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용사
* * *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왜 오빠가 악마의 아이가 되어야 했고 도망쳐야 하는 건지, 갑자기 성기사들을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오빠는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버렸다.
같이 있어 주기로 해놓고서… 혼자 두고 가지 않는다고 해놓고서… 약속을 어겼다.
곧 보러 온다고? 그게 언제인데. 좀 정확하게 말해주고 가면 어디 덧나나?
“... 아일라 님?”
머리만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있는 이자벨라는 멍하니 서서 애런이 뛰쳐나간 창문을 바라보는 아일라를 불렀다.
“네, 네?”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린 아일라는 방을 둘러보지만, 이자벨라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이자벨라를 찾는다.
“성녀님, 어디 계세요?”
꾸욱… 부드러운 무언가가 발에 밟혀 밑을 내려다보니 이자벨라의 잘린 머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히야악!?”
이자벨라를 발견하고는 급하게 발을 치우는 아일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이 갈 곳을 못 찾고 우왕좌왕한다.
“성녀님… 죄송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오빠가 목을 베었나 보네요…”
자신이 들은 목소리는 애런의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 들은 환청이라 생각하고, 죽은 것으로 보이는 이자벨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일라.
이자벨라의 얼굴에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진다. 애런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생각하며.
“나 계속 괴롭히는 나쁜 년이었지만 대화해보면 좋은 사람이었는데… 유일한 친구였는데…”
‘곤란하네요. 조금만 죽은 척하다가 살아있다고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이대로 더 있고 싶네요.’
이자벨라는 이대로 평소 아일라의 속마음을 조금만 더 듣고 싶지만, 아일라에게 발견되었을 때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슬슬 눈이 건조해지고 계속해서 뜨고 있기가 힘들다. 자신이 죽은 것을 본 아일라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서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
깜빡. 이자벨라는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어..?”
하지만 아일라의 눈에 바로 걸려버렸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죽은 척을 했다.
아일라는 손으로 눈을 비비며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내가 잘못 봤나?”
아일라는 이자벨라가 죽은 줄 알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눈을 깜빡이겠는가.
“성녀님한테 말해주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헤드릭이 그랬는데 모노크롬에는 성녀님이랑 저랑 오빠의 팬클럽이 있대요.”
아일라는 이자벨라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올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런데 성녀님 팬클럽 회원 수보다 제 팬클럽 회원 수가 많대요. 그걸 오빠한테 평범하다고, 나보다 조금 나은 소리 들었다고 우쭐대는 성녀님한테 말해주고 싶었는데…”
“푸흡…”
“??”
결국 이자벨라는 아일라의 하는 말을 듣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자벨라의 목소리를 들은 아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들어 쳐다봤다.
“으흐흐… 아, 죄송해요. 웃을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귀여운 소리를 하길래…”
“와아아아앗!?”
잘린 머리가 입을 움직이며 말을 하자, 깜짝 놀란 아일라는 이자벨라의 머리채를 잡고 멀리 던져버렸다.
퍽. 몸이 없어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 이자벨라는 강렬한 고통과 코에서 시뻘건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 이것도 제 잘못… 이지요.”
평소에 놀린 것 때문에 아일라가 일부러 던진 건 아닐까 싶어 하면서도, 자신이 친 장난에 놀라서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고통에 인상을 썼다.
“머리가 잘렸는데 말을 했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이자벨라의 머리를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손으로 툭툭 건드려보면서 말했다.
“어쩌다 보니 살아있네요. 제 머리를 몸에 붙여주겠어요?”
“네?! 네, 네...”
왜 머리가 잘렸는데 죽지 않은 것인가. 그런 의문보다도 이자벨라가 살아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일라가 머리를 들어서 거칠게 뜯긴 목에 붙여주자 뜯겨나간 자국이 있는 부분에서 자그마한 빛이 나며 서서히 붙어간다.
“근데 성녀님, 혹시 다 듣고 있었어요..?”
“네? 어떤 거요?”
“후우… 아니에요.”
정신을 잃은 상태였구나… 성녀님이 죽은 줄 알고 했던 말들을 들었으면 창피했을 거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일라를 보며 이자벨라는 말한다.
“나쁜 년이라고 하고 저보다 팬클럽 회원 수가 많으니 내가 너보다 예쁘다. 뭐, 이 정도밖에 못 들었어요.”
“다 들은거잖아요!”
이 사람은 항상 이렇다. 머리가 잘린 상황에서도 장난을 치려고 죽은 척을 하고 있던 거라니. 아일라는 이자벨라의 머리 속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목이 다 붙자 이자벨라는 고개를 한 번 돌려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마침 아일라가 불렀던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성녀님, 괜찮으십니까?”
성기사들은 방 안에 널브러진 성기사의 시체를 보고는 미간을 구긴다.
“아, 오셨군요. 악마의 아이는 정화하였지만… 이분들은 돌아가셨어요.”
“...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제 몸을 던져 막으신 것이니 천사님 곁으로 가셨을 겁니다…”
“네, 분명 천사님의 곁으로 가셨겠죠.”
아일라는 진심으로 슬퍼하는 성기사들 앞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이자벨라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애런이 한 짓임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뭐라 하지는 못했다.
이자벨라는 성기사의 시체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죄송합니다 모리스 님. 하지만 애런 님이 악마의 아이가 되었다는 것은 최대한 알려져서는 안 돼요… 도로시와 아일라 님을 위해서라도.’
성기사들은 기도가 끝난 동료의 시체들을 업고 방을 나갔다. 악마의 아이의 습격으로 엉망이 된 방의 정리도 해야 했기 때문에 이자벨라와 아일라는 밖으로 나왔다.
“일단 벤치에 앉아서 얘기라도…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니, 성녀님 옷을 보세요.”
새하얗던 옷이 이자벨라의 목이 뜯기며 흘렸던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있다. 그 때문에 지나가는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그럼 아일라 님의 방에 가서 얘기하도록 해요.”
*
“잘 썼어요.”
이자벨라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나왔다.
“제 옷 거기 놔뒀으니까 그거라도 입어요.”
“네.”
아일라가 입었을 때와는 다르게 가슴 부분이 헐렁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나면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 매번 제 방에 와서 초콜릿을 그렇게 먹어대는데 살이 안 찌나 싶었더니 가슴으로 가는 거였나요.’
“젖소.”
“네?”
“아니에요. 어쨌든 궁금한 게 많을 테죠. 뭐부터 얘기해볼까요?”
이자벨라는 아일라의 건너편에 앉아 다리를 꼬고 턱을 괸다. 무엇부터 말할지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덜 궁금할 것 같은 것부터 얘기해보죠. 애런 님이 성기사들을 죽인 이유에 대해서부터 시작하죠.”
아무 죄 없는 사람들, 거기다가 이자벨라와는 오랫동안 봐왔던 자들이었기에 그들을 죽이라고 말했던 이자벨라의 마음은 편하지 않아 목이 탔다.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한다.
“그건 제가 애런 님에게 죽이라고 시킨거예요.”
“왜요?”
“애런 님과 아일라 님을 위해서요. 애런 님 같은 경우는 악마의 아이가 되셨지만 쫓기지 않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숨겨야 해요. 그러니 저희를 제외한 사람, 그중에서 악마의 아이라는 것을 눈치챌 만한 성기사들은 죽이라고 한 거에요.”
“으음… 그럼 저를 위한 것이라는 뜻은요?”
아일라는 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봤자 결국은 남이다. 가족보다는 그들이 죽는 게 낫다고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애런 님이 악마의 아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동생인 아일라 님은 교황에게 끌려가서 애런 님을 불러내기 위한 인질이 되겠죠. 그런 협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이자벨라는 나쁜 기억이 있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다음으로 언제 애런 님이 돌아온다는 건지 궁금하겠죠?”
“네.”
“그건 2년 뒤에요. 왜냐고 묻는다면 그때 제가 성인이 되기 직전이거든요.”
“?”
아일라는 무슨 소리냐는 듯 이자벨라를 쳐다본다.
“제가 성인이 되면 모노크롬에서 뿐만이 아닌 대외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니, 그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19살이에요. 그때는 사람들도 많이 모이기 시작하고 그만큼 사람도 많이 필요하니 그때가 돌아오기에는 적기죠. 거기다 애런 님이 도와줘야 할 것도 있으니 그때까지는 돌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고 보니 성녀님은 저희보다 2살 많았죠.”
“뭔가요 그 표정.”
아일라는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눈동자를 살짝 내렸다.
“별 건 아니고 성장이 멈춘 것을 아쉬워하시는 것 같아서요.”
빠드득… 이자벨라가 이를 악물어 소리가 났다. 이마에는 핏줄이 섰고, 꽉 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다. 초승달처럼 웃고 있는 눈에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아니~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성녀님이 자꾸 텅 빈 자리를 너무 신경 쓰시잖아요. 그러니까 성녀님이 뭔가 귀여워서?”
처음으로 자신의 도발에 신경질을 내는 이자벨라를 보니 그동안 당해서 쌓였던 울분이 사라지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후우… 아일라 님? 애런 님이 왜 악마의 아이가 되었는지 듣고 싶지 않으신 건가요?”
“아… 치사하게 그런 것 가지고 협박하지는 말죠? 가슴이 작으니까 그만큼 속도 좁으신 건가요?”
“...”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자벨라가 대꾸도 못 하고 눈은 웃고 있지만 노려보는 짓 밖에 하지 못하다니, 이 승리감에 아일라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 네, 속이 좁아서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요. 방 정리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도 할 겸.”
“네?”
의자를 뒤로 확 밀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이자벨라를 아일라가 붙잡는다.
“아, 진짜. 미안해요. 타고난 거로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아니, 애초에 성녀님도 매번 저 놀리셨으면서 제가 조금 놀렸다고 이러기에요?”
그 말에 평소 아일라도 이런 기분이었다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이자벨라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확실히 제가 평소에 많이 놀리기는 했죠… 그럼 이어서 말하자면, 애런 님은 아마 아일라 님을 지키기 위해서 악마의 아이가 되셨을 거예요.”
“저를요..?”
“네, 제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봤던 걸 말해주자면 헬슨은 마기에 심하게 침식당했고 마왕이 부활하기 직전까지 갔어요.”
“마왕이 부활하기 직전까지…”
그렇다면 애런은 어떻게 부활 직전의 마왕을 상대한 것인가. 그만큼 강했나?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며 이자벨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헬슨은 아일라 님을 노리고 있었죠. 아무리 마왕이 부활하기 직전까지 가서 마왕이 몸을 조종했다지만 그 몸의 기억은 읽었을 테니 아일라 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겠죠.”
“그래서요?”
“자신이 당하면 분명 아일라 님을 노릴 것을 안 애런 님은 마왕을 막기 위해 천사님의 힘을 빌리려 했고, 부족한 신앙심을 채우기 위해 조건을 걸었을 거에요.”
“조건이요?”
아일라는 애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 조건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마왕을 몸에 봉인하는 것. 그 때문에 악마의 아이가 되었겠죠.”
“... 그런가요…”
“괜찮아요?”
표정이 어두워진 아일라의 어깨를 다독이며 걱정스레 물어본다.
“괜…찮아요.”
아일라는 자신이 헬슨을 때렸기 때문에 애런이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탓한다.
“잠시 혼자 있고 싶어요.”
“알겠어요. 힘들면 언제든지 제 방에 와요.”
“네, 고마워요…”
이자벨라는 방을 나서려다 생각난 것이 있는 듯 멈춰서서 휙 돌아본다.
“아일라 님.”
“네?”
“이건 제가 정신이 없을 때 들은 거라 확실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건데요.”
“네에.”
마왕이 뿜어대는 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마왕이 했던 말.
너, 나를 죽였던 용사로군? 모습은 바뀌었지만 느껴지는 검술은 비슷하군.
힘을 잃었나보군. 용사.
10살 때부터 성기사들 이상의 검술. 그리고 스스로가 전생의 용사였다고 하는 애런의 말.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한 가지를 가리킨다.
“애런 님은 정말 전생에 용사였을 수도 있어요.”
“... 네? 머리랑 몸이랑 분리가 되시더니 머리가 이상해지셨나?”
….
이자벨라가 방을 나가자 아일라는 애런이 쓰던 침대로 달려가 몸을 던진다.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나? 아니… 어차피 오빠 말대로 약한 나를 지키려다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었을 수도 있어.”
헬슨이 습격했을 때의 상황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약하니까, 방해니까 옆에 서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강해져야해. 옆에서 싸울 수 있을 정도… 아니, 다음에는 내가 오빠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아일라는 바라며 기도한다.
“천사님, 저에게 힘을 주세요. 오빠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설령 마왕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켜낼 수 있는 강한 힘을요.”
그리고 침대에 머리를 푹 박는다. 애런의 냄새가 나서 옆에 애런이 누워있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조금은 외로움이 덜해졌다.
“이제 한동안은 혼자겠네.”
어제만 해도 침대가 좁게 느껴졌지만, 혼자인 지금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혼자인데도 왜 이렇게 덥지...”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뒤척거리자 아일라의 몸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빛 때문에 방이 밝아졌다.
“이게 뭐야?”
천사는 아일라의 바람에 답해준 것이었다. 천사는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로서 아일라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용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