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무림 출두요~~
* * *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예지는 이번 무림 원정에 함께할 수 없었다.
당장에 테라와 무림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지구에서 발할라를, 예지를 찾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게 그 첫 번째 이유이고.
그다음으로는 군주가 출현할 경우 바로 힘을 개방해야 하는 탓에, 아직은 테라에서 이름 없는 성녀로 남아있어야 하는 탓이었다.
단지, 그렇다고 예지가 마냥 아쉬워만 한 건 아니었는데.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하러갈 것이니, 릴리는 릴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부탁해왔다.
“또 개 같이 멸망! 이지랄하지 말고 똑바로 좀 해요.”
귀까지 잡아당기며 한숨 섞인 걱정을 토하는 예지.
그녀는 아프다고 소리치는 릴리를 향해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원정의 난이도는 테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 목적, 환경, 동반되는 위험성까지. 전부 질적으로 다르죠. 제가 왜 굳이 유리를 당신에게 붙여준 건지 알고 있겠죠?”
모선에는 분명 전투 성능을 배제하더라도 상당한 오버 벨런스급 도구임은 확실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모선을 써야 하냐면 그건 좀 애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모선은 이미 발할라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이를 드러내는 건 사실상 정체를 숨기는 걸 포기했다는 반증이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성능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다른 함선을 쓰는게 더 이로울 터
하지만, 그럼에도 예지는 유리의 동행을 허락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보험이다.
“정말 군주가 나타날 경우, 최우선 고려 사항은 생환. 그 다음이 그들의 척결. 당신 수준이면 견적을 때는 건 문제 없으리라 생각해요.”
“죽일 수 있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죽여라.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든 살아서 지원을 요청하라는 거지?”
예지는 정확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라서 말이예요. 테라 무림 전쟁에 발할라가 나름의 액션을 취해주길 바라고 있죠. 전 그걸 이용할 생각이에요.”
예지는 릴리 일행이 무림에서 활동하는 기간 동안, 테라에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당연히 상당한 전력을 대동한 체로 말이다.
명분은 혹여나 무림의 침공이 지구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인데, 실상은 여차할 경우 릴리를 지원하기 위한 상비군라고 할 수 있다.
군주의 출현과 동시에 일제히 무림으로 진격.
거기서 결착을 내기 위함인 것이지.
“모선의 성능도 나날이 발전하는 덕분에 게이트가 가깝다면 굳이 세계를 넘지 않고도 통신이 가능하다고 유리가 그러더군요. 이번에는 혼자서 폭주하지 말고, 여차할 경우에는 우선 나한테 먼저 의견을 구하도록 해요. 필요한 게 생기면 바로바로 요청하고.”
“넵, 물주, 아니 행정보급관님!!”
“뭐 같은 이유로 부르면 보급상자에 해물비빔소스만 담겨져 있을 테니, 각오하고. 알간?”
“히이이익!! 어...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인간적으로 육고기 비빔소스 정도는 같이 보내줘야지!!”
예지라면 진짜 그 악몽의 통조림을 구해서라도 보낼 것 같아, 릴리는 바로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에 질렸다.
그리고 그런 릴리의 모습에 콧방귀를 내쉬는 예지.
하지만, 그 안에는 심술보다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는 걸 릴리도 모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군주와 충돌하게 된다면, 릴리라고 무조건 안전하다곤 할 수 없는 게 이번 일이었으니까.
“혼천석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맡길게요.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스타일 아니니까.”
“사실 나도 전문가라고는 말하기 그런데......”
“적어도 연주랑 당신 말곤 그걸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지구에 없어요. 전에 바네사와 그리시아에게도 연구를 부탁했는데, 도저히 무리라며 고개를 젓더군요.”
그녀들은 그저 마치 살아있는 힘의 덩어리 같다는 말만 전해왔다.
마정석과 비교하기엔 안에 담긴 힘은 마력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공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며 에테르는 더더욱 아닌.
말 그대로 미지의 힘이었다.
단지, 그래도 속성으로 따지면 내공과 가장 유사한 힘의 파장이라고 하니, 예지 또한 사흉이 높을 확률로 무림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계획은 있나요?”
“글쌔? 미친 척하면 영약 비슷하게 가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에 담긴 사흉의 파편 때문에 사람 곱창이 날 것 같아서, 거기까진 가지 않으려고.”
“잘 해야 해요. 적당히 뿌려 사흉을 끌어내되. 이 힘이 다시 그 녀석에 돌아가도록 두어선 안 되니까.”
“영악한 놈이라는 건 이미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잡은 놈인데, 그걸 모를까.”
또한 완전히 하나된 사흉을 보지 못했다는 점까지.
릴리도 방심 따윈 하고 있지 않다.
최대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수를 고를 생각이다.
“여차하면 뒤처리는 전부 내가 할 테니까. 전력을 다해요.”
“모선까지?”
“무얼 당연한 소릴. 그러라고 보내주는 거라고 지금까지 이야기했잖아요? 발할라가 지금까지 이유 없이 몸집을 불린 줄 아세요? 군주라는 명분만 있다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전부 제가 커버칠 수 있어요.”
“올~~~ 멋있는데?”
“후훗, 나의 이 넘치는 매력을 이제야 알아보다니. 대체 눈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건지.”
뽕에 취하기라도 한 듯 치얼스를 외치는 예지.
릴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그 장단에 잠깐 맞춰주었다.
“김철수 그 충무공 빠도 딸려 보내고 싶었는데.......”
“일이 있다고 하더라. 중간에 합류할 거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던데?”
“강화 이벤트인가 뭔가하는 그거에요. 대격변 이후로 마술은 물론 정령술, 소환수, 무공 등등 닥치는 대로 배워서 스킬 커스터마이징으로 완전 새로운 세팅을 만들었거든요. 지금은 그 조정 중.”
“헐......걔도 장난 아니구나.....”
설마하니 강화 이벤트였다니.
릴리는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그러나 예지는 그런 릴리를 가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융합마술.....레벨 몇?”
“6이요.”
“1년 반에 만에 두 계단이나 올렸네요. 용제전에 2, 테라에서 마황 강림할 때 4. 그리고 지금은 6이라........”
혹자 누가 보면 2밖에라 말할 수 있지만, 그 격이 다른 힘의 편린을 아는 예지는 절대 밖에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필시 지금은 이전보다 더 말도 안되는 기행이 가능할 터.
“어쩐지 유일무기 타령을 그만 두었더라니만.......본인은 이미 강화 이벤트에 각성 이벤트까지 끝냈잖아?!”
“아, 그거? 데헷! 사실 5 찍은 시점에서 이젠 필요 없어지긴 했거든!”
“후우......쓰벌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뭐래, 너도 엄청 강해지고 있잖아? 아니, 지구 사람들 전부가 힘에 익숙해지면서 성장 중인데.”
대격변은 일종의 리미터 해제와도 같다.
아리아스타가 안전을 담보로 막아두었던 성장의 한계.
그게 풀린 것이 대격변의 또다른 측변이었으니.
그리고 성장하지 않으면 애초에 살아남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테라에서 얻어낸 군주의 정보고 그렇고, 아리아스타가 릴리에게 전한 내용도 그렇고.
군주는 대전쟁 때 전력을 내지 못했음이 확실했다.
정확히는 무리하게 차원을 찢은 여파를 온몸으로 맞고 있었지.
그러니 다시 만날 군주는 훨씬 더 강력할 터.
한가하게 멈춰있을 시간 따윈 없는 것이다.
“그래도 너무 좀 너무하잖아?!!”
“단념해라 휴먼. 아니지 앤젤. 나 강릴리의 질주는 계속되니까.”
여튼 그리하여 마지막 면담까지 끝마친 릴리.
다음 날 준비를 마친 일행들을 소집하고 그녀는 드디어 무림으로 향했다.
* * *
──쫘아아아악!!!
번뜩이는 흑빛의 섬광.
그와 동시에 비산하는 사람의 목과 피.
회담장은 단숨에 비명소리로 가득차 아비규환이 되어가고.
피를 흩뿌린 주인공은 다시금 검을 휘두르며 죽여버린 자의 시체 위에 또다른 시체를 쌓았다.
“황태녀!! 감이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당최 왜 너희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무덤덤함을 넘어서 답답한 듯한 얼굴로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여인은 다름아닌 일레인.
데지르의 사후, 장례를 마치고 황태녀의 자리로 등극한 그녀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앞에서 자기 분수도 모르고 ‘감히’ 따위의 단어를 놀리는 자들은 무림, 천 제국의 사신단.
그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체 본인들이 왜 죽임을 당하는 지도.
자신들이 한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난 지구보단 너희들이 더 대화가 통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바라본 지구라는 곳은 우리와는 사는 방식도 인식도 너무나 달랐으니까.”
귀족이 없는 나라.
왕이 없는 나라.
황제가 없는 나라.
나아가 신분이 없는 세계.
일레인에게 그것은 미지의 존재들이었다.
같이 대화가 통하는 것조차 의심스러운 자들.
물론 그들이 이룩한 문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 구조가 다른 이상.
그들과 제국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에 비해 무림의 제국, 천 제국은 테라의 제국과 같이 신분도 있고, 조금 명칭은 달라도 영주와 같은 일을 하는 왕이 존재하며,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무림이지 않을까.
당장은 지구와 교류를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결국 손을 잡는 건 무림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서걱!!
또 한명의 머리를 하늘로 날리며 바닥을 피로 바닥을 적시는 시체를 걷어차는 일레인.
그녀는 벌벌 떠는 사신단의 대표에게 검을 겨누며 한탄을 쏟아냈다.
“아니, 역설적으로 우리가 비슷하기에 이리된 것인가? 생각해보면 너희와 우리가 피를 주고받는 이 문제는 지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군. 동족혐오라는 게 딱 이 꼴이야.”
“지....지금 무슨 말을.....”
“네놈도 참 안쓰럽구나. 얼마나, 멍청하면 자신이 죽으러 보내진 것도 모르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내.....내가!! 대천의 사신인 내가 죽기 위해 이곳에 왔다니?!!”
그럴 리가 없다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사내.
하지만, 일레인은 그런 그를 되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는 되물었다.
“그럼 정녕 네놈은 그 따위 서신을 전하고 살아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냐?”
사신단이 제국으로 찾아와 한 요구는 간단했다.
참칭.
스스로를 제국이라 부르는 만행을 그만두라는 것.
유일무이한 제국은 오로지 천 제국 말고는 존재할 수 없으며.
하늘 위에 태양이 하나 뿐인 것처럼, 황제 또한 한 분만이 존재할 수 있으니.
새로운 진짜 하늘이 나타났음을 인정하고 천 제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모시라는 내용이었다.
“굳이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을.”
옅은 한숨을 내쉬며 일레인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이는 받아들이라고 한 말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절대 거절할 수 밖에 없기에.
이런 피를 흩뿌리는 방식으로 거절할 것이 뻔했기에 한 짓이지.
즉, 선전포고를 겸한 명분 만들기인 셈.
이 사신은 말 그대로 본인이 죽음으로서 선전포고문이 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하면 자기 죽을 건 알고 왔을 터인데, 아직까지 이 상황을 이해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울 수 밖에.
그는 여전히 일레인을 바라보며 이건 당연한 요구다.
하늘 아래 황제는 오로지 한 분 뿐.
오히려 죄를 묻지 않고 신하의 국가로 인정해주는 자비까지 배풀었는데, 어떻게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수 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서걱!!
결국, 다 들어주기도 귀찮은 일레인은 마지막으로 그의 목을 날렸고.
소란에 회담당으로 들어온 기사들에게 명했다.
“천 제국에서 온 모든 사신을 척살하라. 감히 제국에 참칭을 거론한 종자들이다. 단 한 놈이라도 살아있을 시 너희들에게 황제 폐하를 욕보인 죄를 물을 것이다.”
“““존명!!!”””
기사들은 명을 듣자마자 바로 검을 뽑아들고 사신단에게 제국이 제공하는 공간을 향해 달려갔다.
그 다음 바로 들어온 시녀들은 잠시 피로 낭자된 현장에 헛구역질을 하고는 서둘러 일레인에게 다가와 피를 닦을 천을 내밀며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겠다는 말은 전했다.
“후우.......아무래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