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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41화 (41/92)

〈 41화 〉 발각

* * *

“... 설마 피델리오 경이 실패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추기경에게 허락된 자줏빛 가두리 장식이 달린 진홍색 수단을 입은 가이세릭이 나지막이 말했다. 꽤 오랜 시간 추기경의 자리에 있으며 앙겔로크라티카를 다스렸지만, 사도가 누군가에게 당해서 죽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거리를 지키던 성기사에게 피델리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추기경이었지만, 답지 않게 입을 벌리고 놀랐었다.

“이대로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은빛 갑옷을 입은 성기사는 고개를 숙인 채로 물었다. 가이세릭은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을 벗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무언가를 잘못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몇 번이고 말했지만, 가이세릭은 교황의 뒤를 잇는 최고위 성직자다. 앙겔로크라티카의 내부에 있는 자 중 교황과 그에 필적하는 지위를 가진 가브리엘을 제외하고는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거기다가 위험한 능력을 가진 성녀를 죽이고 이자벨라가 완전한 성녀가 되는 것은 교황도 바라는 일이다. 천사의 말씀인 교황의 뜻은 곧 천사의 뜻이다. 그렇기에 가이세릭은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도도 실패한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가이세릭은 천장을 쳐다보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툭툭툭… 시계의 초침과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 그 화음을 깨뜨리는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툭툭… 나무 바닥을 묵직한 무언가가 두드리며 가이세릭의 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성기사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리고 문을 쳐다봤다.

끼익. 문이 열리며 작은 촛불 하나로 밝히고 있던 방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가이세릭과 성기사는 눈을 찌푸리며 자신들에게 걸어오는 존재를 보았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는 감히 성녀의 암살을 꾀한 불손한 자들이 고개를 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방 천장에 생긴 십자가는 가이세릭과 성기사의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들이 땅에 엎드리도록 만들었다.

“가이세릭 추기경. 당신이 이번에 하신 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뇌리에 박히는 듯한 목소리를 들은 가이세릭은 눈을 크게 떴다.

“가브리엘 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떨리는 목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표면적으로는 추기경인 가이세릭이 성기사인 그보다 높은 지위에 있지만, 그것은 교황청에서의 지위일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위 따위는 천사가 선택한 사도라는 지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사도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는 교황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평가받는 자란 말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자가 나타나자 가이세릭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셨습니까?”

스르릉… 검집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세릭의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 당장 잘못을 구해야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이자벨라 님을 완전한 성녀로 만들려고 한 것 때문입니까?”

도로시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완전한 성녀가 탄생하는 것은 교황은 물론이고 가브리엘도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르시는 모양이니 제가 말해드리겠습니다.”

가브리엘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한기가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인 당신 따위가 감히 천사님이 선택한 성녀님을 해하려던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사도인 저와 교황조차도 섣부르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는데, 주제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

뿌득… 얼마나 세게 입을 다물었는지 이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가이세릭은 추기경인 자신을 당신 따위라고 부른 가브리엘을 고개를 숙인 채로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살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다면 당장 목이 베여버릴 테니까.

“하지만 당신들도 성녀님을 죽이려고 평가를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저희와 당신은 다릅니다. 저와 교황은 천사님이 두 명의 성녀를 택한 것은 보다 우수한 성녀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러니 보다 성녀에 어울리는 분을 골라서 완전한 성녀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평가인 것입니다.”

완전한 성녀는 만들어내고 싶지만 천사는 쌍둥이를 성녀로 선택했다. 그러니 그들의 뜻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자신들은 천사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릇된 믿음에 불쾌감을 느꼈다.

제멋대로 이유를 붙이면서 결국 하려는 행동은 자신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광신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신에게 편한 대로 곡해하는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중얼거렸다.

서걱.

가이세릭이 말을 함과 동시에 목이 베어졌다. 가브리엘은 불쾌한 기색은커녕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카엘 님에게 선택받은 제가 광신도라니…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가이세릭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

“이자벨라 님, 이번에 갈 마을은 조금 과격한 자들이 있다고 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 말은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스스로 몸을 지킬 준비를 하라는 경고였다.

가브리엘이 이자벨라의 곁에 있는 것은 순전히 평가를 위한 것이다. 만약 이자벨라가 마을 사람들에게 습격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성녀로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평가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거였다. 도로시가 완전한 성녀가 되기를 바라며.

흑기사에게 도로시가 안전하도록 잘 지켜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과는 정반대된 태도지만, 가브리엘은 부끄럽다거나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마족을 죽일 수 있는 강한 능력을 가진 도로시가 성녀가 되는 것이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앙겔로크라티카에서 꽤 떨어진 작은 마을은 굳이 따지자면 이단의 마을이었다. 천사를 믿지 않고, 태양과 달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 사는 곳이었지만 가브리엘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이단을 심판하는 것은 이단심문관이 할 일이지 자신이 할 일이 아니었기도 했고, 무작정 죽이는 것보다 이들을 개심 시켜 천사를 따르는 자들을 더 많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단심문관에게 일을 맡기겠지만 말이다.

작은 마을 사람들이 성녀와 제 1사도를 보기 위해서 입구에 모여있었다. 비록 자신들이 믿는 신과는 관련이 없는 자들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한 발자국 나와 이자벨라와 가브리엘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이런 누추한 마을에 앙겔로크라티카의 성녀님과 제 1사도님이 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대접해드릴 것은 없지만, 편하게 계셔주십시오.”

이자벨라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촌장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저희는 고개를 숙일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니요, 천사님께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맡겨진 역할. 저는 그 역할이 성녀일 뿐입니다.”

이자벨라의 목소리는 묘하게 마음을 떨리게 하는 힘이 있었고, 촌장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천사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결례가 된다면 그만두겠습니다만 어떠신지요?”

“원래 사람들이 따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많은 사람이 따르는 천사님의 말씀은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일 테니, 저희야 좋지요.”

촌장의 말에 끄덕이면서도 촌장이 아닌 다른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젊은 사람들은 촌장과는 다르게 이자벨라에 대한 적개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믿는 신이 다르니 당연한 반응이죠.’

이자벨라는 이 사람들에게 천사의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자애로운 천사님, 이 마을에 복을 주시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다른 신을 따른다고는 하나 평등한 자들에게 충만한 은혜와 사랑을 내려주소서.”

흐릿한 구름 사이로 빛기둥이 내려와서 이자벨라를 감쌌다. 매번 같은 방식이었지만, 이걸 보는 시선은 평소와 다름을 눈치챘다.

“저건 우리가 따르는 신인 태양이 내려주신 빛이다..!”

한 젊은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름이 있더라도 태양의 빛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으니 그렇게 착각할 만했다.

그 말과 함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갔다.

“우리의 신이 내린 기적을 자신이 따르는 신이 내린 것처럼… 뻔뻔하다.”

“역시 천사 같은 것은 없어. 높은 하늘에 존재하는 것은 태양과 달만이 유일하다.”

“이건 신성 모욕이다! 우리를 우롱하는 거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마을 사람과는 달리 촌장은 그들을 진정시키고자 했지만 노인의 힘없는 목소리는 그들의 외침에 묻혀 전해지지 않았다.

흥분한 한 청년이 이자벨라를 향해 날붙이를 들고 뛰어왔다.

촤악!

날붙이가 스친 이자벨라의 볼에 상처가 나며 피가 흘러나왔다. 이자벨라는 당황하며 볼에 난 상처를 손으로 바로 가리고 가브리엘의 눈치를 살폈다.

마을 사람이 습격했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 아니었다. 혹여나 가브리엘이 자신의 초월적인 재생 능력을 보았을까 봐 당황한 것이었다.

‘봤을까..?’

얕은 상처는 이자벨라의 능력에 의해 손을 갖다 대기도 전에 금방 치료되었다. 부자연스럽게 아무는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최대한 빠르게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척을 했지만, 제1사도인 가브리엘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음…”

툭… 툭…

마을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 둘 떨어졌다. 그리고 검에 깔끔하게 베인 목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자리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이자벨라의 눈에는 그것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커진 눈으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검을 다시 집어넣는 가브리엘만을 바라봤다.

“그 능력.”

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가 이자벨라를 향했다.

“마치 전 용사님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네?”

머리를 굴린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둘러대야 한다. 유일하게 도로시의 편을 들었던 가브리엘이 없어진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성녀는 더는 성녀로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이 들지만, 가브리엘의 검은 이자벨라의 사고보다도 더 빨랐다.

투두둑…

“아.”

이자벨라는 볼을 가리고 있던 손을 쥐었다 펴려고 했다. 하지만 쥐었다 필 손가락이 없었다. 손바닥과 이어진 5개의 구멍에서 피가 쏟아져나오며,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고통에 익숙한 이자벨라는 작은 비명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다시 자라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전 용사님과는 다른 모양이군요.”

가브리엘은 땅에 떨어진 이자벨라의 손가락을 주워서 피가 솟구치는 구멍에 붙여줬다. 그러자 손가락이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리더니 잘린 신경, 근육, 혈관들이 이어지며 원래 자리를 되찾아갔다.

“혹시 머리도 붙습니까? 뭐, 이것도 시험해보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아…”

“머리가 베여도 살아있다니…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눈앞에 있는 가브리엘은 너무나도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자벨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사의 능력. 죽지 않는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있는 법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성녀님.”

“안 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꼭꼭 숨겼던 능력이 들켜버렸다. 능력주의였던 가브리엘은 이제 이자벨라를 지지한다.

도로시가 살아있을 수 있었던 마지막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 앙겔로크라티카에 도로시의 편은 아무도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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