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9화 (39/92)

〈 39화 〉 성녀 암살

* * *

배후를 알아냈지만 정작 지켜야 할 도로시가 납치당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도로시가 더 남긴 흔적은 없는지 주변을 살펴보지만, 역시 사도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뒤가 쫓길 만한 흔적은 남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디로 갔을지 생각해.”

당장 여기에 도로시의 시체가 있지 않은 이유는 접촉은 가능하더라도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곧바로 도로시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당장 보고서도 써서 제출을 해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애런은 사라진 도로시를 찾기 위해서 일단 높은 곳으로 도약했다.

앙겔로크라티카 광장과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골목들을 내려다봤지만,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밤이라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애런이 도로시를 두고 간 것을 후회하며 건물의 옥상을 뛰어다니고 있자,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건물 옥상에서 밤하늘을 밝히는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마치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는 듯한 빛을 이정표 삼아서 곧장 빛이 보이는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성녀님,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들고 가기 힘들지 않습니까.”

장신의 이단심문관이 도로시를 어깨에 둘러메고 앙겔로크라티카의 마천루를 오르고 있었다. 겨우겨우 도로시를 포획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메이스를 휘둘러 죽이려 하니 메이스가 소멸하고, 불로 태워 죽이려고 해도 불이 소멸당했다.

자신의 공격이 모두 통하지 않자 이단심문관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자신의 밖에서 하는 공격이 모두 소멸당해 통하지 않는다면, 그저 소멸시키는 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도로시를 높은 건물에서 떨어뜨려 죽이기로 결정했다.

‘땅에 닿기 전에 땅을 소멸시킨다고 하더라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면, 운동 에너지로 바뀐 위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은 아무리 성녀님이라고 해도 무리겠죠.’

스스로 생각해봐도 꽤 합리적인 생각 같다. 이 방법이라면 무조건 죽일 수 있다는 확신에 이단심문관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제 공격마저 통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이단심문관은 분명 몸이 소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로시를 메고 있는 어깨에서 신경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말을 했다.

“호위하던 기사를 떼어놓는 것이 제 계획에서 불안한 부분이었는데, 설마 제가 계획의 걸림돌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부하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그렇게나 닥달하며 실수하지 말라고 했건만, 수장인 제가 실수를 하게 될 줄은 알았겠습니까?”

조금 전부터 일방적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도로시가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놓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떠드는 것도 질렸는지 이단심문관은 도로시의 입을 막아놓았던 천을 치워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도로시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바로 입을 열었다.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자신의 능력을 견디며 건드릴 수 있는 자는 가브리엘을 포함한 12사도거나 애런 그리고 용사인 아일라 정도 뿐일 테다.

분명 사도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가브리엘에게 들었는데, 이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사도여야지만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를 파비알 이단심문소장 혹은 천사의 발, 제12사도 피델리오라고 부릅니다.”

‘12사도..! 가브리엘 님이 거짓말을 하신 걸까요.’

혼자 도로시가 살아있기를 바랐던 가브리엘이 도로시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죽기를 바라서 필요 없다는 말을 한다면 앙겔로크라티카의 모든 전력이 자신을 죽이려 들 테니까.

그렇다면 가브리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이런 짓을 꾸몄을 테다. 그게 누구일까. 누가 감히 제1사도 가브리엘을 속이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걸까.

“누가 보낸 거죠?”

“제가 당연히 대답해 드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시는 거겠죠?”

배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단서가 될만한 말조차 하지 않는다.

“제 입을 막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소리를 질러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텐데요.”

“하하 저를 우습게 보시는군요. 죽기 전에 저와 수다를 떠실 생각이 아니라면 바로 입을 막아버릴 생각입니다.”

도로시는 피델리오의 어깨에서 벗어나기 위해 능력을 발동한 상태로 몸부림을 쳐봤지만, 이단심문관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도로시를 잡고 있는 팔에 힘을 빼지 않았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하시고 제가 말하는 것을 허락할 때 유언이라도 해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 정도로 죽을 것 같나요?”

“죽을걸요? 성녀님의 능력은 소멸시키는 것 외에는 없지 않습니까.”

이 남자는 자신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그럴 거라 생각한 도로시는 조금 허세를 부려보기로 했다.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제가 마법을 없애는 것은 아실 테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 부하 마법사는 성녀님 때문에 기가 죽었을 테죠.”

“힘. 제가 없앨 수 있는 것엔 물질뿐만이 아닌 힘도 포함이 된다면 저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그건 생각도 못 해봤군요.”

“중력, 저에게 전해질 충격, 저는 그 모든 것도 소멸시킬 수 있다면요?”

“호오…”

이단심문관은 계단을 오르던 발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잠깐 생각에 빠졌다. 성녀가 하는 말이 허세일까 진짜일까.

만약 진짜라면 건물에서 던져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떨어지는 동안 성녀를 호위하던 기사를 부를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다. 그건 곤란하다.

그 기사는 처음 보는 자지만, 성녀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는 얘기는 성녀와 접촉하더라도 죽지 않을 사도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자와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허세가 통했을까요.’

신성력으로 발동한 마법은 소멸시킬 수 있지만, 중력이나 충격까지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니 건물에서 추락한다면 도로시는 죽는 것이다.

“음… 그래도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죠.”

피델리오는 고민을 하다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천사마저도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지 않았던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기에, 도로시의 말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로 했다.

“하이 리턴에는 하이 리스크가 따르는 법이죠. 성녀님을 죽이려는데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고 한 것은 오만한 행동이었네요.”

잠시나마 얌전하게 있던 도로시가 다시 몸부림을 쳤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침착하시군요.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닌, 허세가 들통나서 몸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시다니.”

피델리오에게 모든 것을 간파당했다. 이 이상의 허세는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도로시는 의미없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 얌전하게 기도를 시작했다.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천사님. 따르는 자들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끔 내려주셨던 축복을 바랍나이다. 12년간 속박받고 고통받으며 살았던 불완전한 성녀인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늘을 바라보며 진실한 신앙심을 털어놓는 것으로 사용이 가능한 신성 마법이지만, 말로 기도를 한다고 해도 입이 막힐 것이 뻔했기에 도로시는 머릿속으로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천사에게 선택받은 도로시라면 가능했다.

바라는 기적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그저 밝은 빛을 내는 것. 그 이상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구름이 많은지 어제와 달리 밤하늘을 밝게 비추던 달과 별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유언을 남기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단심문관은 도로시를 바로 건물 밑으로 던지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잠깐의 여유를 준 것이지만 기도를 끝마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유언이요? 여전히 남길 생각은 없네요. 전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요.”

“윽?!”

순간 도로시의 몸에서 밝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탁 트인 옥상이었기에 빛은 멀리까지 퍼져나갔고 도로시를 찾고 있던 애런에게 현재 위치를 알려주기에는 충분했다.

“심상 기도..!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이만한 신성 마법이 사용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역시 성녀님입니다!”

이단심문관은 밝은 빛에 눈을 가늘게 뜨고 도로시를 건물 밖으로 던졌다. 부웅. 공중에 뜬 부유감이 도로시의 몸을 감싼다. 애런에게 안겨서 떨어질 때와 달리 이번에는 혼자서 떨어진다.

안면을 강타하는 공기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쿵쿵 뛰지만, 떨어지는 것에 놀라서 금방이라도 멈출 것만 같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도로시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두 손을 모아 천사가 아닌 애런을 부르며 기도를 했다.

“애런 님..!”

화아악!

그 순간 분명 밑에서 불어오던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뜨자 점점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하늘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고 밝은 달이 보였다.

“어두워서 어디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잘 했어요.”

그리고 밤하늘과 같이 어두운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밝게 빛나며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죄송해요. 역시 두고 가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 아, 아니에요. 구해주러 오셔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찮아요..!”

도로시는 지금 능력을 발동 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애런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그럴 수록 애런은 도로시를 더욱더 꽉 붙잡았다.

“왜 이렇게 움직여요.”

“저 능력! 저 능력 발동 중이었는데 지금 닿고 있잖아요! 몸 괜찮아요?!”

“보시는대로 멀쩡해요.”

조금 고통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애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어줬다. 도로시는 그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새 도로시가 떨어졌던 건물 옥상까지 도착했다. 옥상에는 단 한 명, 피델리오만 있었으며 그는 애런과 도로시가 건물로 다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잠깐만 떨어져서 계세요.”

“네, 네…”

도로시를 내려주고 검을 빼들고 말했다.

“신앙심을 인정받아 사도가 된 이단심문관이 이단이라니 어이가 없군.”

“제게 하는 말이라면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뭘, 천사가 도로시 님을 성녀로 선택했으면 그게 천사의 뜻이지. 너네가 완전한 성녀타령을 하면서 죽이려고 하는 것은 네놈들이 믿는 천사의 뜻에 반한다는 말이야.”

피델리오는 피식 웃었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는군요. 그러나 저는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제가 성녀님을 죽이지 못하고 당신에게 죽어 저지당한다면, 천사님은 성녀님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테니 그 말을 믿겠습니다.”

“그래, 믿게 해주마.”

애런과 피델리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움직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