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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7화 (27/92)

〈 27화 〉 말셀러스 저택

* * *

쾅!! 마기를 갑옷처럼 두른 애런이 푸른색의 벽에 처박히며 금이 간다. 그 충격으로 천장에 달린 전등이 깨지며 빛이 사라졌다.

“세긴 하네.”

애런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면서 말했다. 고개를 드니 어둠 손에서 벨라의 안광이 흔들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위습.”

벨라의 말에 어둠을 밝히는 정령들이 생겨났다. 수가 늘어나더니 지하에 해가 생긴 것처럼 환해졌다.

정령사. 자연에 있는 정령과의 계약을 통해 마법을 사용하거나 정령 그 자체의 힘을 빌리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벨라는 정령사 중에서도 뛰어난 정령사이다. 그걸 증명하듯이 불의 정령왕의 불꽃을 망토처럼 두르고 그 뒤에는 죽지 않는 불새, 피닉스가 날고 있다.

“너, 마기 줄줄 새고 있는데?”

“그런가요.”

벨라에게 두들겨 맞느라 마기를 억누르는 것에 잠깐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이꼴이다. 마기를 억누르는 것이 미흡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단심문관이 무법지대에 온 것도 네가 흘린 마기 때문인 것 아니냐?”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들켜버렸다. 애런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벨라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놈 봐라? 나랑 만나보려고 일부러 부른 건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그래. 그래도 네가 불러온 건 맞으니까 좀 맞자.”

피닉스가 날개를 펄럭이니 불이 파도처럼 애런에게 몰려왔다. 애런은 마기를 두른 검을 휘둘러 불을 베어보지만, 파도는 계속해서 애런을 몰아붙였다.

계속해서 수비만 하다 보면 마기가 먼저 바닥날 것이 뻔했다. 그 사실을 아는 애런은 불길을 가르며 벨라에게 뛰어갔다.

마기로 만든 검은 갑옷이 불의 열기에 빨갛게 달아오른다. 공기가 뜨거워져 폐가 쪄지는 것 같다.

“노움.”

쿠르르릉. 애런과 벨라 사이를 가로막는 두껍고 높은 흙벽이 땅으로부터 솟아올랐다. 모든 면이 막혀있어 우회는 하지 못한다.

애런은 최대한 발을 빠르게 움직여 몸을 가속시킬 수 있을 때까지 가속시켰다. 최대한 몸을 가속시킨 애런은 검은빛을 내는 별똥별 같았다.

남은 마기를 모두 어깨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벽에 부딪친다.

쾅! 애런의 몸이 부딪친 부분만 벽이 우르르 부서진다.

벽을 부수며 탈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제 남은 마기가 거의 없다. 몸에 두르고 있던 검은 갑옷도 스르르 사라졌다.

“탈출했어?”

지하를 가득 채울 듯한 거대한 날개를 펼친 피닉스. 그리고 날개에서는 불길한 적색 빛을 띠는 무수한 점이 보인다.

“죽일 생각이에요?”

“피닉스의 능력이 뭔지 알아?”

벨라는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웃음을 짓는다.

“회복 능력. 한 번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오렴.”

피닉스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자 날개에 있던 무수한 점들이 적색의 선이 되어서 애런의 몸을 관통한다.

몸이 뚫리는 고통, 몸이 불타는 고통, 살이 타는 냄새가 한 번에 몰려오며 정신을 끊어놓는다.

*

죽기 직전까지 벨라가 두드려 팬다. 그리고 피닉스의 회복 능력으로 망가진 애런의 몸을 고친다.

이 무식하기 그지없는 수련 방법은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었겠지만, 용사였던 애런의 정신력은 이 정도도 어렵지 않게 견뎌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수련은 효율적이며 효과적이었다.

실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벨라는 애런을 상대할 때 죽지만 않을 정도로 손대중을 했다. 하지만 오늘 애런의 마기로 강화된 검은 검 끝은 벨라의 턱 아래까지 다가와 있었다.

애런의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에 벨라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내가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머지않은 미래에 애런과 싸우게 된다면 전력을 내더라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턱 아래까지 온 검은 내 목을 베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이런 생각들에 섬뜩함을 느끼고 힘 조절에 실패해버렸다. 피닉스의 날갯짓에 생긴 불기둥에 애런은 완전히 잡아먹혔다.

실수로 죽여버렸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아니, 죽일 생각이에요?!”

점점 위력이 약해지고 있는 불기둥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검은 갑옷을 입은 애런이 뛰쳐나온다.

“살아있네?”

분명히 죽었을 거라 생각하며 말셀러스 암살이 멀어졌다고 낙담하던 벨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제는 충분한 것 같네요.”

불기둥에 휩싸이면서도 마기를 흘리지 않았다. 이제는 무의식적으로도 어느 정도 마기를 억누를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이었다.

“그래, 이제 오르도 왕국에 가서 말셀러스나 빨리 죽여.”

“솔직히 더 수련시켜주는 게 싫은 거죠?”

“뭐..?”

애런은 피식 웃으면서 말한다.

“그 마음 알죠. 얕봤던 상대한테 질 것 같아서 초조해지는 거. 저도 느껴봐서 알거든요.”

아일라에게 지고 나서 애런이 전력을 다했던 것처럼. 방금 벨라도 질 것 같아서 무심코 힘을 줬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얄밉게 말했다.

“뭐, 뭐... 너 이 새끼 어디가.”

“말셀러스나 빨리 죽이시라면서요. 그 말 듣는건데요?”

애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실의 계단을 걸어간다.

“야, 야!! 내가 너한테 그런 생각 할 것 같아? 제대로 상대해줄 테니까, 일로 와!!”

“싫어요.”

안 그래도 큰 벨라의 목소리가 지하실에서 울리며 더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자신을 무시했던 벨라에게 한 방 먹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통쾌하게 웃었다.

[결국 저 여자의 몸에는 생채기도 못 냈으면서, 정신 승리를 하는 꼴이라니 추하다.]

“닥쳐.”

*

“여기요.”

애런은 벨라가 주었던 신분증을 보초를 서고 있는 위병에게 건네주었다. 위병은 신분증과 애런을 번갈아 보며 얼굴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가라.”

“네, 수고하세요.”

애런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쯧… 불쌍한 녀석.”

애런을 가엾이 여기는 위병의 말을 들으며 일단 오르도 왕국의 성문을 넘는 것은 성공했다.

사자왕 리처드 폰 오르도가 다스리는 오르도 왕국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사자왕의 동상.

“이제는 내가 알던 꼬맹이가 아니네.”

전생의 애런이 보았던 리처드는 지금의 애런보다도 더 어린 꼬마였지만 눈앞에 있는 동상에서는 그런 앳된 모습은 보이지 않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지금은 저 동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늙은 모습이려나.”

동상을 지나서 오르도 왕국의 중앙, 말셀러스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내 눈으로 네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군.]

“닥쳐.”

애런은 구멍이 난 허름한 옷을 입고 손발이 묶인 채로 초크에 걸린 줄에 이끌려 걷고 있다.

방어막이 있어서 침입자가 있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말셀러스의 저택에 걸리지 않고 들어가기 위해서 애런은 노예가 되었다.

노예 말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지금 노예가 된 것도 벨라의 넓은 발로 겨우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대체 저택 안에 뭐가 있길래 이리도 사람을 가려 받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애런의 목줄을 잡고 있는 벨라가 보낸 범죄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말셀러스의 저택에 끌려간 노예들은 저택의 지하로 가게 됩니다.”

“네.”

“그리고 거기서 살아서 다시 나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살아서 다시 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있다는 얘기인가요?”

애런의 말에 범죄자는 애런 가까이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

“네, 있습니다. 살아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만.”

“사람이 아니라면요?”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버린 애런은 눈살을 찌푸렸다.

“벨라 누님은 말셀러스를 암살하는 것도 괜찮지만,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돌아가면 제가 고깃덩어리가 될 일은 없다고 전해주세요.”

나오기 전에 도발하고 온 것 때문에 벨라에게 미움을 산 것 같았다. 애초에 정이 들 만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의뢰해놓고 죽으라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이제 다 도착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오르도 왕국에 팔아버린 귀족답게 저택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애런은 탈출할 때를 대비해서 유심하게 살펴본다.

마치 작은 성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벽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위에는 지나가지 못하게 하려는지 철조망이 보였다.

“경비도 삼엄하고…”

저택의 벽에 일정 거리를 두고 경비원들이 개를 데리고 순찰을 하고 있다. 대체 저택에 뭐가 있으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숨기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지 못합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네.”

범죄자는 거대한 철문 앞에 서 있는 경비원에게 다가가더니 종이 서류를 넘겨주고 잠깐 얘기를 나눴다.

“자, 가라. 네 새로운 주인님이 계신 곳이다.”

범죄자가 목줄을 확 잡아당기자 애런은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털썩 쓰러진다.

‘씨발.’

[봉인된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군. 네 그런 꼴을 직관할 수 있다니 말이야.]

필요한 연기임을 알지만, 땅에 얼굴을 박아서 느껴지는 고통과 입안에 퍼지는 흙 맛은 이해로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멍청하게 쓰러져있지 말고 이거나 받아라.”

경비원은 애런의 손에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작은 종이를 올려줬다.

“이건 뭔가요?”

“노예 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네…”

굳이 대답을 안 해주더라도 애런은 이 종이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방어막을 지나가기 위한 출입증 같은 거겠지. 누가 왔다갔다 할 때마다 경보가 울리면 귀찮을 테니까.’

애런은 입안에 들어간 흙을 뱉어냈다. 그리고 경비원의 손에 이끌려 말셀러스의 저택에 펼쳐진 방어막을 통과했다.

애런은 자연스럽게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으나, 경비원이 목줄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켁 소리를 내고 멈춰 섰다.

‘아… 짜증 나네.’

“네가 갈 곳은 거기가 아니다.”

경비원은 목줄을 잡아당기더니 점점 저택과는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수가 있는 꽃이 가득한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이 보였지만, 이제는 손질하지 않은 나무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햇빛은 들어오지 않고 낮인데도 밤인 것처럼 어두웠다.

그리고 더 걸어가니 덩굴에 둘러싸인 문이 있는 벽이 보였다.

“네가 들어갈 곳은 저기다.”

“그런가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보일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애런은 손발을 묶고 있는 밧줄을 마기를 흘려보내 끊어냈다.

“이제 길 안내는 필요 없어.”

애런은 경비원의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기절시켰다. 경비원의 파란 옷을 뺏어서 갈아입고는 덩굴에 둘러싸인 문을 열었다.

끼익­.

덩굴에 둘러싸인 것만 봐서는 관리가 안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쌓인 먼지는 없었다. 즉 최근까지도 이용했던 것이었다.

“대체 여기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꼭꼭 숨기냐?”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촛불의 약한 빛으로만 밝혀지고 있는 깜깜한 계단이었다. 애런은 촛불 하나를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고작 사람 한 명만이 지나갈 수 있을듯한 좁은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간다.

10분 정도를 계속해서 내려오자, 드디어 계단이 아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단의 끝에 다다를수록 시체 썩는 냄새와 배설물의 냄새가 섞인 역겨운 냄새가 났기에, 애런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미친놈들.”

촛불의 미약한 불로 주위를 비춰보자 지하실은 수많은 철창이 있었고, 그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좁은 철창안에 사람들을 가득 채워놔서 사람들은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런은 고작 이런 것 욕을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분명 20살은 넘어 보이는 성인들의 어깨에 역십자가 흉터가 선명하게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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