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마법
* * *
“요즈음 악마의 아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지 않아요?”
아일라의 질문에 이자벨라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 덕에 실전 경험을 잘 쌓고 계시잖아요. 좋은 것 아닌가요?”
“좋다니… 많은 아이가 죽는데 좋을 리가 없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멘탈 관리하는 방법이에요.”
“오… 그렇구나.”
이자벨라의 명령에 따라 악마의 아이를 정화하기 시작한 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200명도 넘는 악마의 아이를 정화했다. 하루에 한 명은 생긴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많이 생기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요.”
이자벨라는 빙글 돌아서 애런과 아일리를 바라보며 문제를 낸다.
“그럼, 여기서 문제에요. 악마의 아이가 많이 생기는 나이대가 어디일까요?”
“음… 이때까지 본 거로 생각하면 10대 중반 아닌가요?”
“네, 맞아요. 왜일까요?”
10대 중반. 사춘기가 생기는 나이이다. 이것과 악마의 아이가 관련이 있는 건가? 애런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자 아일라가 대답한다.
“사춘기 때문인가요?”
“네, 악마의 아이는 강한 욕망 때문에 생기는 저주에요. 감정의 변화가 크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는 사춘기는 저주에 걸릴 가능성이 크죠.”
“부정적인 생각… 그럼 날씨와도 관련이 있겠네요.”
이자벨라는 띵동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쳤다.
“정답이에요. 이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최근에 악마의 아이가 많이 생기는 거에요.”
이자벨라의 말대로 최근 날씨는 마치 찜통에 넣어놓은 것만 같다. 습도가 높고 기온까지 높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오는 지금은 없던 짜증도 날 것 같다.
“그런데 성녀님은 땀 한 방울도 안 흘리시네요.”
아일라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이자벨라를 본다. 온몸을 덮은 두꺼운 옷은 보기만 해도 갑갑할 것 같은데,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니는 이자벨라가 신기할 따름이다.
“저는 마법으로 시원하게 하고 다니고 있어요.”
“앗, 성녀님만 치사하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성녀가 날씨 때문에 짜증이라도 내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럼 저한테도 걸어주세요.”
이자벨라는 아일라를 쳐다보며 심술궂게 웃으며 대답한다.
“싫어요.”
“그럼 마법을 어떻게 쓰는지라도 알려줘요…”
“음... 그건 괜찮네요.”
그렇게 해서 애런과 아일라는 이자벨라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자리를 바꿨다.
애런은 전생에 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몸의 재능이 크다. 무영창으로 생각만 해도 원하는 마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마법의 이론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신성 마법부터 배워볼까요?”
“성녀님 방은 시원하네요.”
“지금 그게 신경…”
“어? 전에는 초콜릿이 있었는데 치웠어요? 안 보이네.”
방에 들어오자마자 딴짓을 하기에 바쁜 아일라 탓에 성녀인 이자벨라의 이마에 핏줄이 십자 모양으로 서는 것이 보인다.
“마법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었나요..?”
아일라는 푹신한 소파에 빠져서 늘어진 상태로 대답한다.
“성녀님 방이 시원해서 배울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아, 초콜릿 찾았다.”
그러면서 탁자 밑에 놓인 초콜릿이 든 바구니를 껴안고는 입에 초콜릿을 넣는 아일라를 보고 이자벨라는 주먹을 꽉 쥔다.
“애런 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왜 반년만에 사람이 달라진 건가요? 제가 알던 아일라 님은 저러지 않았어요.”
“저게 원래 제 동생 모습이에요. 성녀님하고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저러는 모양이네요.”
그러면서 아일라가 자신 외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긴 것에 기뻐하며 웃는 애런을 보고 기가 차서 한숨을 내쉬는 이자벨라.
“오빠 쪽이 문제였네요.”
“뭐가 문제인가요.”
“그렇게 동생 편만 들어주시며 키운 거겠죠? 그러니 아일라 님이 저렇게 된 거잖아요.”
애런의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니 마법보다 먼저 가르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자벨라.
심호흡을 몇 번 해서 흥분을 가라앉힌 뒤 의자에 앉는다.
“자, 두 분 다 집중해주세요.”
“네.”
아일라는 여전히 달콤한 초콜릿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하아… 이게 검무의 아일라 님의 본모습이라니.”
이자벨라에게 아일라의 인식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노력으로 넘어서는 사람이고 그 점을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일라는 제가 먼저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해놓고 말도 안 듣고 초콜릿이나 축내고 있는 게을러빠진 사람이었다. 그것에 이자벨라는 실망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안 부르기로 했잖아요..!”
“어쨌든 초콜릿 때문에 집중을 못 하는 모양이니 이건 압수예요.”
이자벨라가 초콜릿이 든 바구니를 가져가는 것을 아일라는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아… 내 초콜릿.”
“제 초콜릿이에요.”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일단…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제 동생은 이렇게 안 키운 저에게 감사부터 해야 할까요?”
“네?”
“저는 동생을 잘 키운 모양이에요. 아일라 님과는 다르게 가끔만 응석을 부리고 먼저 부탁을 하고 갑자기 필요 없다고 하지는 않거든요.”
“윽!”
정곡을 찔린 아일라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회피한다.
“그렇지만 이게 10살 다운 모습 아닐까요..?”
“네, 너무 10살 답네요.”
“음? 어, 칭찬인가요?”
아일라는 어리둥절해 하며 묻는다.
“칭찬 같나요?”
“... 아닌가요?”
“반어법이에요.”
“그렇구나.”
이자벨라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또 깊은 한숨을 내쉰다.
“기본적으로 애런 님에게 더 문제가 있어요. 얼마나 오냐오냐하며 키웠으면 아일라 님이 이런 애새끼가 되어있는 거죠?”
“애새..? 네?”
“말해보세요. 평소에 아일라 님과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요.”
“흠…”
애런은 팔짱을 끼고 아일라와 있을 때 평소 하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밥해주고, 먹여주고, 이 닦아주고, 칼싸움해 주고, 안아서 데려오고, 같이 자고… 뭐 평소에는 대략 이렇겠네요.”
이자벨라는 입을 벌리고 경악을 한다. 아일라는 말로 늘어놓고 보니 조금 창피해져서 얼굴을 붉히고 가만히 듣고 있다.
“세상에… 아일라 님이 아기도 아니고 손발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평범하지 않나요?”
평범? 어딜 봐서 평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자벨라는 기가 찬 표정으로 애런을 쳐다본다. 하지만 애런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뒷목을 긁을 뿐이다.
“아니, 그보다 같이 자는 건 무슨 소리예요? 다른 방에서 지내고 있는 거 아닌가요?”
“같은 방인데요?”
“네..? 왜 같은 방이죠?”
“그렇게 배정받았으니까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방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이자벨라. 밖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성기사와 대화를 하고 다시 돌아온다.
“배정에 오류가 있었나 보네요. 아무리 가족이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남녀를 한 방에 넣어둘 리가 없잖아요.”
“그런가요?”
“네… 나중에 관리하시는 분에게 말씀드려놓을 테니 한 분이 옮기시면 될 거예요.”
그 말에 아일라는 놀라서 초콜릿을 떨어뜨리고 눈을 크게 뜬다.
“아, 안 돼요. 성녀님. 저는 오빠랑 같은 방 써도 괜찮아요.”
“안 돼요. 이건 아일라 님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언제까지 그렇게 응석을 부리면서 살 수는 없어요.”
“모노크롬에 있는 동안 떨어질 일은 없는걸요…”
이자벨라는 말을 하려다가 잠깐 머뭇거렸다.
“그럼 만약 애런 님이 모노크롬에서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떡하실 거죠?”
“네? 떠날 리가 없잖아요…”
“확신하지 마세요.”
완강한 이자벨라의 태도에 위축된 아일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응석 안 부리면 되잖아요.”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조금은 떨어져서 지낼 줄도 알아야 해요.”
“왜 그렇게 못되게 구세요…”
아일라는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눈망울이 촉촉해지며 입꼬리가 밑으로 축 처진다.
그걸 본 이자벨라도 마음이 약해졌는지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은 항상 애런 님이 옆에 있을 수 있지만,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법이에요. 생각해봐요. 아일라 님 곁에 10년 동안 있던 부모님과도 지금은 떨어져 지내잖아요.”
“흐윽…”
겨우 잊고 지내던 부모님 생각이 나서 코를 훌쩍이는 아일라.
아일라의 훌쩍이는 소리에 마음이 편치 않아 초콜릿이 든 바구니를 슬쩍 밀어준다.
“저… 먹을 거로 기분 나아지고 그런 쉬운 사람 아니에요…”
“그런가요. 그래도 먹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할 얘기가 더 많은데.”
“흐아아앙! 오빠!! 성녀님이 나 괴롭혀!”
결국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런의 품에 안겨서 귀를 막아버리는 아일라.
“조금 너무하시지 않았나요?”
애런은 울고 있는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달래면서 말한다.
“죄송해요. 아일라님이 저랑 비슷한 처지여서 저도 모르게 과몰입해 버렸네요.”
이자벨라는 아일라를 보며 자신이 꿨던 꿈을 떠올렸다. 자신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아일라는 애런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헤어져야만 둘 다 살 수 있기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자벨라는 오빠에게 너무 의존하는 아일라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애런 님도… 조금이라도 동생이 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너무 응석을 받아주지는 마세요.”
“제가 너무 응석을 받아주고 있던 건 맞는데… 성녀님과 아일라의 대화를 들어보니, 마치 저와 아일라가 헤어지는 것처럼 얘기하시던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자벨라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껴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네, 이유는 있죠. 말씀은 못 드리지만요.”
“그런가요.”
애런은 전생에 자신이 봤던 성녀를 생각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초월했던 전 성녀는 마족으로부터 모든 인간을 지킬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였다.
아마 이자벨라도 성녀로서의 특별한 능력이 있을 테고 그 때문에 아일라를 걱정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그래도 성녀님.”
“네.”
“만약 저와 아일라가 헤어지게 되는 거라면 적어도 같은 방은 쓰게 해주세요.”
“왜죠?”
“같이 있는 동안이라도 더욱더 추억을 만들어두고 싶어서요. 헤어지고 나면 1초라도 더 같이 있을걸… 하고 후회할 것 같네요.”
이자벨라는 애런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을 한다.
“1초라도 더… 후회.”
그러면서 자신의 동생 생각을 하니 시야가 흐려져서 손으로 눈을 가린다.
“괜찮으세요?”
“아… 죄송해요. 네, 확실히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네요. 같이 지내도록 하세요.”
동생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언제더라. 이자벨라는 그런 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실에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을 떼야지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조만간 한 번 찾아가자고 다짐하고 촉촉해진 눈가를 닦는다.
“마법에 대해서 가르쳐드리려고 했는데, 이런 상태여서는 힘들겠네요.”
“네,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
울다가 지쳤는지 애런의 품에 안겨서 코 자고 있는 아일라를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일라 님한테는 죄송하다고, 사과의 뜻으로 내일은 더 맛있는 걸 내드릴 테니 꼭 와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애런은 자고 있는 아일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안고 방을 나갔다.
“애런처럼… 응석도 받아주고 친절하게 해주는 편이 도로시에게 좋았을까?”
애런과 아일라가 방을 나가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는 이자벨라.
“생각해보면 성녀가 되고 난 뒤로는 못 되게만 굴었던 것 같네.”
성녀답게 행동해야 한다며 응석을 부리는 도로시를 꾸짖었다. 놀자고 하는 동생을 바쁘다고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추억을 떠올려보려고 해도 도로시와의 추억은 대부분 성녀가 되기 전 아주 어렸을 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친한 척을 하면 싫어하려나..?”
이런 걱정이나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아직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했던 행동이 후회된다.
“솔직하게 사과하고 애런처럼 친하게… 아니, 역시 저 정도는 너무 과보호야.”
오늘따라 동생이 생각나서 동생이 선물해준 펙토랄레를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