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성녀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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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신실함을 인정받아 그들과 계약한 12사도. 사도들은 천사에게 받은 강한 권능으로 그들의 대행자 역할을 한다.
“제가 받은 권능은 전투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변명할 것은 되지 못하죠.”
피델리오는 애런의 검을 주먹으로 막아내면서 입으로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제 믿음에 자신이 없습니다만… 제게 신앙심을 바라신다면 부디 힘을 빌려주십시오.”
끼고 있던 금속 건틀릿을 벗어던지자 피델리오의 주먹에는 십자가 모양의 성흔이 생기며 밝은 빛을 냈다. 성흔이 생기자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신성력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애런은 피델리오의 신성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검에 마기를 담았다. 검은 손잡이부터 천천히 검게 물들어갔다. 상대는 말석이라도 사도다. 용사도 아닌 애런이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대지만, 이 싸움은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델리오의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갑옷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애런은 마기를 일점에 집중시켜 방패를 만들어냈다.
콰앙! 좁은 옥상에서 몇 번이고 충돌이 일어난다. 도로시의 눈에는 그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지만, 공기를 타고 전해져오는 충격파와 소리는 분명 둘이 부딪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피델리오는 웃으며 애런의 방어가 약한 곳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한 손은 검으로, 다른 손은 방패로 막아내며 공방이 이루어진다. 애런은 방패를 들고 있던 팔을 들고 피델리오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군요..! 힘을 더 주셔야겠습니다.”
피델리오의 말에 주먹에서 뿐만이 아닌 두 발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공격이 다양해졌다. 두 팔로 막아내기에는 공격의 가짓수가 많아지고 변칙적인 공격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새 방패를 든 애런이 피델리오의 품속까지 들어왔다, 피델리오는 자신보다 긴 사거리에서 공격을 할 수 있으면서도 굳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라 의심을 하고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이건…”
마기의 조작에 능숙해진 애런은 피델리오와 공격을 주고받으면서도 마기를 땅속으로 흘려보내 뒤에 가시를 만들어냈다. 허벅지를 꿰뚫어 움직임을 막을 생각이었지만, 용케 그걸 피한 피델리오는 역공을 해왔다.
“마기! 저를 보고 이단이라고 하시더니 이래서는 누가 이단인지 모르겠군요!”
“사도 정도가 되니 숨긴다고 해도 느낄 수있는건가.”
피델리오가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는 여기서 죽여놓을 것이니까.
마기를 응축시켜서 만들었던 방패를 해제했다.
환생한 애런의 몸은 연약했고 전생만큼 생각하는 대로 따라서 움직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방어를 위해서 방패를 만들었던 것이지, 전력을 내기 위해서는 방패가 불필요했다.
원래 애런은 검과 방패를 동시에 쓰지 않았다. 익숙한 것은 두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검.
용사의 신체는 뛰어났기에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래서는 막을 수 있는 평범한 검이 었다. 두 손으로 휘두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방패도 베어내고, 쳐내려고 해도 쳐낼 수 없는 일격필살의 검이 되었다.
물론 용사였기에 일격필살이었던 것이지, 지금의 애런으로는 그 정도까지는 무리일 것이다.
“그 정도의 마기… 당신은 대체 뭐죠? 어떻게 저희의 눈을 피해 앙겔로크라티카에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글쎄다. 네 눈에 보이는 대로 평범한 인간이지.”
“헛소리를 하기는.”
피델리오는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애런의 마기는 필시 마왕에 필적하는 것. 그런 자가 천사의 사도인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다.
“아아… 천사님, 이렇게 당신의 존재를 저에게 증명하시는 것입니까..!”
이제껏 내려주었던 어떠한 기적들보다 천사의 존재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의심이 많던 피델리오는 어느 때보다 믿음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솟구치는 믿음은 천사를 증명하는 빛이 되고, 강한 신성력이 되었다. 등에 생긴 거대한 십자가 성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피델리오의 믿음에 답하는 천사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화악! 피델리오의 등에서 순백의 날개가 2장 피어났다.
천사에게만 허락되는 날개가 자신에게 피어난 것을 본 피델리오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의 뜻을 잘 알겠나이다. 제 눈앞에 있는 이단을 당신을 대신해 죽이라는 것이겠지요? 아주 잘 알겠습니다… 당신의 뜻도… 당신의 존재도.”
하얀 빛이 뭉쳐지며 검을 만들어냈다. 피델리오는 빛의 검 끝을 애런을 향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반쯤 천사에 미친 것처럼 눈을 뒤집어까 하늘을 올려다봤다.
“제게 기적을 내린 당신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겠나이다…”
“미친놈.”
신성력이란 믿음에 비례해서 강해지는 것이다. 지금 피델리오는 자신만의 착각에 빠지면서 천사에 대한 믿음이 강한 신성력으로 발현된 것을 천사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모양이었다.
등에 피어난 날개도 자세하게 보면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한 피델리오의 몸에서 흘러넘친 것이 날개처럼 보이고 있는 거지 천사의 날개 따위가 아니었다.
“천사가 명하시니… 제가 발이 되어 명을 따르겠습니다.”
깃털 몇 개를 휘날리고는 피델리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기껏 애런의 시야에서 벗어났으면서 피델리오는 자신의 위치를 숨기려고 하지 않고 말했다.
“보십시오! 천사님을 상징하는 날개로 저는 날고 있습니다..!”
“개소리하네. 그냥 위로 뛴 거잖아.”
광적인 믿음에 모든 세계가 뒤틀려 보이는 피델리오는 신성력으로 강화된 신체로 도약한 것을 날고 있는 것이라 착각했다. 힘에 취해 미친 듯이 웃고 있는 피델리오를 향해 애런은 검을 들어 올렸다.
[저 미친 모습이 보이나 용사. 마기처럼 신성력도 사람을 침식한다.]
“나도 눈이 있으니까 알 것 같다.”
말셀러스의 저택에서 봤던 마기를 뿜어대던 고깃덩어리와 지금의 피델리오는 다를 것이 없었다. 자신의 허용량을 넘는 마기는 신체를 망가뜨렸다면, 신성력은 정신을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쳤다고는 하나 피델리오는 못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제정신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남아있는 단편적인 기억으로 애런을 죽이기 위해 몸을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공중에서 무릎을 굽히더니 공기를 박차고 애런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앙! 자신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건물을 뚫고 지나갔다. 정신을 잃기 전보다 공격은 단조로워졌지만, 강화된 신체 능력은 애런을 웃돌고 있었다.
“확실히 방패는 필요 없었겠어.”
저 정도라면 방패를 들고 있었다 한들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애런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시 도약하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있는 피델리오를 쳐다봤다.
이번에도 애런을 향해 곧바로 날아오는 직선의 공격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공격이고 움직임을 알고 있으니 그 방향으로 검만 휘두르면 되지만 그걸 제 때에 할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내가 성장했기를 바라면서 해봐야지.”
검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린다. 타이밍에 맞춰 휘두르기만 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실패를 할 경우에는 부서진 건물처럼 몸이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온몸에 퍼져있는 마기를 모두 검에 집중시킨다. 분명 질량이 없는 마기임에도 불구하고 검이 들고 있는 검이 더 무거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긴장을 했다고? 어이가 없네.’
숨을 들이마시고 날아오고 있는 피델리오를 바라본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애런에게는 지금의 피델리오가 아주 천천히 빛의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걸 베는 것은 애런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깔끔한 종베기.
검은 마기를 두른 검의 일격은 어두운 밤하늘마저 밝다고 생각이 들 듯한 순수한 어둠 그 자체였다.
어둠은 빛을 내던 검과 함께 피델리오의 몸을 집어삼키며 양단시켰다.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고 마기는 반으로 갈라진 피델리오를 순식간에 침식해갔다. 애런이 서 있는 옥상에 피델리오의 반쪽짜리 몸이 떨어질 때 즈음에는 썩어 문들어져 힘없이 부서졌다.
피델리오의 몸이 부서지자, 그릇을 잃은 신성력은 하늘에 퍼져나가며 낮이라도 된 것처럼 밤하늘을 환하게 만들었다.
“이 녀석도 네놈처럼 몸이 부서져도 살아나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있겠냐. 고작 천사의 개 따위를 나랑 비교하지 마라.]
확실하게 죽은 것을 확인하고 검집에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도로시 님, 이리로 와봐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요.”
“네? 이제 다 끝난 것 아닌가요?”
“자, 부서져 버렸지만 이 녀석을 마저 소멸시켜주세요.”
애런은 부서진 피델리오의 몸을 도로시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 도로시는 잘게 부서진 피델리오의 몸 내부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이것도 성녀로서 해야 할 일인가요..?”
“네, 폭주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뻔한 이단을 도로시 님이 소멸시켜서 막은 걸로 하죠.”
품속에서 펜을 꺼내 보고서를 작성하며 대답했다. 다행히 한시름 놓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다. 도로시의 암살을 의뢰한 배후 가이세릭 추기경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도로시는 으으… 싫은 소리를 내면서 피델리오의 조각난 몸을 소멸시키며 말했다.
“애런 님, 사도를 이기실 정도라니 대단하시네요.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네, 사도를 이긴 건 운이 좋았던 거지만요.”
만약 피델리오가 기적을 부여받은 상태에서 정신이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애런은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사도의 권능이 전투와 상관이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아직 부족해.’
말석 사도조차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하기 버겁다면 마왕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상태라면 만에 하나의 경우에도 이길 가망이 없다는 것에 더 강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오늘은 쉬고 내일은 가이세릭 추기경을 심판하러 가죠.”
“추기경 전하는 왜요?”
“이번 사건의 배후가 그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추기경 정도 되는 분을 그렇게 쉽게 죽여도 되는 건가요?”
교황의 바로 밑. 앙겔로크라티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바로 추기경이지만, 애런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기에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이단심문관이니까요. 원래 이 광신도 놈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저 신경에 거슬리면 천사의 이름을 팔면서 신벌을 대행할 뿐이죠.”
피델리오를 완전히 소멸시킨 도로시는 손을 털면서 말했다.
“애런 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뭐, 그렇죠. 저는 빌어먹을 천사 놈들에게 신앙심 따위는 하나도 없어서 신성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신랄하게 자신이 믿는 신을 욕하자 도로시는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입을 벌리고 애런을 쳐다봤다.
“그래도 천사님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적어도 저는 그분들을 믿고 있으니까요.”
“그놈들이 도로시 님을 성녀로 만들어서 고생시키는데도요? 자기들이 선택해놓고 지켜주지도 않아서 잘못하면 죽게 생겼는데도 그들을 믿는다고요?”
도로시는 그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애런 님이 지켜주셔서 제가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니 아직은 그분들을 불신하지는 못하겠네요.”
어쩌면 애런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천사가 보내준 사람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서 천사를 믿는 것이지만, 그 소리를 하면 애런이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