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7화 (37/92)

〈 37화 〉 성녀 암살

* * *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애런은 오두막의 문을 누군가가 열고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숨을 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도로시 님, 안 되겠네요.”

“네? 뭐가요?”

“오늘은 악마의 아이가 생기지 않았나 봐요. 악마의 아이가 생기면 저에게 보고하러 와야 할 성기사들이 오지 않네요.”

“와아~ 그거 잘된 일이네요.”

도로시는 애런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애런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순진하게 웃고 있는 도로시를 보며 말했다.

“도로시 님… 오늘 해야 할 평가를 아직 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도로시 님의 목숨이 걸린 시간이 반나절도 남지 않았다는 얘기에요.”

“네? 아… 그렇죠. 성녀로서 어울리는 일을 해야만 했었죠.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바보같이 좋아했네요…”

솔직히 악마의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를 죽이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로시를 평가하기에 적합한 악마의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악마의 아이가 매일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생기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지 않은 건 안일했어.’

애런은 하루가 지나가기 전까지 도로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지금, 어두운 상태에서 성녀다운 일… 무언가가 떠오른 듯 도로시의 팔을 잡고 오두막을 나섰다.

“애런 님?”

갑자기 팔을 잡아서 놀란 도로시는 화들짝 몸을 떨었다. 오두막 밖으로 나오자 해가 지기 시작해서 붉게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빠르게 이동할 거니까 꽉 잡아요.”

“네? 으에?”

애런이 도로시를 안아 올리자 볼이 노을이 진 하늘처럼 붉어졌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검은 갑옷을 두르고 도약한 애런은 순식간에 하늘이라도 닿을 것처럼 높이 날고 있었고,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아아?!”

몇 번이고 하늘을 올랐다가 밑으로 떨어진다. 그 아찔한 감각이 반복되어 도로시는 어쩔 수 없이 애런의 몸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적응이 되어갈 때 즈음 도로시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천사 동상이 곳곳에 걸려있는 마천루. 어느새 모노크롬을 벗어나서 앙겔로크라티카의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12년 전 처음 봤었을 때보다 훨씬 발전한 광경을 보며 도로시는 감탄을 했다.

감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도망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쁜 년.’

도로시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자벨라를 놔두고 어디를 도망간단 말인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할까요?”

쿵… 애런은 마천루 사이에 있는 넓은 광장에 착지해 도로시를 살포시 내려주었다. 도로시는 뭐를 하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애런을 올려다봤다.

“신성 마법 쓰실 줄 아시죠?”

“네, 당연하죠.”

“앙겔로크라티카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천사를 믿겠지만, 그 믿음의 정도는 다르겠죠. 도로시 님이 하실 것은 사람들의 믿음을 신성 마법으로 강화하는 것이에요.”

“제가요..?”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던 도로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을 이자벨라처럼 능숙하게 하지 못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도로시를 보며 애런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둠은 빛을 더 밝게 빛나 보이게 해서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할 테니까요.”

도로시는 가끔 이자벨라가 말했던 빛기둥을 불러내서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게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미 믿음이 있는 자의 믿음을 강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꽃피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해볼게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올린다.

“저를 통해 천사님의 존재를 증명하게 해주소서. 천사님을 믿는 앙겔로크라티카의 국민의 믿음에 믿음을 쌓아 더욱더 많은 믿음을 바치겠나이다. 천사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높게 쌓아 올린 마천루에 따뜻한 손길을 내려주시옵소서.”

붉은빛이 돌며 어두워지던 광장이 밝아졌다. 빛이 모이더니 작은 날개를 펼친 아기 천사가 되었고,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와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고 손을 흔들며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분명 신성한 광경이고 사람들은 놀라며 천사를 바라봤지만, 애런 만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봤다.

이러한 것들도 전부 자신들의 존재를 늘리기 위한 천사들의 쇼인 셈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믿음을 더 사보겠다고 굳이 내려와서 꼬리치는 꼴이라니. 악마와 다를 바가 없는 천사의 행동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거기다 아일라를 용사로 선택한 천사에 대한 반감이 아직 남아있어, 지금 내려온 천사들의 목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주먹을 꽉 쥐고 겨우 참아냈다.

‘씨발놈들.’

욕 한마디를 하고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도로시가 한 성녀다운 행위를 보고서에 써 내려갔다.

“..!”

그때였다. 근처에서 도로시를 향한 불온한 살기가 느껴졌고, 애런은 몸에 검은 갑옷을 두르고 검을 빼 들었다.

꽈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도로시를 향해 보랏빛 번개가 내리쳤다. 애런은 순식간에 도로시의 주변에 마기로 방어막을 만들어내어 번개를 땅으로 흘려보냈다.

“도로시 님, 거기서 나오지 마세요.”

“네, 네에…”

도로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런은 주위를 둘러 살의가 느껴지는 곳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지만, 그들이 내뿜는 기운 덕에 그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었다.

“5명인가.”

건물에 숨어있는 자는 아까 마법으로 번개를 떨어뜨린 마법사일 것이고, 사람들 속에 섞인 4명은 암살자 같았다.

애런이 둘러둔 방어막 때문에 상황을 살피는 모양이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는 들킨 상태였고 애런은 그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안 온다면 내가 잡아서 족쳐야지.”

쾅!

애런이 발을 구르자 땅을 타고 마기가 흘러가 가시가 되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던 암살자의 몸을 꿰뚫었다. 그것으로 암살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었음을 알아채고 일제히 움직였다.

“도망치지는 않아서 일이 줄어들겠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암살자 한 명에게 마기를 담은 주먹을 내뻗었다. 푸화악! 주먹을 막으려 한 암살자의 팔과 배를 쉽게 뚫어내었다. 공중에서 암살자의 몸에 구멍이 생기며 주변으로 피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암살자들이 덤벼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런은 굳이 피하려 하지 않고 갑옷으로 그들의 단검을 막아냈다.

마나를 담아 찌른 단검은 푸른 빛을 흩날리며 갑옷을 뚫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암살자들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쿠르릉­!

애런은 소리가 들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을 빛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보랏빛 번개가 꿈틀거리며 모여 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섬과 함께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암살자 주제에 정면에서 덤벼든 건 마법이 떨어지는 곳에 나를 묶어두기 위함이었나.”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사기를 깎아놓기 위해서 애런은 피하지 않았다. 팔에 마기를 집중 시켜 방패를 만들어내고는 자신을 향해 꿈틀거리며 떨어지는 창을 막아냈다.

콰아아아! 번개로 만들어진 창은 방패와 부딪히며 커다란 굉음을 냈다. 번개는 방패를 뚫어내지 못하자,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애런은 방패를 살짝 돌려 암살자가 있는 방향으로 번개를 튕겨냈다.

파지직! 보랏빛 번개는 암살자 한 명의 몸을 뒤덮었고, 암살자는 몸을 떨다가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한 놈.”

애런은 암살자를 보며 말했다.

“한 놈한테는 정보를 캐내야 하니 조금 더 살려준다. 골라. 마법사가 더 살게 할 것인지 네가 더 살 것인지.”

암살자는 애런에게 독이 묻은 암기를 던짐으로써 대답했다. 애런은 암기를 팔로 튕겨내고 검을 휘둘러 암살자의 목을 베어냈다.

“이미 도망쳤나.”

마법사가 있었던 건물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회심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친 모양인데, 애런은 마법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마법사의 몸에 묻혀둔 마기. 그것은 마법사가 멀리 도망치지 않는 한 애런이 그 위치를 알 수 있게 만들어줬다.

“도로시 님을 어떡하지.”

마법사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 무턱대고 데려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았다. 도로시를 노리는 암살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곳에 두고 가는 것도 위험했다. 애런이 머뭇거리고 있자 도로시가 말했다.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애런 님은 제 능력에 대해서 잊으신 것 같은데 사도님들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저에게 접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요?”

“아, 그랬죠.”

“잊지 말아 주세요… 애런 님은 아무렇지 않게 접촉하지만, 원래 저랑 닿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고요.”

“그럼 같이 따라가도록 하죠.”

애런은 도망치고 있는 마법사를 쫓기 위해서 도로시를 안아 올렸다. 도로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질책하듯 애런의 가슴을 두드렸다.

“바, 방금 위험하다고 그랬잖아요! 제 말 제대로 들었던 것 맞아요? 안 듣고 있었나요? 아니면 제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건가요?”

“쫓아가려면 이럴 수밖에 없어요. 꽤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도로시는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동하면서도 애런에게 투덜거렸다.

*

괴물 놈. 라이트닝 스피어를 피하지 않고 막아냈는데 멀쩡하다고? 적어도 마법사가 아는 상식으로는 앙겔로크라티카에서 그 정도로 강한 인물은 사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시 마이어라는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면 죽일 수 있을 거라더니 전혀 다르잖아. 저런 괴물이 호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은 의뢰에 없었단 말이다.

“씨발… 금화 1000닢짜리 의뢰가 쉬울 거라 생각한 내가 멍청이지.”

사람들이 없는 골목으로 숨는다. 습격했던 광장으로부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꽤 멀리 도망쳐왔으니, 그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후우…”

마법사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 괴물에게 죽을까 봐 필사적으로 움직인 다리는 덜덜 떨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털썩 주저 앉은 뒤 벽에 기대어 조금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

분명 사람이 없을 터인 골목에서 살을 에는 듯한 살기가 흘러나와 마법사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떨리는 눈동자로 빛이 들지 않는 골목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맹수처럼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안광이 점점 마법사를 향해 다가온다.

“아… 오지 마. 꺼져!”

마법사는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한계까지 혹사당한 다리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망치지 못한다. 마법사는 죽지 않기 위해서 남은 힘을 끌어다 영창을 했다.

“jalocne gaouega.”

파지지직! 마법사의 손에서 나온 보랏빛 번개는 피할 곳 없는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사를 향해 걸어온다.

“하하하… 오랜만에 앙겔로크라티카로 돌아오니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군요.”

화륵­! 마법사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손에 들린 메이스에 불이 붙었다.

“붙잡혀서 입을 열어도 곤란하니 죽어주셔야겠습니다.”

퍼억. 메이스가 마법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 37화 〉 성녀 암살

* * *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애런은 오두막의 문을 누군가가 열고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숨을 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도로시 님, 안 되겠네요.”

“네? 뭐가요?”

“오늘은 악마의 아이가 생기지 않았나 봐요. 악마의 아이가 생기면 저에게 보고하러 와야 할 성기사들이 오지 않네요.”

“와아~ 그거 잘된 일이네요.”

도로시는 애런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애런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순진하게 웃고 있는 도로시를 보며 말했다.

“도로시 님… 오늘 해야 할 평가를 아직 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도로시 님의 목숨이 걸린 시간이 반나절도 남지 않았다는 얘기에요.”

“네? 아… 그렇죠. 성녀로서 어울리는 일을 해야만 했었죠.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도 바보같이 좋아했네요…”

솔직히 악마의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를 죽이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로시를 평가하기에 적합한 악마의 아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악마의 아이가 매일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생기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지 않은 건 안일했어.’

애런은 하루가 지나가기 전까지 도로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지금, 어두운 상태에서 성녀다운 일… 무언가가 떠오른 듯 도로시의 팔을 잡고 오두막을 나섰다.

“애런 님?”

갑자기 팔을 잡아서 놀란 도로시는 화들짝 몸을 떨었다. 오두막 밖으로 나오자 해가 지기 시작해서 붉게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빠르게 이동할 거니까 꽉 잡아요.”

“네? 으에?”

애런이 도로시를 안아 올리자 볼이 노을이 진 하늘처럼 붉어졌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검은 갑옷을 두르고 도약한 애런은 순식간에 하늘이라도 닿을 것처럼 높이 날고 있었고,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아아?!”

몇 번이고 하늘을 올랐다가 밑으로 떨어진다. 그 아찔한 감각이 반복되어 도로시는 어쩔 수 없이 애런의 몸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적응이 되어갈 때 즈음 도로시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천사 동상이 곳곳에 걸려있는 마천루. 어느새 모노크롬을 벗어나서 앙겔로크라티카의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12년 전 처음 봤었을 때보다 훨씬 발전한 광경을 보며 도로시는 감탄을 했다.

감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도망치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쁜 년.’

도로시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자벨라를 놔두고 어디를 도망간단 말인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할까요?”

쿵… 애런은 마천루 사이에 있는 넓은 광장에 착지해 도로시를 살포시 내려주었다. 도로시는 뭐를 하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애런을 올려다봤다.

“신성 마법 쓰실 줄 아시죠?”

“네, 당연하죠.”

“앙겔로크라티카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천사를 믿겠지만, 그 믿음의 정도는 다르겠죠. 도로시 님이 하실 것은 사람들의 믿음을 신성 마법으로 강화하는 것이에요.”

“제가요..?”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던 도로시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을 이자벨라처럼 능숙하게 하지 못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도로시를 보며 애런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둠은 빛을 더 밝게 빛나 보이게 해서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할 테니까요.”

도로시는 가끔 이자벨라가 말했던 빛기둥을 불러내서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게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미 믿음이 있는 자의 믿음을 강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꽃피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해볼게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올린다.

“저를 통해 천사님의 존재를 증명하게 해주소서. 천사님을 믿는 앙겔로크라티카의 국민의 믿음에 믿음을 쌓아 더욱더 많은 믿음을 바치겠나이다. 천사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높게 쌓아 올린 마천루에 따뜻한 손길을 내려주시옵소서.”

붉은빛이 돌며 어두워지던 광장이 밝아졌다. 빛이 모이더니 작은 날개를 펼친 아기 천사가 되었고,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와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고 손을 흔들며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분명 신성한 광경이고 사람들은 놀라며 천사를 바라봤지만, 애런 만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봤다.

이러한 것들도 전부 자신들의 존재를 늘리기 위한 천사들의 쇼인 셈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믿음을 더 사보겠다고 굳이 내려와서 꼬리치는 꼴이라니. 악마와 다를 바가 없는 천사의 행동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거기다 아일라를 용사로 선택한 천사에 대한 반감이 아직 남아있어, 지금 내려온 천사들의 목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주먹을 꽉 쥐고 겨우 참아냈다.

‘씨발놈들.’

욕 한마디를 하고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도로시가 한 성녀다운 행위를 보고서에 써 내려갔다.

“..!”

그때였다. 근처에서 도로시를 향한 불온한 살기가 느껴졌고, 애런은 몸에 검은 갑옷을 두르고 검을 빼 들었다.

꽈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도로시를 향해 보랏빛 번개가 내리쳤다. 애런은 순식간에 도로시의 주변에 마기로 방어막을 만들어내어 번개를 땅으로 흘려보냈다.

“도로시 님, 거기서 나오지 마세요.”

“네, 네에…”

도로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런은 주위를 둘러 살의가 느껴지는 곳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지만, 그들이 내뿜는 기운 덕에 그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었다.

“5명인가.”

건물에 숨어있는 자는 아까 마법으로 번개를 떨어뜨린 마법사일 것이고, 사람들 속에 섞인 4명은 암살자 같았다.

애런이 둘러둔 방어막 때문에 상황을 살피는 모양이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는 들킨 상태였고 애런은 그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안 온다면 내가 잡아서 족쳐야지.”

쾅!

애런이 발을 구르자 땅을 타고 마기가 흘러가 가시가 되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던 암살자의 몸을 꿰뚫었다. 그것으로 암살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었음을 알아채고 일제히 움직였다.

“도망치지는 않아서 일이 줄어들겠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암살자 한 명에게 마기를 담은 주먹을 내뻗었다. 푸화악! 주먹을 막으려 한 암살자의 팔과 배를 쉽게 뚫어내었다. 공중에서 암살자의 몸에 구멍이 생기며 주변으로 피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암살자들이 덤벼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런은 굳이 피하려 하지 않고 갑옷으로 그들의 단검을 막아냈다.

마나를 담아 찌른 단검은 푸른 빛을 흩날리며 갑옷을 뚫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암살자들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쿠르릉­!

애런은 소리가 들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을 빛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보랏빛 번개가 꿈틀거리며 모여 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일섬과 함께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암살자 주제에 정면에서 덤벼든 건 마법이 떨어지는 곳에 나를 묶어두기 위함이었나.”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사기를 깎아놓기 위해서 애런은 피하지 않았다. 팔에 마기를 집중 시켜 방패를 만들어내고는 자신을 향해 꿈틀거리며 떨어지는 창을 막아냈다.

콰아아아! 번개로 만들어진 창은 방패와 부딪히며 커다란 굉음을 냈다. 번개는 방패를 뚫어내지 못하자,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애런은 방패를 살짝 돌려 암살자가 있는 방향으로 번개를 튕겨냈다.

파지직! 보랏빛 번개는 암살자 한 명의 몸을 뒤덮었고, 암살자는 몸을 떨다가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한 놈.”

애런은 암살자를 보며 말했다.

“한 놈한테는 정보를 캐내야 하니 조금 더 살려준다. 골라. 마법사가 더 살게 할 것인지 네가 더 살 것인지.”

암살자는 애런에게 독이 묻은 암기를 던짐으로써 대답했다. 애런은 암기를 팔로 튕겨내고 검을 휘둘러 암살자의 목을 베어냈다.

“이미 도망쳤나.”

마법사가 있었던 건물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회심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친 모양인데, 애런은 마법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마법사의 몸에 묻혀둔 마기. 그것은 마법사가 멀리 도망치지 않는 한 애런이 그 위치를 알 수 있게 만들어줬다.

“도로시 님을 어떡하지.”

마법사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 무턱대고 데려가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았다. 도로시를 노리는 암살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곳에 두고 가는 것도 위험했다. 애런이 머뭇거리고 있자 도로시가 말했다.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애런 님은 제 능력에 대해서 잊으신 것 같은데 사도님들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저에게 접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요?”

“아, 그랬죠.”

“잊지 말아 주세요… 애런 님은 아무렇지 않게 접촉하지만, 원래 저랑 닿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고요.”

“그럼 같이 따라가도록 하죠.”

애런은 도망치고 있는 마법사를 쫓기 위해서 도로시를 안아 올렸다. 도로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질책하듯 애런의 가슴을 두드렸다.

“바, 방금 위험하다고 그랬잖아요! 제 말 제대로 들었던 것 맞아요? 안 듣고 있었나요? 아니면 제 말을 듣고도 무시하는 건가요?”

“쫓아가려면 이럴 수밖에 없어요. 꽤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도로시는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동하면서도 애런에게 투덜거렸다.

*

괴물 놈. 라이트닝 스피어를 피하지 않고 막아냈는데 멀쩡하다고? 적어도 마법사가 아는 상식으로는 앙겔로크라티카에서 그 정도로 강한 인물은 사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로시 마이어라는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면 죽일 수 있을 거라더니 전혀 다르잖아. 저런 괴물이 호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은 의뢰에 없었단 말이다.

“씨발… 금화 1000닢짜리 의뢰가 쉬울 거라 생각한 내가 멍청이지.”

사람들이 없는 골목으로 숨는다. 습격했던 광장으로부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꽤 멀리 도망쳐왔으니, 그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후우…”

마법사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 괴물에게 죽을까 봐 필사적으로 움직인 다리는 덜덜 떨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털썩 주저 앉은 뒤 벽에 기대어 조금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

분명 사람이 없을 터인 골목에서 살을 에는 듯한 살기가 흘러나와 마법사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떨리는 눈동자로 빛이 들지 않는 골목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맹수처럼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안광이 점점 마법사를 향해 다가온다.

“아… 오지 마. 꺼져!”

마법사는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한계까지 혹사당한 다리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망치지 못한다. 마법사는 죽지 않기 위해서 남은 힘을 끌어다 영창을 했다.

“jalocne gaouega.”

파지지직! 마법사의 손에서 나온 보랏빛 번개는 피할 곳 없는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사를 향해 걸어온다.

“하하하… 오랜만에 앙겔로크라티카로 돌아오니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군요.”

화륵­! 마법사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손에 들린 메이스에 불이 붙었다.

“붙잡혀서 입을 열어도 곤란하니 죽어주셔야겠습니다.”

퍼억. 메이스가 마법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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