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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8화 (18/92)

〈 18화 〉 무법지대

* * *

모노크롬을 탈출한 애런은 계속해서 달렸다. 앙겔로크라티카에 숨어있으려고 해도 애런의 억눌러도 흘러나오는 마기에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몰려드는 성기사 때문에 있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계속 달렸더니 도착한 곳은 앙겔로크라티카, 오르도 왕국, 베네쿠스 세 국가를 나누는 주인 없는 넓은 땅, 무법지대였다.

햇빛이 들지 않는 이곳은 스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항상 회색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퀴퀴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곳이었다.

애런은 전장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에는 익숙했지만 다른 의미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이 곳에 발을 들이자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여기라면 더는 쫓아오는 사람은 없겠네.”

무법지대는 세 국가에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이들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된 곳이다. 범죄자들이 가득한 곳까지 성기사들이 따라오리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용사가 쫓겨서 이런 곳에 오게 되다니 재밌군.]

애런의 몸에 봉인된 마왕이 말했다. 이놈의 목소리가 봉인 후에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울려 애런은 자신의 몸에 봉인을 한 것을 잠깐 후회하기도 했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적응해버렸다.

“닥치고 있어.”

[역시 용사. 엄청난 정신력…]

가슴을 손으로 꾸욱 누르자 마왕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들리지 않게 된다.

“일단 앙겔로크라티카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곳에 있어야겠으니,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확인해봐야겠네.”

유령 도시처럼 관리를 받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로브를 두르고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하며 돌아다니는데 이는 범죄자인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러는 것이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 싶은 녀석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지만 그건 정말 소수의 사람이다.

퍽.

“아, 죄송합니다.”

애런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걷고 있자, 옆에 로브를 쓴 남자와 어깨가 부딪쳤다.

“무법지대에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인데, 안내가 필요하나?”

“아하.”

애런은 이 남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순식간에 이해했다.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무법지대에서 누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겠나? 애런이 만만해 보이니 뭐라도 뺏어보려는 속셈이겠지.

‘날 완전히 얕보고 있네.’

“네!”

딱 봐도 허접해 보이는 녀석이니 이용해야겠다 생각한 애런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그럼 따라와라.”

자욱한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점점 사람들이 없는 골목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남자는 애런의 앞에 우뚝 멈춰 섰다가 휙 몸을 돌려 애런 쪽으로 다가오는데 손에는 20cm 정도 길이의 단검이 있다.

애런이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지 천천히 웃으면서 걸어온다.

‘기습을 할 거면 빨리 달려들기라도 하던가. 뭐 하는 거야?’

“꼬맹아, 들고 있는 거 다 내놓고 꺼져라.”

“하아…”

로브를 쓰고 있을 때부터 삼류인 녀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허접했기에 애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위협이나 하려고 이런 골목으로 데리고 왔던 거야? 이건 뭐 때릴 기분도 안 드네.”

마왕이 애런의 몸에 봉인되면서 흡수된 마기로 몸이 강화된 애런이 뛰자 한 걸음 만에 남자의 코앞까지 다가 가졌다. 남자는 예상하지도 못한 애런의 빠른 몸놀림에 놀라서 단검을 휘두르려 하지만 애런에게 손목을 붙잡혀 저지당했다.

“아악..!”

조금만 힘을 줬을 뿐인데 인상을 팍 구기면서 단검을 땅에 떨어뜨린다.

“야, 아까 뭐라고 했지? 안내해준다고 하지 않았냐?”

“아, 안내해 줄게! 안내해드릴게요!”

“그래,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애런이 손목을 놔주자 손목을 만지며 남자는 곁눈질로 눈치를 살핀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다음에는 어디 하나 부러질 거다.”

“네, 네…”

남자는 자신보다 어리고 작은 애런의 기에 눌려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앞장서서 터덜터덜 걸으며 말한다.

“무법지대에는 알아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을 끄고 몇 가지만 알면 돼요.”

“들리도록 크게 말해.”

남자의 목소리는 개미가 말을 해도 이것보다는 클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답답한 애런은 발로 남자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겁을 먹은 남자는 몸을 움찔거렸다.

“일단 모든 의뢰는 길드를 통해서 받아야 해요. 의뢰는 대부분 근처에 있는 국가, 앙겔로크라티카, 오르도 왕국, 베네쿠스에서 오는 것들인데 덜 유명한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죠.”

“길드?”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무법지대를 활용하기 위해서 앞서 말했던 세 국가 중 한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허…”

어느 국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법지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국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애런의 기억으로는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자신의 탐구를 위해서라면 더러운 짓도 대놓고 했기 때문에 앙겔로크라티카나 오르도 왕국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다.

“길드에서 의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간단해요. 길드에 가입하고 의뢰를 받으면 돼요. 의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먼저 선택하는 사람이 임자인 의뢰와 누군가를 지목해서 맡기는 의뢰가 있죠.”

“그렇군. 길드로 안내해 봐.”

“네…”

길드는 무법지대 중앙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외곽에서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범죄자들의 악명이 더 높다고 했다. 그 말은 정말이었다.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길가에는 난도질을 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가 있었고, 이미 썩어서 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시체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놀라울 정도로 그런 자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남자가 안내해준 길드에 도착하니 왜 남자가 말했던 소문이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무법지대의 건물들은 모두 허름하고 어딘가 부서져 있거나 관리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길드의 건물만큼은 달랐다.

눈에 띈다. 앙겔로크라티카에서 봤던 건물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다. 무법지대에 있는 무너지기 직전인 것처럼 금이 가 있는 건물과 비교되어서 화려하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지만 충분히 공을 들여서 지은 건물 같다. 그리고 평소에 관리하는지 내부도 말끔하게 되어있었다.

“길드에 가입하려면 저기 놓여있는 종이를 작성하고 접수원에게 주면 돼요.”

“알겠어. 이제 필요없으니까 가라.”

“네, 네!”

애런의 말에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드 건물 밖으로 뛰어간다.

“저런 놈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기에 여기 있는 거야?”

[상대적인 거지. 어디 네 놈 앞에서 기가 안 죽는 녀석이…]

마왕이 또 말을 하려고 했기에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해 마왕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마왕답게 끈질기다고 생각하며 혀를 차는 애런.

“어디 보자…”

길드의 내부를 둘러보는 애런에게 여러 시선이 느껴진다. 성인도 아닌 어려 보이는 자가 로브를 쓰지 않고 길드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시선을 모을만했다.

“야, 거기 두리번거리는 신입. 무슨 배짱으로 로브도 안 쓰고 있냐? 자신 있냐?”

“잘생겼네… 누나랑 같이 놀러 갈래?”

“어허, 너같이 가슴이 말랑말랑한 녀석이 아닌 나처럼 단단한 근육을 가진 형을 좋아할 녀석이다.”

“말 좀 해봐. 어? 겁먹었어?”

남에게 관심을 끄면 된다더니 이 녀석들은 어떻게 된 녀석들이길래 이렇게 관심이 많은가. 애런은 속으로 길드로 안내해준 남자에게 욕을 하며 자신을 부르는 말을 무시했다.

[용사, 너한테는 저 거대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어울린다.]

“하아…”

아까 조용하게 만들었더니, 금방 떠드는 마왕 때문에 애런은 깊은 한숨을 쉬고 말한다.

“좀 닥치고 있어. 패배자 새끼가 왜 이리 말이 많아?”

애런이 마왕에게 중얼거린 한 마디에 아까까지 떠들썩하던 길드의 분위기가 얼음이라도 얼 것만 같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애런을 향하던 시선에는 이제 살기가 추가되었으며 옆에 있던 범죄자들은 사나운 살기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길드 밖으로 나갔다.

“이제 좀 조용하네.”

애런은 마왕을 입 다물게 하고 나서 길드에 가입하기 위해서 종이를 꺼내 든다. 애런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눈을 떼지 않는 범죄자들.

“하! 저 새끼 지금 우리보고 닥치라고 하고 길드 가입하려고 하는 거냐?”

애런에게 겁먹었냐고 도발을 하던 뼈만 앙상한 비쩍 마른 남자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서 애런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

자신의 했던 말이 다른 범죄자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는 애런은 왜 갑자기 내 머리를 노리는 것인지 생각하며 손으로 단검을 쳐냈다. 단검은 방향을 틀어서 벽에 푹 박혔다.

“그 정도는 한다 이거지?”

옷에 주렁주렁 달린 단검을 꺼내며 애런에게 달려드는 남자. 두 개의 단검을 애런의 눈을 노리고 던지고 자신은 자세를 낮추며 애런에게 달려들었다.

“뭔데?”

일단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듯하여 날아온 단검 두 개를 어렵지 않게 잡고 남자가 목을 노리며 휘두른 단검을 막아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할 수 있겠냐?”

“조금 전에 했던 말?”

애런은 조금 전에 마왕에게 한 말을 생각하며, 방어가 허술한 남자의 턱에 가차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별로 힘을 실어 차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공중에 붕 뜨더니 천장에 부딪하고 나서 땅에 고꾸라지며 정신을 잃었다.

“이제 좀 조용하네? 아, 정신을 잃어서 이제 못 듣는구나.”

남자가 던진 단검을 다시 품속에 넣어주고는 종이에 적힌 길드 가입을 위한 양식을 읽는다.

“야, 봤냐?”

“조금… 빠르네.”

“저게 조금 이었나?”

“닥치라고 할 실력은 있었나 보네…”

살기를 뿜어대던 범죄자들은 애런이 비쩍 마른 남자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는 살기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했다.

[길드 가입을 위한 설명서.

길드 가입을 하기 전에 유의해야 할 점.

1. 모든 의뢰는 길드를 통해 받아야한다.

2. 의뢰 내용에 대해서 외부인에게 발설해서는 아니 된다.

3. 의뢰를 받고 포기를 하는 경우 이후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

4. 의뢰 실패 시 길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5. 길드 가입 시 익명으로 가입이 가능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본인의 책임이다.

….

이름 : ]

그런 내용이 쭈욱 이어졌는데 별로 중요해보이지는 않았기에 애런은 나머지는 읽지 않았다. 가입을 위해서는 간단하게 이름만 기입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이름… 그냥 쓰면 되겠지.”

[이름 : 애런 ]

이름을 쓰고 접수원에게 갖다주자 중복된 이름이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가입이 끝이 났다. 너무 간단하지 않나 생각이 들다가도 이곳에 자세한 정보를 기재한다고 해도 좋은 것이 없는 곳임을 떠올리고는 그러려니 하고 의뢰가 붙어있는 게시판으로 향한다.

"많네."

게시판을 빼곡하게 채운 의뢰들은 그 내용도 다양했다. 동물을 찾아달라는 것과 귀족을 암살해달라는 의뢰까지 난이도가 극과 극을 달렸다.

"이게 지목해서 맡기는 의뢰인가."

의뢰로 가득찬 게시판 옆에는 또 의뢰로 가득 찬 게시판이 있다. 누구에게 의뢰를 하는 건가 싶어서 이름을 보니 대부분이 같은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그렇게 의뢰를 둘러보던 애런은 게시판에 있는 한 의뢰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지명 : 벨라 드 디바

내용 : 앙겔로크라티카의 모노크롬에 있는 도로시 마이어의 암살. 유의할 점으로 쌍둥이 언니와 헷갈리지 말 것.

기한 : 의뢰일로부터 3년 이내.

보수 : 금화 1000닢.]

도로시 마이어, 쌍둥이 언니와 헷갈리지 말 것. 누가 봐도 이자벨라의 쌍둥이 여동생의 목숨을 노리는 내용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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