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선택의 결과
* * *
푸른 빛에 휩싸이며 전이된 곳은 하늘까지 솟아있는 거대한 6개의 마탑이 있는 나라, 베네쿠스였다.
“꺄아아앗!”
도로시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 아마 혼란한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아직 머리 위에서 태양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시 님, 이제 괜찮아요.”
애런은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제서야 벌벌 떨고 있던 도로시는 팔을 내리고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죽음이 다가왔던 상황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평화로운 도시 한복판이었다.
사람들은 지팡이를 타고,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동을 하고 있었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섬들도 보였다.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눈을 크게 뜨고 넋을 놓고 바라봤지만, 곧 고개를 홱 돌리며 애런에게 물었다.
“애런 님, 언니는… 언니는 어떻게 되었나요?”
애런은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도로시가 덜 충격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입술을 질근 씹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도로시는 불안에 떠는 표정으로 애런을 바라봤다.
“솔직하게 말해줘라. 모른다고 될 일은 아니잖냐.”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전이를 하기 전까지는 어른의 모습이었던 미호는 어느새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나. 마나 효율이 좋은 몸으로 바꾼 것뿐이다. 조금 전에 몇 번의 마법으로 모아뒀던 마나를 거의 다 써버렸으니까 말이야.”
애런은 눈앞에 있는 미호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지만, 일단 도로시의 질문에 대답해주기로 했다.
‘맞는 말이야. 모른다고 될 일은 아니지.’
이자벨라와 도로시는 가족이다. 언니인 이자벨라가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숨긴다고 한들 그건 도로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애런은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이자벨라 님은 가브리엘에게 붙잡혔어요. 그리고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을 거에요.”
“고문이요..?”
도로시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언니가 왜 그런 괴로운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성녀인 이자벨라 님은 죽지 않으니까 천사에 대한 믿음을 없애서 성녀의 자격을 빼앗고 죽이려는 속셈이겠죠.”
“그런, 그런 잔인한 짓을 천사님이 허락하실 리가 없어요…”
“천사가 허락하고 말고 원래 그놈들은 자기 좋을 대로 천사의 뜻을 해석하는 광신도들이니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충격을 받은 도로시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어 땅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러면 안 돼요…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언니가 이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지하실에 갇혀있을 때 만났던 이자벨라는 항상 피곤함에 찌든 표정이었다. 힘들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걸 볼 때마다 더 마음이 아팠었다.
천사님은 왜 그렇게 고생하는 언니가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까. 천사의 뜻을 알지 못하겠다. 도로시는 조금이지만 자신과 이자벨라를 돌보지 않는 천사를 원망했다.
“이자벨라 님은… 제가 언젠가 구해낼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저도 구하러 와주세요.
애런이 도망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이자벨라가 했던 말이다. 그녀에게 말하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대충 짐작하고 있다.
아마, 예지 능력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애런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이다.
죽지 않는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유린하는 광신도들.
분명 견디기 힘든 미래일 텐데, 이자벨라는 도로시를 위해서 자신이 잡히더라도 가브리엘의 발을 묶는 선택을 했다.
도로시의 말대로다. 이건 잘못된 일이다. 천사 놈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애런은 욕을 했다.
“성녀에 몸 속에 마왕이 있는 녀석이라. 아주 이상한 조합이구만.”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미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너는 뭐냐? 마족이냐?”
애런의 질문에 미호는 불쾌한 듯 얼굴을 콱 구겼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이 꽤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까 봤다시피 나는 구미호다. 평범한 여우가 마나를 흡수하고 이해해서 힘을 쌓은 게 구미호라고. 어디 근본 없는 악마 놈들하고 비교하고 있나?”
[구해준 건 고맙다만 짜증 나는 녀석이군. 돌연변이 주제에 악마보고 근본이 없다고 하다니.]
애런이 보기에는 마족이나 구미호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조금만 쉬도록 하죠.”
전투의 반동이 서서히 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기를 쏘아낸 덕에 몸이 침식당하지는 않았지만, 허용치를 넘는 마기를 받아들였던 몸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혈관이 터진 것 같은 느낌이다. 고깃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두 명의 성녀에게 받았던 신성력은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쪽은 애런의 정신력으로 버틸만했지만, 이걸 버티고 있자니 몸의 제어가 어려웠다.
이건 위험하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정신을 못 차리겠다. 애런은 몸이 말이 듣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애런 님?”
애런은 서 있지 못하고 휘청거리더니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몸에 마기를 너무 많이 받아들였던 탓이야. 일단 어디 가서 쉬자고.”
미호는 자연스럽게 애런의 품속에서 금화가 든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도로시를 빤히 쳐다봤다.
“뭐해? 이 녀석 끌고 오지 않고.”
“아… 그게 제가 닿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완전히 무방비한 애런의 몸 상태는 도로시가 살짝만 건드려도 소멸할 것만 같아서 건드리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럼 내가 이 작은 몸으로 끌고 가리? 죽게 내버려 둘 거면 내버려 두던가.”
“끌고 갈게요. 끌고 가면 되잖아요.”
쓰러진 애런을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기에, 도로시는 조심스럽게 애런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질질 끌고 이동했다.
*
빛이 들지 않아 칙칙한 냄새가 나며, 추운 지하실. 원래는 도로시가 갇혀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자벨라가 갇혀있는 곳이다.
절그럭. 팔다리를 옭아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쇠사슬이 흔들렸다.
“이제 정신을 차리셨습니까?”
눈앞에는 제1사도 가브리엘 플라벨룸과 알지 못하는 이단심문관 한 명이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본 적은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이자벨라의 미래 예지에 나타나 잔혹하게 고문을 했던 이단심문관이었다.
“일단 소개부터 해드리죠. 제 옆에 계신 분은 천사의 불, 제4사도 그레이슨 이그나 님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녀님.”
얼굴의 반을 덮는 화상 자국이 있는 그레이슨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칼리고 제국에 파견 나가 있던 제가 앙겔로크라티카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성녀님을 성녀가 아니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레이슨은 전혀 떨지 않는 이자벨라의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부러진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죽지 않는 성녀님에게 해보고 싶은 일은 많습니다. 그러니 굳이 성녀가 아니게 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이제껏 제 고문을 하루라도 버틴 자는 없었습니다. 뭐, 입을 먼저 열든지 아니면 버티다가 죽어버리던지…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그레이슨은 이자벨라에게 다가오더니 푹! 단검을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피가 줄줄 흐르다가 곧 상처가 부자연스럽게 금방 아무는 모습을 보더니, 그레이슨은 활짝 웃었다.
“하지만 성녀님은 다르시죠. 제가 어떻게 가지고 놀아도 죽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 멋진 능력이에요.”
“그레이슨 님, 이자벨라 마이어는 심상 기도로도 상당한 위력의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요? 그럼 미리 손 봐둬야겠네요.”
푸욱!! 그레이슨의 손이 이자벨라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휘젓더니, 속에 들어 있는 뇌를 끄집어 내더니 다시 붙지 않도록 칸이 나누어져 있는 상자에 집어넣었다.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것 외에 고통을 받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제가 전해드릴 것은 다 전해드린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말하고 이자벨라를 한 번 흘겨보았다.
“다음에 볼 때는 부디 차가운 시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쉽네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이자벨라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가브리엘은 무심하게 지하실을 떠났다.
이제 이 지하실에 남은 사람은 그레이슨과 이자벨라 둘 뿐이었다. 그레이슨은 실실 웃으며 지하실에 놓여있는 고문을 하기 위한 도구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인한 고문은 잘 안 통할 것 같으니… 바로 식사 시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식사 시간이요…?”
그래, 분명 꿈에서 봤었다. 구멍이 뚫린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이 자신의 입에 꽂혀있는 그 광경을. 아마 그걸 말하는 것이겠지.
확실히 고통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역겨움은 익숙하지가 않다.
꿈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렸더니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느껴지다 금방 토해버렸다.
“저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런 반응이라니…”
그레이슨은 손으로 이자벨라의 턱을 잡아 들었다. 눈에 비친 그는 흥분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입에서 침을 흘리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런 반응이 있어야지 고문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좀 더 그런 반응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이자벨라의 입을 열어 혓바닥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우설 구이는 먹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그게 구워 먹으면 참 맛있는데… 아, 혓바닥을 뽑아내서 맛을 못 느끼려나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얘기하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영창을 하더니 지하실 한 쪽에 불을 지폈다.
치이익!! 그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불에 고기가 익는 냄새가 났다.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면서 많이 맡았던 냄새였지만… 지금만큼은 너무나 역했다.
그 역겨운 냄새에 이미 텅 빈 속은 위액과 피만을 밖으로 내보냈다.
“자, 완성되었습니다. 한 번 드셔보시지요.”
그레이슨은 다시 이자벨라의 입을 강제로 벌려 구워진 것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웁...!”
이자벨라가 금방 토를 할 것 같아 보이자 그레이슨이 입을 손으로 닫고 턱을 위아래로 움직이게 하며 안에 든 것을 씹도록 만들었다.
물컹물컹한 식감인 자신의 혀는 이에 갈기갈기 찢어졌고, 제 자리를 찾아가듯 꿈틀거리며 붙었다.
혀가 원래 자리에 되돌아오자 자신의 입에 있는 피와 방금 씹었던 혀의 맛이 느껴졌다.
이자벨라는 눈물이 맺힌 채 눈살을 찌푸렸다.
가브리엘에게는 버틴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고문이 시작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도로시… 애런 님… 아일라 님…”
그럴 때마다 이자벨라는 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꺾이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버티기 힘드네요… 구해주세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