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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52화 (52/92)

〈 52화 〉 베로니카

* * *

“오빠가 왜 거기 있는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전에 나보고 편지라도 남기고 가라더니 오빠는 왜 그 말 안 지켜?”

다음 날 다시 도로시의 오두막에 갔더니,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있는 것을 본 아일라는 둘에게 큰일이라도 났을까 싶은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웠었다. 그래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은 놓였다.

다만, 2년 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돌아와서 며칠 만에 말도 없이 걱정을 끼치며 사라진 것은 조금 화가 났다.

“미안해, 가브리엘이 습격을 해서 그럴 틈이 없었어.”

“가브리엘 님이?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내 덕이니라!”

미호는 자기편을 만들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섰다. 위기에 빠진 애런, 그 위기에 등장하여 가브리엘의 공격을 막아내고 베네쿠스로 전이한 것. 미호는 자신의 무용담을 과장 섞어서 아일라에게 말해주었다.

“근데 왜 그렇게 늦게 나섰어요?”

하지만 아일라의 말에 미호는 몸을 움찔거렸다. 말도 더듬는 것이 아주 수상한 모습이었다.

“그, 그, 그… 그건…”

“설마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마나를 아끼려고 했다가 자기도 죽을 것 같으니까 그때 나선 거에요?”

그 말에 미호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전부 차가워졌다. 아니, 차갑다 못해 쓰레기를 보는 듯한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눈빛이었다.

“왜 미호 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실망감만 커질까요…”

“조금만 일찍 나서줬으면 내 몸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는데?”

“넌 여전히 구제할 방법이 없는 쓰레기구나.”

세 명이 툭툭 던진 한마디에 미호는 히끅 거리며 입을 꾹 닫았다. 입을 열면 손해다… 이 입이 문제라면서.

“어쨌든 가브리엘 님을 상대로 멀쩡하게 도망쳤다니 다행이야. 그래서 다음에 돌아올 때는 이자벨라 님을 구하러 온다는 거지?”

“응, 그렇게 되면 완전히 앙겔로크라티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니 만나기가 힘들 것 같아.”

“됐어. 나도 20살만 되면 모노크롬에서 나갈 수 있는걸. 그때까지 죽지나 마.”

“알겠어.”

그렇게 아일라에게 생존 신고를 하고 연락은 끝이 났다. 카펠라는 직접 보지는 못하더라도 연락 정도는 하라며 수정 구슬을 흔쾌히 넘겨주었다.

“너에게는 자꾸 빚만 생기네.”

“나중에 다 받아낼 거니까 걱정 마요.”

땡­땡­.

그때 방안에 걸린 거대한 시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카펠라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베네쿠스 근처에 도마뱀들이 왔어.”

애런은 카펠라가 말하는 도마뱀이 진짜 도마뱀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전에 용의 협곡을 지나면서 데인 것이 많았기에 그때부터 용을 도마뱀이라고 낮춰 부르기 시작했었다.

“용이 갑자기 왜?”

“몰라. 2년 전부터 갑자기 날아왔어요.”

자신들의 서식지인 용의 협곡을 벗어나지 않는 용들이 멀리 떨어져있는 베네쿠스까지 날아오는 것은 이상 현상이었다.

“어쨌든 일하러 가야 하니 따라오면서 들어.”

용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마왕 토벌 당시 마계로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용의 협곡을 건너야만 했었는데, 그곳을 지나면서 죽은 사람의 수가 마계에서 죽은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그만큼 위험한 용들이지만 베네쿠스의 마법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용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섯 마탑을 축으로 만든 대육각형의 마법진으로 발동시킨 방어막은 용이라고 할지라도 뚫어내지 못하는 철벽이었기 때문이었다.

카펠라를 따라 방 안 구석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자 마탑의 옥상에 올라왔다.

이 높고, 넓은 곳은 베네쿠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으며 날씨가 좋다면 앙겔로크라티카나 오르도 왕국도 보일 정도라고 했다.

“와아아…”

도로시는 눈을 크게 뜨고 난간에 매달려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구름보다도 위, 지상보다도 별들과 더 가까운 마탑의 옥상에 올라온다면 누구나 그런 반응일 것이었다.

“저기 보여? 저것들이 도마뱀이야.”

카펠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애런과 도로시는 눈을 찌푸리고 쳐다봤지만, 평범한 그들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hyooaga deark.”

푸른 빛의 입자가 모여 화면을 만들어냈다. 화면에는 베네쿠스의 방어막에 브레스를 뿜어대고 있는 용들이 비추어졌다.

물리적인 공격이나 마법을 막아내는 검은 비늘, 아무리 두꺼운 장갑이어도 뚫어내는 날카로운 이빨, 무거운 몸을 날게 하는 거대한 날개, 세상을 꿰뚫어 보는 용안. 그 모든 것은 애런이 아는 용의 모습 그대로였다.

“저렇게 방어막을 소모하게 하니까 쫓아내는 것이 내 일이야.”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요?”

“당연하지. 대마법사를 우습게 보면 곤란해.”

카펠라는 떨어지라는 듯이 손짓하고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viouelu la hyooa sualu.”

땅에서, 하늘에서, 마탑에서 푸른 마나들이 영창을 하는 카펠라의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옅었던 푸른 빛이 마나가 모임에 따라 깊은 바다색같이 짙어졌고,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카펠라는 충분한 마나가 모이자, 마나 덩어리인 구를 하늘로 던졌다. 그러자 기하급수적으로 크기가 커지며 하늘에 푸른 별이 떠올랐다.

“vialu sua.”

푸른 별이 찢어지며 전 방향으로 파편을 날리기 시작했다. 베네쿠스의 방어막은 내부에서 사용한 마법을 자연스럽게 통과시켰고, 카펠라의 공격은 용들이 있는 곳까지 별똥별처럼 포물선을 이루며 날아갔다.

콰과과과과광­!!!!

그리고 눈으로 보기 힘든 거리에서 주홍색의 폭발이 굉음을 내며 연달아 일어났다. 방어막을 둘러싸듯이 일어난 폭발들은 용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으며, 하늘을 날고 있던 용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폭발의 충격파로 투명한 방어막이 몇 번이고 출렁거렸다.

“여전히 마법의 화력은 대단하네…”

전보다 더 성장한 카펠라는 애런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정도 대마법을 사용한다면 단숨에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역시 베네쿠스의 비대칭 전력인 대마법사답다.”

미호는 박수를 치면서 카펠라를 칭찬했지만, 어떻게든 편을 만들어보려는 너무 뻔한 의도가 담긴 칭찬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넌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훨씬 나아.”

“알겠다…”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미호를 보고는 이어서 말했다.

“몇 마리는 죽은 채로 떨어져 있을테니까 주워서 베로니카한테 가져가. 그런 거 모으는 게 취미라서 좋아할 거에요.”

카펠라는 금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종이를 꺼내서 뭐라고 휘날려 쓰더니 애런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내 손님이라는 증명서에요. 멍청한 여우 년 때문에 마법사들이 덤벼들어서 귀찮을 텐데, 그걸 보여주면 그냥 갈 거야.”

“안 그래도 길 나갈 때마다 마법을 쏴대서 도로시 님이 고생했는데 다행이네.”

“그리고 베로니카한테도 보여줘요. 사정을 써놓기는 했는데 도와줄지 말지는 그녀의 선택이야.”

용들을 다 쫓아낸 뒤 방으로 돌아와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앞에 앉더니 이제 나가보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

카펠라의 마탑을 나온 뒤 베로니카에게 줄 용의 시체를 구하기 위해서 미호의 안내를 받으며 베네쿠스의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미호 님, 오랜만에 쓸모가 있으시네요.”

“대마법사인 나를 이렇게 써먹다니…”

미호는 자신의 비참한 신세에 코를 훌쩍이며 카펠라가 건네준 종이를 다리 위에 서 있는 마법사들에게 잘 보이도록 두 손으로 들고 걷고 있었다.

분명 자신과 동급의 대마법사 일터인데 왜 이런 처지의 차이가 생긴 것일까…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고 억울했다.

“그래서 지금 가는 곳은 어디야?”

“베네쿠스의 동문이다. 카펠라가 내 마탑과 가까운 곳에 용을 없애지 않고 죽이기만 해뒀다더군.”

“이제는 미호 님의 마탑이 아니라 베로니카라는 분의 마탑이잖아요?”

“내 마탑인데… 내 것인데… 베로니카 악마 같은 년…”

도로시의 말에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제자를 욕하며 걸었다.

“어쨌든, 동문으로 걸어가는 길은 이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뿐이다.”

때마침 도착한 하늘을 비추는 연청색 호수 위에 놓여있는 다리는 바닥이 유리로 돼 있어 사람들이 호수를 구경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여행객들이 꽤 많이 찾는 장소인지, 다리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무슨 줄인가요?”

“아, 여행객들을 상대로 통행료를 받는 것이다. 이곳은 동쪽 마탑, 그러니까 내 마탑…”

“베로니카 님의 마탑이잖아요?”

도로시의 빠른 정정에 미호는 눈살을 찌푸리고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 베로니카의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관리하는 곳이다.”

“카펠라 님이 주신 종이가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런 셈이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요. 미호 님, 절대로 그 종이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냥 꽉 쥐고 있으세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으시죠?”

“너는 나를 대체 어떻게 보는 것이냐…”

그렇게 말하며 종이가 구겨질 정도로 꽉 끌어안아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점점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고 어느새 셋의 차례가 왔다. 하얀 로브를 쓰고 있는 마법사는 미호를 보고 얼굴을 콱 구기며 욕을 내뱉었다. 대체 어떤 짓을 당했길래 얼굴만 봐도 저런 반응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악덕 마탑주 미호 님 아니십니까.”

“어어… 이거 보이지 않느냐? 나는 지금 카펠라의 손님으로 와있는 입장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지.”

미호는 소중하게 들고 있던 종이를 들어서 마법사에게 보여주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본 마법사는 혀를 한번 차고는 지나가라고 말했다.

“엄청나게 노려보는데요.”

“무, 무시하거라… 어차피 이 종이가 있는 이상 베네쿠스의 마법사는 나를 건드릴 수 없느니라.”

푸화아악!! 미호가 마법사를 통과하고 다리를 지나가려는 때 거대한 물고기가 호수에서 튀어 올랐다. 온몸에 가시가 난 물고기는 입을 뻐끔거리며 미호를 잡아먹을 기세로 다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비켜요.”

앞을 가던 미호를 애런이 있는 방향으로 밀쳐내고 도로시가 물고기를 막아섰다. 물고기는 능력을 발동한 도로시에게 닿지 못하고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졌다.

도로시가 미호를 밀쳐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미호는 물고기 밥이 되어있을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린 공격에 미호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꽉 쥐고 있던 종이를 땅에 떨어뜨렸다.

“괜찮아?”

“아… 괘, 괜찮다.”

애런은 이상하리만큼 당황한 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저 물고기는 호수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근데 호수에서 튀어나왔는데?”

“소환수다.”

“도망치더니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뭘까?”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고깔모자를 쓰고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가 서 있었다. 마법사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니 언젠가 미호에게 들었던 붉은 단발에 검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베로니카.”

미호의 부름에 베로니카는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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