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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2화 (32/92)

〈 32화 〉 도로시 마이어

* * *

무법지대 벨라의 성 지하.

지하실의 벽에 충격을 흡수하는 마법을 걸어두기는 했지만, 벨라와 애런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충격파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균열이 가 있다.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편 피닉스가 날갯짓을 하자 공중에서 점으로 머물고 있던 불꽃들이 빨간 선이 되어서 날아간다.

애런은 팔에 마기를 집중 시켜 검은 방패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방패를 든 채로 앞으로 달려간다.

“노움!”

쿠구구구… 지하실을 가르는 흙벽이 생겨나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애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꽈앙! 방패로 흙벽을 부수고 옆에서 날아오는 전격은 갑옷으로 흘려냈다.

이제 웬만한 정령의 공격은 애런의 검은 갑옷을 뚫어내지 못했다. 벨라는 혀를 차며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정령왕의 불꽃을 휘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납셨네.”

수많은 정령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드디어 벨라가 직접 나서게 했다. 애런은 자신의 성장에 미소를 지으며 방패를 없애고, 검을 휘둘렀다.

쐐액! 마기로 만들어진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벨라를 가격했다. 그러나 벨라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불꽃이 스스로 모습을 변형시키더니 불의 벽이 되어서 채찍을 막아냈다.

“말셀러스도 죽였으니, 이제 치료 안 해준다.”

“안 다칠 테니까 걱정 마시죠.”

“걱정은 무슨!”

콰아앙! 벨라가 내려찍은 발이 지하실의 바닥을 박살 냈다. 애런은 뒤로 뛰어서 공격을 피했지만, 부서지며 튀는 파편 사이사이에 작은 불꽃들이 붙어있었다. 퍼버벙­! 애런을 덮지는 폭발이 연달아서 일어났다.

연기로 시야가 가려졌지만 애런은 섣부르게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검은 갑옷에서 가지처럼 뻗어난 마기들로 벨라의 위치를 찾는다.

“찾았다.”

애런은 벨라가 있는 방향으로 검을 던진다. 마기로 강화된 신체로 있는 힘껏 던진 검은 상상 이상의 속도였고, 순식간에 벨라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

벨라는 순식간에 연기를 뚫고 날아오는 검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정령왕의 불꽃은 벨라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정면에 만들어진 불의 벽은 다시 한번 벨라의 시야를 가렸다.

퍼억! 정면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허술해진 등의 불꽃을 뚫고 애런의 주먹이 날아왔다.

“큭!”

묵직한 주먹에 몸이 붕 떴지만, 땅의 정령으로 벽을 만들어내 그걸 발판 삼아 공중에서 몸을 틀며 발차기를 날린다. 까앙! 그러나 그것도 모두 애런이 예상했던 내의 행동이었다. 마기로 만들어낸 방패로 발차기를 막아내며, 주위로 마기를 뻗어 몸을 고정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던졌던 검과 이어진 마기를 당겨 벨라의 뒤를 다시 한번 노린다.

“제가 이겼네요.”

애런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마기에 이끌려 다시 날아오던 검은 애런이 마기를 끊음으로써 공중에서 툭 떨어져서 벨라의 등을 찌르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진짜.”

언젠가 애런에게 따라잡힐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고작 2년 만에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벨라는 불꽃을 거둬들이며 패배를 인정했다.

무법지대에서 2년이 지났다. 애런은 그동안 벨라와 대련하며 실력을 길렀고, 17살이 된 지금 셀 수 없는 패배를 끝내고 드디어 벨라에게 첫 승리를 거뒀다. 이제 마기의 조작도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마기가 몸에서 흘러나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드디어 성기사와 이단심문관들에게 들키지 않고 앙겔로크라티카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자벨라가 말했던 기한은 맞췄다.

“그동안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애런은 두르고 있던 갑옷을 해제하며 벨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벨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쳐냈다.

“꺼져.”

“져서 분한 건 알겠지만, 2년 동안 본 정도 있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굴면 저 상처 받아요.”

“꺼져!!”

벨라는 중지를 들어 올리고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지하실을 나갔다. 애런은 악수를 하려고 내밀었던 손을 쥐었다 펴며 통쾌하게 웃었다.

“아~ 드디어 이겼네. 2년 동안 두드려 팬 거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데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일부러 자존심을 긁어놓기 위해서 땅에 앉아있던 벨라에게 실실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 때문에 악수하려고 내민 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패자에게 내미는 손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애런 나름의 소심한 복수였다.

*

철컹.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창 안에 빛이 들어왔다. 어두웠다가 순식간에 밝아진 탓에 여성은 푸른 눈을 찡그리며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성녀님, 이제 나갈 시간입니다.”

방안에 들어온 빛은 햇빛이 아니었다. 여성이 갇힌 곳은 깊은 지하에 있는 철창이었으므로 햇빛이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이 빛은 무엇일까.

“가브리엘 님.”

천사의 제1사도 가브리엘이 몸에 두른 빛이었다. 지하에 갇힌 또 다른 성녀, 도로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이어도 그녀를 맨몸으로 만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가 두른 빛이 지하실을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1년밖에 남지 않으셨습니다. 이자벨라 님과 약속했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알고 있어요.”

“나오시는 것을 제가 도와 드려야겠습니까?”

가브리엘의 말에 도로시는 대답하지 않고 녹이 슨 차가운 철장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철창은 미세한 빛의 입자가 되어서 사라져버렸다. 도로시는 사라진 철창 사이로 걸어 나왔다.

“언제나 봐도 무시무시한 능력입니다.”

“...”

“저는 그 능력 때문에 도로시 님이 완전한 성녀가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자벨라 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도로시는 가브리엘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지하로 이어진 이 끝없는 계단은 12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지만, 사람이 오가지 않아 먼지가 조금 쌓인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앙겔로크라티카가 생기고 유례없는 쌍둥이 성녀라서 교황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

도로시는 조용히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다. 12년간 바깥과 격리되어있었기 때문에 최근의 바깥 상황에 대해서 미리 알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이자벨라가 매일같이 와서 얘기해주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자벨라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일에 대한 얘기였다.

도로시가 알고 싶은 것은 교황이나 가브리엘처럼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의 생각이 곧 이자벨라와 자신의 목숨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은 1년 동안 두 분 중 누가 더 성녀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도로시 님이 완전한 성녀가 되기를 바라니, 제가 평가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교황이 반대할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님이 아니라면… 다른 사도님이 오시는 건가요?”

강한 소멸 능력을 가진 도로시의 혹시 모를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성기사나 이단심문관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가브리엘이나 적어도 다른 사도급은 되어야지만 대처가 가능하기에 타당한 질문이었다.

“일단 다른 사도들에게도 말은 전해놨습니다만, 그들에게 그럴 시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항상 바쁜 자들이지 않습니까.”

“만약 아무도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럴 경우에는… 제가 시간을 쪼개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자들이 시간이 없다면 교황도 어쩔 수 없이 제게 맡기겠죠.”

도로시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다른 사도들이 시간이 없다면 둘 중에 누가 더 성녀에 어울리는지 평가하지 않고, 부족하지만 성녀가 두 명인 채로 내버려 두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지만 헛된 것이었음을 알아서였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자벨라와 자신 중 누군가를 죽이고 성녀의 힘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일부러 성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서… 도로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가브리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성녀에 어울리지 않는 평가를 받도록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분은 서로를 생각하셔서 일부러 그렇게 행동할 것 같으니 미리 경고하겠습니다.”

가브리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가 두르고 있던 따뜻한 빛에 살기가 섞이며 가시가 되어 도로시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압박감에 도로시는 마른침을 삼키며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가 두 분을 죽이고 새 성녀가 선택받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성녀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건 성녀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범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알겠어요.”

둘 다 살 방법이 없다면 여차하면 먼저 자살을 해서 이자벨라라도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브리엘의 말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도로시의 대답에 가브리엘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갑갑했던 기운이 사라지자 겨우 숨을 다시 쉴 수 있었다. 가브리엘의 눈을 속여 평가를 낮게 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언니인 이자벨라는 자신과 다르게 갇혀 지내지 않았으니, 밖에서 성장한 그녀라면 충분히 도로시보다 성녀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나선형으로 계속 이어져 있던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의 몸에서 나는 빛이 아닌, 바깥으로 나왔음을 알려주는 따뜻한 햇빛. 12년 만에 보는 햇빛에 도로시는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아…”

12년 만에 느끼는 자연에서 부는 바람은 차갑기만 하던 지하실의 바람과는 달랐다.

따스한 햇빛은 세상 어디에도 어둠이 생기지 않게 할 것만 같았다.

풀 내음은 꿉꿉한 냄새가 나던 지하실과는 달리 싱그러웠다.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는 기분 나빴던 쥐의 찍찍 소리와는 달리 듣기 좋았다.

밖을 나오니 갇혀 지내느라 잊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지하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지하실 밖을 나오니 이 세상을 더 느끼고 싶었다.

‘역시 죽는 건 싫어…’

헛된 희망일지라도 누군가가 영웅처럼 자신과 이자벨라를 구해주기를 바란다. 이자벨라와 둘이서 이 세상에서 살고 싶다. 고작 1년이 아닌 10년, 20년… 그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도로시는 이자벨라가 선물해준 펙토랄레를 쥐고 자신을 이런 운명으로 몰아넣은 천사에게 기도한다.

*

푸쉬이이이… 기차의 문이 열리며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애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7년 전에 처음 왔을 때랑 달라진 게 없네.”

10살의 애런은 앙겔로크라티카의 발전된 모습을 보며 입을 벌리고 감탄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천사 동상에 손가락으로 욕을 날려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라타파 이단심문소… 내가 그 미친 곳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애런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섞여 있고 어깨 부분에는 빨간 십자가가 새겨진 옷을 입고서는 팔까지 올라오는 금속 건틀릿을 끼고 있다. 어깨에 올려놨던 여우는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남들에게 관여 받지 않고 활동하기 위해서 애런은 이단심문관이 되었다. 원래라면 라타파 이단심문소 소속 이단심문관이 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벨라의 도움과 애런의 실력으로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 모노크롬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받으려면 실적을 올려야겠지.”

그것도 애런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오르도 왕국의 말셀러스의 저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애런은 이단심문관이 되자마자 그곳을 찾아가서 인공적으로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내고 있단 사실과 그 증거를 가지고 왔다.

드르르륵. 애런이 끌고 있는 캐리어에 든 것은 마기를 뿜어대는 고깃덩어리가 된 사람과 그걸 빻아서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약이 들어있었다.

“아일라가 나 보면 어떻게 놀라려나.”

2년 만에 보게 될 동생의 놀라는 얼굴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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