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앙겔로크라티카
* * *
푸쉬이이이… 공기가 빠지며 문이 열린다. 성기사들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은 기차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아일라,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우으응…”
살살 어깨를 흔드니 기지개를 하며 일어난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은 반만 뜬 몽롱한 상태로 애런의 손을 잡고 따라온다.
“와… 내가 숲에 박혀있던 사이 이만큼이나 발전했다고?”
기차에서 내리니 높게 솟아있는 하얀 마천루들이 보인다. 햇빛을 난반사하는 건물은 앙겔로크라티카의 분위기를 신성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건물 곳곳에는 작은 천사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석상이 만들어져있는데, 앙겔로크라티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듯 나팔을 부는 것과 혹은 감시하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 곳에 온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손을 흔들고 미소로 환영해준다.
전생 용사 시절 마계와 맞닿은 숲에서 일생을 보내느라 인간들의 발전을 지켜보지 못했다. 환생 후에도 시골 마을에 있느라 발전된 나라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광경에 속은 10살 아이가 아닌 애런도 신기한 것을 보는 아이처럼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잠이 덜 깨 몽롱했던 아일라도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휘황찬란한 풍경을 감상했다.
“오빠, 도무스 마을이랑은 비교도 안 돼.”
“뭐, 결국은 시골 마을이니까.”
성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를 걷고 있으니 애런은 어디선가 아이들을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니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살짝 섞여 있는 옷에 팔까지 올라오는 금속 건틀릿을 끼고 어깨 부분에는 빨간색으로 십자가가 새겨진 자들이 있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저들은 이단심문관일 것이다. 교황과 앙겔로크라티카의 수호 때문에 대외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성기사와는 다르게 세계 곳곳을 활발히 움직이며 이단을 심문하고 벌하는 자들이다.
성기사와 같이 앙겔로크라티카의 무력을 상징하는 자들이 10살이 된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아마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악마의 기운, 즉 마기를 뿜는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일 테다.
그 시선에는 성기사들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배려 따위는 없고 한없이 차갑고 악마라도 보는 듯 악의가 담겨있다.
‘벌써 사람 취급을 안 해주네.’
그 시선은 성기사들을 따라 주위가 울타리로 둘러싸인 거대한 격리 시설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수고하십니다.”
“성기사님들이야말로 먼 곳까지 갔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울타리 앞에서 수녀와 성기사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아이들을 인계받아 수녀가 아이들을 안내한다.
“자,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 계속 따라가면 된답니다.”
길을 걸으며 애런은 주위를 둘러본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거대한 운동장과 학교, 편의 시설들이 있어 겉으로는 아이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격리 시설 밖으로는 시야를 가릴만한 것이 없어 섬처럼 이 나라에서 꺼려지는, 동떨어진 행동을 제한하는 감옥같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러분들은 운이 좋아요. 마침 성녀님과 나이가 비슷해 같이 지낼 기회를 얻다니 말이에요.”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으는 수녀. 주변 나라에서도 모인 아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아, 아.”
멀리서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목소리가 시작되는 곳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에 푸른 눈의 소녀가 목을 가다듬고 있다.
“큼… 아, 들리고 있다고요? 몰랐어요…”
소녀는 옆에 있는 성기사가 귓속말해주자 귀가 빨개지며 자세를 고쳐잡는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세계 곳곳에서 온 여러분.”
사람이 집중하도록 만드는 목소리였다. 아이들은 목소리에 홀린 듯이 앞에 서 있는 소녀를 쳐다본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치천사 미카엘 님에게 성녀로 선택받은 이자벨라 마이어입니다.”
성녀라는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동화책이나 이야기로만 듣던 성녀가 눈앞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일라도 성녀라는 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이미 전생에 성녀를 봤었던 애런만이 무심하게 그녀를 쳐다본다.
“..?”
왠지 이자벨라가 애런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린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악마의 아이… 몸에 역십자가의 흉터가 생기는 아이를 찾아내기 위함이죠.”
대부분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직 모르고 끌려온 아이도 있는지 중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흉터가 생긴 아이는 정화의 불꽃으로 천사님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분명 그 과정은 괴롭겠지요. 하지만 잠깐의 고통 이후에는 천사님들의 곁에서 평화로운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목에 걸린 펙토랄레를 꺼내 두 손으로 쥐자 신성한 빛 한 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자벨라를 비춘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아이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올려다본다.
“이처럼 천사님은 저희 모두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저희의 부탁을 들어주시고 기적을 내려주십니다.”
“여러분도 기도합시다. 부디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서 악마의 아이가 나타나지 않기를… 저희를 굽어살피시어 천사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라나이다.”
이자벨라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리자 그걸 지켜보던 아이들도 따라서 기도를 한다.
‘천사… 내가 환생한 것이 천사가 전생의 나의 바람을 들어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독하게 살도록 내버려 뒀다는 건 확실하지.’
애런은 천사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전생의 자신을 살피지 않은 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애런은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천사가 있을 하늘을 바라본다.
‘엿이나 먹어라. 양심 없는 천사 놈들아.’
손가락으로 욕을 날리려고 했다가 주변에 있는 성기사들의 눈치를 보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
이자벨라가 고개를 들자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있는 애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 소년은…’
성녀로 선택받은 이자벨라는 자신이 성녀라는 것을 밝히면 누구나 선망하는 눈빛으로 본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닌 용사와 성녀는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존재이니 그렇게 보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인 지금.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
그 사실이 신기해 성녀를 무심하게 쳐다보는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빛이 나는 성녀가 아닌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했다.
그것만으로도 저 소년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거기에 추가로 천사님이 있는 하늘에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불손하다.
처음 드는 생각은 저 소년의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고 고개를 들기도 전 그 찰나동안 생각은 바뀐다.
더욱더 저 소년에게 흥미가 생긴다. 감히 천사님을 욕한 저 소년에게 내려지는 천벌은 무엇일까. 넘치는 호기심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번개로 저 소년을 태워죽일까? 아니면 사자를 보내 죽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 소년을 천사를 따를 자격이 없는 악마의 아이로 만들어버릴까?
성녀라는 이름에 기대만 받고 자라나 심성이 배배 꼬인 이자벨라는 소년의 참혹한 미래를 생각하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성녀님, 마무리 지어주시죠.”
어느새 기도를 마친 수녀가 다가와 속삭인다. 그제서야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이자벨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아, 죄송합니다.”
크흠... 목을 가다듬고 악마의 아이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축복의 말을 한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천사님은 다 들으셨을 겁니다. 여러분에게 천사님의 축복이 있기를.”
분위기를 잘 타는 아이들은 성스러운 분위기에서 성녀가 자신들을 축복해주는 것에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내심 천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있을 것이었다.
‘얼굴은 기억하겠어요.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마주치겠죠.’
마지막까지 애런의 얼굴을 보고 성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간다.
*
수녀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이 지낼 숙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성녀의 말의 여운에 잠겨있는 아일라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곱씹는다.
“오빠, 천사님은 진짜로 있는 걸까?”
나이는 같지만 이상하게 아는 것이 많은 오빠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다. 애런은 피식 웃으며 답해준다.
“아일라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을 거야.”
“뭐야 그게.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야?”
“글쎄?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을걸.”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이렇게 명확하게 답해주면 좋은데 저 어중간한 대답은 뭐람. 오빠가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 안 아일라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다.
“여러분들이 지낼 건물은 이곳이에요. 복도에 여러분들의 방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으니 그걸 보고 찾아가면 돼요. 오늘은 이동하느라 피곤할 테니 방에서 쉬어요.”
고급스러운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내부는 다른 것 없이 흰색 벽만 있던 외견과는 다르게 화려했다.
천장에는 무지개색의 보석이 달린 샹들리에가 달려있고 벽에는 천사 모양의 등이 달려있다. 거기다 바닥은 고급스러운 새하얀 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와아…”
여러 명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대부분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던 아이들일 테니 이런 고급스러운 건물에 산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벽면에는 출신지, 신분, 성별에 따라 아이들을 나누어놓은 종이가 붙어있다.
“어디보자… 애런, 애런…”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방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찾는다.
“아, 여기있다. 666호.”
666호 애런 베커 / 아일라 베커
“오빠랑 같은 방이네.”
“그러게. 가족이라서 같은 방으로 해줬나 봐.”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은 방이 되면 어떡하지… 라며 걱정하던 아일라는 오빠랑 같은 방이 된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 같은 방인 편이 친구도 사귀기 좋을 텐데.”
“친구는 같은 방이 아니어도 사귈 수 있거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는지 볼을 부풀리는 아일라. 손가락으로 부풀어 오른 볼을 찌르자 푸우우… 하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배시시 웃는다.
….
“우와아… 방이 엄청나게 커.”
“방마다 마법을 걸어뒀구나.”
겉으로 봤을 때보다 안으로 들어가자 방이 훨씬 넓게 느껴진다. 말이 방이지 넓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방 안에 거실, 침실, 부엌, 화장실이 나누어져 있는데 9년동안 살았던 집보다도 더 넓은 것 같다.
“이거 봐 오빠!”
아일라가 침실에 있는 침대에 몸을 던지자 부드럽게 그 몸을 받아준다.
“엄청 푹신푹신해.”
푹신한 침대 위에서 방방 뛰고 있으니 아일라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난다.
“아까 기차에서 자느라 아무것도 안 먹었지.”
“으, 응. 배고파.”
부끄러웠는지 배를 붙잡고 헤헤 웃는다.
“식당… 도 있겠지만 방 안에 부엌도 있는 김에 여기 있는 재료로 먹을 걸 만들어볼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웬만한 음식 재료는 다 있는 듯 안이 가득 차 있다.
“오빠 요리할 줄도 알아?”
“대충은?”
“오오~언제 그런 것도 배웠대?”
“전생에 혼자 사느라 많이 해봤어.”
“또 그런 헛소리야?”
아이들이 쓰는 부엌이라 신경을 썼는지 칼은 베이지 않도록 날이 없지만,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지 자료를 손질하기에는 충분했다.
위험한 불 대신 마법진이 있고 버튼을 누르면 마법으로 만들어진 안전한 불이 나온다.
‘엄청나게 신경을 썼구나.’
아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시설치고는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요리를 한다.
50년을 넘게 숲에서 스스로 요리를 해 먹었던 애런의 솜씨는 이미 요리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엄마가 해준 밥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맛있어서 과식해버렸어… 라고 말하며 아일라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눕듯이 앉는다.
“오빠 때문에 살찌겠어.”
“어릴 때는 전부 키로 가.”
“그런가?”
환기하려고 열어둔 창에서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도 부르고 적당하게 시원하니 잠자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양치도 안 하고 자네.”
기차에서 꽤 많이 잤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소파에 누워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일라.
애런은 아일라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주고 창밖을 쳐다본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인공적인 환한 빛들과 자연의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져 야경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