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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116화 (116/116)

〈 116화 〉 유쾌하군

* * *

“전 미리 경고를 드렸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그냥 가만히 있지 않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아 말하는 여인은 다름아닌 알리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맞은 편에서 조금 흥미가 동한 얼굴로 찻잔을 들어올리는 여인은 일레인 황태녀.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을 두 존재가 끼어 있었다.

다름 아닌, 릴리의 심복, 스켈레톤 킹 카녹스와 어비셜 나이트 플루라가.

전자는 알리샤의 앞에서 방패를 세운 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공허한 동공으로 일레인을 응시하고 있었고.

후자는 대놓고 일레인의 옆에서 손도끼를 그녀의 목에 가져간 상태.

당연히 주변에 있던 호위들은 둘이 여기 도착하자마자 작살이나 주변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져있고, 나름 괜찮게 지었다고 생각했던 별장도 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지경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례임이 틀림없을 이 상황에 일레인은 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경탄할 힘이다. 과연 오라버니가 지구로 건너갔을만 해.”

“이미 알고 계셨군요. 데지르 황태자가 살아있다는 걸.”

“그 뿐일까? 죽음을 보기 좋게 꾸며둔 게 나였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발할라의 솜씨에는 여러모로 흠이 있었거든.”

시체 하나만큼은 일레인도 순간 정말 데지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했지만, 그 밖에 모든 것들이 어설펐다.

구설수가 나올 껀덕지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걸 막은 게 일레인이 어떤 셈.

이유야 당연히 ‘굳이 죽이지 않고도’ 알아서 사라져 준 것에 대한 배려였다.

“.........이미 알곤 있었지만, 황자 황녀들 간에 신경전이 심했던 것 같군요.”

“오해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군. 난 개인적으로 데지르 오라버니를 무척이나 존경한다. 그는 능력이 있으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에 가까운 성과를 보여준 남자야. 죽이는 건 그저 그래야만 하기 때문일 뿐이다.”

데지르는 배경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사실상 현 황제의 초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이.

결국, 일레인이 데지르에게 황위를 양보했다고 해도, 할리온은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 굴레를 끊어내고 다시금 황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절대 데지르는 황위에 올라서는 안 될 이였던 것.

하지만, 알리샤는 그런 점이 무서운 거라며 오히려 쓴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조금 늦는군. 수하를 미리 보냈으니, 늑장을 부리는 건가?”

“감히 추측을 말하자면, 안내인을 다져주고 오는 중일 테죠. 어차피 그녀의 심령은 소환수 모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 안전이 확인된 시점에서 그녀는 여기에 서둘러 올 이유가 없는 겁니다.”

“호오? 그런가? 그럼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 보도록 하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마치 절대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알리샤는 그녀의 이명이 어째서 철혈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동안 훤한 폐허에서 즐기는 티타임이 끝나자, 드디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일련의 무리들.

거기엔 작은 소녀가 둘이 있었고.

몸 주변에 푸른 전격을 방출 중인 남자

이질적인 느낌의 검은 기운을 두른 남자 이렇게 둘과 용의 비늘과 날개를 펼친 여자 하나.

총 다섯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선 건 역시나 연분홍빛의 머릿결의 주인이자, 낫을 든 마녀, 릴리였으니.

그녀는 다가오자마자 손짓으로 플루라를 뒤로 물리고는 되려 본인이 든 낫을 일레인의 어깨에 걸치고는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지구식 대화법으로 이야기 좀 나눈다고 늦었네요.”

“지구식 대화법? 이거 말하는 건가?”

자신의 목에 닿을락 말락 하는 낫의 날을 톡톡 두르리는 일레인.

릴리는 이해가 빠르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불변의 진리인 대화법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동의한다. 이것만큼 우수한 대화법이 달리 없지. 뭐, 나야 개인적으로는 허벅지 정도는 찔러준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이다만”

“미친........왜 그래주랴?”

“좋을 대로. 내 방식이 달갑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지.”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지, 릴리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흔들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결국 먼저 발을 뺀 건 릴리.

그녀는 목에 겨둔 낫을 도로 물리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태녀 전하. 댁들 방식이 이런 건 대충 알고는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 봐가면서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다 화김에 당신 목가지 날리면 피곤해지는 건 저예요.”

“죽는 건 나인데도?”

“죽는 사람이 피곤할 게 뭐가 있다고, 이제 편이 쉬는 거지. 고통은 산 사람 몫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유쾌한 이로군. 내 주변엔 그대 같은 사람이 없어서 지금 무척 대화가 신선해. 우선 자리에 앉지, 뭐, 누추한 건 그대의 수하들을 원망하도록 하고.”

“변상은 안 합니다.”

릴리는 일레인의 권유에 따라 바로 알리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슬쩍 릴리의 소매를 잡아당기고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건네는 알리샤.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만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러나 릴리는 어차피 일레인이 작정한 이상, 알리샤라고 한들 수가 없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손사래를 치며 됬다고 전했고.

그 뒤 다른 일행들에게도 대충 앉으라 손짓 한 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며 일레인을 바라봤다.

귀여우면서도 당당한 모습에 작게 입꼬리를 말아올린 일레인은 본격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대를 만나고자 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첫 째는 그 성녀가 숨겨둔 비장의 무기인 네가 어떤 이인지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고, 이제 일어날 우리의 전쟁에 발할라가 어떤 태도를 취할 건지 미리 들어두기 위함이지.”

“전자야 그렇다 치고, 후자는 예지를 찾아야 할 일인데요?”

“싱거운 소리를. 제국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말아라, 지구와 테라가 왕래하는 사이인 만큼 우리도 그간 배운 게 있으니”

지난 기간 동안 제국도 지구에 대해서, 특히나 발할라에 대해서 제국은 정말 많은 조사를 진행했다.

지구에서 넘어온 이들을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고, 직접 지구에 사람을 보내 알아낸 것들도 많지.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주는 릴리의 위상은 결코 좌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상 발할라의 진짜 주력.

어차피 예지가 얼마 뒤에 테라에 넘어올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런 자리를 가진 건, 지금 릴리와 나누는 대화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릴리는 확신에 찬 일레인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하고 싶은 말은 많긴 한데, 꼭 틀렸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게 사살이었으니까.

하는 수 없지 민감한 주제는 최대한 돌려 말하는 수 밖에 라고 여기기며 릴리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전하께서 궁금하신 내용이 뭔지 들어나 보겠습니다.”

“발할라는 이번 전쟁에서 어떤 결말을 원하지?”

“테라가 이겨주길 원하죠. 물론 적당히.”

양패구상이면 지구도 잃는 게 너무 많다.

테라에 쌓아둔 게 그만큼이나 되기도 하고, 엄연히 테라는 첫 지구와의 교류가 성사된 세계이기도 하니, 무너지면 여러 의미로 보기가 나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테라가 완승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리되면 무림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테라가 좀 망가지긴 해야 지구도 또 여기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까.

어차피 너도 나도 다 아는 내용.

릴리는 가감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했고, 일레인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간단히 수긍했다.

“그럼 발할라는 어디까지 움직일 셈이지?”

“딱히 별로 움직일 생각은 없는데요? 무림에 변수가 좀 많아서 문제일 뿐, 지금 테라의 저력이면 딱 저희가 원하는 ‘잘’ 싸웠다라는 그림이 나올 테니까.”

테라가 지리리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니뭐니해도, 이미 테라는 한 번 무림을 꺾은 전적이 있고, 또 일레인에게 말할 순 없지만, 지금 릴리 일행은 무림에서 적지 않은 소란을 일으킬 계획이다.

이런 역경 속에 테라를 꺾는다면 되려 무림을 좀 다시봐야 할 정도라고 봐야겠지.

거기에 무엇보다.

“제국도 많이 준비해두셨더구만.”

“........”

“아까, 제국을 물로 보지 말라고 하셨나요? 그러면서 우리들을 물로 보시네. 우리가 교단을 장악해둔 가지고 잘 뽑아 드셨잖아요? 거기에 대마녀 둘의 죽음 이후로 뭉치기 시작한 마녀들, 발푸르기우스. 그들과 제국 측으로 반쯤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테라는 지고 싶어도 질 껀덕지가 없다.

주법이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겨우 몇십년 동안 쪼물딱 거린 기술 가지고 테라의 마술을 넘본다?

차라리 적극적으로 마술사들을 영입해서 마술 병단을 만들었다면 그게 더 두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마녀들이 제국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면, 그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터.

전사와 기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건 결국 대량 살상 병기들, 마술사들이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어올리는 일레인을 보며, 릴리는 한 마디 더 붙이기까지 했다.

“엘프들도 꽤나 짭짭하게 주우셨죠? 마황이 알브 헤임 작살낸 덕분에”

“거기에 대해선 길들이는 도중이라고만 답해두지.”

“하여튼 간에, 질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무슨.”

“싸운다는 거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걸 알텐데? 근래 들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적어도 난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예? 진짜요?”

“.......그 의문은 뭐지? 난 불필요한 싸움을 원하는 자가 아니다.”

그녀는 릴리에게 무림과도 충분하고도 남을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었다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데지르야 어떤 방식으로든 물러날 사람이었고, 그리 되면 사실상 황위 계승에 가장 유력한 후보가 일레인이었으니.

굳이 그녀는 무림과 테라의 전쟁이라는 판이 벌어지도록 둘 이유가 없었던 것.

물론 다른 황자 황녀들은 되려 전쟁을 부축이고 이를 통해 데지르는 물론 일레인까지 쳐낼 기회를 옅보고 있긴 했었지만.

일레인은 최소한 그들은 눌러두고 무림과 소통하는 건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그 소통의 결과가 시궁창이었을 뿐.

“이리도 너희와 말이 잘 통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무림과는 손절을 치는 거였는데.”

“손절? 그런 말은 또 어지서 배우셔가지고.”

“당연히 너희지. 나도 모르는 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다.”

“데지르도 그렇고 그런 면상으로 이상한 말 좀 하지 말라고!! 엄청 안 어울리니까!!”

“그런가? 유감이군,”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쉽다는 듯 일레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오라버니의 이름을 상당히 친숙하게 부르는군. 무슨 사이인지 물어도 되겠나? 알아보니 그대에게 오라버니가 청혼을 했다고 하던데.....”

“쓰...쓰발, 그건 또 어떻게?!!”

“교수님, 청혼이요?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앗, 릴리 흑역사 공개다.”

“이거 대박인데? 데지르면 그 검술 학과 교수님 맞지?”

“아마, 그럴 걸? 생각해보면 맨날 같이 출근하시기도 하고,......동거중이신 건가?”

순식간에 일레인에게 향하던 시선들이 릴리에게 모인다.

하늘이는 릴리의 어깨까지 잡고 흔들며 대관절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며 해명하라는 소리를 지르고.

상협이와 길수는 꿀잼 각이라면서, 유리에게 보다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일레인이었으니.

“나중에 자리라도 만들어주게. 결혼 축하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지랄마!! 딱봐도 나 때문이잖아!!”

“이런? 들켰나?”

“그니까 그 면상으로 그런 농담하지 말라고!!”

폭주하는 릴리.

어떻게든 여기 있는 사람들의 귀와 입을 막고자 하였지만, 흑역사의 반동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하물며 일레인이 준비한 공격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으니.

“걱정하지 마라, 오라비의 심정은 나도 이해하니까. 그때 그대의 모습을 보고 온 사신단 중 한 명이 손제주가 좋아, 그 당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내게 주었는데. 연신 그림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미라고 극찬을 하더군. 나중에 내게도 실물로 한 번 보여주게.”

“꺼져!!!”

“그리 뺄 필요 없다.”

“제발 좀 꺼지라고!!!”

참고로 이런 릴리를 바라보며 일레인의 표정은 히죽, 입꼬리를 말고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유쾌하군.’

뭔가 살짝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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