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4화 (24/92)

〈 24화 〉 무법지대

* * *

금화 980닢. 아티팩트를 팔고 애런의 수중에 있는 돈이다. 벨라의 말대로 아티팩트들은 금화 1000닢에 가까운 정도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20닢이나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애런은 돈을 벌기 위해서 길드에서 의뢰를 고르고 있다.

“하아… 1000닢을 모으는 것보다야 쉽다지만, 20닢도 모으기 어려운 돈이라고.”

[내용 : 바람피운 남편을 죽여주세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보수 : 은화 10닢]

[내용 : 고양이 찾아주세요. 흰색이랑 검은색 털이 섞인 아이에요. 가족 같은 아이에요. 보면 연락해주세요.

보수 : 은화 10닢]

의뢰를 둘러봐도 20닢은 커녕 금화 1닢도 안 되는 의뢰들이 가득하다. 누군가를 지명하는 것이 아닌 의뢰는 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애런은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 마검이 든 나무 상자를 만지작거린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이거는 남겨둘까.”

애런은 한숨을 푹 쉬며 길드에서 나왔다. 거리에는 아직도 애런 때문에 로브를 쓴 범죄자들이 가득했다. 길을 가다가도 애런의 얼굴을 보고는 히익 놀라며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자도 있고, 애런을 피해 빙 둘러서 가는 자들을 보니 마치 바다를 갈랐던 모세의 기적 같다.

“불편하게 왜 저러냐.”

[네가 했던 짓을 생각하면 마땅한 것이 아닌가.]

“쯧…”

결국 불편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애런이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원래도 좁은 골목인데 쓰레기들로 가득 차 더 좁아진 골목은 발 디딜 곳 하나 없어서 쓰레기를 치우면서 지나가야만 했다.

쓰레기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에 짜증이 난 애런은 쓰레기가 든 봉투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끼잉…”

“끼잉?”

어디선가 들려온 동물의 울음소리에 애런은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아까 의뢰에서 봤던 고양이면 은화 10닢이잖아.”

[고작 은화 10닢 때문에 쓰레기를 뒤지는 꼴이라니. 그런 모습, 상당히 보기에 만족스럽다.]

마왕의 헛소리는 무시하고 소리가 들린 곳을 무작정 뒤진다. 쓰레기 봉투에 맺힌 더러운 물이 손을 더럽혔지만 그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애런은 적은 돈이라도 모으다 보면 금화 20닢을 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존심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다.

“끼잉…”

그리고 애런의 손에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동물이 잡힌다. 고양이기를 바라며 쓰레기 더미에서 꺼낸다.

“아니, 여우잖아.”

애런의 한 손에 다 들어올 정도의 작은 여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렸는지 상당히 말라 있었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여우를 구해준다고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불쌍해 보였기에 일단 숙소로 데리고 돌아갔다.

“너무 더럽네.”

온몸에 진흙이 묻어 더러운 여우를 숙소에 그냥 풀어줬다간 그나마 깨끗하게 청소한 숙소가 더러워질 것 같아 먼저 씻기기로 한다.

여우는 씻는 동안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미지근한 물로 진흙을 잘 씻어주니 시꺼멓던 털이 깨끗한 금색으로 변한다.

애런이 먹다 남은 고기를 던져주자 여우는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고기를 더 던져주자 그것들도 다 먹는다. 그리고 더 달라는 듯 앉아서 입맛을 다시며 애런을 쳐다본다.

“여우가 아니라 돼지였네.”

고기를 잘 먹는 모습을 보니까 앙겔로크라티카에 두고온 아일라가 떠올라서 피식 웃으며 고기 한 덩이를 더 던져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애런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한숨을 쉰다.

“그냥 마검을 팔아버릴까.”

혹시나 나중에 쓸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팔지 않은 마검. 나중에 어쩔 수 없다면 팔아버리자고 생각했으면서도 귀찮은 심부름으로 금화 20닢이나 모아야 할 생각을 하니 지금 당장 팔아버리고 싶다.

[안 된다. 네 목숨이 위험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랄. 너는 그냥 내 몸이 빼앗고 싶은 거잖아.”

[그런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보험이라고 생각해라. 당장 네가 쓰는 검들도 범죄자들한테서 빼앗은 싸구려 검이니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말이다.]

“뭐, 그것도 일리는 있네.”

*

애런은 하루라도 빨리 금화 1000닢을 모으기 위해서 오늘도 길드에 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같이 온 녀석이 있다.

바로 애런의 어깨에 있는 여우다. 원래는 데리고 올 생각이 없었다. 숙소에 두고 오려고 했는데, 어제 고기를 주고 난 뒤로부터는 애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그걸로 자신을 잘 따른다고 생각해서 애런이 몸을 만지려고 하면 애런의 손을 발로 막아서 못 만지게 한다. 그걸 무시하고 만졌더니 체념한 듯 몸을 맡기다가 애런이 잠에 들자 얼굴을 할퀴어놨다.

그래서 지금 애런의 얼굴에는 발톱으로 긁혀 빨갛게 선명한 자국이 나있다. 그런 상처 자국을 보며 범죄자들은 저 지독한 녀석에게 상처를 남기고 죽은 녀석이 누구냐며 궁금해했다.

“오늘도 딱히 돈이 될만한 의뢰는 없네.”

애런이 게시판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자 누군가 애런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뒤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압박감으로 누구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벨라 드 디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돌이라도 맞은 듯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벨라가 손가락을 튕겨서 애런의 이마를 때린 것이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 녀석이 왜 반말이야?”

벨라는 애런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말했다. 눈과 코에 스며드는 듯한 독한 느낌과 정신적으로는 벨라 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데, 어린애 취급이나 받으며 이마를 맞은 것에 자존심이 상해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 연기…”

15살 얼굴에다가 대체 무엇을 뿜는 것인가 애런은 경악을 하면서 손을 휘저어서 담배 연기를 날려보냈다.

“하여간 요즈음 어린 것들은 예의가 없어.”

“전형적인 꼰대가 하는 말을 하시네요.”

아직 불이 붙어있는 담배꽁초를 손으로 쥐었다가 무심하게 뒤로 휙 던진다.

“아티팩트를 싣고 가던 기차는 털었으려나?”

너는 못 했을 것 같은데? 라는 표정으로 애런을 내려다보는 벨라. 애런은 그런 벨라에게 금화가 든 주머니를 흔들어 짤랑짤랑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꽤 실력은 있었나 봐. 나한테 기차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겼던 놈을 이길만한 범죄자는 별로 없을 텐데 말이야.”

“그런 허접한 놈을 말이에요? 아, 하긴 이 무법지대에 있는 범죄자들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을 깜빡했네요.”

애런은 길드에서 벨라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엿듣고 있는 범죄자들에게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말해준다. 그 말에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던 척을 하는데, 그것마저도 어색해서 허접해보인다.

벨라는 애런의 말에 피식 웃으며 여우가 있는 반대편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친다.

“그럼 내가 진짜 무법지대를 보여줄까?”

“진짜 무법지대?”

“그래, 따라와 봐라. 어차피 너 금화 1000닢 다 못 모았잖아? 뒷 세계에서 나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길드에 있는 의뢰로 큰 돈 벌기는 힘들어.”

애런은 벨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자욱하게 안개가 낀 큰길을 걷다가 휙 몸을 돌려서 골목으로 들어간다.

애런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벨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욱한 안개만이 애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뭐야 이건. 마법인가?”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애런은 벨라가 들어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잉… 골목의 안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아니고 섬뜩한 기분이 들게 해서 사람을 돌려보내기 위한 것처럼, 인공적으로 부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대체 이 뒤에 뭐가 있길래.”

조금 더 걸어가니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없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희미하게 계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왔냐.”

벨라는 계단 앞에서 애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입에는 파이프를 물고 후우 하고 연기를 뿜어낸다.

저 너머로는 화려한 불빛들로 가득찬 거리가 보인다. 불빛도 제각각 달라서 마치 무지개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건물들도 애런이 봤던 무법지대의 허름한 건물과는 달리 벽에 금이 간 것 없이 멀쩡해 보였다.

골목을 넘어오기 전과 너무나 차이 나는 광경에 이곳이 무법지대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법지대의 범죄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했지만, 이곳은 달랐다. 서로 탁자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꽤 거액으로 보이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도박장도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가 돈을 잃었는지 소리를 지르지만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

벨라는 진짜 무법지대라고 했지만, 이곳에는 이곳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때? 위에 있던 무법지대랑은 분위기가 다르지?”

“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죠?”

“어중이떠중이는 없는 법이 있는 무법지대.”

그게 무슨 소리냐며 애런은 눈살을 찌푸렸다. 법이 있는데 어떻게 무법지대란 말인가. 그때 계단 앞에 서 있는 애런과 벨라를 발견한 남성들이 허리를 숙이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벨라 누님,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벨라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파이프로 빨아들인 연기만 내뿜고 있다. 하지만 남성들은 다가와서 벨라의 어깨에 옷을 걸쳐주고 와인 한 병을 들고 온다. 벨라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고는 병째로 꿀꺽꿀꺽 마신다.

“알겠나? 이곳은 내가 곧 법이다. 내가 한 말이 법이고, 내 의중이 법이지. 내가 쓸만해 보이는 녀석들만을 데리고 와서 만든 무법지대 속의 무법지대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벨라는 걸어간다. 애런은 법이 있는 무법지대의 거리를 둘러보며 그 뒤를 따라갔다.

조금 걸어갈 때마다 벨라에게 하는 인사가 들린다. 그것이 귀찮다는 듯 살짝 손만 흔들어서 대답을 해준다.

“저를 데리고 온 이유는 뭔가요?”

“너를 영입하고 싶어서지. 실력이 있는 녀석은 싫어하지 않아. 내 밑으로 들어와라. 애런.”

“거절해도 되는 건가요?”

“글쎄? 이때까지 내 제안을 거절한 녀석은 없었는데 말이야.”

“있었는데, 없어진 건 아니고요?”

애런의 대답에 벨라는 재밌다는 듯 소리 내어 웃는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반구 형태의 지하의 벽이 흔들리며 먼지가 떨어질 정도였다. 애런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아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재밌어, 흥미롭단 말이야. 용기가 있는 건지 멍청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마음에 든 것 같고 죽이려고 들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 애런은 솔직하게 대답한다.

“거절할게요. 친구랑 한 약속도 있고, 여동생도 두고 온 거라서요.”

“아,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강제로 데리고 올 생각은 없어. 그래도 돈은 벌고 싶잖아?”

“네.”

“그럼 내 성에 가서 마저 얘기하자고. 네가 좋아하는 돈을 벌 기회가 있으니까 말이야.”

애런은 딱히 돈을 좋아해서 벌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귀찮게 반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히 걷다 보니 반구 형태로 만들어진 지하의 천장에 닿을 듯한 모든 벽이 금으로 만들어진 반듯한 성이 보였다.

그걸 보고 솔직히 애런은 놀랐다. 도대체 저 성을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금이 갔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벨라에게 들어오는 의뢰의 보수가 터무니없이 큰 금액들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부를 축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 그런 놀라는 반응을 보려고 내가 저런 성을 지은 거지.”

벨라는 히죽 웃으며 자기보다 훨씬 거대한 성문을 한 손으로 밀어서 열었다.

“내 성에 온 걸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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