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8화 (38/92)

〈 38화 〉 성녀 암살

* * *

“이쯤에서 움직이지 않네.”

빠르게 도망치던 마법사의 움직임이 멈춰있다. 혼자서라도 도로시를 노리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힘이 빠져서 쉬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로시의 곁에 붙었다.

조심스럽게 애런이 묻혀놓았던 마기가 느껴지는 골목으로 몸을 휙 돌려 들어갔다.

“...”

공격 마법이 하나 정도는 날아올 것을 대비하고 들어간 것이었지만, 마법이 날아오기는커녕 사람조차 없다. 사람이었던 것은 있지만.

“윽… 이건 누가 이렇게 해놓은 걸까요?”

마치 호두를 까듯 조각조각이 나 있는 두개골과 몸이었던 것은 불에 타서 뼈를 드러내고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로 죽이지 않고 최대한 고통을 주다가 죽였네요.”

애런은 시체를 살펴보며 어떤 자에게 습격을 당한 것인지 유추했다. 둔기에 맞은 듯한 두개골, 몸에 붙은 불. 이 두 가지로 어떤 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단심문관이 한 짓이네요. 메이스로 머리를 깨뜨리고, 정화의 불은 아니고 그냥 불로 고통을 주며 죽였어요.”

“이 마법사는 이단이었던 것일까요?”

“이단이라기보다는… 입 막음을 당한 것일 테죠. 성녀인 도로시 님을 노리는 자니까 꼬리가 밟혀서는 곤란하겠죠.”

성녀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은 곧 앙겔로크라티카를 적으로 돌린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성녀는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누가 겁 없이 성녀를 노렸을까.’

아무런 증거가 없기는 하지만 앙겔로크라티카 내부의 소행일지도 모른다. 성녀라고는 하나 쌍둥이 성녀는 완전한 성녀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자벨라가 성녀가 되기를 바라며 도로시를 암살하려고 했다면 말이 된다.

그리고 그 징조는 무법지대에서부터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로시의 암살 의뢰. 벨라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암살자와 마법사들에게도 의뢰를 맡긴 것이었다. 거기다 지하실에 갇혀있기만 했던 도로시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으니, 암살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죠.”

오늘 습격을 당한 것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했던 행동 때문이다. 암살자들에게 노려달라는 듯이 눈에 띄는 행동을 했으니, 덤벼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모노크롬에 악마의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늘처럼 사람들 앞에서 활동을 해야 할 텐데, 매일같이 생기던 악마의 아이가 갑자기 안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

다음 날 오두막에 놀러 온 아일라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애런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오늘도 악마의 아이가 안 생겼다고?’

애런이 있었을 때에는 하루에 1명 혹은 2명은 꼭 생겼었는데, 왜 이틀 연속이나 악마의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인가. 오늘도 위험을 무릅쓰고 모노크롬 밖으로 나가야 하나 생각하며 애런은 한숨을 쉬었다.

아일라는 어깨에 늘어져있는 여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고민이라도 있어?”

“요즈음 악마의 아이가 안 생기네…”

“안 생기다니? 어제도 생겼었고, 오늘도 생겼었는데?”

“생겼었다고?”

아일라의 말이 사실이라면, 악마의 아이가 생기면 알려달라고 말을 전해놨던 성기사들이 일부러 애런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이유는 도로시가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미 내부에도 적이 있는 건가.’

직접 목숨을 노리는 것은 아니지만, 모노크롬에서 성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목숨을 노리는 행위였다. 암살자가 두려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교황에게 올릴 보고서에 쓸 내용이 없어서 죽을 테고, 밖으로 나간다면 암살자가 목숨을 노릴 테고.

결국 선택지가 없다. 전자는 무조건 죽을 테니 후자를 골라야만했다.

“도로시 님, 위험하지만 오늘도 밖으로 나가야겠어요.”

“그런가요? 대신 어제처럼 옮기지만 않으면 안 될까요? 애런 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밖에 나간다면 암살자들이 자기 목숨을 노릴 텐데 그런 게 신경 쓰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살짝 떨리는 몸과 애써 웃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 같아 입을 닫았다.

“위험? 밖에 나가는데 왜 위험해?”

도로시의 목숨이 걸린 평가와 암살자에 대해서 모르는 아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제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들이 있어서요.”

마치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성녀님의 목숨을 왜 노려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랑 언니에게 나누어진 힘을 한 명에게 몰아서 완전한 성녀로 만들기 위해서예요. 언니가 성녀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이 암살자를 보낸 거겠죠.”

“아… 꼭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건가요?”

그 질문에 도로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꼭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걸까요…”

덤덤했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도로시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꼭 완전한 성녀가 있어야만 하냐고. 둘이 힘을 합쳐서 노력하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물어보지 않더라도 교황이나 가브리엘의 대답은 알 것 같았다.

“뭐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제가 도로시 님 데리고 도망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 우울한 분위기가 되어가서 보다 못한 애런이 말했다. 도로시는 기쁜 듯 하면서도 슬퍼하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 마음은 고마워요. 하지만 언니를 두고 저만 도망칠 수는 없는걸요.”

“이자벨라 님이 부탁한 거예요. 아직 만나지 못해서 듣지는 못했지만 이런 부탁을 할 게 분명해요.”

“그러면 언니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자벨라 님은 죽지 않으니까요.”

도로시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죽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도로시가 못 믿는 것 같아 보이자 아일라가 거들어서 말했다.

“오빠 말이 맞아요. 이자벨라 님은 목이 잘려도 살아있었는걸요.”

“들었죠? 그래도 저는 최대한 두 분이 같이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거예요. 도로시 님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에요. 그렇게 되면 저도 한동안 아일라를 못 보게 될 테니까요.”

애런은 도로시를 위해서 도망가는 것을 말리지 않는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어지기 싫은 티를 냈으면 도망쳤을 때 도로시가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어서 배려한 것이리라.

“감사합니다… 그런 말이라도 들으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네요. 떨어지더라도 둘 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요.”

“자, 그럼 슬슬 오늘 할 일도 있으니 정리할게요.”

얘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해가 졌다.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애런은 빈 그릇을 치우려고 하니 아일라가 먼저 그릇을 잡고 말했다.

“내가 치울게. 내가 붙잡고 있어서 시간 뺏긴 거잖아?”

“고마워.”

“뭘, 나는 넘쳐나는 게 시간인걸.”

“근데 설거지할 줄은 아는 거지?”

아일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애런을 쳐다봤다.

“... 할 줄 아는구나.”

“그래, 그러니까 조심히 갔다 오기나 해.”

“알겠어.”

오두막 앞까지 따라와서 배웅하는 아일라를 보고 나서, 애런은 도로시를 안아 올리고 도약했다.

*

예상했던 대로 오늘도 암살자의 습격이 있었다. 도로시가 모노크롬 밖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퍼졌는지 어제보다도 더 많은 암살자가 시도 때도 없이 습격을 해왔다.

“멀리서 한 번 공격해보고 안 되니 도망치니까 상당히 성가시네요.”

암살자를 잡아서 배후자가 누구인지 캐묻고 싶지만, 마법이나 암기로 도로시를 노리고 애런이 막는다면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마기를 묻혀둘 틈도 없이 치고 빠져서 추격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 덕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거기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행위조차 하지 못하게 암살자들이 사람들을 위협해서 물러나게 했다. 그래서 앙겔로크라티카의 넓은 광장에는 애런과 도로시밖에 없으며 그 외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목숨을 노리는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 목숨을 노리는 것으로 방식을 바꾼 것이었다. 배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시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노리는데도 성기사가 움직이지 않네요.”

“그럴 만도 하죠. 애초에 제가 살아있기를 바랐던 사람은 언니를 제외하면 가브리엘 님뿐이셨으니까요.”

앙겔로크라티카의 방위를 맡은 성기사들은 거리에 번개가 떨어져도, 얼음 창이 건물을 꿰뚫어도, 가로수가 불타고 있어도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무의미한 살인은 도로시가 바라지 않았기에 관뒀다.

“이대로 있다가는 하루가 지나기 전까지 성녀다운 일을 하지도 못하겠네요.”

애런은 발에 마기를 집중시키며 말했다.

“도로시 님,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데 혼자 있으실 수 있겠어요?”

“당연하죠.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제가 능력을 사용하고 있으면 사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접근조차 하지 못해요.”

“그럼 잠깐만 여기 계셔주세요. 한 놈이라도 잡아야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갔다 오세요.”

도로시의 몸을 사람의 존재를 위협하는 불길한 기운이 둘러싸는 것을 확인하고는 애런은 도약했다.

앙겔로크라티카의 마천루보다도 높이 날고 있는 애런은 광장 주위를 내려다보았다.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지우고 움직이는 사람이 열댓 명… 애런과 멀지 않은 곳에서는 마나 특유의 푸른 빛이 모이며 마법이 발동되려 하고 있었다.

애런은 붙잡기 좋게 푸른 빛을 내는 건물의 옥상에서 마법을 영창중인 마법사를 노리기로 했다. 발 쪽에 마기를 집중 시켜 밟을 수 있을 정도로 응축시켰다. 콰앙! 마기를 발판 삼아 공중에서 한 번 더 도약했다.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 애런은 마법사의 머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우읍…”

입이 막힌 채로 들어 올려진 마법사는 발로 애런을 차며 저항했지만, 어느새 검은 갑옷을 두른 애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일 텐데, 죽기 싫다면 가만히 있지?”

“...”

마법사가 발길질을 그만두자 말만 할 수 있게끔 목으로 손을 옮겨 잡았다.

“말해. 네게 의뢰를 맡긴 의뢰인이 누구지?”

“의뢰는 익명… 그러니 내가 알 수는 없다. 커헉!”

애런이 손에 힘을 주자 금방이라도 마법사의 가냘픈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 마법사는 컥컥 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내가 무법지대에서 지내봐서 좀 아는데, 너희 의뢰인에 대해서도 조사하잖아. 너 말고도 물어볼 녀석은 많으니까, 말할지 말지 빨리 말해.”

“마, 말할게..!”

손을 놓아주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목을 만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애런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에 검이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가이세릭 추기경. 그 사람이 의뢰인이야!”

“추기경…”

확실히 추기경이라면 도로시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만하고 성기사들의 행동도 납득이 간다.

애런은 마법사를 기절시키고 도로시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

하지만 그곳에는 도로시는 없었다. 애런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도로시를 납치해간 것이었다.

건물과 바닥에 도로시의 능력으로 사라진 흔적이 보였다.

“도망치다가 넘어진 거야.”

왜 도망을 쳤을까. 도로시가 능력을 발동하고 있다면 누가 접근을 하더라도, 멀리서 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멸할 텐데.

“능력으로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앙겔로크라티카에 도로시의 능력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있지 않다.

“사도.”

앙겔로크라티카의 12사도 중 한 명이 도로시를 납치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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