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성녀
* * *
7살. 하늘에서 신성한 빛기둥과 함께 6장의 하얀 날개를 가진 이상적인 외모의 천사가 내려와서 이자벨라를 보고 성녀로 선택했을 때의 나이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행복했던 삶은 180도 바뀌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삶이 되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이자벨라가 아닌 성녀라고 부른다. 성녀의 위업을 말하며 자신을 칭송하는 광신도 같은 무리.
죽은 자를 되살려 주십시오. 마족을 멸하여 주십시오.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런 짓 나는 못 해… 나는 평범하다고…”
동화책에서 봤던, 이야기로 들었던 성녀와 자신은 동떨어져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를 해서 하늘에서 신성한 빛기둥 내려오게 하는 것. 그것 외에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마족을 멸하는 것도,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하지 못한다.
“성녀가 맞는 건가?”
“신성한 느낌은 나잖아.”
8살. 주변 사람들에게 성녀가 맞는 것인지 의심받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심적으로 부담을 받고 있던 이자벨라에게는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방에 박혀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을 했다.
천사에게 사람들이 행복하게 해달라며 기도를 한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씻고 나와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기도를 올리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점점 많은 사람이 웃으며 행복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은 점점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왜 성녀가 된 걸까? 나는 전혀 행복해지지 않는다. 성녀가 이런 것이라면 되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괴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생각도 했다. 방에 있던 거울을 깨뜨려 손목을 그었다.
“뭐야 이게…”
하지만 천사는 이자벨라가 죽는 것을 불허했다. 손목에서 흐르던 피는 금방 그쳤고 곧 상처가 아물었다.
죽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압박감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호위하고 있던 성기사들 몰래 방을 탈출해 도망쳤다.
“허억… 허억…”
얼굴을 가리고 마을로 도망쳤더니 그곳에는 자신을 호위하던 성기사들의 머리만이 걸려있었다.
성녀를 지키지 못한 죄.
그것이 그들이 죽은 이유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이자벨라는 제 발로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리고 며칠을 울었다. 기도를 올리는 것도 잊은 채 그저 울기만 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뭐지..?”
자고 일어나보니 분명 죽었던 성기사들이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착각했나 싶어서 호위하던 성기사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다.
“똑같아.”
죽었던 성기사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었다.
성기사들에게 목을 베어 죽었던 것을 말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던 적이 없다고 해서 되살아난 것은 아니라 확인했지만.
“그럼 뭐야?”
그렇다면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은 뭐였을까. 어쨌든 자신 때문에 성기사들이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자신의 미래를 들었던 성기사들은 목이 베어 죽어있었다.
*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는 건물.
“언니, 미안해.”
“도로시, 하지 말라고 했어!”
이자벨라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 도로시는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말리고 싶지만… 누군가가 몸을 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다.
“커흑..!”
하얀 옷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간다. 도로시는 눈물을 흘리면서 피가 묻은 입으로 미소를 짓는다.
“언니… 울지 마. 이걸로 언니도 행복해질 수 있어.”
“개소리하지 마! 네가 죽었는데 어떻게 행복해진다는 거야!”
도로시를 치료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살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도로시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누군가에게 짓눌리고 있어 움직일 수는 없다.
격한 몸부림에 무릎에서는 피부가 까져서 피가 나고 아프지만,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이제 언니는 유일한 성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로시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진다...
“안 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자 보이는 것은 평소와 같은 방. 이자벨라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내고 멍하니 앉아있다.
“꿈인 건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기억이었다. 성기사들의 죽는 것과 동생이 죽는 것. 모두 자신이 겪은 일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것을 다시 떠올린다. 도로시… 자신이 알고 있는 도로시보다는 키가 컸고 얼굴도 더 성숙했다.
“미래 예지?”
이자벨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조심스레 예상했다. 그렇다면 미래에 도로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천사가 이자벨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도록, 살아갈 의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성녀의 능력을 개화시킨 순간이었다.
미래 예지. 단편적으로 미래를 꿈으로 보여준다. 이자벨라의, 이자벨라를 위한 기적인 것이다.
*
10살의 아이들이 앙겔로크라티카에 도착하기 전 이자벨라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보이는 건 어느 전장에서 어깨에 역십자가의 흉터가 있는 악마의 아이가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하늘이 갈라지며 산이 갈라지고 마족들은 이등분이 되었다.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의 검은 마왕의 목 마저도 베어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로 보이는 아이를 모노크롬에서 발견했다.
그날 저녁. 또 꿈을 꾸었다.
역십자가의 흉터가 있는 그는 모노크롬에서 봤을 때보다 더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의 옆에는 성장한 이자벨라가 있고 그를 웃으며 보고 있다.
“아니… 저건 내가 아니야.”
이자벨라가 목에 차고 다니는 펙토랄레가 다르다. 쌍둥이 동생인 도로시였다.
정말로 짧은. 단 하나의 장면이었지만 이자벨라는 희망을 얻었다.
“도로시가 살 수 있는 미래.”
왜 악마의 아이와 도로시가 같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악마의 아이인 그와 함께 있다면 도로시는 살 수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도로시를 맡겨도 되는 사람인지 확인해 봐야겠어.”
이자벨라는 이제 꿈에서 깨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
꿈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캉!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애런의 찢어진 옷은 어깨에 있는 역십자가 형태의 흉터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애런과 검을 맞대고 있는 상대는 하얀 갑옷을 입은 이자벨라를 호위하는 중년의 성기사였다.
애런의 검이 성기사의 검을 튕겨내었고 무기를 잃은 성기사는 주먹으로 항전한다. 하지만 검을 잃은 성기사의 공격은 애런에게 위협적이지 않아서 금방 제압당한다.
“그만하시죠.”
성기사를 밟아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애런은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닥쳐라..! 감히 성녀님의 목을 베다니!”
땅에 쓰러져있는 성기사의 시선 끝에는 목이 잘려 나뒹굴고 있는 이자벨라의 머리가 보인다.
잘린 목으로 피가 다 빠져나가 얼굴은 창백하지만, 표정은 온화하다.
“그건 제가 벤 것이…”
쾅! 뒤늦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오빠!”
악마의 아이가 나타났다는 것을 아일라가 알려서 성기사를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애런에게 생긴 찰나의 틈.
노련한 성기사는 그 틈을 이용해 검을 줍고 애런의 다리를 베어냈다.
“죽어라, 죄를 지은 악마의 아이야.”
한 쪽 다리가 베어져 균형을 잃은 애런을 밀치고 일어난 성기사는 단칼에 애런의 목을 베었다.
툭.
“아…아아아!!”
절규하는 아일라가 보이며 꿈은 끝이 났다.
*
“애런 님, 살기 위해서 악마의 아이 정화를 같이 도우십시오.”
그리고 실력을 길러라. 그때가 오면 한낱 동정심으로 죽지 말아라. 상대를 배려하지 마라.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감정에 익숙해져라. 성기사와 친해져서 그들에게서 틈을 만들어라.
그래야지 당신이 살고 도로시도 살 수 있을 테니.
미래 예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들은 자들은 과분한 기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미래를 알게 되어 목이 베인 성기사들처럼.
그렇기에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자벨라는 속으로 믿어주기만을 바라며 애런과 아일라에게 간절하게 말한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네.’
말은 명령조지만 표정이나 목소리는 오히려 애원하는 것 같다. 애런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이자벨라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거절을 하지는 않는다.
아일라에게 실전 경험을 만들어 줄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더 실력을 쌓고 싶어 하는 동생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기에 기꺼이 이자벨라의 명령을 듣기는 하지만 영 찝찝한 기분이다.
“좋아요. 아일라, 너도 괜찮지? 나 말고 다른 상대가 필요했잖아.”
“응, 괜찮긴 한데. 그 불태우는 거는 조금 보기 힘든데.”
아일라는 조금 전에 악마의 아이를 태웠던 것이 생각났는지 눈살을 찌푸린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적응했으니 아일라 님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일라는 사람이 불타며 냈던 비명이, 냄새가 떠오른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성녀는 어떻게 적응했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성녀인 만큼 정신이 강한 건가?
“11시 24분이네요. 오늘도 체육관에서 수련을 하실 건가요?”
“수련?”
아일라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매일 수련을 하고 계신 것 아니었나요?”
“아니요. 그건 수련은 아니고 놀이인데요.”
“놀이라… 뭐 어떻게 부르냐의 차이겠죠. 오늘도 노실 예정인가요?”
놀이긴 한데 저렇게 말하니 뭔가 매일 뒹굴뒹굴하며 노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이 상한 아일라는 뚱한 표정으로 "아니요, 오늘은 쉴래요."라고 답한다.
그런 아일라를 보며 쿡쿡 웃는 게 분명 백수처럼 들리도록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것이리라.
‘성질 나쁜 성녀야.’
….
치익.
고기 굽는 냄새가 방 안에 퍼진다. 그 냄새에서도 낮에 맡았던 역한 냄새가 생각나서 식욕이 뚝 떨어졌다.
“오빠, 오늘 낮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고기를 잘만 먹네.”
오빠는 왜 이렇게 태연한 걸까. 아니지. 성녀님도 괜찮아 보였고 성기사님들도 괜찮아 보였으니 나만 신경 쓰는 건가?
아일라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뭐, 나는 옛날에 많이 맡았던 냄새니까.”
“무슨 소리야? 오빠가 그런 냄새를 맡을 일이 어딨었다고.”
“전쟁터에서.”
으… 최근에는 저런 소리를 안 했는데 또 저 소리다. 어렸을 때 자기가 전생에는 용사였느니 마왕의 목을 베었다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는데,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저런다.
저런 오빠지만 내 오빠니까 여동생인 자신이 이해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또 안 믿지?”
“아니, 믿는데~.”
“안 믿고 있네.”
평소라면 오빠가 나보고 더 먹으라며 고기를 더 줬겠지만, 오늘만큼은 고기를 남기고 오빠 그릇으로 넘겨준다. 샐러드만 먹으니 배가 허전하다.
“얘가 또 밥 먹고 누워있네.”
“내 맘이야.”
“또 그러고 있다가 자지 말고 이나 닦아.”
“으읍…”
누워있으니 오빠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서 입에 넣어준다. 자기 전에 닦으려고 했는데…
“안 닦을래. 오빠가 닦아줘.”
칫솔을 그냥 입에 물고만 있으니 오빠는 한숨을 쉬고 직접 칫솔로 닦아준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응석꾸러기가 되어있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탁을 들어준다. 옛날부터 오빠는 이랬다. 그 덕에 부모님한테는 부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성숙한 줄 알던데. 그냥 오빠가 다 들어줬을 뿐이랍니다~.’
“아, 맞다. 오늘 오빠 옆에서 자도 돼?”
“1인용 침대라서 불편할 텐데.”
“오늘 본 것 때문에 악몽 꿀 것 같아서 그러는데 안 돼?”
“네가 괜찮으면 그러든가.”
나는 내 침대 옆에 있는 오빠의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덮고 헤헤 웃는다.
정말 싫어할 수가 없는 오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