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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1화 (11/92)

〈 11화 〉 15살, 사춘기

* * *

“천사님, 악마의 아이를 정화할 불을!”

화악! 아일라가 들고 있는 검에 주홍색의 불이 붙으며 팔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악마의 아이의 팔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린다.

“아아아..! 죽고 싶지 않아!”

“적어도 고통은 없이 보내줄게.”

아일라는 목검을 들고 있으면서도 살려달라며 울고 있는 악마의 아이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떨어진 머리와 몸은 불에 타서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이제는 신성 마법 사용도 익숙해지셨네요.”

"천사님에 대한 신앙심만 있으면 되니까 사용하기 좋은 것 같아요."

이자벨라는 죄를 짓지 않은 가엾은 악마의 아이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 능숙하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요. 뭐, 애런 님처럼 아예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통 없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이자벨라의 기준에서는 평범하지 않더라도 제 기준에는 평범한 것인 애런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린다.

“고작 욕 한 번 했다고 삐져서 안 들어주는 천사님 도움은 저도 필요 없네요.”

하늘을 쳐다보며 말한다. 애런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얼굴에 새똥이 툭 떨어진다.

“씨발.”

천사의 도움도 필요 없고, 이딴 식으로 엿을 먹이는 것도 싫었다. 이런 속 좁은 짓을 하니 더욱더 신앙심과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천사가 한 짓은 아니겠지만, 애런은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에 묻은 하얀 새똥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땅에 침을 뱉는 애런. 그걸 지켜보고 있던 아일라와 이자벨라는 쿡쿡 웃는다.

“오빠, 그렇게 말하니까 천사님이 안 들어주는 거잖아.”

애런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애런보다 잘하는 것이 생겨서 우쭐대는 표정으로 말하는 아일라. 요즈음 신성 마법 좀 잘 쓴다고 애런을 놀리는 데 재미가 들렸다.

“저런… 불쌍해요. 신성 마법은 물론이고 마법도 못 쓰니까 땀 흘리는 것 좀 봐요.”

거기다 추가로 이자벨라도 애런을 놀리는데 굳이 마법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놀림당하는 게 짜증 나서라도 마법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법을 쓰려고 해봐도 이 몸은 영 재능이 없어서 마법에 대해서 감도 안 잡힌다.

“자꾸 나 약 올리는데, 그러다 나도 악마의 아이 돼버린다?”

애런은 땀에 흥건하게 젖은 윗옷을 벗어서 어깨에 건다. 그러자 15살이라고는 보기 힘든 누가 조각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보기 좋게 갈라진 근육질의 몸에 이자벨라는 눈을 크게 뜬다.

“어머…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여자들을 홀리려고 안 쓰는 거였나요.”

“네? 뭔 소리예요.”

“저거 봐요.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이 다들 애런 님의 몸을 쳐다보잖아요.”

애런이 주위를 둘러보자 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본 적 없는 것처럼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여자아이들.

“아무도 안 보는데요. 애초에 몸이 좋으면 뭐 해요? 얼굴이 이런데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요.”

“이런… 자각을 못 하고 있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꽤 잘생긴 얼굴도 되셨는데, 여자들의 시선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나요?”

모노크롬에 오고 나서 5년이 지났다. 애런은 물론이고 아일라와 이자벨라도 전보다 더 성장했다.

애런은 음… 하고 생각한다. 시선을 느낀 적이야 있다. 하지만 이 얼굴이 잘생겼다고? 마치 말린 오징어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하지, 이 얼굴이 잘생겼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오징어 같은 얼굴이 어디가 잘생겼다는 거예요? 성녀님 눈높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눈이 엄청 낮으시네요.”

“진심이신가요? 그렇게 말해버리시면 모노크롬의 남자 대부분이 오징어가 돼버리는 건데요.”

“오징어요? 걔네들은 오징어도 아니고 오크처럼 생겼던데.”

애런은 모노크롬에서 5년간 봤던 남자들을 생각해본다. 도저히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못 나게 생겼나 감탄을 할 정도로 보기 힘들었다. 속으로 저 정도로 태어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오빠, 다른 사람이 평범한 거야… 오빠는 나름 잘생긴 편이라니까?”

“아일라, 너한테는 진짜 내 전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걸 봐야지 진짜 잘생긴 얼굴이 어떤지 알지.”

아일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5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저 소리를 하다니… 이자벨라에게 말하니 중2병이라고 하던데 왜 우리 오빠는 그 병이 낫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

전에 진지하게 이자벨라에게 오빠가 걸린 중2병을 치료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웃으면서 그건 못 고친다고 한 것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혹시 타고난 정신병 같은 건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자신이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어떤데? 나도 오빠랑 닮았으니까 오징어처럼 생겼어?”

이제 키 차이가 나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일라를 본다. 15살이 되고 나서 얼굴이나 몸이나 한껏 여자다워진 아일라였지만 애런의 눈에는 아직도 그저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아일라는 귀여운 오징어지.”

“뭐?! 지, 진짜로 여동생한테 오징어라고 했어요. 성녀님!!”

“그래도 귀엽다고 해주지 않았나요.”

이자벨라는 피식 웃으면서 아일라의 등을 토닥여줬지만 아일라는 발을 쿵쿵 구르며 성을 냈다.

“그럼 성녀님은? 성녀님도 오징어야?!”

아일라의 질문에 이자벨라는 눈을 얇게 뜨고 괜히 긴장했다. 저 정도로 눈이 높은 애런이라면 자신에게도 오징어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확실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오징어라고 하면 때릴 거에요.’

애런은 이자벨라를 빤히 쳐다봤다. 이자벨라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평범한 정도 아닌가?”

“후우…”

적어도 아일라처럼 오징어 소리는 듣지 않아서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평범… 평범하단 말이죠.’

안심한 것은 잠깐뿐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평소 자신감이 있었던 이자발라는 뒤늦게 평범이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오징어라고 해놓고 왜 성녀님한테는 평범하다고 해!! 빨리 나한테 사과해!!”

떽떽 소리치는 아일라 때문에 애런은 귀를 막았다. 그러자 팔에 매달려서 이리저리 흔들면서 짜증을 낸다.

“얘가 왜 이래? 아일라, 팔 빠지겠어.”

“빠지면 성녀님이 치료해주겠지..!”

그 순간 애런의 어깨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며 팔이 축 처지고 뇌가 찡하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몰려온다.

애런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 것은 꼴사납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꽉 물고 버텼다.

“어… 오빠, 미안.”

아일라는 미안해하며 조심스레 팔에서 떨어진다.

“괘, 괜찮은데? 아무렇지도 않아.”

“뭐라는 거야. 입술 꽉 물어서 피 나고 있거든? 땀도 엄청나게 흘리고 있으면서.”

“그런가요? 그럼 치료는 해드릴 필요 없겠네요.”

이자벨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악마의 아이도 정화했으니 돌아가자고 한다. 당연히 치료를 해줄 줄 알았던 아일라는 애런의 어깨와 이자벨라를 번갈아 본다.

“네..? 아니, 성녀님 오빠 어깨가…”

“괜찮다고 하는데 괜찮지 않을까요?”

“성녀님은 왜 화난 거예요? 평범하다고 했잖아요.”

이자벨라는 코웃음을 친다.

“저는 평범으로는 만족을 못 해서 말이에요.”

“아니… 오빠, 내가 다시 끼워볼게.”

우드득! 우드득! 아일라가 애런의 팔을 잡고 몇 번 끼워 맞추려고 할 때마다 소리가 난다. 애런은 그럴 때마다 나오려는 비명을 손을 물고 겨우 막았다.

“아, 아! 잠깐 아일라…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아일라가 잘 끼워지지 않는 어깨를 세게 돌린다. 우드드득!! 겨우 버티고 있던 애런에게 이때까지의 고통과는 수준이 다른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이 작렬한다.

“아아아아아악! 성녀님! 성녀님이 치료해줘요!”

“왜 도망가려고 해? 내가 해준다니까.”

더는 아일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가는 꼴사납게 쓰러지겠다고 생각한 애런은 이자벨라에게 가려고 했으나 아일라가 팔을 붙잡고 보내주지 않는다.

“아일라, 미안해. 사과할 테니까, 응?”

“아니, 왜 갑자기 사과한대?”

아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덜렁거리고 있는 애런의 팔을 잡는다.

“얼굴 창백해진 것 좀 봐. 내가 고쳐준다니까?”

“아일라… 예쁜 내 동생아, 잠깐 기다려봐.”

“갑자기 왜 또 칭찬이래? 그냥 가만히 있어.”

애런은 질색을 하며 아일라를 쳐다보지만 아일라는 전혀 악의가 없는 표정이다.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도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조금 아프다고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체념을 하려는 순간.

“하아… 아일라 님, 그만 괴롭혀요.”

이자벨라가 다가와서 치료를 해준다. 따뜻한 빛이 어깨를 감싸며 망가졌던 어깨가 정상적으로 되돌아간다. 그제야 애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 괴롭힌 거 아닌데요? 진짜 도와주려고 한 건데…”

“누가 봐도 애런 님을 괴롭히고 계셨잖아요. 땀 흘리는 것 좀 봐요.”

애런은 고통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어… 오빠, 내가 괴롭혔어?”

아일라는 억울하다는 듯 입꼬리를 내리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아니, 도와주려고 한 거잖아…”

“맞지? 봐요. 오빠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래요? 그럼 나머지는 아일라님한테 맡길게요.”

이자벨라는 손을 거두자 따뜻한 빛이 흩어지며 사라진다. 애런은 기겁을 하며 놀란다.

“성녀님?!”

“자, 내가 나머지는 고쳐줄게.”

혀로 입술을 핥으며 팔을 붙잡는 아일라를 보니 조금 전의 고통이 생각나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서 아일라를 뒤로 하고 허겁지겁 이자벨라에게 뛰어간다.

“이런… 아일라 님 어떡하죠? 애런 님은 어떻게든 저한테 치료를 받고 싶으신 모양인데요.”

얄궂게 웃는 이자벨라와 도망간 애런을 기가 막힌 표정으로 쳐다보는 아일라.

“하…”

‘도와주려고 했던거잖아. 괴롭힌 거 아니라며, 왜 도망치는데?’

모욕감에 솟구치는 짜증을 입을 꽉 다물어서 참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둘을 노려보며 걷는다.

*

“아일라.”

“...”

방에 돌아오고 애런이 턱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는 아일라에게 말을 걸어보고 있지만 아일라는 화가 났는지 눈도 전혀 안 마주쳐주고 대답도 안 해준다.

“세계에서 제일 예쁜 아일라 님?”

“누구 놀려?”

그렇게 칭찬을 해주며 말하자 못마땅한 듯 쏘아본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드래곤 스테이크.”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음… 그건 여기서 못 구하지 않을까?”

“....”

그러자 고개를 홱 돌려서 멍하니 밖을 쳐다본다. 애런은 처음 보는 여동생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 기운이 쭉 빠진다.

‘이게 사춘기인 건가….’

결국 대답을 듣지 못한 애런은 평소 아일라가 좋아했던 소고기 스테이크와 곁들일 버섯과 채소를 굽는다.

“자기한테서 도망친 것 때문에 화났나?”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면 애런도 섭섭할 것 같았다.

“하아… 그래봤자 얼마나 아팠다고 도망쳤지.”

전생에는 악마에게 팔이 뜯기는 고통도, 머리가 짓밟혀 터지는 고통도, 몸에 구멍이 생겨도, 불에 몸이 타는 고통도 전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견뎠다.

하지만 지금의 몸은 그런 게 안 되는지 너무나 아프다… 하지만 그걸 버티지 못한 몸을 탓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일라의 화를 풀어주려면 사과를 해야지.

“아일라, 밥 다 했어.”

“....”

조용하게 와서 의자에 앉아서 나이프로 능숙하게 소고기를 썰어서 애런에게 보란 듯이 푹! 찍는다. 육즙이 피처럼 그릇에 흐르고 눈동자만 살짝 들어서 애런을 노려본다.

“낮에는 미안했어. 너는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건데 도망쳐서 섭섭했지?”

“....”

애런의 말에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난 아일라는 화를 억누르며 지그시 어금니를 깨문다.

나는 오빠가 걱정되어서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는 건 뭐란 말인가. 거기다가 나 보란 듯이 웃는 성녀도 짜증 난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갔을 텐데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민감해졌나? 아니 그건 아닐 거다. 마법을 배우고 나서는 여름에는 마법을 써서 덥거나 습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럼 왜 이럴까? 사춘기라서 그런 건가? 음… 아무리 생각해도 사춘기라서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지금은 오빠도 성녀도 쳐다보고 싶지 않다.

원래라면 오빠가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얘기라도 하면서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다 먹은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무심하게 던져놓고는 이를 닦는다.

15살이 되면서 이제는 스스로 닦게 되었지만 가끔 어렸을 때처럼 오빠가 닦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조른 적이 있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고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

이를 닦으며 창밖을 쳐다본다. 모노크롬의 화려한 야경은 아직도 질리지 않고 예쁘다. 야경을 보니 밖을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내일은 혼자 다닐까.’

5년 동안 오빠랑 떨어져서 다녀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조금 떨어졌었던 게 수업을 들어보겠다고 며칠 동안 학교에 갔을 때뿐이다.

“퉤.”

입안에 있는 거품을 뱉자 거품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있다.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세게 이를 닦은 모양이다.

“아,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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