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15살, 사춘기
* * *
“뭐하지?”
오늘은 혼자 다니고 싶어서 오빠가 깨어나기 전에 몰래 방을 빠져나왔지만, 막상 나오고 나니 할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오빠와 수련하거나 성녀님을 따라다니며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고 방에 가서 수다나 떨면서 하루를 보내서 둘이 없으니 할 게 없다.
“쯧… 둘이 없다고 내가 아쉬워서 돌아가겠어? 내가 없다고 오빠랑 성녀님이 아쉬워해야지.”
생각 없이 모노크롬을 걷는다. 도중에 만나는 아이들이 검무의 아일라라며 알아봐 주길래 부끄럽지만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어느새 검무의 아일라라고 불리는 것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꼬르륵.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에 당황해서 누가 들었을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다.
오빠 몰래 나온다고 아침밥도 안 먹고 나와서 배가 고프다.
“식당… 가본 적은 없는데 한 번 가볼까.”
평소에는 오빠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성녀님의 전속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을 먹었기에 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겪어본 적 없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 당장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식당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하였다. 다들 서로 얘기하면서 밥을 먹는데 그 모습이 꽤 즐거워 보였다.
“뭐 먹지..?”
고민하다가 아침이지만 고기를 먹고 싶은 기분이었기에 찹스테이크를 받아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윽… 이거 뭐야?”
질겅질겅. 고기가 무슨 고무처럼 씹어도 씹어도 너무 질겨서 씹히지가 않는다. 거기다가 간은 너무 세게 되어있어서 짜다. 결국 잘 씹히지 않는 고기를 꿀꺽 억지로 삼켰다.
“오빠가 해줄때는 안 이랬는데…”
적당하게 익힌 고기에 싱겁지도, 짜지도 않게 간을 해서 먹기 좋았는데. 오빠가 해준 것과 너무 비교되어서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긴 채 식당을 나왔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식당을 나와서 학교에 가서 수업을 잠깐 듣고, 혼자서 운동을 하고, 평소 안 읽는 책도 읽어봤지만, 아직도 오후 2시다.
“하아아… 원래 이렇게 시간이 안 갔나?”
평소에는 눈 깜빡한 사이에 잘 시간이었는데 왜 혼자인 지금은 이렇게나 시간이 안 흘러가는 걸까.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멍하니 앉아있기를 30분.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아일라.”
듣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경박한 목소리다. 저 녀석은 변성기가 안 오나? 왜 아직도 저렇게 애새끼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생각하며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쯧.”
예상했던 녀석이다. 오르도 왕국의 사자왕의 아들 헤드릭 폰 오르도. 검무의 아일라라고 유명해지자 시비를 안 걸었는데 최근에 다시 나를 보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머리를 반으로 나눠놓은 가르마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회색 머리. 거기다가 오빠의 말대로 오크를 닮은 것 같은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게 화려하게 장식을 주렁주렁 단 옷을 입고 있다.
뒤에 있는 무리 때문에 자신감이 넘치는지 건들건들하며 다가오는 모습을 두드려 패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싶었다.
거기다 저 녀석은 운동도 안 하는 걸까? 오빠처럼 단련된 몸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몸은 유지하도록 노력해야지.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저 살들은 뭐란 말인가.
“오늘은 네 오빠랑 성녀님이랑 같이 안 다니는 모양이네.”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지?”
헤드릭은 실실 웃으며 내가 앉아있는 벤치에 털썩 앉는다.
왜 다른 곳도 많은데 하필 내 옆에 앉는 건지 짜증이 났다.
“가던 길 가라니까?”
“애초에 너 보러 온 거니까 여기 앉는 게 맞지 않겠냐?”
“하…”
갈 생각이 없어 보여서 내가 자리를 비키려고 했다.
턱. 일어서려고 하는데 내 팔을 잡는 헤드릭.
“놔.”
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째려보며 얘기하자 그것만으로 움찔거렸지만 놓지 않는다.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아…”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다시 벤치에 앉는다.
“뭔데?”
“음…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오르도 왕국의 사자왕 아들 헤드릭 폰 오르도잖아.”
내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한다. 그렇게 자신이 누군지 자랑하고 싶은걸까. 아버지의 명예가 자신의 명예인 줄 아는 멍청한 녀석이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오르도 왕국의 왕위 계승권 1위의 헤드릭 폰 오르도지. 동생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유력하지.”
뭐 어쩌라는 거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그냥 가면 안 되려나.
“그래서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
헤드릭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내 허락도 없이 손을 잡은 것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오르도 왕국을 다스리고 싶지 않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쨌든 빨리 손이나 놔줬으면 좋겠기에 내 손을 잡고 있는 헤드릭의 손을 뿌리친다.
“널 처음 봤던 건 앙겔로크라티카로 오는 기차에서였지. 난 그때 자고 있는 너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지. 뭐, 네 오빠가 감히 나를 막아서는 바람에 자세하게는 못 봤지만.”
으… 이딴 녀석에게 자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잘했어 오빠.
“그… 원래 어린 남자는 관심 있는 여자애를 괴롭히면서 관심을 표현한다. 그래서 모노크롬에 와서 너에게 시비를 많이 걸었었는데, 그건 사과할게. 미안하다.”
헤드릭은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이 자존심 강한 놈이 고개를 숙이다니 웬일이지?
“응.”
“그리고 네가 네 오빠와 검술 수련하는 모습을 봤었다.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검무의 아일라라고 불렀는데…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네.”
“네가 그렇게 처음 불렀냐?”
검무의 아일라… 대체 누가 그렇게 창피하게 부르나 싶었는데, 이 녀석이었구나. 그것 때문에 성녀님한테 툭하면 검무의 아일라 님~ 이라고 불려서 짜증 났는데. 아… 한 대 칠까 진짜. 그래도 이딴 놈이어도 왕자니까 치면 안 되겠지 생각하며 겨우 화를 참는다.
“어… 응. 마음에 안 들었나?”
“아, 됐어. 지나간 일이니까.”
“그래, 최근 들어서는 네 미모가 하루가 다르게 더 아름다워지더라.”
“어? 진짜?”
아름답다?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 건가? 어쨌든 듣기는 좋다.
“어, 어…”
“얼마만큼? 얼마만큼 이뻐? 성녀님보다는 이쁘려나?”
“음…”
뭘 고민하는 거야. 이게 고민해야 할 질문이었어? 빨리 대답해. 빨리!
“성녀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너만 하지는 못 하시지.”
“진짜? 진짜로?”
“진짜다.”
누가 귀여운 오징어고 누가 평범하다고? 역시 오빠 눈은 이상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지… 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판단하기는 이르지. 그치?”
“음? 객관적으로 누구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냐고 묻는 건가?”
“맞아.”
헤드릭은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부르더니 귓속말로 무언가를 말한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 남매는 학교를 잘 나오지 않으니 모르겠지만, 학교에는 너희 남매의 팬클럽이 있다. 성녀님과 같이 다녀서 유명해진 덕이지.”
“팬클럽?”
“너희 남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응.”
뭐 그런 게 다 있대..?
“어쨌든 방금 옆에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니 네 팬클럽 회원 수가 성녀님의 팬클럽 회원 수보다 많다고 하는군.”
“그으래애~?”
흠흠..! 이게 정상이지. 그 년… 아니 성녀님. 어쨌든 나보다 잘난 듯이 웃으며 토닥였는데 언젠가 그런 웃음을 못 짓게 해줄 테다.
“이야기가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니 나와 결혼하지 않겠나?”
“응..?”
결혼? 얘는 갑자기 뭔 소리하는 거야.
“저기 있잖아.”
“응, 왜 그러지?”
“나랑 대화해본 적 있어? 지금 빼면 없지 않나?”
“뭐… 그렇지.”
뭔데. 나랑 대화도 해본 적 없으면서 뭘 사랑하네. 결혼하지 않겠나 이러는 거야?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건 내 외모만 보고 그러는 거야?”
“아니, 네 모습은 지켜봤다. 네가 응석 부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소름 돋네.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게 이름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미안. 네 마음은 고마운데 나는 너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거든.”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려고 하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친다.
“네가 감히!!”
“깜짝이야. 나 귀 제대로 들리거든? 조용히 말해줄래?”
“내가… 헤드릭 폰 오르도가… 이렇게 숙이고 요청하는데도 감히 거절을 해?”
“아니, 싫으면 거절할 수도 있는 거지.”
“에잇! 듣기 싫다! 그렇다면 힘으로 너를 가지겠다.”
“네가 나를? 힘으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뚱돼지가 나를?
“헬슨! 아일라를 붙잡아라!”
“그럼 그렇지. 네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힘이겠지.”
“닥쳐라. 이것도 전부 내 힘이다.”
키가 나보다 머리 2개 정도 더 커 보이는 녀석이 목을 풀면서 앞으로 나온다. 오빠처럼 온몸에 근육이 잘 잡혀있는 걸 보니 몸의 단련을 하는 녀석인 것 같다.
“네가 검을 잘 쓰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검이 없다면 이 녀석의 상대가 될까?”
마치 자신이 잘난 것처럼 말하는데 그저 한심할 뿐이다. 타인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니.
“검무의 아일라… 많이 들어봤지. 하지만 이렇게 한 대만 때려도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여자였다니.”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은데.”
“하하하!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이군. 너 같은 년이어야 울면서 빌 때 더 흥분된다.”
말하는 게 저급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끼리끼리 뭉친다더니 저급한 녀석들끼리 모인 모양이다.
나보다 덩치가 좀 많이 크기는 하지만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고 다니면서 그동안 실력을 늘렸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다.
툭. 툭. 녀석은 제자리에서 살짝씩 뛰면서 공격할 타이밍을 살핀다. 머리 쪽에 빈틈이 보이기는 하는데 키 차이가 나는 것을 이용해 아래쪽만 방어할 생각인가보다.
뭐, 괜찮겠지. 이것도 다 경험이다. 마법은 쓰지 않고 이겨보자.
후욱!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먼저 헬슨이 주먹을 뻗는다. 느리고 느려터진 주먹이어서 생각할 시간이 많다. 리치가 나보다 긴 상대다. 뒤로 빠지는 것은 내 공격 기회를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옆으로 피하자.
그리고 빠르게 다가가 헬슨의 몸을 밟고 올라타서 헬슨의 팔을 잡고 그 상태로 트라이앵글 초크를 건다.
‘제대로 걸렸어.’
이대로 졸라서 기절을 시킬 생각이었으나.
“..?!”
어라? 기술은 분명 제대로 걸었는데, 내 몸이 붕 뜬다.
“크으으으아!!”
헬슨과 내 체격이 너무 차이가 나는 탓인지 나를 들어 올린 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려고 한다.
“그렇게는 안 되지..!”
최대한 몸을 뒤로 움직이며 무게 중심을 머리로 옮겨보지만, 힘으로 나를 들고 일어선다.
“이런 미친!”
“너무 가볍군.”
잘못 생각했다! 기술이 들어가면 체격이 차이 나더라도 충분히 제압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격차가 너무 컸다. 그리고 그 대가는 땅바닥에 몸이 패대기쳐지는 것이었다.
퍼억! 땅에 패대기 쳐지며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충격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는 계속 패대기쳐져 정신을 잃을 뿐이다.
헬슨이 다시 패대기를 치려는 순간 기술을 풀면서 그 순간에 턱에 발차기를 한 방 꽂아주고는 탈출한다. 아까 패대기 쳐져서 받은 충격 때문에 등이 욱신거리며 아프다.
“쿠흐… 푸르르르..!”
짐승처럼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내는 헬슨. 최대한 상처 없이 제압하려고 했는데 쓰러져주지 않으니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
“네가 자초한 거야.”
아까처럼 조르기 기술에 당하지 않으려는 듯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헬슨의 발차기를 미세한 차이로 피해 땅을 박차고 뛰어서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뒤 얼굴을 찬다. 헬슨의 두꺼운 목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고개가 휙 돌아간다.
“크윽..!”
확실히 피해를 입었는지 눈을 감으며 잠깐 흠칫거린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노릴 뿐. 발차기를 한 상태로 다시 한 바퀴 빙글 돌아 헬슨의 가슴에 니킥을 꽂아 넣는다.
뿌득! 헬슨의 갈비뼈가 부러지며 털썩 주저앉는다.
“음… 확실히 해두는 게 좋겠지?”
턱에 발차기를 맞고도 버텼던 놈이니까, 완전히 정신을 잃도록 무방비한 헬슨의 얼굴을 잡아 니킥을 한 방 더 먹여주고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다.
“야.”
나한테 시비 걸어놓고 옆에서 구경하던 헤드릭도 실컷 두드려 패주려고 했지만, 어느새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도망을 치고 있다.
“허… 도망치는 건 빠르네.”
그래도 사람을 패고 나니까 스트레스는 조금 풀린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오후 3시다.
“아아~ 시간이 너무 안 가…”
다시 벤치에 앉아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멍하니 있기를 30분. 그리고 이제는 패배를 인정하기로 한다. 오빠와 성녀님이 없으니 할 것도 없고 심심하다.
“둘은 뭐 하고 있는지 살짝만 볼까.”
절대로 내가 아쉬워서 가는 것이 아니다… 둘이 내가 없어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성녀님의 방을 엿보려고 슬금슬금 성기사에게 걸리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간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방안을 살펴본다.
“... 없네?”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러 가기라도 했나 생각하며 돌아가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 고마워요.”
그때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오빠와 성녀님이 보인다. 나는 숨을 죽이고 풀숲에 숨어서 둘이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
“후후, 저야 말로요.”
“그보다 성녀님은 생각보다 저랑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그 때문에 저도 조금 고민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무슨 얘기지..? 빼꼼 고개를 내밀어서 둘을 쳐다본다.
“어쨌든 오늘 제 억지에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아뇨, 매일 아일라랑 같이 다니느라 이럴 기회는 없었잖아요.”
“그렇긴 하죠. 이건 아까 제가 골랐던 선물이에요.”
“네, 이제 가볼게요.”
성녀님이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오빠에게 넘겨준다. 오빠는 상자를 받고 웃으면서 돌아간다. 대체 무슨 선물이 든 상자길래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뭐야..?”
나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숨을 죽이고 상황을 마저 지켜본다.
오빠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성녀님도 품속에 있는 포장된 상자를 보며 웃는다.
“애런이 준 선물… 하여튼 은근히 센스가 좋다니까요.”
그리고 멀리 걸어가고 있는 오빠를 쳐다본다.
“내가 준 선물은 좋아해 주려나?”
“...”
나는 넋이 나간 채로 풀숲에서 두 사람이 했던 말을 중얼거린다.
“애런이 준 선물..? 센스가 좋아?”
풀썩 자리에 주저앉는다.
“매일 아일라랑 같이 다니느라 이럴 기회가 없어?”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외출을 둘이서 하고… 선물을 사서 교환하고… 선물을 받고 좋아하고, 상대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아아… 둘은 그런 사이였구나.
“나만 모르고 매일 같이 붙어 다녀서 방해했구나…”
둘이서 다니고 싶은데 내가 방해였겠지. 눈치 없는 년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설마 어제 있었던 일이 나한테 눈치를 주는 거였나? 눈치를 줬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건가..?
“흐윽…”
눈물이 손등에 뚝뚝 떨어진다. 비참하다…
이 모노크롬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오빠와 친구에게 나는 그저 방해물이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방에 있는 성녀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죽이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으아앙… 흐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