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성녀
* * *
“오빠, 어제 성녀님한테 욕한 건 좀 그렇지 않나?”
“지가 욕해달라는데 해줘야지.”
애런과 아일라는 오늘도 평소처럼 체육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제 홧김에 성녀한테 욕을 하고 성기사들이 잡으러 방으로 쳐들어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욕을 했으니 한동안 서로 안 마주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10시 5분.”
하지만 직접 찾아와버린 이자벨라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체육관 문 앞에는 은발과 어울리는 금빛 장식이 달린 순백의 옷을 입은 이자벨라가 서서 애런과 아일라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가 되면 있다고 들었는데, 5분 지각하셨네요.”
“성녀님.”
“네, 검무의 아일라 님.”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부끄러워하는 아일라를 보며 쿡쿡 웃는다. 어제 욕을 먹었던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벌을 주러 왔어요.”
“버, 벌..? 오빠, 그러니까 성녀님한테 욕하는 건 선 넘었다고 그랬지!”
“컥.”
아일라는 애런의 배를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이자벨라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저희 오빠가 멍청해서 그랬어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음… 안 되겠어요. 본인이 사과하지 않고 여동생이 대신 고개를 숙이는 게 하는 염치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가 없어요.”
‘신경 쓰고 있었구나… 하긴 성녀가 되고 나서 욕은 한 번도 안 먹어봤다 했으니 잊을 리가 없지.’
성녀면서 고작 손가락으로 욕한 걸로 쩨쩨하게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홧김에 욕했습니다.”
애런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지만 이자벨라는 그 정도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인다.
“성녀한테 욕을 했는데 고작 고개를 숙이는 거로 되겠습니까? 얼른 무릎을 꿇으세요.”
“지ㄹ…”
“오빠!”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을 아일라가 손으로 틀어막는다. 눈으로 빨리 무릎을 꿇으라고 눈치를 주는 아일라.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고작 욕한 걸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닥치고 꿇어 제발!”
퍽. 퍽. 어깨를 손으로 눌러도 애런이 꿋꿋하게 버티자 허벅지를 발로 찬다. 운동을 해서 근육이 붙은 아일라의 발차기는 이제 맞고 있으니까 아프다.
“아, 잠깐… 아일라, 아파.”
“자존심 때문에 일 크게 만들려는 오빠 때문에 내 마음이 더 아파!”
“자존심은 중요한 거야.”
애런은 전생에 마왕과 싸우면서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그런데 고작 욕 한 번 했다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10대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한다? 어림도 없다. 절대 들을 생각 없다.
“오빠가 버텨서 성녀님이 오빠 죽이라고 하면 어떡할 건데? 죽는 건 싫다고 그랬잖아.”
“아니… 고작 욕한 걸로 죽이지는 않아.”
“당장 무릎 꿇지 않으신다면 천사님에게 욕했던 것도 포함해서 교황님에게 알려 신성모독으로 극형에 처해달라고 요청하겠어요.”
“오빠, 빨리..!”
아일라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애런의 마음도 흔들린다.
“알겠어…”
하는 수 없이 무릎을 꿇기 위해 한쪽 무릎을 땅에 대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이자벨라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을 정도로 좋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무릎은 꿇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벌을 주는 대상은 애런 님이 아니에요.”
“네? 그럼 오빠는 괜찮은 거에요?”
아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아일라 님이 착각하고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장난 좀 쳐본 거에요.”
“거짓말하지 마십쇼. 중간부터는 제가 맞는 모습을 즐기고 계시던데.”
“확실히 맞는 모습을 보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얄밉게 웃는 이자벨라. 애런은 이자벨라의 얼굴을 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그, 그럼 괜히 때린 거네? 미안해 오빠…”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팠어.”
“맞을 때 표정은 그렇지 않던데요?”
“거 헛소리하지 마시고 온 이유나 말해요.”
아일라에게 맞았던 허벅지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말했다.
“말했다시피 벌을 주러 왔어요.”
“그러니까 누구한테요.”
“악마의 아이.”
역십자가의 흉터가 생긴 죽은 마왕이 부활할 그릇. 흉터가 생긴 것만으로도 마기에 정신이 침식당해 부정적인 감정이 극대화되고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자벨라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악마의 아이가 된 것은 18세의 남자로 성기사 지망생이었다고 한다. 실력이 영 늘지 않자 주변과 다툼이 잦았는데 흉터가 생기며 넘으면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피해자들은 총 12명으로 목검으로 머리를 맞아 죽은 자가 7명. 나머지 5명은 뼈가 부러진 정도로 끝이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저희를 찾아오신 거죠?”
“모노크롬에서 유명한 당신들의 실력도 보고, 악마의 아이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싶어서요.”
이자벨라를 따라서 온 곳은 북쪽에 있는 체육관이었다. 성기사들이 문을 잠그고 그 앞을 지키고 있다.
“별일 없었나요?”
“네, 악마의 아이는 그대로 체육관 안에 있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성녀님. 저희가 처리하면 될 일인데 굳이 이 어린아이들에게 악마의 아이 상대를 맡기셔야겠습니까?”
중년의 성기사는 집에 있는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애런과 아일라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모노크롬에서 저 다음으로 유명한 검무의 아일라와 그 오빠라고요? 성기사 지망생이었던 자에게는 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저희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문에 걸린 거대한 자물쇠를 풀고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연다.
“여기요.”
이자벨라는 미리 준비해둔 목검을 애런과 아일라에게 건네준다.
“자신 없으면 성기사님들을 불러주세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문이 열리고 체육관 중앙에 피가 묻은 목검을 들고 서 있는 남성이 보인다. 중앙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환생한 몸으로 처음 경험하는 마기에 소름이 돋는다.
“아일라,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가볼게.”
“응.”
애런이 목검을 휙휙 휘두르며 다가오는 걸 보고 있던 악마의 아이가 눈을 부라린다.
“목검… 너도 나 무시하냐? 내가 요즈음 실력이 안 늘었다고… 나보다 한참 어린놈이 나한테 검으로 덤비는 거야?”
“말 되게 많네.”
“죽고 싶구나!”
마기로 몸이 강화된 악마의 아이는 한 번의 도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애런에게 다가온다.
딱!!
하지만 일직선으로 정직하게 오는 공격은 대처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막아낸다.
그렇지만 힘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악마의 아이가 힘을 줘서 목검을 휘두르니 그 충격이 전해져 손이 얼얼해진다.
“힘으로 밀어붙여? 역시 검술에는 자신이 없나 보네.”
“닥쳐!”
내려찍는 검을 오른쪽으로 흘려내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목을 찌른다.
“커억..!”
왼손으로 목을 움켜잡아 오른손으로만 목검을 들고 있어 왼쪽의 방어가 비었다. 이 틈을 놓칠 리가 없는 애런은 왼쪽 옆구리에 발차기를 꽂아 넣는다.
뻐억!!
“내가… 우스워?”
왼팔로 발차기를 막았다. 고통으로 시야가 좁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스운데.”
부웅! 크게 휘두른 검을 한 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막아내지만, 그것으로 공격은 끝나지 않는다.
검과 맞닿은 상태에서 목검이 유연하게 휘는 것 같은 공격이 이어진다.
페인트, 찌르기, 손목 베기. 다양하게 이어지는 공격에 당황하는 악마의 아이는 방어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리고 공격으로 전환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내버려 두지.”
마기로 강화된 신체를 따라오는 애런. 공격을 위해 검을 들어 올린 빈틈을 놓치지 않고 목을 친다.
“커헉!”
그러면서도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힘 조절을 했다. 악마의 아이를 정화… 죽이는 것은 애런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런과 악마의 아이의 전투를 지켜보던 성기사들은 10살이라고 믿을 수 없는 실력에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하고 있다.
“저게 10살짜리라고?”
“야, 너 저 꼬마랑 싸우면 이길 수 있겠냐?”
“솔직히 모르겠다…”
이자벨라도 상상 이상의 실력에 멍하니 애런을 보고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성기사들에게 악마의 아이의 구속을 부탁했다.
“나도 할 수 있었는데.”
아일라는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은 것이 불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최근 애런에게는 완패만 하고 있어 실력이 늘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는데 마침 시험해보기 좋아 보이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위험한 녀석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
사실 애런은 악마의 아이 실력을 대충 가늠하다 아일라가 상대해도 괜찮겠다 싶으면 경험도 쌓을 겸 넘겨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10살 애런의 몸은 마기로 강화된 악마의 아이의 공격을 몇 번 막은 것만으로도 삐걱거렸기에 전력으로 최대한 빨리 밟아버렸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과 어깨에 드는 얼얼한 느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애런 님, 아일라 님.”
이자벨라는 구속되어 땅바닥에 엎드리고 있는 악마의 아이 앞에 서서 둘을 바라본다.
이제껏 봐왔던 이자벨라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지금 눈앞에 서있는 이자벨라는 진지하고 신성했다.
“악마의 아이는 정화의 불꽃으로 정화한다고 했죠.”
“네.”
“죄를 저질러버린 경우에는 신성 마법으로 만들어낸 불꽃이 아닌, 진짜 불을 이용합니다.”
“네.”
“아무렇지도 않나요?”
아일라는 신성 마법으로 만든 불꽃이나 진짜 불이나 뭐가 다른 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애런은 전생의 기억으로 무슨 차이인지 알고 있어서 얼굴을 찌푸린다.
신성 마법으로 만든 불꽃은 친절한 불꽃이다. 몸을 태우는 불이지만 몸에 닿으면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고 몸이 타고 있는지 모르게 태우지만, 진짜 불은 그렇지 않다.
자비라고는 하나도 없는 불은 살을 태우는 극한의 고통을 주면서 자신의 몸이 타는 냄새를 맡게 하며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럽게 한다.
“저 녀석, 고통도 느끼고 자아도 있는 것 같았는데요.”
“네, 그렇기에 더욱더 진짜 불로 태워야만 하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저는 천사님들을 대신해 죄를 지은 악마의 아이를 벌하러 온 성녀 이자벨라 마이어입니다.”
힘이 담긴 눈과 목소리는 이자벨라의 의지를 잘 드러내었다.
“벌이란 죄를 저지른 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악마의 아이가 된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한 것은 명명백백한 죄입니다.”
“그렇긴 하죠.”
“그렇다면 보고 계십시오. 악마의 유혹에 빠져 죄를 저지른 죄인의 최후를. 그를 벌하는 저를 말입니다.”
이자벨라는 또박또박 영창을 하기 시작한다.
“Viwolu tou tairk owoloc.”
신앙심을 기반으로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 아닌 마나를 이용한 마법.
작은 불꽃이 날아가서 악마의 아이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이 되었다.
“끅! 끄아아아악!!”
체육관에 비명이 울려 퍼진다. 아일라는 애런의 뒤에 숨어 시선을 돌리고 귀를 막는다. 살이 타는 냄새는 손으로 막지 못 해서 애런의 등에 코를 박아 최대한 다른 냄새를 맡으려 했다. 애런도 이 광경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시선을 돌리지도, 귀를 막지도, 코를 막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악마의 아이가 불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에 익숙해질 즈음에 악마의 아이는 기관지가 익어서 죽었는지 더는 비명이 들리지 않게 된다.
“끝났습니다.”
새까맣게 탄 시체를 내려다보며 이자벨라는 말했다.
“뒤처리는 부탁드려요.”
“맡겨주십시오.”
성기사들에게 시체의 처리를 맡기고 이자벨라는 체육관을 나왔다. 애런과 아일라도 그 뒤를 따랐다.
“우욱…”
아일라는 밖에 나오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며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어떻습니까?”
“어떻고 자시고 아일라한테 보여줄 만한 것은 아니었네요.”
“하지만 익숙해져야 합니다. 모노크롬에서는 흔한 일이니까요.”
“사람을 산 채로 태우는 짓에 익숙해지라고요?”
애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자벨라는 쓴웃음을 짓는다.
“네, 악마의 아이라고 부르지만, 아직 사람인 자를 고통스럽게 불에 태워죽이는 과정에 익숙해져 사람을 죽이는데 머뭇거림이 없어야 합니다.”
“왜죠? 흔한 일이라고 해도 주변에 아이들은 아무도 없던데. 아이들이 못 보도록 하는 짓 아닌가요?”
다른 아이들은 못 보게 했으면서 왜 우리들은 보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인가. 애런은 이자벨라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해줄 생각은 없는지 이자벨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래야지 살 수 있을 테니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