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9살
* * *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거울을 본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70년을 넘게 보던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에는 아직 적응되지 않는다.
전생의 백발과는 다르게 새까만 흑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남들과 달라 눈에 띄는 것이 당연했던 백발과는 다른 평범한 색이라서 마음에 든다.
그다음으로는 얼굴인데…
“이 얼굴은 언제봐도 별로네.”
전생에 잘 생겼던 건지, 지금이 못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볼을 손으로 눌렀다가 볼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턱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음… 역시 어려서 그런지 탄력이 대단해.”
아직 젖살도 덜 빠져 말랑말랑한 볼은 찹쌀떡처럼 손에 착착 감긴다.
환생한 지 9년이 지났다. 9년 동안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일단 우연하게도 전생과 지금의 이름이 애런으로 같다는 것. 그리고 애런이 죽은 날에 지금의 애런이 태어났다는 것. 마지막으로 환생한 애런의 몸은 전생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4살 때 전에 들었던 대검보다는 작지만, 집에 걸려있는 도끼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양팔이 부들거릴 정도로 힘을 줘도 도끼는 꿈쩍하지도 않았다.
또 상처가 낫는 속도가 느리다. 전이라면 팔이 잘려 나가도 내버려 두면 팔이 금방 자라났는데, 지금은 넘어져서 피부가 살짝 까진 것도 어느 정도 지나야지 낫는 수준이다.
“그래도 이게 정상이지…”
전생에는 당연했던 것들이라 그게 당연한 줄 알았지만, 환생한 몸으로 9년을 살며 그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웃기네.”
4살 때 도끼를 들겠다고 낑낑거리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우스워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끼익. 방문을 열리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자 애런과 닮은 모습의 흑발의 소녀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여동생인 아일라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여동생이다.
“오빠, 거울 보는 거 안 질려? 어떻게 매일 한 시간이 넘도록 거울을 보고 있을 수 있는 거야”
“아일라.”
애런은 이쪽으로 와보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걸 보고 아일라는 뚱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왜?”
애런은 자신의 얼굴에 했던 것처럼 다가온 여동생인 아일라의 볼도 손으로 주물주물 만진다.
“므하는거야…”
볼이 쭉 늘어난 아일라를 보며 키득키득 웃는 애런. 이 상황에 익숙한지 아일라는 저항하지는 않고 그냥 한숨을 푹 쉰다.
“거울 봐봐. 완전 귀엽지?”
“으니… 볼 늘어나서 별로… 그보다 놔 봐.”
볼을 쭈욱 늘리고 있던 손을 놓아주자 탁하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하얀 피부가 애런이 가지고 노는 바람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내 방에는 왜 왔어?”
아일라는 대답 대신 문 앞에 놓여있는 목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무래도 칼싸움을 해달라고하려고 온 모양이었다.
“심심해.”
“그래그래.”
따악! 딱! 마당에서 목검이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아일라가 능숙하게 목검을 휘두르면 그걸 애런이 받아준다.
“핫!”
부웅! 우상단에서 비스듬하게 힘껏 내려치는 일격. 그걸 자연스럽게 흘리며 큰 동작으로 빈틈이 생긴 아일라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푸욱 찌른다.
“히약!”
“오늘도 내가 이겼네.”
“으으…”
사실 애런이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평범한 몸이 되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전생에 익혔던 검술을 잊은 것이 아니고 지는 것은 싫어하기에 일부러 져주지도 않으니 9살짜리 여동생에게 질 이유가 없다.
칼싸움에 진 것이 분했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운동을 하는 애런의 옆에서 지켜보는 아일라.
“한 판만 더 해.”
“싫어.”
자고로 게임이란 한 판 이기고 도망칠 때가 가장 재밌는 법이다. 그러면 상대는 계속 진 상태거든. 거기다 칼싸움에서 지고 삐진 아일라가 귀엽기 때문에 더욱더 다시 해주기 싫어진다.
“후우…”
팔굽혀 펴기, 나무로 턱걸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리기.
전생과 달리 약한 몸이 되어버린 애런이 매일 하는 일과 중 하나이다. 그 덕에 9살 답지 않게 쩍쩍 벌어진 몸은 돌멩이처럼 딱딱하다.
전생처럼 용사 노릇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이다.
늙어서 허약해진 몸으로 항상 침대에만 누워있던 때를 떠올리면 잘 움직여지는 건강한 몸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아일라, 윗몸 일으키기 하게 다리 좀 잡아줄래?”
“싫어. 칼싸움 한 판 더 해주면.”
“으음~ 어쩔 수 없네. 운동하는 걸 안 도와줬으니 내일은 칼싸움 안 해줘야겠다.”
운동을 하려고 벗어놓았던 옷을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시늉을 하니 아일라는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팔을 붙잡는다.
“아, 알겠어.”
“응? 뭐가?”
애런은 얄미운 표정으로 아일라에게 귀를 갖다 댄다.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렸는데?”
“잡아준다구! 대신 내일도 칼싸움 해줘야 해.”
“알겠어.”
윗몸을 일으킬 때마다 보이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이 평화는 전생의 자신이 이루어낸 것이라 생각하니 허튼짓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
“이제 10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나무로 만든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도중 애런의 아버지, 애덤이 진지한 분위기로 말한다.
“뭐, 그렇죠.”
“이제 곧 한동안 얼굴을 못 보겠구나…”
어머니인 아를렛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애런과 아일라의 밥그릇에 고기를 올려준다.
“20살만 되면 다시 볼 수 있잖아요.”
“10년이면 긴 시간이야.”
10살은 특별한 나이이다. 무엇이 특별하냐면.
애런이 마왕을 죽여 생긴 빈 왕좌를 차지한 새로운 마왕은 인간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한다. 그 저주는 10대의 아이들 사이에 애런이 죽였던 마왕이 부활하도록 하는 저주라고 한다. 그러니 저주가 발현되기 시작하는 10살은 특별한 나이인 것이다.
마왕이 부활할 수 있는 아이의 몸에는 역십자가 모양의 흉터가 생기는데, 이 흉터가 생긴 아이를 '악마의 아이' 라고 부른다.
악마의 아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10살이 되는 아이들은 천사를 믿는 신정국가 앙겔로크라티카에 가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해야 한다.
“그냥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가족과 떨어지기 싫은 아일라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건 안 된단다. 모든 아이는 앙겔로크라티카에 출생 신고를 하게 되어있거든. 그래서 10살이 되는 아이가 있으면 성기사가 직접 데리러 온단다.”
“그렇구나…”
침울했던 표정이 한층 더 침울해진다. 아일라는 그 표정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도 오빠랑 같이 가니 외롭지는 않겠구나.”
“응…”
“애런, 나이 차이는 나지 않지만 네가 오빠니까 잘 돌봐줘야 한다.”
“알겠어요.”
부모가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을 애런은 이해한다. 전생에는 숲에만 박혀 살았기에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렇기에 모르는 상식 같은 것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다니며 얻은 지식으로 부모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앙겔로크라티카에는 주변에 있는 국가의 아이들이 모인다. 근처에 있는 나라인 기사들의 국가라 불리는 오르도 왕국과 마법사들의 나라인 베네쿠스의 아이가 가장 많다.
특히 오르도 왕국의 귀족인 아이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아이들을 오르도 왕국에서 그러하던 것처럼 하대하고 무시한다. 그뿐이면 다행이지만 그 아이들을 호위하기 위해 훈련을 받은 아이들도 따라오기 때문에 그걸 믿고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아마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겠지. 최근에는 그 폭력이 과해져서 죽은 아이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닐 것 같지는 않지만…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위험할 수도 있단다. 그럴 경우에는 맞서 싸우지말고 도망쳐야 한다. 알겠지?”
“알고 있어요.”
전생에 마족들이 머릿수로 애런을 밀어붙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수의 우위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알고 있다.
그때는 초월적인 몸이어서 지치지 않았지만, 지금의 평범한 몸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전생의 기억으로 잘 싸운다고 하지만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이 연약한 몸은 금방 지쳐버리겠지.
“그런 일이 없도록 사이좋게 지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너희는 9살 답지 않게 성숙하니까 잘 해낼 거라 생각한다.”
환생한 애런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평범한 9살인 아일라도 아이답지는 않다. 물론 가끔 아이다운 귀여운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떼를 쓰며 고집을 부리거나 생각의 깊이가 얕지는 않다.
‘내가 업어 키운 덕이지.’
나이 차이가 나지도 않는 아일라가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다.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좋은 건 알려주고 나쁜 건 걸러주었다. 그렇게 키운 덕에 아일라가 이렇게 큰 것이라 생각한다.
*
똑똑…
식사를 마치고 아일라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는다. 이유는 식사를 하며 나왔던 얘기 때문이었다.
똑똑똑…
방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일라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 누워있다. 애런이 침대에 걸터앉자 머리를 돌려 벽을 바라본다.
“왜 들어왔어… 들어오라고 한 적 없는데.”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잖아.”
잠깐 침묵이 이어진다.
“...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아?”
침묵을 먼저 깨는 것은 아일라였다. 몸을 일으켜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에 등을 기댄다. 볼에는 눈에서 시작된 눈물 자국이 남아있다.
애런은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아빠 말대로 10년은 긴 시간이고… 그동안 부모님이랑 헤어져야 하니까.”
“나… 아빠랑 엄마 얼굴을 못 보겠어. 얼굴을 보면 10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서…”
아일라는 말을 하면서 또 그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럴 때는 어린애 답다니까.’
“내일 마을에 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을까?”
“나는 딱히…”
“그러지 말고. 방에만 박혀 있으면 하는 게 없어서 오히려 그 생각만 더 날걸? 차라리 헤어지기 전에 더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
말없이 애런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렇지?”
“응.”
애런은 마음을 추스르고 납득해주는 아일라가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는다.
“먹고 싶은 건 있어?”
“음… 도무스 마을에서 갓 짜낸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랑 딸기 케이크랑 통돼지 구이랑…”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먹고 싶은 것을 끝없이 말한다. 이렇게나 먹고 싶은 게 많았으면서 말도 안 하고 참았던 건지… 이럴 때는 어린아이는 성숙한 모습보다도 어린아이 같은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겠어?”
“다 먹을 수 있어.”
“그래 다 사줄 테니까 오늘은 일찍 자.”
“응!”
아일라는 베개를 놓고 누워서 이불을 턱 끝까지 올린다.
“벌써 자려고? 저녁밥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응.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기대감에 가득 찬 똘망똘망한 눈을 보니 애런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그래, 잘 자.”
“응 오빠도.”
애런이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고 하니 아일라가 불러 세웠다.
“오빠.”
“왜?”
“나갈 때 불 꺼줘.”
고양이처럼 올려다보며 말하는 아일라가 귀여워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알겠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