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백기사
* * *
이단심문관의 몸에 붙은 불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것이었지만, 오로지 그의 몸만을 불태우고 있었다.
살점은 녹아 뚝뚝 땅바닥에 떨어지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웃고 있었다.
“정화의 불이 붙은 내 몸이야말로 신벌 그 자체이니 두려워하라. 그리고 전능하신 천사님을 경외하며 죽어라.”
“미친놈.”
애런은 광신도를 보며 중얼거린다. 제 몸을 불태우고 있으면서 나보고 두려워하라고 한다.
전생에도 그랬지만 이단심문관들의 무서운 점은 저런 천사에 대한 광적인 믿음이다. 작은 의심 한 번을 하지 않기에 믿음은 강하고 그로 인해 신성력은 강해진다.
그렇기에 보통의 성기사보다 이단심문관들의 수준이 더 높다.
이제는 사소한 일격 한 번도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애런은 긴장을 풀지 않는다.
이단심문관은 불이 붙은 몸으로 애런을 향해 달려든다. 그 속도는 애런보다도 빨랐으며 섬광과 함께 이미 애런을 향해 주먹을 뻗고 있다.
애런은 공격을 보고 막지 않는다. 전생에 무수히 싸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예지에 가까운 수읽기로 이단심문관의 공격을 막아낸다.
캉!! 이단심문관의 금속 건틀릿과 검이 충돌한다. 검에 불어넣었던 마기는 신성한 불꽃에 의해 순식간에 정화되며 평범한 검이 되어간다.
키잉! 캉! 이단심문관은 미쳐있지만, 전투에 필요한 판단력은 남아있다. 적의 무기를 망가뜨려 무력화시킨다. 그걸 위해서 집요하게 공격을 막을 것을 강요한다.
콰직! 몇 번을 더 부딪치고 검을 강화해두었던 마기가 사라지자 건틀릿에 부딪힌 부분이 박살이 난다.
애런은 하는 수 없이 이단심문관의 주먹을 맨 몸으로 흘려낸다. 다가오는 주먹을 손등으로 쳐낸다. 그럴 때마다 검게 몸을 감싸고 있는 마기가 사라지지만 금방 보충한다.
“마왕같았던 그 마기도 천사님의 불꽃 앞에서는 햇빛에 사라져가는 어둠과도 같구나!”
얼굴의 피부가 녹아내리면서도 이단심문관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이걸 보면 역시 미친놈들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건 네 몸뚱이고.”
애런은 온몸에 두르고 있던 마기를 이단심문관의 몸과 닿는 부분으로만 집중시킨다. 마기로 감싸지 않은 곳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몇 번의 난타전에 애런의 주먹이 먼저 이단심문관의 턱에 박힌다. 아니, 턱이었던 것이다. 불에 녹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단심문관의 몸은 애런의 주먹과 부딪치고도 그 모습을 유지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이단심문관의 하관의 살점이 애런의 주먹에 달라붙고 턱뼈는 부서졌다. 그 때문에 뇌를 흔들어놓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단심문관도 그 틈에 애런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애런의 몸을 태울 기세로 이단심문관의 주먹에서는 불이 뿜어졌고 애런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마기를 정화했다.
“컥!”
마기 덕에 뼈가 부러지지는 않고 고통만이 몰려온다. 마기는 서서히 사라져가며 애런의 몸에도 열기가 전해져온다.
“멍청하기는.”
하지만 애런은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이대로만 있어도 애런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단심문관의 불은 애런만을 태우는 것이 아닌 이단심문관도 태운다. 그것을 대가로 받은 강한 힘이니까.
애런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단심문관은 자신의 몸 상태를 알 리가 없었고 자신이 뿜어대는 불로 인해 자신의 몸이 타서 녹아가고, 재가 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단심문관은 불을 견디지 못하고 건틀릿을 제외한 부위는 모두 사라진다.
팅! 그리고 이단심문관의 몸은 모두 재가 되고 불에 타지 않은 금속 건틀릿이 땅에 떨어졌다.
[전생 용사라는 놈이 고작 저런 급이 낮은 이단심문관에게 애를 먹다니.]
“후우… 야, 마기로는 상처 치료 못 하냐?”
애런은 이단심문관과 가장 많이 접촉해서 마기가 정화되어 불을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해 빨갛게 달아오른 팔에 물을 끼얹으며 중얼거렸다.
[가능하지. 하지만 네 놈 수준으로는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냐.”
애런은 팔에 끼얹고 남은 물을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아직 너무 약해. 평범한 범죄자나 성기사는 쉽게 상대했지만, 조금 숙련된 이단심문관을 상대하려고 하니 이렇게나 고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이 상태라면 벨라 드 디바를 설득하지 못했을 경우 그녀를 죽인다는 선택지는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문으로 들은 그녀는 지금 상대한 이단심문관들보다도 훨씬 강할 테니까.
“수련이나 하자…”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전생 애런의 바람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전생처럼 강한 힘이 필요하다.
*
모노크롬의 정문에 이자벨라와 아일라가 서서 백기사를 기다리고 있다.
“백기사라는 사람이 성녀님이 나와서 맞이해야 할 정도로 높은 사람인가요?”
아일라는 성녀가 앙겔로크라티카에서 정확히 어느 정도의 높이에 위치한 자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높은 위치에 있는 자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 증거로 성기사들은 성녀인 이자벨라를 깍듯이 대하며 이자벨라가 누군가의 밑인 것처럼 행동한 적은 없다.
“교황님과 동급이에요.”
이자벨라의 말에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성기사라는 사람이 앙겔로크라티카를 다스리는 교황과 동급이라고?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백기사님은 그럴 자격이 있으신 분이에요.”
“왜 그렇죠? 그만큼 공을 많이 쌓았나요?”
“천사님의 12사도. 그중 제 1사도인 천사의 검 백기사 가브리엘 플라벨룸 님은 미카엘 님과 계약하신 첫 인간이시니까요.”
“12사도?”
처음 듣는 내용에 아일라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천사님에게 신실함으로 인정받아 천사님의 역할을 일부 대행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인정받으신 분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중에는 백기사님을 비롯해 교황님, 일부 이단심문관 등이 있어요.”
“그렇군요.”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백기사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제대로 이해했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일라.
“저기 오시는군요.”
이자벨라가 하늘을 바라보기에 아일라도 따라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거대한 날개 6장을 펼친 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해를 등진 것도 아닌데 그의 몸에서 나오는 밝은 빛에 아일라는 눈을 찌푸리며 쳐다봐야만 했다.
땅에 가까워지자 날개가 사라지며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가브리엘의 모습은 미카엘을 보는 것과 같이 금발에 깊은 바다를 보는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미카엘과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 닮았었다.
“오랜만입니다. 가브리엘 님.”
이자벨라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가브리엘의 모습에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아일라는 이자벨라가 인사를 하는 것에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얼굴을 본지 시간이 꽤 지났나 봅니다. 전에 봤을 때는 소녀였는데 어느새 성인이 다 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아일라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치천사 미카엘 님에게 선택받으신 용사, 아일라 베커 님. 저는 가브리엘 플라벨룸이라고 합니다.”
“네, 네 잘 부탁드려요.”
아일라는 쭈뼛대며 가브리엘이 악수를 청하며 내민 손을 잡았다. 그저 악수를 위해서 손을 잡았을 뿐인데도 가브리엘이 얼마나 강한지가 느껴졌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태양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자, 상황에 대한 설명은 성녀님이 하신 보고로 확인했습니다만 다시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세 명은 나란히 모노크롬을 걷는다. 평소에는 이자벨라와 같이 모노크롬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성녀인 이자벨라에게 시선이 모였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치천사와 처음으로 계약한 인간, 천사의 검, 앙겔로크라티카에서 가장 유명한 성기사인 백기사 가브리엘을 향해 모든 시선이 쏠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가브리엘에게서 신성함과 그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마왕이 부활하기 직전까지인 악마의 아이가 나타났고, 성녀님과 성녀님을 호위하던 성기사들이 그를 제압했다.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리고 악마의 아이가 흩뿌린 마기가 모노크롬 곳곳에 퍼져있는 상태여서 악마의 아이가 생기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맞습니까?”
“네.”
가브리엘은 모노크롬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마기가 퍼져있습니다. 성녀님이 보고한 대로인 모양입니다.”
이자벨라는 자신을 쳐다보는 가브리엘의 시선에 식은땀이 등을 따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진실 속에 거짓을 섞어서 보고했다. 그것으로 이 사람을 속일 수 있을까… 그런 초조함에 손이 떨리는 것을 두 손을 꽉 쥐어서 막았다.
“네, 제가 거짓으로 보고를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
가브리엘은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에 이자벨라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죠. 성녀님이 저나 교황을 속이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는 것이 느껴진다. 빨리 이 사람과의 대화를 끝내고 싶다. 이자벨라는 마왕을 봉인하고 악마의 아이가 되어서 도망친 애런의 존재가 들킬까 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좋습니다. 마왕이 부활 직전까지 갔다는 보고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만 역시 성녀님이십니다. 부활 직전인 마왕마저 정화하시다니…”
말끝을 길게 늘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으로 이자벨라는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단하십니다. 힘도 온전치 않으실 텐데 노력하신 모양입니다.”
이자벨라는 마치 중력이 강해져서 땅이 자신을 강하게 당기는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어깨는 움츠러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성녀님만 노력하신 게 아니라 저도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 압박감은 힘들게 꺼낸 아일라의 말에 사라졌다. 가브리엘은 아일라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보고 내용에 없었습니다만, 용사님이 옆에서 도와주셨다면 어렵겠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자벨라는 참았던 숨을 뱉어낼 수 있었다. 아일라가 가브리엘이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고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좋습니다. 모든 것을 확인하였으니 이제 모노크롬에 퍼진 마기를 정화해도 되겠습니다.”
“네…”
이자벨라는 두 손을 꽉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천사님을 찬양합니다. 모노크롬에 퍼진 악한 마기를 씻으시고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왕의 저주로 악마의 아이가 되어 죄의 굴레에 빠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부디 천사님의 자비로 그런 아이들이 더 생기지 않게 해주소서.”
기도하는 이자벨라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빛이 모노크롬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마치 태양 같은 그 모습에 주변에 있는 아이들은 가던 길을 멈춰서. 넋을 놓고 이자벨라를 쳐다본다.
“저희는 천사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굴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저희를 버리지 마시옵고 신성한 빛으로 하여금 저희를 씻어주시옵소서. 빛으로서 마왕이 내린 저주를 이길 수 있게 해주시어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지 않도록, 평화가 계속되도록 해주시길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이자벨라로부터 퍼져나간 빛은 하얀 깃털이 되어 하늘에서 눈처럼 내리기 시작한다. 하얀 깃털들은 아이들의 몸과 모노크롬의 건물에 내려앉더니 눈이 녹듯 스르르 없어진다. 그리고 옅지만, 아이들의 몸에서 빛이 나며 몸에 쌓인 마기를 정화해낸다.
아일라는 이 신성한 광경에 다른 아이들처럼 입을 벌리고 눈이 커진 채 이자벨라를 쳐다봤다. 최근에 성녀다운 일을 안 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은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자벨라는 역시 성녀라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며 감탄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자벨라를 우러러볼 때 가브리엘만큼은 기도를 하고 있는 이자벨라를 무심하게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