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도로시 마이어
* * *
멀리서도 보이는 앙겔로크라티카의 상징이자 그 자체인 대성당.
새하얀 지붕에는 천사들이 날고 있는 동상이 있었고, 은빛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대성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기사들은 대성당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애런을 흘겨보더니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애런은 오르도 왕국에서 행해지던 악마의 아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알아차린 이단심문관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직접 교황이 확인하기 위해서 애런을 대성당으로 불렀다. 마왕이 부활할 수도 있는 중대한 건이니 교황이 직접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끼익. 대성당의 거대한 문을 성기사들이 연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에는 태양이라도 있는 듯 밝은 빛이 새어 나와서 애런은 눈을 찌푸리며 들어갔다.
[이놈들은 빛이 나면 신성한 느낌이 나는 것으로 아는 거냐? 왜 이리 밝은 것을 좋아하나.]
‘그건 나도 궁금하다. 이 광신도 놈들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너랑 의견이 같다니 별일이군.]
대성당에 들어간 애런의 눈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대성당의 내부에는 천사가 조각되어있는 웅장한 기둥들과 화려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바닥이 보였다.
천장에 있는 반원의 돔을 보니 12명의 사람이 있는 유리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잘 만들어놨네.”
애런의 감상은 그게 끝이었다. 웅장한 대리석과 화려한 조각과 그림은 애런에게 신성함을 느끼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었다.
조금 더 대성당의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홀이 나왔다.
“천개.”
그 넓은 홀을 감싸는 것은 하늘 덮개라고 불리는 하얀 날개가 달린 거대한 바퀴였다.
[전 성녀가 사용하던 성유물이로군.]
저것은 용의 브레스도 막아내는 방패이자 흑마법을 튕겨내는 거울이자 때때로는 이동수단으로 썼던 것이었다.
“저게 있어서 너 죽이러 가는 길이 편했지.”
[닥쳐라.]
“왔는가.”
마왕과 대화를 하고 있자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니 거대한 홀에서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하얀 수단을 입은 평범해 보이는 노인, 교황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피부는 쭈글쭈글하고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은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애런은 표정을 구길 뻔했다.
그 옆에는 미카엘처럼 보이는 남성이 서 있었는데, 애런은 저자가 뿜어내는 기운으로 이자벨라가 말했던 백기사, 가브리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해. 벨라보다도 훨씬.’
실력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마치 전생의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오르도 왕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네가 알아냈더라지?”
“네, 맞습니다.”
애런이 고개를 숙이려고 하자 괜찮다는 듯이 교황은 손짓을 했다.
“바로 보여주겠나?”
“네.”
들고 온 캐리어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마기를 뿜는 고깃덩어리와 약이 든 병을 보여주었다. 고깃덩어리에서 나오는 마기로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다가오는 교황에게서도 가브리엘만큼은 아니지만 강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교황은 캐리어에 든 것들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확실하군. 악마의 아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거다.”
뿌득.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교황은 표정을 구겼다.
“오르도 왕국은 이런 짓을 우리 몰래 하고 있었나. 가브리엘, 지금 여유가 있는 사도가 있나?”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자를 불러들이고, 오르도 왕국으로 파견을 보내게. 이런 것을 들켰으니 놈들도 별말 못 할걸세.”
“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애런을 쳐다봤다. 표정이 휙휙 바뀌는 것이 마치 인형을 보는 것 같아서 기괴하게 보였다.
“아주 대단한 공을 세웠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애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음… 실력도 좋아 보이는데 이자에게 맡기는 것은 어떤가? 가브리엘.”
“이미 확인한 것입니까?”
“아니, 처음이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가더니 가브리엘이 괜찮아 보입니다. 라는 말을 하자 교황은 애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네.”
“네, 말씀만 하십시오.”
“일단 일을 맡기기 전에 설명해야겠지.”
교황은 늙은 몸을 이끌고 금빛의 의자에 털썩 앉는다.
“자네도 천사님을 믿는 이단심문관이니 성녀에 대해 알 테지.”
“네.”
성녀. 그 단어가 나오자 교황이 꺼낼 얘기는 이자벨라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고는 애런은 귀를 기울였다.
“성녀란 천사님에게 선택받아 마족이라는 악에 맞서며, 인간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존재이지.”
말을 하다가 교황은 한숨을 쉬었다.
“그 존재는 신성하며 유일해야만 할 터인데… 이번 성녀는 조금 다르다네.”
“다르다 하심은..?”
“성녀가 두 명이야. 쌍둥이 자매가 둘 다 성녀로 선택받았단 말일세.”
애런은 이자벨라가 했던 말이 떠올렸다. 둘이 나눠 가졌기에 완전하지 못한 것, 그건 성녀의 힘을 말하는 거였나.
그리고 맞설 수 없는 강대한 힘은 교황, 백기사를 말하는 것일 테다. 이자벨라가 헤어지기 전에 무엇을 부탁하려고 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동생을 데리고 도망쳐달라. 이거였겠지.’
그 이유는 교황청에서 성녀의 힘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쌍둥이 중 누군가를 죽게 만들 테니까.
천사가 두 명을 선택했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자기들이 정한 성녀는 유일해야 하느니… 그런 헛소리를 해대며 쌍둥이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하려는 욕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참아냈다.
“그래서 성녀에 걸맞은 자를 골라야 하네. 다만, 쌍둥이 자매 중 동생 쪽은 능력이 위험해서 말이네. 자네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면 맡길 수가 없어.”
“위험한 능력은 무엇입니까?”
“몸에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능력. 성녀라고는 믿기 힘든 능력이다만, 그것도 천사님이 내려주신 능력이지.”
확실히 성녀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생의 애런 같은 경우는 마족을 죽이기 위해서 강한 힘과 뛰어난 회복력을 받았었다.
이자벨라 같은 경우는 자살로 죽지 않도록 애런과 비슷한 저주에 걸렸고, 알 수 없는 능력이 하나 더 있다.
부여된 능력에는 인과가 있다. 천사가 선택한 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그것이 능력으로 개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시의 능력은 천사가 무엇을 바라서 개화시킨 것일까. 애런은 그것이 신경 쓰였다.
“능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한 신성력을 몸에 둘러야 하네. 그러나 현재 앙겔로크라티카에는 그게 가능한 인재의 손이 남아나지를 않아서 곤란하던 참이었네.”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잘 된 일이다. 도로시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우연히 곁에 있게 되었다. 애런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와 별개로 자네는 오르도 왕국의 이단 행위를 알아차렸으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겠지. 바라는 것이 있는가?”
애런은 대성당에 온 이유를 다시금 생각했다. 모노크롬에 들어갈 신뢰를 얻는 것. 지금이라면 충분할 것만 같았기에 말한다.
“오르도 왕국에서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니, 모노크롬에 있는 악마의 아이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해하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바래도 될 텐데.”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교황은 애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실하다. 이런 자가 앙겔로크라티카에 더욱더 생겨 나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가브리엘?”
“네, 불쌍한 자들을 굽어살피는 것. 그것은 천사님의 말씀이었으니, 정말 신실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둘의 말에 애런은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고 속으로 욕을 했다. 신실하다? 개소리. 제멋대로 착각하는 것이니 내버려두겠지만, 자신이 천사의 말에 따르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참아주기 힘들었다.
애런은 여전히 전생에 천사에게 선택받아 개고생을 하다 쓸쓸하게 죽은 것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
천사에 대한 믿음 따위는 하나도 없다. 그건 마왕을 봉인 후 신성 마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자가 흑기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마침 그 자리는 공석이었지 않나?”
“네, 최근에 돌아가셨습니다.”
애런은 헛소리를 들어주기 힘들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듣는 척만 했다.
“자네를 이제부터 라타파 이단심문소 소속 이단심문관 필두인 흑기사로 임명하겠네.”
그 말을 끝으로 교황과 가브리엘의 역겨운 대화는 끝이 났다.
“영광입니다.”
대답을 하고 나니 이가 갈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신실한 이단심문관을 연기해야만 했기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애런이 가브리엘의 뒤를 따라서 간 곳은 모노크롬의 구석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거나 지나가지도 않을 것처럼 나무가 우거져있었다. 자꾸만 얼굴을 긁어대는 나뭇가지들을 손으로 쳐내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성녀로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흑기사님 정도의 신실한 분이라면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용히 걸어가고 있던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아마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기 때문에 설명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교황이 말했듯 도로시 성녀님을 만날 때는 몸에 직접 닿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성녀님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흑기사님이 무방비한 상태일 때 성녀님이 능력을 발동한다면 그 순간 세계에서 존재가 사라질 것입니다.”
시야를 가로막던 나무가 사라지며, 오두막집 하나가 보였다. 작은 창문 틈으로 이자벨라와 똑같이 생긴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성이 다가오는 가브리엘과 애런을 보고 있었다.
“흑기사님.”
가브리엘은 우뚝 멈춰서더니 몸을 돌려 애런을 쳐다봤다.
“제가 전해드릴 수 있는 정보는 다 전해드린 것 같습니다. 성녀님이 무탈하게 지내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애런이 보기에는 그 말이 진심으로 도로시를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더 가브리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죽이려고 하면서도 왜 걱정을 한단 말인가. 완전한 성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생각해도 답은 안 나왔기에 이해하려는 것을 포기했다.
“네, 알겠습니다.”
가브리엘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애런은 오두막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자벨라가 왜 도로시와 만나지 못한다고 했는지도 알겠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다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려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자벨라와 대화를 해보면 도로시는 누군가를 상처 입게 할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애런은 몸에 마기를 두르지도 않고, 도로시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소멸시킬 수 있는 상태로 오두막 집의 문을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도로시는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왜, 왜 몸에 마나나 신성력을 두르지 않으신 건가요? 가브리엘 님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전해드렸을 텐데…”
예상대로 도로시는 능력으로 남을 소멸시키거나 위협을 가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자벨라에게 듣던 대로라고 생각하며, 무방비한 상태로 다가가다 도로시의 목에 걸려있는 펙토랄레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성녀님. 제가 선물한 펙토랄레를 걸고 계신 것을 보니 기쁘네요.”
애런의 말에 도로시는 목에 걸고 있는 펙토랄레를 쥐고 애런과 번갈아 가며 봤다. 그리고 눈동자가 커지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애런 님이세요?”
“네, 이자벨라 님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와, 와, 와…”
애런이 자신을 평가하러 온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준 천사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신 것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도로시는 자신과 대화를 해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애런을 보고 활짝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