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6화 (6/92)

〈 6화 〉 성녀

* * *

“성녀님 방은 다르네요.”

아일라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본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같은 숙소에서 지내지만, 성녀는 따로 떨어진 곳에서 성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성녀니까요. 아, 거기 있는 건 먹어도 돼요.”

이자벨라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초콜릿을 입에 넣는다.

“그래서 자리까지 옮겨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요?”

“말했잖아요. 그냥 애런 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대화를 하고 싶은거에요.”

“이거 맛있다.”

아일라는 조심스레 초콜릿 한 조각을 먹더니 입에 털어 넣는 수준으로 먹기 시작했다.

“후훗. 초콜릿을 좋아하나 보네요.”

“네, 단 거는 다 좋아해요.”

“나이 차가 나지 않는 동생이라면서요?”

애런에게도 초콜릿을 하나 내밀길래 공손히 받아서 입에 넣는다. 달콤함 뒤에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퍼져 자꾸 손이 가는 맛이었다.

“어쩌다 보니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그래도 오빠라고 불러주기는 하지만요.”

“그래요? 저도 나이 차이가 안 나는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착하게도 언니라고 불러주더라고요.”

목에 걸고 있는 펙토랄레를 만지작거리며 동생 생각이 나는지 미소를 짓는다.

“이 펙토랄레도 동생이 선물해준 거예요. 돈도 없으면서 저한테 주는 거라며 꽤 좋은 거로 샀더라고요.”

“오빠도 목걸이 선물해줬는데 똑같네요.”

아일라는 입에 초콜릿을 가득 넣은 채로 애런에게 선물 받았던 목걸이를 꺼내서 이자벨라에게 보여준다.

“예쁜 목걸이네요. 동생을 많이 아끼나 봐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당연… 음.”

애런의 대답에 이자벨라는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손으로 어루만진다. 분위기가 꽤 어두워져서 애런은 말실수를 한 건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일라도 달라진 분위기에 입에 넣으려던 초콜릿을 내려놓고 눈치를 본다.

“아, 미안해요. 제가 불러놓고 혼자 생각에 빠졌었네요.”

눈치를 보는 아일라에게 초콜릿이 든 바구니를 밀어주고 눈웃음을 지으며 괜찮으니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잠깐 제가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했거든요.”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 애런 님처럼 동생을 진심으로 아끼는 것인지… 다른 이유로 아끼는 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동생을 아끼는 모양이에요.”

이자벨라의 말은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자꾸만 신경이 쓰이게 하는 말이었다.

“다른 이유로 동생을 아끼는 척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요?”

“흐음…”

애런의 눈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직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네.’

이자벨라는 애런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린다. 성녀라고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아닌 무심했던 그 눈빛.

기도하고 있는데 하늘에 손가락으로 욕을 날리는 것. 그것으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흥미를 느낀 것과 신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자벨라는 아직 애런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정도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전부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조금만 알려드릴게요.”

초콜릿을 먹던 아일라도 이자벨라의 말에 집중하듯 몸을 이자벨라 쪽으로 살짝 기울인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옛날로 돌아가야겠네요. 저랑 도로시. 아, 도로시는 제 동생 이름이에요.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뜻인데, 정말 이름대로 도로시가 태어나고 우리 집은 행복했어요.”

옛날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 이자벨라.

“제 동생은 어렸을 적부터 착했어요. 갖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가난한 집안을 생각해서 갖고 싶은 척도 하지 않고. 마을 사람에게 선물이라도 받으면 가족과 나누는 그런 착한 아이였어요.”

마치 아일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은 비슷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건이 생겼죠. 나눠 갖는다고 좋은 것이 아닌 누군가가 홀로 가져야지만 그 가치를 다하는 것이 생긴 거예요.”

잠깐이지만 눈살을 찌푸렸다가 계속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저희 자매의 일에 끼어들기 시작했죠. 네가 언니니까 양보해라. 네가 동생이니까 양보해라. 한 시간도 차이 나지 않는 시간으로 나누어진 언니, 동생 타령을 하며 양보하라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죠.”

인자했던 이자벨라는 화가 나는지 입술을 꽉 깨물다가 고개를 돌려 애런을 쳐다보며 묻는다.

“만약 애런 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건가요?”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에 질문이 와서 애런은 당황했지만,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저라면 홀로 가져야지만 제대로 된 가치가 생기는 것이라면 아일라한테 양보하겠네요. 괜히 어중간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 둘 다 손해니까요.”

애런의 대답에 이자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중간한 것… 그렇죠. 제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 좋겠죠. 하지만 그게 쉽게 양도를 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예를 들어 죽지 않는다면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떡하실 건가요?”

“죽지 않는다면 줄 수 없는 것…”

이번에는 애런도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고 머리에 당을 충전하고 생각하다가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일라, 너는 오빠가 죽으면 슬퍼할 거야?”

“그걸 물어봐야지 알아? 당연히 슬퍼하겠지.”

“그렇다네요. 그럼 굳이 양보하지는 않으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애런과 아일라를 번갈아 보는 이자벨라.

“그렇군요. 하지만 주변에 있는 타인이 그것의 가치를 노리며 뺏어오려고 한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오빠가 죽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당연히 막으려고 할거예요.”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만약… 만약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자가 노린다면요?”

“막을 수 없다면 같이 도망칠 뿐이에요.”

아일라의 대답을 듣고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또 생각에 빠지는 이자벨라는 혼잣말을 한다.

“도망… 가능한가? 아니, 도망쳐도 되는 건가..?”

“성녀님?”

“미안해요.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줄래요?”

“네에…”

이자벨라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입에 초콜릿을 집어넣고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꽤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했다.

“... 안 되겠네.”

한숨을 푹 쉬고는 말한다.

“아, 다른 소리이긴 한데 초콜릿에서 나는 삽싸름한 맛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달콤하기만 한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달콤한 것도 좋지만 끝에 남는 쌉싸름한 맛 때문에 더 손이 가서 좋다고 생각해요. 달콤하기만 한 초콜릿은 금방 물릴 것 같거든요.”

“그런가요? 당신들과는 의견이 항상 엇갈리네요.”

이자벨라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아일라를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애런 님이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못 해드렸네요. 동생을 아끼는 척을 했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셨죠?”

애런은 고개를 끄덕인다.

“별거 아니에요. 저와 대화하면서 느끼셨겠지만, 저랑 동생은 어중간한 것을 나눠 가지고 있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그것이 제 가치를 다하기를 바라고요.”

“누군가가 죽어야지 양도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네, 애런 님과 아일라 님과는 다르게 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완전한 것이 갖고 싶었어요. 성녀로 선택받았으면서…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되는데. 하실래요?”

이자벨라는 자신을 욕해주기를 바란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애런은 고개를 저었다. 왠지 욕을 하면 남에게 이용당한 기분일 것 같고 아직 욕을 할 정도도 아니었다.

“아쉽네요. 스스로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누군가가 욕을 해줬으면 하는데… 이 성녀라는 것 때문인지 아무도 욕을 해주지는 않네요.”

“욕이 먹고 싶으면 동생한테 해달라고하시면 되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실컷 욕해주겠는데요.”

“욕은 안 하셔도 마음은 아프게 해주시네요. 고마워요 하지만 동생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 아이는 착하니까… 제가 솔직하게 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으니까요.”

착하다고는 들었지만, 오히려 그 정도면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아니, 나도 아일라가 죽어달라고 하면 진짜 죽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자신도 똑같음을 깨달은 애런은 여동생 사랑이 과한 것 같다며 조금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동생이 죽어주길 바라서 동생을 아끼는 척하면서 언니를 위한 사랑으로 죽어주길 바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생에게 죽어달라고 직접 말은 못 하니 아끼고 있다고 생각한 건가요?”

“네, 맞아요.”

“쓰읍…”

이자벨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직접 죽어달라고 말하는 것을 꺼린다고 그것이 동생을 아끼는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꺼리는 이유는 동생이 죽기를 바라지 않아서가 아닌, 동생이 죽도록 직접적으로 관여해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림짐작일 수도 있다. 이자벨라가 정말로 도로시를 아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애런은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성녀님.”

“네.”

“정말로 동생을 아껴서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서 말을 하지 않는 건 아닌가요?”

애런의 말에 이자벨라는 기분이 나빴는지 눈살을 찌푸린다.

“불쾌하네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진정 동생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지.”

“무례합니다.”

“뭐, 남의 가정사에 너무 참견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웬만하면 동생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사과하세요. 그럴 염치가 있다면 말이죠.”

이자벨라는 눈을 부릅뜨고 애런을 노려본다.

“가자, 아일라.”

“어, 응…”

애런은 이자벨라의 시선을 무시하고 아일라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선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욕은 안 하려고 했는데 해야겠습니다. 괜히 선한 척하지 마시고 엿이나 드시고 정신 차리십시오.”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성녀를 모욕하고 제 갈 길을 간다. 벙찐 표정으로 애런의 손가락을 보다가 저게 욕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하하하…”

욕을 먹었지만 불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누군가가 추악한 자신의 마음을 욕해주기를 바랐던 이자벨라는 성녀답지 않게 크게 소리 내서 웃는다.

“아아… 시험해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드네요.”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넣는다.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단 것이 당긴다.

“살면서 저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났다는 것에 천사… 아니, 운명이었겠지요.”

이자벨라는 성녀를, 천사를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하는 애런의 심성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서 대화를 했다.

동생을 아끼는 모습. 성녀인 자신에게도 쓴소리를 거리낌 없이 하는 모습. 천사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심성은 착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를 시험해보기 위해 일부러 마음에 있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 동생이 죽기를 바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자벨라는 자신의 동생을 아주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애런과 마찬가지로 동생이 슬퍼할 것이기에 하지 않는 것이다.

“막을 수 없다면 도망을 친다고 했죠… 애런, 아쉽게도 저는 도망을 칠 수는 없겠네요. 사로잡힌 것들이 많아서 말이에요.”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성녀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개 같은 교황 새끼…”

그렇게 말을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아까 애런과 대화를 한다고 모든 사람을 물러나게 했기 때문에 방 안에는 이자벨라 혼자만 있다.

“저는 동생과 같이 도망칠 수 없지만… 애런이라면 가능하겠죠.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고개를 휙휙 젓는다.

“아니, 그는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동생을 도와주겠죠. 애런에게는 미안하지만, 성녀인 저에게 감히 욕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겠어요.”

창 밖으로 아일라와 같이 걸어가는 애런을 지켜본다.

“그쪽 남매와 저희 자매.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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