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이단심문관
* * *
애런은 무법지대의 금이 가고 허름한 건물 하나를 숙소로 삼았다. 원래 살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이제 애런의 악명이 어느 정도 퍼졌는지, 애런의 얼굴을 보자 목숨만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하기에 가진 걸 다 내놓고 가라고 했다.
그 덕에 사는 것에 부족함은 없다. 침대도 있고, 의자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
애런은 철사를 엮어서 만든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집중하고 있다.
“야, 일어나.”
가슴을 노크하듯 두드려 잠들어있는 마왕을 깨운다.
[말도 못 하게 억누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부르는 이유가 뭐지?]
“뭐긴 뭐겠어. 마기 다루는 방법이나 알려달라는거지.”
애런의 말에 마왕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 내서 웃는다.
[내게 마기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달라? 하! 날 봉인한 네놈한테 알려줄 것은 없다.]
“그러냐. 그럼 꺼져.”
애런은 마왕이 말도 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혀를 찬다. 도와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는 해서 기대를 안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전생과 현생. 두 번의 생에서 다뤄본 적이 없는 마기를 어떻게 다룬다는 말인가.
“아, 몰라. 앙겔로크라티카로 돌아가려면 마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 뭐라도 해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계획 없이 무작정 눈을 감고 집중한다.
마왕을 몸에 봉인하며 마기가 흘러들어왔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온몸에 흐르는 혈액에 집중한다.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이번에는 혈액을 온 몸에 전달하는 심장에 집중한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리고 심장에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혈액도 느껴진다.
“좋아.”
애런은 심장에서 방금 막 나간 혈액 따라간다. 심장을 빠져나간 혈액은 몸 곳곳의 혈관을 따라갔다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혈액에 섞인 마기를 느낄 차례다.
“느껴진다.”
혈액에 섞인 이질적인 기운이. 실체가 없지만, 혈액처럼 몸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그것을 따라간다.
마기는 혈액처럼 심장을 빠져나가 몸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심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런의 목표는 마기를 필요하다면 억누르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억누른다… 어떻게?”
몸에 흐르는 혈액을 제 의지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런이 해야하는 것은 그런 것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 마기를 눈치챈 것도 한 번 느껴봤으니까 였지.”
그렇다면 혈액을 멈춰보는 것이다. 즉, 심정지를 의도적으로 일으켜 체험해보는 것이다. 혈액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을.
“미친 짓이긴 한데. 야, 마왕.”
[아주 필요할 때만 불러대는구나.]
마왕은 투덜거리며 대답한다.
“야, 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히 네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지.]
이제껏 도움이 되지 않던 마왕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른 애런은 악마처럼 사악하게 미소를 짓는다.
“너 죽기 싫으면 나 살려라. 알겠냐?”
[뭐? 무슨 개소리냐.]
스스로 심장을 멈추려는 애런의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면서도 아주 무심했다.
퍼억! 애런이 심장을 세게 두드리자 심장은 펌프질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쿠웅…
느려지고 느려지다가 결국 심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멈춘다.
[뭐?!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심장을 멈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애런은 마왕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미친 새끼!]
마왕에게 다행인 점은 애런이 정신을 잃어서 봉인된 상태로도 마기를 조종하면 애런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만, 이 새끼가 내 목숨으로 협박을 해?]
스르르… 애런의 몸 안에 멈췄던 마기가 마왕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마기는 심장에 모이며 심장이 다시 움직이도록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을 반복한다.
쿠웅… 쿠웅… 쿵… 쿵쿵…
곧 애런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애런도 정신을 차린다.
“커헉!”
[이런 미친놈! 다시는 이딴 짓 하지 마라!]
애런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마왕부터 억눌렀다.
심장을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에 애런은 미간을 찌푸리고 식은땀을 흘린다.
“뭐, 모험한 보람은 있었네.”
제대로 느꼈다. 혈액과 같이 움직임을 멈추었던 마기를. 그리고 마왕이 조종하며 움직이던 마기를.
“이렇게 하는 건가?”
스르르르르… 애런이 마기에 집중하며 아까 느꼈던 것처럼 움직여본다. 혈액을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지만, 애런의 입꼬리는 올라간다.
“멈추는 건?”
… 움직이던 마기가 그 자리에 가라앉으며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앗.”
하지만 집중력을 잠깐만 잃어도 마기는 다시 혈액과 함께 몸을 돌아다니며 몸 밖으로 흘러나갔다.
“연습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시간은 2년이나 있어. 그때까지만 마기를 숨 쉬듯 억누를 수 있으면 돼.”
애런은 수확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괜찮아 보이는 녀석이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네.”
최근 무법지대에는 로브를 쓰지 않은 범죄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이 로브를 쓰고 돌아다닌다.
그만큼 악명이 높아진 것은 좋다. 어쩌면 지금 정도라면 벨라가 만나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애런이 사냥을 하러 가는 것은 악명을 높이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다.
마기를 조종하는 법을 배웠으니 실전에서 써봐야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상대를 고르는 것이다.
….
“아무도 없네.”
무법지대의 거리를 꽤 둘러봤지만, 로브를 쓰지 않은 자가 없다. 애런은 오늘도 허탕이라며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무법지대의 자욱한 안개에 쓰레기가 타는 매캐한 연기가 섞였다.
원래 냄새가 역겨운 곳이었지만 무언가 타는 냄새까지 섞이니 이곳에 있느라 둔감해진 후각을 뚫고 새로운 역겨운 냄새를 선사했다.
애런은 어떤 미친 범죄자가 무법지대에 불을 질렀나보다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 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단심문관이다! 앙겔로크라티카의 이단심문관들의 이단 심판이다!”
그 말은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앙겔로크라티카의 무력이자, 천사의 신벌 대행자를 자처하며 이단을 정화라고 말하며 불태워 죽이는 자들. 이단심문관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악마를 믿는 이단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단 중에는 이교도를 믿는 자는 물론이고 몸에 역십자가 흉터가 있는 악마의 아이도 포함된다. 이단이라기보다는 악마 그 자체로 취급하지만.
“나를 쫓아온 건가.”
생각해보면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도망치면서 쫓아온 자들은 모두 성기사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단심문관들은 앙겔로크라티카에서는 애런을 노리지 않았다.
애런은 고민한다. 괜히 이단심문관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끈질기게 따라올 이단심문관을 여기서 처리할 것인지.
[이단심문관은 네가 있던 시절에 지독하게 끈질겼지. 지금도 네가 흘린 마기를 저 멀리서부터 쫓아온 것을 보니 그건 여전한 모양이군.]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있어.”
마기를 억누를 수 있는 지금이라면 이단심문관이라 할지라도 쫓아오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 무법지대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
벨라 드 디바를 만나 이자벨라의 쌍둥이 동생 도로시를 암살하라는 의뢰는 받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그걸로 안 된다면 애런이 막아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무법지대에 있어야 했다.
“결정이네.”
이곳에서 이단심문관을 처리한다. 마기를 실전에서 쓰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하는데 봐줄 필요가 없는 상대가 와주었으니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아아아악!!”
애런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자욱한 안개 사이로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는 주홍색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개와 연기를 뚫고 이단심문관들이 걸어온다.
검은색 바탕의 옷에 살짝 섞인 흰색은 범죄자를 죽이고 튄 피로 얼룩져 어깨에 있는 빨간 십자가와 똑같은 색이 되어있었다. 팔까지 올라오는 금속 건틀릿에는 불이 붙은 플랜지드 메이스를 쥐고 있다.
“모두 죽여라. 어차피 천사님이 벌하실 범죄자들이다.”
콰직! 그들은 불이 붙은 플랜지드 메이스로 범죄자의 머리를 깨뜨린다.
머리에 든 것을 쏟아내며 쓰러진 범죄자에 정화의 불을 붙여서 정화한다.
“마기.”
이단심문관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손을 뻗어서 양옆에 있는 이단심문관들을 멈추게 했다.
“감히 천사 님을 따르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악마 그 자체가 된 자가 우리의 앞에 있다.”
애런을 향해 손을 들자 금속 건틀릿에서 절그럭 소리가 난다.
“이는 자명한 씻을 수 없는 죄이며, 이교를 따르는 이단이며, 우리가 없애야 할 악이로다.”
이것도 기도인지 이단심문관들의 몸에 옅은 빛이 나기 시작하며 전투를 할 준비를 한다.
“라타파 이단심문소 소속 이단심문관. 천사님의 신벌을 대행하겠나이다.”
강력한 살의가 담긴 눈빛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한점의 망설임이나 죄책감처럼 신벌을 행하는데 불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천사를 광적으로 믿는 광신도 집단 중에서도 가장 미친 이단심문소 소속답다며 애런은 속으로 생각했다.
콰아아앙! 옆에 서 있던 이단심문관이 먼저 땅을 박차고 애런에게 뛰어온다. 신성 마법으로 강화된 몸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할 속도를 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플랜지드 메이스를 꽉 쥐고 애런에게 휘두른다. 아무리 애런도 마기로 몸이 강화되어있다고 하지만 저들 수준으로 강화가 되어있지는 않았기에 공격을 막지 않고 피한다.
쩌저적!! 이단심문관이 메이스를 내려친 자리는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주변의 땅이 갈라지며 움푹 파였다.
‘정통으로 맞으면 즉사겠는데.’
스르르르… 애런은 몸에 있는 마기를 몸 밖에 두르기 시작한다. 검은 마기가 몸을 감싸며 빛이 나고 있는 성기사와 대조가 된다.
그리고 애런은 검을 꺼내 검에도 마기를 불어넣는다. 밖으로 흘리는 것 따위는 없이 온전히 전해진다.
[처음치고는 잘하는군.]
“그러냐.”
칭찬을 하는 것이라면 굳이 조용히 시키지 않는다.
애런이 마기가 담긴 검을 휘두르자 안에 담긴 마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채찍처럼 변하여 이단심문관의 몸을 쳐냈다.
촤악!! 채찍에 맞은 이단심문관의 몸에 깊은 상처가 나며 몸이 공중에 뜨고 날아간다. 쾅! 벽에 부딪히며 먼지를 일으키고 이단심문관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검처럼 쓸 생각이었는데, 생각처럼은 안 되네.”
[흩어져서 사라지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처음이면서 욕심부리지 마라.]
애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덤벼드는 머리를 노리는 이단심문관의 메이스를 막아낸다.
카앙!! 금속이 부딪치는 강렬한 소리가 나며 애런의 몸이 밀려나며 검을 쥐고 있는 손으로부터 충격이 전해져 온몸에 전해진다.
전해져 온 충격에 팔이 떨린다. 하지만 버틸 정도는 되었고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크으… 마기를 부여한 검이 저 공격을 막을 수 있나 싶었는데 막아낼 수는 있지만 별로 좋지는 않네.”
그리고 검을 휘두른다. 검이 지나간 자리는 검게 마기가 흩날리며 검을 메이스로 막아낸 이단심문관의 몸을 잠식했다.
피부가 마기에 잠식당해 썩어가지만 이단심문관은 신경 쓰지 않고 메이스를 휘두른다.
캉! 캉! 카앙! 검과 메이스가 계속해서 부딪친다. 그 난타전은 마기에 잠식 당해 메이스를 든 팔이 썩어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며 끝으로 향해간다.
캉!! 마지막으로 썩지 않은 손으로 메이스를 휘둘렀지만 한 팔을 잃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이단심문관.
애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단심문관의 몸을 반으로 베었다.
남은 것은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단심문관 뿐.
“그 마기는 마왕의 것과도 같으니 나약한 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천사 님의 신벌을 대행하는 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 어찌 큰 죄를 지었는가.”
쾅. 그는 쥐고 있는 메이스를 손에서 놓는다.
“그렇다면 저도 죄인이니 천사님의 신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족한 한 몸을 불살라서 눈앞에 있는 죄인과 함께 천사님의 곁으로 가겠나이다.”
화르륵! 이단심문관의 몸에는 하얀 불이 붙어 주변을 밝히며 아지랑이가 일렁인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한다. 그로 사용한 신성 마법은 조금 전에 사용한 신성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죄지은 자 모두 천사님의 신벌을 받으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