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무법지대
* * *
벨라 드 디바.
무법지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범죄자였다. 이전에 저지른 범죄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닌 무법지대에 오고 나서의 행적이 경이로웠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었다.
그녀는 오르도 왕국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귀족을 암살하거나, 앙겔로크라티카의 대주교를 암살. 베네쿠스의 유명 마법사를 암살하는 등.
여러 화려한 암살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암살이었기에 그 모든 기록이 그녀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죽은 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길드의 게시판에 암살 의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의뢰에 적힌 기한 내로 암살당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죽인 것이라고 추측을 할 뿐이다.
벨라 드 디바에게 암살을 의뢰하면 확정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암살을 의뢰한 자가 약속한 것 이상의 보수를 지불하여 호위를 의뢰한다면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녀를 지명하는 의뢰로 가득한 게시판은 살생부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런 사람한테 도로시 마이어 암살이라는 의뢰가 들어와 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애런에게 싸움을 걸었던 뼈만 앙상한 비쩍 마른 남자는 애런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말했다.
“이 사람을 만나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벨라 드 디바가 만나줄 정도로 유명해지거나… 돈으로 의뢰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녀에게 온 의뢰가 많아서 얼굴 보기가 힘든 사람입니다.”
“그래? 알겠어, 가라.”
“네…”
남자는 다리를 맞은 탓에 비굴하게 기어서 이동했다. 애런은 탁자에 걸터앉아서 의뢰로 가득 찬 게시판을 쳐다봤다. 벨라 드 디바와 만나기 위해서는 유명해져야 한다.
“성녀님한테는 아일라를 맡기고 왔으니까, 빚을 갚아야겠지.”
아일라는 이제 애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애런에게는 아직도 혼자 두기에는 걱정이 되는 여동생이었다.
그래서 애런은 모노크롬에서 탈출하기 전에 이자벨라에게 모노크롬에 홀로 남을 아일라를 동생처럼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왔다.
아직도 자신은 떠나야 한다고 하고 잘 있을 수 있냐고 묻자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몸에서 흘러넘치는 마기도 억제하지 못해서 성기사들에게 쫓기던 몸이었는데.
그러니 마기를 억누르는 수련을 해야만 했다. 이자벨라가 말했던 2년 후까지는 앙겔로크라티카에 돌아가기 위해서.
어쨌든 이자벨라는 아일라를 돌봐주기로 했으니, 애런도 이자벨라의 동생인 도로시의 위험을 못 본 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벨라가 도로시를 암살하는 것을 막겠다. 그것을 위해서는 벨라를 만나서 의뢰를 받지 말라고 설득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돈으로 도로시를 지키라는 의뢰를 맡기거나.
앞서 말한 것들로 안 된다면 애런이 벨라를 죽이던가.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벨라를 만나는 것이 먼저다. 그러기 위해서는 벨라가 만나줄 정도로 유명해져야 한다.
“유명해질 수 있는 의뢰가…”
애런은 게시판에 붙은 의뢰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살펴본다.
동물 찾기… 이걸 왜 범죄자들에게 맡기는지 모르겠지만 무시한다. 오르도 왕국의 사자왕 리처드 폰 오르도 암살.
“무슨 이런 터무니 없는 걸 의뢰하는거냐? 그게 가능한 사람이면 이런 곳에 있지도 않겠지.”
확실히 성공한다면 유명해지겠지만, 난도가 터무니없어 보이는 의뢰도 무시하다 한 의뢰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애런은 좋은 의뢰를 발견했다며 히죽 웃었다.
애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명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벨라처럼 범죄자들 사이에서 선망받는 존재가 되는 방법과 범죄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을 떨치던가. 애런은 두 방법 중에서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애런은 그리 생각하며 빠르게 유명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의뢰가 적힌 종이를 뜯는다.
[내용 : 실적을 위해서 무법지대의 범죄자들이 필요함. 유명한 녀석들일수록 좋음.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는 필요.
기한 : 의뢰일로부터 1달 이내.
보수 : 범죄자의 수준을 봐가면서 보수 조정.]
딱 봐도 무법지대에서 악명을 떨치기에는 적당한 의뢰였다. 동료는 아니지만 같은 지붕 아래에 사는 사람을 다수 팔아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이거라면 악명이 안 높아질 수가 없을 것이다.
“좋아, 이걸로 하지.”
애런은 무법지대의 다른 범죄자들은 받지 않고 남아있던 의뢰를 받았다. 거기다 일부러 범죄자들에게 들으라는 듯 의뢰 내용을 크게 말하며 접수원에게 이 의뢰를 받겠다고 했다.
애런의 의도대로 무법지대에는 어떤 미친놈이 무법지대에 있는 우리들을 팔아넘기려고 한다는 소문이 금방 퍼졌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무법지대에서 악명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충분히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점점 소문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것을 눈치챈 애런은 잠잠해진 소문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서 사냥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는데.”
애런은 범죄자를 사냥하기 위해서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는 포식자 같은 눈으로 범죄자들을 훑어본다.
“유명한 녀석들일수록 좋다고 했으니…”
로브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노린다. 위험이 더 늘어나겠지만 이름도 모르는 녀석을 사냥한다고 해서 다시 소문이 퍼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왕이면 영향력이 있는 녀석을 노리기로 한다.
터벅터벅.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는 로브를 쓰지 않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마침 기습하기도 좋게 애런이 뒤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애런은 남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기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남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자욱한 안개가 낀 거리에 두 명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터벅터벅터벅.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애런의 발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쾅 하고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
남자가 소리를 듣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대처하기에는 늦었다.
뒤를 잡힌 상태에서 애런이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것으로 이미 승부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게 결정되어 있었다.
애런이 휘두른 단검이 안개를 가르며 순식간에 로브를 쓰지 않은 남자의 목의 혈관을 정확하게 끊었다.
후두둑.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와 바닥을 적시지만, 아직 남자는 죽지 않았다. 피가 나오는 목을 세게 누르면서 도망치려고 한다.
“너한테 악감정은 없다만 죽어줘야겠다.”
우득. 남자의 목이 소리를 내며 꺾이며 자리에 털썩 쓰러진다. 그리고 털썩 쓰러지는 소리는 안개가 자욱해 잘 보이지 않는 옆에서도 들렸다.
다른 범죄자가 애런이 그를 죽이는 것을 지켜보고 놀라 뒤로 자빠진 것이었다.
“히익..!”
애런은 사람을 죽인 것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으로 자빠진 범죄자에게 다가갔다. 범죄자는 애런을 올려다보며 다리를 차며 뒤로 도망치지만, 벽이 그를 막아섰다.
“사, 살려줘.”
애런은 로브를 입은 자임을 확인하고 말한다.
“살려주지. 대신 다른 범죄자들에게 네가 본 것을 말해. 내가 범죄자들을 사냥하고 다닌다고 말이야. 그리고 실력에 자신이 없고, 살고 싶은 녀석들은 로브를 입으라고 전해.”
살고 싶은 범죄자들은 이 범죄자가 말하고 다니는 것에 귀를 기울이겠지. 그리고 이 말은 금방 무법지대에 퍼질 것이고 애런의 악명은 더 높아질 것이었다.
“거기서 로브를 입지 않은 범죄자 몇 명을 죽여주면 무법지대에서 악명이 하늘을 찌르겠지.”
애런은 자신이 죽인 범죄자의 머리를 챙기며 중얼거렸다.
[용사가 악명을 높이는 꼴이라니.]
“시끄럽다.”
*
“뭔가 악마의 아이가 전보다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인데.”
애런이 모노크롬에서 도망치고 난 뒤 혼자서 악마의 아이를 상대하는 아일라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화르륵… 모노크롬의 넓은 운동장에는 수십의 악마의 아이가 하얀 불에 타며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용사님. 악마의 아이 수십명이 한 번에 덤벼도 여유롭게 쓰러뜨리시네요.”
이자벨라는 불이 붙은 검으로 춤추듯이 악마의 아이들을 정화하던 아일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정말로 제가 용사가 된 건가요..?”
아일라는 자신이 용사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해서 몇 번이고 이자벨라에게 묻는다. 이자벨라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줬다.
“네, 아일라 님이 그러셨잖아요. 힘을 바라며 기도했더니 빛이 내려와 몸을 휘감았다고요. 실제로 그 빛을 봤다는 아이들도 있어서 그걸 무마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아일라가 지내는 방으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줄기를 자신이 기도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해달라며 온 방을 돌아다녔던 이자벨라는 지끈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걸 왜 무마시켜요?”
“저희가 태어나기 전에는 마족과의 전쟁이 있었다고 해요. 인간들이 밀리는 상황에서 마왕을 죽이고 혼자서 전쟁을 멈춘 것이 바로 전 용사님이에요. 새 용사가 탄생했다는 것은 전에 있던 용사가 죽었다는 뜻이니, 마족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최대한 아는 사람이 없게 해야죠.”
“그렇구나…”
아일라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악마의 아이처럼 몸에 흉터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용사라는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가 왜 없나요?”
이자벨라는 아일라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다.
“증거는 여기 있잖아요. 기적과도 같은 힘을 부리며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존재가요. 이게 증거가 아니라면 뭔가요?”
아일라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지만 평소와 똑같이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정말 용사가 된 것이라면 좋았다. 이제 애런의 옆에서 같이 싸운다거나 그 이상으로 자신이 앞장서서 애런을 지킬 수 있을 힘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지금 힘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정작 지킬 애런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조금만 더 일찍 이런 힘이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애런이 악마의 아이가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쥔다.
“또 의미 없는 가정이나 하고 있죠?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어요.”
이자벨라는 입을 꾹 닫고 침울해하는 아일라의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아으! 왜 때려요!”
아일라는 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이 맺힌 눈으로 이자벨라를 노려봤다.
“2년 뒤. 아니, 애런 님의 기량에 따라 더 일찍 볼 수도 있을 텐데, 꼭 애런 님이 죽은 것처럼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화가 나서요.”
“그래도 오빠는 악마의 아이가 돼버렸잖아요. 들키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요?”
“아일라 님이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하실 분인데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예요? 애런 님은 그 상황에서도 아일라 님 걱정이나 하고 있을걸요?”
아일라는 자신을 걱정하는 애런의 모습이 상상되어 피식 웃었다.
“그럴 것 같네요.”
“그렇죠?”
“근데 저도 여동생이니 걱정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말꼬리 잡지 마세요.”
이자벨라가 째릿 쳐다보자 아일라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피했다.
“그보다 내일 백기사님이 모노크롬에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네, 원래는 제 얼굴을 보고 돌아갈 예정이었다는데 애런 님이 모노크롬에서 탈출하고 난 뒤 악마의 아이가 이상하게 많이 생기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려는 모양이에요.”
애런이 모노크롬에서 탈출한 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수의 악마의 아이가 생겨났다.
악마의 아이 하나하나의 전투력은 별거 없었기에 쉽게 제압이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쉬이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저는 대충 그 이유를 알 것 같지만요.”
“네? 뭔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아일라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악마의 아이들의 전투력이 약해진 것은 애런 님의 몸에 마왕이 봉인되어있기 때문이겠죠. 거의 부활 직전이었던 마왕을 몸에 봉인했으니 봉인되지 않고 남은 마왕의 힘이 적어서 악마의 아이도 약한 것이죠.”
“아~ 그렇구나.”
“갑자기 많이 생긴 이유는 뻔하죠. 부활 직전의 마왕이 흩뿌린 마기가 모노크롬 곳곳에 퍼져 남아있는 거예요.”
그건 아일라도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사실 아일라 뿐만이 아니라 모노크롬에 있는 모두가 알지 못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고 몸은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느껴지고,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진다거나, 괜히 기분이 나쁘다던가.
각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기에 의해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는 것을 몸이 알렸다. 그리고 마기에 버티지 못한 아이들은 악마의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이유일 수도 있으니 백기사님이 와서 상황 파악을 하면 그 이후에 정화할 거예요.”
“오랜만에 성녀다운 일을 하겠네요. 요즈음에는 제가 악마의 아이 정화까지 했으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한 아일라의 말에 아일라를 보는 이자벨라는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그렇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성녀다운..?”
“왜, 왜 그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말에 화가 난 것 같은 이자벨라를 보며, 당황한 아일라는 말을 더듬었다.
“아일라 님은 모르겠죠. 제가 아일라 님과 같이 있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모노크롬을 돌아다니며 악마의 아이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아이들에게 천사에 대한 신앙심이 생기도록 천사에 대해 알리기,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평소 이자벨라가 혼자 있는 동안 하는 일들이다. 성녀로 모노크롬에 들어오고 나서 매일 하고 있는 것이라 습관적으로 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요…”
아일라는 이자벨라의 말을 듣고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한다.
“그거 성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 아닌가요?”
“...”
“그렇죠? 그러니까 성녀다운 일은 아닌 것 아닌가요?”
아일라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이었기에 이자벨라는 뭐라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생각이 들어 몰려오는 짜증을 누르며 말한다.
“아일라 님 말이 맞네요. 오랜만에 성녀다운 일을 하게 되겠네요.”
“맞죠? 저 덕에 요즈음 옆에서 구경만 하시고 놀고 사셨잖아요. 그렇죠?”
“...”
이자벨라는 성녀다운 미소를 잃지 않고 조용히 깝죽거리는 아일라의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