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2화 (22/92)

〈 22화 〉 벨라 드 디바

* * *

“애런 님. 벨라 드 디바 님께서 애런 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도 범죄자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길드에 들어온 애런을 보며 접수원이 말했다.

“벨라 드 디바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애런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접수원이 한 말에 물었다. 접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지금 방 안에서 애런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무범지대에서 로브를 쓰지 않은 범죄자를 사냥하고 다니는 것으로 애런은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벨라가 먼저 만나고 싶어 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애런은 그녀가 왜 먼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생각했다.

‘무법지대에서 범죄자를 사냥하고 다니는 것 때문인가.’

그것 때문이라면 굳이 만나자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애런에 대한 외견 정도는 이미 무법지대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거리에서 습격해도 되는 일이었다.

“뭐, 만나보면 알 일이지.”

애런은 벨라 드 디바가 기다리고 있다는 방의 문을 노크도 하지 않고 열고 들어갔다.

“네가 애런인가.”

방 안에는 적갈색 머리를 검은 리본으로 묶고 피부를 많이 드러낸 옷 사이로 근육이 보이는 여성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팔을 하나 걸치고 앉아있었다.

‘이 녀석이 벨라 드 디바.’

굳이 주먹을 맞닿으며 실력을 확인할 것도 없이 그녀는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진심으로 애런을 죽이려 든다면 지금의 애런으로는 벨라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도.

“뭘 그렇게 서 있어? 얘기나 하게 앉아.”

벨라는 앞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애런이 소파에 앉자 푹 꺼지면서 애런의 몸을 감싸는 것처럼 되며 무척이나 편안한 느낌이었다.

“편하지? 확실히 비싼 돈 들여서 산 거라 그런지 싸구려랑은 앉았을 때 느낌이 다르더라고.”

“네에…”

자신을 적대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애런에게 적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애런 정도는 손쉽게 죽여버릴 수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아, 너 무법지대에서 좀 유명하던데. 누군가가 실적을 올리려고 범죄자들이 필요하다고 한 의뢰를 받고 범죄자들을 사냥한다고.”

“네.”

“담배 피워도 돼?”

애런이 고개를 끄덕이자 벨라는 다리를 탁자 위에 걸치고 다리를 꼰 채로 입에 담배를 물며 말했다.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그 의뢰는 관두는 게 좋을걸.”

“왜죠? 무법지대에 있는 한 식구라서 그런가요?”

“식구?”

애런의 말에 벨라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쾅쾅 내려치며 크게 웃는다. 그 반응에 애런은 잘못짚었다고 생각하며 괜히 민망해졌다.

“여기 있는 쓰레기들을 식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그럼 너는 식구라고 생각하면서 범죄자들을 사냥하고 있었던 거냐?”

“아니요. 저도 식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혹시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봤나 싶어서요.”

“걱정마라. 나는 네가 그런 쓰레기들을 죽이고 다닌다고 경고나 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네.”

“뭐, 아까 관두라고 한 이유는 그거야. 그 의뢰는 함정이거든.”

“함정이요?”

벨라는 오른손으로 개 흉내를 내며 말한다.

“사냥을 마친 사냥개는 사냥꾼한테 잡아먹히거든.”

그리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콱 잡아먹어 씹는 시늉을 했다.

“그러니까 제가 범죄자의 머리를 들고 가면 저까지 죽일 것이다 이 소리인가요?”

“그렇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며 애런을 가리켰다.

“잘 알고 있네. 그들에게는 의뢰를 마치고 돌아오는 너는 사냥을 마친 사냥개인 거지. 일단 너도 범죄자이니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실적인 거야.”

“그건 몰랐네요.”

“으음? 그게 끝? 뭔가 깜빡한 거 아니야?”

무언가를 바라는 듯 애런을 빤히 쳐다본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예의지. 그리고 이게 내가 널 부른 이유이기도 해.”

벨라는 탁자에 올리고 있던 다리를 내리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놓고 말한다.

“앙겔로크라티카의 이단심문관이 무법지대에 왔었는데 네가 그걸 막았다며?”

“네, 제가 막기는 했죠.”

자신이 흘린 마기 때문에 무법지대까지 따라온 것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막았다는 사실만 말한다.

“그래, 무법지대를 지켜줘서 고맙다. 다른 녀석들은 막을 생각이 없거나 도망치기 바빴다던데 너만이 그들을 막았구나.”

[네가 불러온 것이지만.]

자세하게 따지자면 마왕을 봉인하며 몸에 갇힌 마기가 흘러 이단심문관을 부른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애런은 뻔뻔하게 벨라의 감사를 받는다.

“무법지대는 내 집이자 직장이거든. 무법지대 외에서는 쫓기는 입장이고, 또 길드가 없으면 숨어지내는 입장인 내가 의뢰를 받기도 어려우니 무법지대가 없어지면 곤란하거든.”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

[이게 정녕 용사란 말이냐. 악마처럼 양심을 팔아먹었구나.]

애런은 웃으며 대답하면서도 자꾸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는 마왕의 입을 닥치게 했다.

“이걸로 널 부른 용건은 끝. 이제 가봐도 좋아.”

벨라는 다시 탁자 위에 다리를 올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는 애런에게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한다. 하지만 애런은 나가지 않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네.”

애런이 무법지대에 남아있는 이유. 그것은 벨라 드 디바에게 들어온 이자벨라의 쌍둥이 동생 도로시 암살 의뢰를 막기 위함이다. 그걸 다시 떠올린 애런은 말한다.

“길드 게시판에 있는 의뢰 기억하고 있나요?”

“거의 다 기억하고 있지.”

“그중에 도로시 마이어를 암살해달라는 의뢰가 있는데, 그걸 받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애런의 말에 벨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도로시는 제가 신세를 진 친구의 동생이거든요.”

“그래도 거절하지. 정 내가 그 의뢰를 받는 것이 못마땅하거든 그 보수만큼의 돈을 내게 들고 와라.”

도로시 암살에 걸려있던 보수는 금화 1000닢이다. 자잘한 의뢰를 해결하고 보수를 받는다고 해도 금화 1000닢을 모으려면 도로시 암살 의뢰에 있던 기한을 맞추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벨라를 죽여서 막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게 가능할까?’

애런이 고민에 빠져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벨라가 말한다.

“금화 1000닢을 기한 내로 모으기는 무리겠지. 그러니 무법지대를 지켜준 너에게 특별히 정보를 하나 알려주마.”

벨라가 애런에게 가까이 와보라며 손짓을 하기에 옆으로 가자,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

“곧 베네쿠스로 아티팩트를 가득 실은 기차가 갈 거다. 거기 있는 아티팩트를 털어서 팔면 금화 1000닢 정도는 나오겠지.”

“... 감사합니다.”

“쯧… 내가 털어도 되는 거긴 한데, 괜히 마음 약해지게 친구 동생이라고 해서. 자, 그 기차의 구조와 기차에 탑승할 녀석들이 적힌 종이야. 이거 보면 편할 거다.”

“이런 것까지 주시고… 감사합니다.”

벨라는 품속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 애런에게 건네준다. 애런은 어쩌다가 흘린 마기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에 얼떨떨해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에 히죽 웃었다.

[내가 마기를 흘린 덕이다. 넌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용사.]

‘닥쳐 좀.’

“이제 더 할 말 없지?”

“네.”

“그럼 가라.”

“네, 다음에 볼 때는 금화 1000닢을 들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애런이 방을 떠나자 담배를 물고 있던 벨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재밌는 놈이야.”

*

애런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벨라에게 받았던 종이를 펼쳤다.

아티팩트를 실은 기차가 베네쿠스로 가는 것은 일주일 후였다. 기차는 애런과 아일라를 앙겔로크라티카까지 태웠던 것과 같은 기차에 내부만 살짝 개조한 구조였다.

기차는 총 7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4번째 칸에 아티팩트를 실은 채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뒤로 3칸씩에는 기차를 지키는 자들이 타고 있으며 4번째 칸에도 소수지만 사람이 탄다.

“앞뒤 3칸은 폭파해도 되겠네.”

[전생에는 네가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을 환생한 너는 거리낌 없이 죽이려고 하는군.]

마왕은 제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이 봤던 용사는 마족이 인간을 죽이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홀로 마왕이었던 자신을 죽인 만인의 이상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애런은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인간을 너무나 쉽게 죽인다고 말하며 실제로 범죄자들을 죽이고도 너무나도 무심했다. 그걸 보며 마족을 죽이기 위해 선택받았던 용사가 아닌 인간을 죽이기 위해 선택받은 악마처럼 보였다.

“친구 동생을 지키기 위한 거잖아.”

[전에도 들었던 말 같군. 전에는 인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마족을 죽였지.]

“지금은 평범한 인간이니까 내가 지킬 수 있는 주변 사람만 지키는 것뿐이야.”

마왕은 애런이 조용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용해졌다. 그 덕에 애런은 기차에 있는 아티팩트를 탈취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기차는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출발해서 베네쿠스로 이동하며 중간에 있는 무법지대를 가로지른다. 그렇다면 애런이 미리 준비해놓을 수 있다.

일단 기차를 멈추기 위해서 건물에 폭탄을 설치하고 기차가 지나갈 때 폭파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미리 설치해둔 폭탄으로는 기차의 앞뒤 3칸을 폭파하고 4번째 칸에 있는 아티팩트를 탈취한다.

이것이 애런이 세운 계획이었다.

“좋아, 완벽하다.”

종이에 적힌 대로라면 마도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은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자들이 아니다. 무법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범죄자보다는 강할지 몰라도 훨씬 강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차에 아티팩트를 지킬 자들을 꽉꽉 채워놨겠지.

그 정도라면 폭파하지 않은 4번째 칸에 있는 자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은 세웠고… 이제 범죄자들을 사냥할 필요도 없으니 마기를 다루는 연습이나 해야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당연하지. 이단심문관 상대할 때 나 못 봤냐? 마지막에 그 녀석이 자멸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걸?”

[이 새끼는 자기 목숨도 걸렸으면서 왜 나만 죽는 것처럼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이해가 안 되면 나랑 같이 죽으시던가.”

[하아… 마기는 근육이랑 똑같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마기도 사용을 많이 할수록 그 양이 늘어나지.]

“그래? 마기는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데? 몸에 두르는 거로는 소모가 안 되잖아.”

애런이 몸에 마기를 두르자 소모가 되지는 않고, 몸에 달라붙어서 머무를 뿐이었다.

[단순하지. 마기를 뿜어내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미친. 너는 마기를 쫓아서 온 이단심문관을 보고도 그 소리가 나오냐?”

전에는 강한 이단심문관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지만 전생의 애런이 보았던 수준의 이단심문관들이 오면 저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죽을 것이 뻔했다. 더는 이단심문관이 애런이 흘린 마기를 쫓아오는 것은 사양이다.

[마기를 밖으로 뿌리는 것이 아닌 네 몸 밖으로 보냈다가 다시 흡수한다고 생각해라.]

“뭔 소리야?”

[내가 시범을 보이게 긴장을 좀 풀어봐라.]

“그래, 해봐.”

마왕은 애런의 몸속에서 마기를 모아서 몸 밖으로 배출한다. 계속해서 배출하자 애런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야, 잠깐만. 나 좀 어지러운데.”

[당연한 일이다. 마기는 악마의 생명력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많이 빠져나가면 그런 반응이 오겠지.]

“나는 악마가 아니고 인간인데 왜 어지러운 거냐고.”

[나를 네 몸에 봉인했으니 어느 정도 나와 존재가 섞였으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 너는 악마도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씨발.”

애런은 역시 마왕 따위를 몸에 봉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

[자, 몸에서 마기를 썼으니 새로 만들어진 마기로 보충이 되고 있을 것이다. 보충이 끝난다면 배출한 마기를 다시 흡수하면 네 몸에 담을 수 있는 마기의 총량이 늘어난다.]

“오오… 그러냐. 근데 이 새끼가 왜 자꾸 마기를 뿜어대는 거냐 나 어지럽다고 했잖아.”

[너는 마기가 고갈된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으니 강도를 높여서 하는 것이다.]

“야, 이 개새…”

애런은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기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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