! 괜히 폼 잡고 있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어서 미안하다아악!!"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미호의 눈에 눈물까지 맺히고, 애런의 얼굴을 손으로 쥐어뜯으려고 했다.
그 정도가 되니 만족한 애런은 도로시에게서 떨어졌다.
"아, 도로시 님 죄송해요. 미호 녀석이 건방져서 그만."
"괘, 괘, 괘, 괜찮아요! 네, 오히려 좋았어요…! 조금 더 그러고 있어도 괜찮기는 한데…! 안기니까 보는 것보다 애런 님의 품이 생각보다 넓네요!"
도로시는 귀까지 빨개져서는 횡설수설 떠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아일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애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평소에도 그러고 다녀…?"
"응? 무슨 소리야?"
"아니, 여동생인 나는 그렇다고 쳐도… 남한테는 그러고 다니면 안 되지. 도로시 님은 뭐,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고."
아일라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껴안고 다니는 애런의 행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혹시 고도의 유혹인가? 저렇게 해서 카펠라 님과 미호도 꼬신걸까? 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여동생인 나는 그렇다고 쳐도… 라는 말은 너한테는 해도 괜찮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애런은 아일라를 와락 껴안았다. 아일라는 한숨을 푹 쉬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이러지 못하도록 자신이 받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18살이나 되어서 오빠가 껴안는데도 가만히 있는 여동생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지 않을까?"
"그런가? 그렇게 따지면 18살이나 되어서 오빠랑 같이 자려고 하는 여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오빠도 세상에 나 혼자뿐일 것 같은데."
"그으… 런가?"
아일라가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보니 자신이나 애런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이건 다 오빠 때문이야. 어렸을 때는 안 이랬는데, 계속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하다 보니까 나도 오빠를 닮아버렸잖아."
"잘했네. 아일라가 나 안 받아줬으면 엄청나게 상처 받았을 것 같은데. 역시 내가 잘 길렀다니까."
애런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며,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모두가 잠이 든 밤.
미호를 껴안고 자고 있던 도로시는 미호가 깨지않도록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두분은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옆으로 나란히 자고 있던 애런과 아일라는 어느새 애런이 밑에 깔리고 그 위에 아일라가 올라탄 형태로 자고 있었다.
"저도 언니랑 같이 저래보고 싶네요."
그리 중얼거리며 달빛이 비치는 창가로 가서 무릎을 꿇고 누워있는 이자벨라를 바라봤다.
아직 무방비한 이자벨라를 만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자벨라가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애런과 아일라처럼 사이좋게 스킨십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해보고는 싶었다.
그러려면 이자벨라가 깨어나야겠고, 자신도 이 세상에 존재해야지만 가능하겠지.
도로시는 몇 년전부터 빼먹지 않고 해왔던 기도를 시작했다.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자벨라와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천사님, 오늘도 기도드립니다. 십년이 넘는 고된 시간을 버틴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햇빛을 비추는 달이 조금씩 기울면서 이자벨라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기 위해서 언니를 구할 힘을 내려주시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여주소서…"
달은 점점 더 기울어서 도로시의 허벅지를 비췄다.
"... 천사님의 뜻을 곡해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사도를 심판할 힘을 주시옵소서…"
그 바람에 답하듯 달빛이 도로시를 둘러쌌다.
화아악!
치천사를 상징하는 순백의 날개 6장이 도로시의 등에서 돋아나 방안을 가득 채웠다.
도로시는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달을 바라봤다.
"천사의 대행자인 사도를 심판하는 걸 허락하신 겁니까…?"
곧 달은 구름에 가려져서 그 대답을 해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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