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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3화 (23/92)

〈 23화 〉 기차 습격

* * *

하얀 안개가 바람에 따라 땅 위를 천천히 기어 다녔다. 애런은 그걸 허름한 건물에 걸터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법지대의 최외곽. 곧 이곳으로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출발한 아티팩트를 실은 기차가 지나갈 것이다.

이자벨라의 동생을 살리느냐 마느냐가 달린 문제이기에 애런은 일주일 동안 기차가 지나가는 길목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어떤 건물을 폭파해서 길목을 막으면 좋을지 생각했다.

고심 끝에 기차의 속도가 줄어들 만한 커브가 있는 길에 있는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다. 애런이 신호를 보내면 폭탄이 터져 건물이 길목을 가로막을 것이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을 내가 죽인다라…'

애런은 마왕이 했던 말을 곱씹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범죄자가 아닌 죄 없는 사람들이 죽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다고 해도 애런은 그들을 살리면서 아티팩트를 탈취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죽일 것이다. 이제는 전생과 달리 평범한 사람이니까, 이상을 노릴 수는 없으니 현실에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슈우우우… 공중에 뜬 기차는 아주 작은 소리만을 내며 멀리서 안개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땅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기차의 헤드램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런은 기차가 덫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충분히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때 건물을 폭파한다.

콰과과광!!

허름한 건물에서 몇 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을 부수며 건물이 휘청거리게 했다.

쩌저적… 기둥이 부서지자 건물은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자신을 스스로 부수며 쓰러졌다.

쾅!

쓰러진 건물이 길목을 가로막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커브를 도느라 속도가 느려져있던 기차는 건물을 보고 금방 멈춰 섰다. 그리고 습격을 눈치채고 돌아가려고 천천히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위치야."

애런은 바로 기차를 날려버리기 위해 땅에 심어두었던 폭탄을 터뜨린다.

콰과광! 콰광!

2차 폭발이 일어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뒤 3칸만이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며 투명한 유리 파편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쿵!

공중에 날았던 칸들이 땅에 떨어지며 찌그러지는 것을 바라봤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는지 폭발에 휘말린 6칸에서는 깨진 창문이나 문으로 탈출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은 것은 4번째 칸에 있는 소수의 인원뿐이다. 금화 1000닢 정도의 값어치를 지닌 아티팩트 탈취가 멀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애런이 계획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흘러간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나는 법이다.

애런은 긴장을 풀지 않고 건물에서 가볍게 뛰어내린다.

일주일간 마기의 총량을 늘리고 조작 연습을 한 애런은 능숙하게 마기로 몸을 감싼다.

스르르르­. 마기는 심장 부근부터 시작해 온몸의 피부를 덮었다. 애런이 그 위에 마기를 덧씌우자 눈에 보일 정도로 검게 변하며 마치 검은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마기를 분출해 속도를 늦추고 살포시 착지한다. 애런이 땅에 내려옴과 동시에 움직임이 없던 4번째 칸의 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온다.

"이래서 무법지대는 지나가면 안 된다니까. 귀신같이 정보를 알아내서는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잖아. 뭐, 애초에 내가 흘린 정보지만.”

얼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묻어있고 째진 눈으로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는 남자다.

"어라, 벨라가 다른 사람을 보낸 건가? 맞다면 내가 벨라에게 준 종이 좀 보여주겠나?”

애런이 대답을 하지 않고 쳐다보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기차에서 내린다.

"이 칸에는 사람들이 더 있었을 텐데."

"아, 게네들? 다 죽였지. 입이 늘어나면 안 되잖아.”

동료를 죽이고도 태연한 태도로 실실 웃어댄다. 정보를 팔아먹은 것도 모자라 동료를 죽이고도 웃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저 남자가 죽이지 않더라도 애런이 죽일 자들이었다. 그래서 무심하게 말한다.

"그러냐? 내 일을 줄여줘서 고맙네."

“그보다 내가 요구한 것 좀 들어주지? 아, 불쾌해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네. 그저 처음 보는 얼굴이라 벨라가 보낸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것뿐이니까.”

애런이 벨라에게 받았던 기차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품속에서 꺼내 보여주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벨라에게 준 정보의 값은 얼마나 쳐줄 생각이지? 거기다가 4번째 칸에 타고 있던 녀석들도 죽였으니 노동비도 좀 줘야겠는데.”

남자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동전 모양을 만들어서 흔들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우지 않고 물어본다. 애런은 조용히 말한다.

“내가 벨라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남자는 돈을 받을 생각에 신난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격하게 끄덕인다. 하지만 애런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돈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말이었다.

“사냥을 끝낸 사냥개가 어떻게 되는지 아나?”

“뭐? 돈 얘기나 해. 나는 그딴 재미없는 얘기는 관심 없으니까.”

원하던 얘기가 나오지 않자 표정을 콱 구기며 투덜거린다. 애런은 남자가 투덜거리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말한다.

“사냥꾼에게 잡아먹힌다더군. 내가 보기에 벨라는 사냥꾼이고 너는 사냥개인 모양이야.”

“이 새끼가… 너 벨라가 보낸 것 맞냐? 그녀는 나에게 돈을 준다고 약속했다고.”

그걸 믿냐. 하는 짓과는 다르게 퍽 순진한 남자를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애런의 웃음을 보고 남자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빼 든다.

“됐다. 그년이 나를 먼저 배신하는 거라면 차라리 여기 있는 아티팩트나 들고 도망치련다.”

“네가 벨라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네가 들고 갈 수 있는 아티팩트는 없어.”

애런의 주먹에 검은 마기가 모이며 한층 두꺼워진 갑옷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뾰족한 가시가 달린 건틀릿처럼 변한다.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은 버텨봐라. 일주일 동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봐야 되거든.”

애런의 도발에 남자가 발끈하며 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검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나며 강화된 것이 보인다.

애런은 검을 유심히 보다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손을 펼치며 먼저 공격해보라는 의사를 표현한다.

“이 새끼가 사람 무시하고 자빠졌어!”

남자가 검을 휘두르자, 마나가 초승달 모양으로 방출되며 안개를 가르며 애런에게 날아온다. 애런은 그걸 피할 생각도 없이 날아오는 초승달의 마나를 몸으로 받아낸다.

카가가각! 방출된 마나는 애런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갑옷을 긁다가 상처 하나 내지 못한 채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방어력은 확실히 전보다 좋아진 것 같네.”

이단심문관의 불에 힘없이 사라지던 전과는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마기의 양이 늘어서 몸에 두른 마기의 밀도가 늘어나자 더욱더 단단하게 뭉치며 실체를 가진 것처럼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지는 않았다만, 직접 때리면 문제 없는 거지?”

[물론이다.]

“꺼, 꺼져!”

애런은 천천히 남자를 향해 걸어간다. 남자는 기겁을 하며 검을 계속해서 휘둘러 초승달 모양의 검기를 날려대지만, 갑옷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질 뿐이다. 남자는 애런과의 실력 차이를 느끼고 이길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뒤돌아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남자의 코앞에 애런이 서있다. 분명 남자보다 애런은 키가 작지만 어째서인지 남자가 애런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리는 떨리고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다.

“살려줘…”

“살고 싶으면 배에 마나를 둘러라.”

공포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남자는 애런의 말에 몸을 움찔 떤다.

“한대만 견디면 그냥 보내줄 테니까 빨리 배에 마나를 둘러라. 10까지 셀 때까지 안 두르면 그냥 죽이는 거고. 10.”

“기… 기다려.”

“9.”

남자는 자신의 전신에 퍼져있는 마나를 조종한다.

“8.”

지금은 배를 제외한 다른 부위에는 마나가 필요 없다. 남자는 모든 마나를 끌어서 배에 모았다.

[전생 용사가 이제는 사람을 샌드백 취급하는군. 오래 사니 별 특이한 꼴을 본단 말이야.]

“너 아직 부활 못 했으니 죽은 상태야.”

남자는 애런의 혼잣말을 신경 쓰지 않고 배에 모든 마나를 압축한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집중이 되었던 적이 없다. 주변 소리는 들리지 않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지 못하겠다.

‘10초가 이렇게 길었나?’

그리고 남자는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지금은 모든 집중력을 마나를 압축해서 조금이라도 더 단단한 방어를 해야 했다.

“얼마나 지났냐?”

[10초는 이미 지났다.]

“네가 말 걸어서 깜빡했잖아.”

[허… 이제는 얼굴에 철판을 깐 수준이 아니라 철판으로 얼굴을 만든 수준의 뻔뻔함이군. 자기가 세는 것을 깜빡하고 내 탓을 하나?]

“야.”

애런이 남자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집중하느라 안 들리나. 뭐, 10초는 넘게 줬으니까 그냥 친다.”

애런은 주먹을 꽉 쥐고 팔을 쭉 뒤로 들어 올렸다.

‘이 정도라면 살 수 있어..!’

남자는 자신이 응축시킨 마나를 느끼며 히죽 웃었다.

콰아앙!!!

애런이 휘두른 주먹이 남자의 배와 부딪친다. 남자가 뭉친 마나는 유리구슬처럼 깨지고 그의 몸을 지켜주지 못했다.

배에 구멍이 뚫린 채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남자는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웃고 있었다.

“이놈 웃고 있네?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나 봐.”

[미친놈은 너다.]

애런은 쓰러진 남자를 발로 치우고는 문을 열고 아티팩트가 실린 4번째 칸으로 들어가 안을 살펴본다. 애런은 아티팩트가 산처럼 가득 쌓인 것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나무 상자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는 너무 욕심이었나.”

비싼 아티팩트가 있기를 바라며 나무 상자를 하나하나 열어본다. 그리고 애런은 전생에 봤던 아티팩트의 수준보다 한참 떨어지는 것들을 보며 얼마 되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마지막 나무 상자를 열었을 때 예상과는 다르게 괜찮은 물건이 들어 있는 것에 조금이나마 놀랐다.

쇠사슬이 감겨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던 마지막 나무 상자 안에는 검은색의 검날과 손잡이 부분에는 보라색의 마석이 박혀있고 불길한 기운을 뿜어대는 검이 놓여있다.

“마검이잖아.”

인간이 사용하면 소유자를 타락시키고 지배하기도 하며 피와 생명력을 대가로 강한 힘을 준다는 마검. 애런은 전생에 마족과 싸우기 위해 마검을 사용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

마검을 쓰다 정신이 지배되면 적만을 베는 것이 아닌 동료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베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자신마저 베어 목숨을 빼앗는다. 힘을 얻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사양이라 다시 상자를 닫으려는 순간 마왕이 말을 건다.

[뭘 겁먹고 있나. 설마 네가 마검 따위에 지배 당할 거라 생각하고 겁을 먹은 것은 아니겠지?]

“내 몸 지배하려고 수작 부리네.”

[네가 말했던 것을 잊었나? 나는 네가 죽어서 내가 죽는 것만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강한 무기를 들고 네 몸을 지키라는 소리다.]

애런은 상자의 뚜껑을 손에 들고 닫을까 말까 고민한다.

‘확실히 정신력이 강한 녀석들은 마검을 쓰고도 멀쩡하기는 했지.’

물론 전생의 애런과 같이 비정상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정신은 몰라도 평범한 몸인 지금 마검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는 애런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 지금 당장 쓰지는 않더라도 가지고 있어서 손해 볼 건 없지.”

애런이 나무 상자의 뚜껑을 닫자 마왕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 새끼 내 몸 빼앗으려고 했던 거 맞네.”

[아니, 네가 쉽게 강해지는 방법을 고르지 않아서 아쉬워서 혀를 찬 거다.]

“네 말에 혹할 뻔한 내가 멍청한 놈이지.”

역시 마왕은 마왕이다. 믿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애런은 아티팩트가 든 나무 상자를 챙겨서 무법지대로 돌아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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