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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화 (3/92)

〈 3화 〉 이별

* * *

“하아아암~.”

아일라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크게 한다. 오늘을 기대하고 일찍 잤었지만 그만큼 일찍 일어나버려서 잠이 부족한 탓이다.

“졸려…”

“그러게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났어.”

“대신 그만큼 꾸몄잖아.”

자기 머리를 자랑하듯 종종걸음으로 애런의 앞으로가 정성스레 땋은 머리를 보여준다. 옷차림에도 신경 썼는지 평소에는 안 입는 셔츠 위에 니트를 입고 코트를 걸치고 있다.

“겨울에 치마 입으면 춥지 않아?”

“스타킹 신고 있으니까 괜찮아.”

열심히 꾸민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아일라는 마을을 지나며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돌아다닐까?”

“응.”

도무스 마을의 특산물인 새벽에 짜낸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며 마을을 걷는다.

“진검이다.”

아일라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마을의 대장장이가 팔려고 걸어놓은 평범한 검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검이지만 아일라에게는 처음 보는 진검이었기에 신기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쳐다봤다.

“오빠, 저거 목검보다 많이 무거울까?”

“만져봐도 되는지 물어볼까?”

“안 된다.”

애런과 아일라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장장이는 물어보기도 전에 못을 박았다. 그 말에 아일라의 입은 삐죽 튀어나오고 볼을 부풀리며 부탁했지만, 대장장이는 완고했다.

“한 번 만지게 해주는 게 어때서.”

“9살한테는 위험하니까 그런 거야.”

“아, 저기 통돼지! 오빠, 저거 먹으러 가자.”

돼지를 꼬챙이에 꽂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가게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아일라는 침을 흘리며 애런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9살짜리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오자 가게 주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자리로 안내해준다.

“안녕? 통돼지 먹으러 왔니?”

“네, 돼지 한 마리 다 먹을 거에요.”

아일라의 대답에 호쾌하게 웃으며 음료수를 내어준다.

“돼지 한 마리는 너무 많지 않을까? 아저씨가 맛있는 부위만 잘라서 줄 테니 먹고 부족하면 말하렴.”

“네~.”

조금 기다리자 살짝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를 끼얹은 들고 뜯어먹을 수 있도록 뼈가 있는 고기를 가져다준다.

“오… 엄청나게 커.”

고기를 먹으려고 뼈를 잡고 들자 아일라의 머리가 안 보일 정도의 크기다.

“이것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다 먹을 수 있겠어?”

“물론이지.”

….

“너무 많이 먹었어…”

배를 팡팡 두드리고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는 아일라. 자기 머리만 한 고기를 먹었는데도 아직 부족했는지 디저트 가게 창문에 볼을 대고 침을 줄줄 흘린다.

“배부르다고 하지 않았어?”

“디저트가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어.”

그렇게 딸기가 올라간 조각 케이크와 치즈 타르트를 먹으며 배시시 웃는다.

9살까지 차곡차곡 모아왔던 용돈을 꽤 많이 썼지만, 저런 웃음을 보는 거라면 싸게 먹힌 거라며 웃고 있는 아일라를 보고 애런의 입꼬리도 올라간다.

며칠 남지 않은 이런 소소한 행복이 10년 동안 지속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겠지. 앙겔로크라티카에 가서도 아일라가 웃음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먹고 싶었던 건 다 먹었어?”

“응, 이제는 더 먹고 싶어도 배불러서 못 먹어.”

“그래? 슬슬 해도 지고 어두워지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할까?”

“또 먹는 거야?”

“먹는 건 아니고… 쨘.”

애런은 코트 속 주머니에서 작은 박스 하나를 꺼낸다.

“그건 뭐야?”

“이거? 스파클라라고하는 폭죽이야.”

박스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철사 몇 개를 아일라에게 건네준다.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휘둘러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이렇게 쓰는 거야.”

애런은 돌을 부딪쳐 불꽃을 일으켜서 철사에 불을 붙이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노란 불꽃을 일으킨다.

“와… 이쁘다. 하늘에 있는 별 같아.”

“그치? 자, 불붙여줄게.”

능숙하게 아일라가 들고 있는 스파클라에도 불꽃을 붙여줘 또 하나의 별을 만들어낸다. 아일라는 스파클라를 들고 휙휙 휘두르며 별똥별이다~ 라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상자에 들었던 스파클라를 다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 아직 하나가 남았네.”

“또 뭐가 있어?”

애런은 코트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어서 작은 목걸이를 꺼낸다.

“생각해보니까 네 생일 때 선물을 못 해줬더라고.”

언젠가 강 근처에서 주웠던 에메랄드빛 돌멩이로 액세서리 점에 부탁해 만든 목걸이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와… 이 돌멩이 색 이쁘다.”

그렇게 말하며 뒷짐을 지고는 머리를 내민다.

“?”

“아, 진짜. 오빠가 걸어달라구.”

“알겠어.”

목걸이를 걸어주자 히히 소리를 내며 웃는 아일라.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는지 평소에는 먼저 스킨쉽을 하지 않는데 먼저 팔짱을 끼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걷는 아일라.

“오빠.”

“응?”

“오늘은 고마워. 덕분에 한동안은 오늘만 생각해도 즐거울 것 같아.”

“그러면 다행이지.”

그러면서 행복하게 웃는 아일라는 스파클라의 불꽃보다도, 밤하늘에 있는 별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

시간은 빨리 흘렀다. 날씨는 금방 추워지고 우리가 앙겔로크라티카로 가는 것을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새하얀 눈이 내렸다.

뽀드득­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았지만, 오늘만큼은 신경을 거스르게 했다. 멀리서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눈처럼 순백의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

“으흑… 가기 싫어.”

아일라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부모님을 껴안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야.”

“오빠도 같이 가니까 괜찮을 거야.”

등을 몇 번 토닥여주고는 울면서 매달리는 아일라를 떼어낸다. 밀어내는 부모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크흡… 애런, 아일라를 데려가 주렴. 계속 보고 있으니 우리도 보내고 싶지 않아지는구나.”

“알겠어요. 가자, 아일라.”

“으아앙… 헤어지기 시러어.”

“갔다 올게요.”

짧게 작별 인사를 하고 애런이 손을 잡고 성기사의 뒤를 따라가니 아일라는 울면서도 손을 놓지 않고 뒤따라온다.

“이름이… 애런 베커와 아일라 베커 맞니?”

“네, 맞아요.”

“좋아. 너희들이 이 마을에서 마지막이구나.”

앞에서 걸어가던 성기사는 들고 있는 종이에 선을 찍 긋는다.

성기사들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아이들로 가득 찬 기차가 보인다.

“저기에 선로가 있었던가..?”

분명히 이 시골 마을에는 기차가 다닐만한 선로가 없었다. 그런데 저 기차는 어떻게 있는 걸까?

“신기하지? 마법으로 부상해서 움직이는 기차란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거야.”

성기사가 문에 손을 대자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빈자리에 앉으면 된단다. 앙겔로크라티카까지 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배가 고파지면 우리한테 말하면 먹을거리를 줄 거야.”

“네.”

애런은 빈자리가 붙어있는 곳으로 가서 창가쪽에 아일라를 앉혀준다.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아일라는 코를 훌쩍인다.

기차는 소리 없이 공중에 붕 뜬다. 창밖을 보지 않았더라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아일라, 밖을 봐봐.”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풍경이 금방 휙휙 하며 바뀌지만, 마을 밖으로 멀리 떠나본 적이 없는 애런과 아일라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응…”

아일라는 코를 훌쩍이면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 사이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상록수들의 초록색이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졸리는지 고개를 꾸벅이는 아일라. 애런은 아일라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해준다.

“부모님 얼굴을 더 보고 싶다고 아침 일찍 일어났으니까 피곤하겠지.”

기차 밖에 보이는 풍경은 어느새 회색의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자왕이 있는 국가, 오르도 왕국에 도착한 것이다.

후우웅… 기계음을 내며 멈춘 기차에 많은 아이가 타기 시작한다.

그 아이들은 아일라처럼 부모님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우는 아이도 있었으며, 답답한 신분 속에서 탈출해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도 있었다.

전자인 아이들은 괜찮지만, 후자인 아이 중에는 성가신 아이들도 있었다.

“아~ 드디어 빌어먹을 아버지한테서 벗어나네.”

오만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어깨를 치며 걸어오는 회색 단발의 소년. 그 뒤에는 10살로는 보이지 않는 거구의 아이들이 따라온다.

그냥 지나가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주위를 건들거리며 둘러보던 녀석은 아일라의 얼굴을 보고는 애런의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 저 녀석 마음에 드는데.”

더러운 시선으로 아일라를 훑어보려 하기에 애런은 아일라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야.”

‘그냥 지나가라… 시비 걸지 말고.’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애써 무시하며 지나가길 바란다.

“야, 너 때문에 잘 안 보이잖아. 비켜봐라.”

다시 한번.

“이 새끼가 내 말 무시하네? 귀먹었냐?”

애런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면서 점점 강도를 높이며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야, 자존심도 없냐? 맞고 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네.”

코웃음을 치며 계속해서 머리를 친다. 10살짜리에게 머리를 맞고 있지만, 장난꾸러기인 이웃집 꼬마에게 맞는 거로 생각하며 무시한다.

“가리면 내가 가면 되는데.”

아일라가 앉아있는 안쪽 자리로 들어가려 하기에 애런은 다리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하, 빡치게 하네?”

퍽. 퍽. 애런의 다리를 발로 차보지만, 돌덩이처럼 단단한 다리를 때린 자신의 발이 더 아파 얼굴을 찡그린다.

“아아아!! 내가 누군지 알고 막는 거냐? 어? 내가 바로 리처드 폰 오르도의 아들. 헤드릭 폰 오르도야!”

‘그 유명한 사자왕의 아들인가. 아일라를 보면서 자식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저런 녀석이 나오는 거라면 싫네.’

흥분한 헤드릭은 애런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어 아일라의 머리를 잡으려고 하자 손목을 잡아 막는다.

“선 넘지 마라.”

꽈악. 평범한 몸이지만 단련한 애런의 악력은 마치 손목이 부러뜨릴 것 같은 기세였다.

“아아아..! 야, 뭐해? 왜 보고만 있어 너희들!”

헤드릭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이 애런에게 손을 뻗는다.

“움직이지 마라. 내 몸 건드리면 이 녀석이 평생 손을 못 쓰도록 만들어버린다?”

10살의 아이들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살기에 화들짝 놀라며 하던 행동을 멈춘다. 헤드릭도 살기에 위축되었는지 애런이 잡고 있는 팔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냥 가라.”

애런이 잡고 있던 손목을 놔주자 눈살을 찌푸리며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 얼굴 기억했다.”

헤드릭은 자기 나름 위협을 한답시고 째릿 쳐다봤겠지만, 전생의 용사가 그런 거로 위협을 느낄 리가 없다.

“존나 마음에 안 드네.”

애런의 반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를 한 번 차고는 앞에 있는 칸으로 지나간다. 가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가는 것을 보니 그냥 천성이 쓰레기인 모양이었다.

애런과 헤드릭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에도 기차는 조용히 움직였고 온통 회색 벽이었던 오르도를 지나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앙겔로크라티카에 도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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