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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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공지 1일차
릴리는 오늘도 행복하다.
“룰라랄라~~~♬. 인생은 한 방 로또야 제발. 내 인생의 꽃을 피워주렴!”
“그건 또 뭔 해괴망측한 노래야?”
“감히 로또 찬양가를 해괴망측하다고 표현하다니!”
“뭐래? 이제 로또 1등보다 돈 많이 벌 수 있으면서.”
“그래도, 로또는 로또야!”
싱글벙글 웃으면서 학교 구내 식당에서 오늘도 돈가스를 시켜먹는 릴리와 소라.
여기저기서 그런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 괴로웠던 대학에서 이리 개인실까지 얻어 놀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저 릴리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었다.
그렇기에 누가 사진을 찍든 말든.
누가 대뜸 말을 걸어오든 말든.
천사와 같은 미소로 화답해주며 매일을 학교를 산책하며 다니고 있다.
일?
“훗, 그런 건 하수나 하는 짓이죠.”
“칫, 나만 부려먹는 중이면서!”
과제 계획서의 평가는 쉬운 일이다.
애초에 수준을 판단하는 게 아닌, 진정성.
이걸 장난으로 하는 건지 아닌지만 판단하는 것이니, 매일로 날아온 걸 전부 확인하는데 고작해야 1시간도 걸리지 않았지.
그 뒤 릴리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수업 준비를 위한 PPT를 만드는 것 뿐인데.
이마저도 마력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기 보다는 그 훈련법, 그리고 원리에 관한 이론만 대충 채워주면 되는 거라서.
솔직히 날먹도 이런 날먹이 없을 수 없다.
거기에 릴리의 훌륭한 조교, 소라는 방송 짭밥의 경력 덕분에 깔끔한 PPT를 만드는 건 오히려 릴리보다도 도가 텄었으니.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걸 맡겨버리면 될 뿐.
“뭐래? PPT에서 원래 제일 힘든 게 자료 조사거든? 근데 내가 자료 다 정리해서 너한테 주는 거잖아.”
“우씨! 조사 안 하잖아?!! 그냥 머릿속에 든 거 좌라라라 적어서 주는 거면서!!”
“그게 조사지!!”
“비겁하다!”
“욕하지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앗, 또 말렸다!”
아무튼 그렇게 일주일에 2개의 PPT를 만드는 게 전부.
그마저도 소라가 찡얼거리면 대충 수업을 늘어트려서 1개로 줄일 수 있으니.
대학 생활 이렇게 하는 교수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뒷목 잡을 분들 참으로 많을 것이었다.
그렇게 릴리는 행복할 줄 알았다.
과제 공지 2일차.
똑똑똑.
“저......교수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식사와 산책을 마치고 교수실로 돌아온 릴리.
그녀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가, 문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소라 역시, 코에서 물방울이 톡!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비비며 기상.
“네~~~ 잠시만요!”
둘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문 바로 앞에 서있던 이는 역시나,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2명과 여학생 1명이었으니.
“죄송합니다. 원래는 먼저 연락을 드리고 방문을 해야 하는데.”
“아아! 괜찮아! 나 한가─는 아니고, 지금은 시간 괜찮으니까!”
“아! 그런가요! 정말 다행이에요!”
“휴우.....사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으셔서 다음 수업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면 또 만나기 힘드시기도 하고.”
수업 종이 땡친 다음 릴리에게 달려가는 이들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많다.
이를 인지한 건지, 릴리 또한 보통은 10분 정도 일찍 끝내주는 수업을 20분 정도 빠르게 끝내주고 대놓고 질문 시간을 가지는 편이고.
그마저도 모자라, 수업이 끝난 뒤에서 10분에서 20분 정도는 남아서 마저 질문에 답을 해주는 편.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국은 소심한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아, 전화선은 양심적으로 다시 연결해 놔야 하나?’
‘그치만, 이상한 전화 많이 걸려와서 그런 거잖아?’
‘따로 학생들 용으로 전화를 파는 건?’
‘또 새어나갈 껄?’
릴리는 뭔가 가슴이 콕콕 찔린 탓에, 조금은 더 학생들을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소리라 역시 그런 그들에게 작게나마 음료수와 과자라도 가져왔으며.
이에 학생들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제군들은 무슨 볼일로 날 찾아오셨는가?”
“과제 때문입니다만.....”
“아, 과제! 그래 이름이?”
“박동환이라고 합니다.”
“최민지입니다.”
“김용석이라고 합니다.”
소라는 바로 릴리아게 미리 프린트 해두었던 학생들이 제출한 계획서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이를 바로 좌라라라 넘견 단숨에 학생들이 제출한 계획서를 꺼내는 릴리.
세 사람은 마치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어준 듯한 릴리의 모습에 무언의 감탄을 보내었다.
“으음......인상 깊은 계획서였지.”
“저...정말이신가요?!!”
“역시! 교수님이라면 알아봐주실 줄 알았습니다!”
“다행이다!!”
릴리는 학생들이 심히 무언가 큰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게 인상 깊었다는 의미는 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기 때문.
‘내 강릴리ver 보조배터리랑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걸 만든다길래 너무 식상해서 인상 깊었다는 말인데.........’
마력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마력을 저장하는 도구.
장담컨대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든지 간에 전부 하고 있는 프로젝트일 것이다.
릴리의 경우는 이미 만들어버렸기도 했고.
물론, 객관적으로 본다면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것과 릴리의 작품은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선은 그들은 마정석을 쓰지 않고 만들려는 게 주된 목적이고, 저장할 수 있는 마력의 용량 또한 릴리의 것보다 훨씬 큰 걸 바라고 있으니.
하지만, 발상이 식상하다는 건 사실인지라, 릴리는 별로 재미없다는 의미로 인상깊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언급할 정도로 난 막 되먹은 교수가 아니지! 그리고 이렇게 희망을 심어줘야 많은 아이디어가 쏙쏙 나오는 법! 우선은 웃어주자!’
“그래,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긴 하지. 경우에 군사물자, 의료 등등 사회 전반에서 쓰는 물건이야. 지금은 마정석을 써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보급에서는 부족하긴 하니까.”
“가...감사합니다!!”
“그럼 저희 과제는 통─”
“통과긴 한데. 과제 계획표 자체가 진정성이 있어서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너희랑 개요는 다르지만, 비슷한 걸 목표로 한 팀이 4팀이나 더 있거든? 그쪽은 조금 더 재밌는 기능도 추가하려고 하고,”
릴리의 말에 세 학생은 바로 조금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에 릴리는 후다닥 학생들을 위로하며, 칭찬을 덧붙이니.
“아, 앗! 그...그렇다고 너희가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야! 걔들은 솔직히 뛰기도 전에 날려고 하는 거잖아! 너희들이 으음......심심하긴 해도, 제일 견실한 거지!”
“견실.....이요?”
“그래! 견실! 기초가 튼튼! 우리는 기초를 배우는 거고! 세상 모두가 아직 마력에 대해서는 기초를 닦아가고 있으니까! 응? 자! 힘내서 만들어보자! 특별 면담이라고 했잖아? 내가 많이 도와줄 거니까. 너희들은 최선을 다하면 돼!”
분명 계획표가 부족할 것 같아, 그에 대한 추가적 질문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하는데.
어느새 멘탈 케어까지 해주고 있는 릴리.
세 학생의 돌아가는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담겨있었고.
그에 반해 릴리는 진이 다 빠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헤헤~~~ 언빠, 의외로 이런데 재능이 있었구나? 심리 상담사 같은 거 해도 잘했을 거 같은데?”
“지랄, 내가 심리 상담? 아서라, 5년 안에 한국 내에 반동분자를 양산할 걸?”
“으음, 글쌔 그건 어떨지. 그래도 이번에는 엄청 잘한 거 같아! 언빠 다시 봤어!! 근데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저거 만들 수 있는 거야?”
마정석을 쓰지 않는 마력저장 장치.
만들면 획기적이긴 할 것이다.
지금 릴리가 만든 것조차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니.
“뭐.....아마도? 난 가능할 거라고 봐.”
“올~~~”
“근데.......왜 마정석으로 안 만들려고 하지?”
“그야 마정석은 비싸잖아! 수요는 많은데, 수는 한정되어 있기까지 하고, 언빠도 마정석 꽁쳐놔서 존버하고 있으면서 그걸 몰라?”
“아니, 그건 맞는데.....야, 너 뭐 잊은 거 없냐?”
“잊은 거라니.....”
그 순간 소라는 번뜩 무언가를 떠올리며 손벽을 쳤다.
그리고 그에 대해 심드렁한 표정을 짖는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마정석을 자체를 양산하는 기술이 이미 초기 단계에 들어갔잖아? 물론 품질에 급이 낮아서 아직 갈길이 멀긴 하지만.”
“............그럼 저건?”
“뭐긴 뭐야, 헛짓거리지.”
애초에 모두는 망각하고 있었다.
릴리가 왜 보조배터리를 마정석을 써서 만들었을까?
진짜 마력이 부족해서?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마정석 양산 기술이 마녀의 도시에서 나온 부분에서 릴리도 거기에 한 발 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잠만! 그러면 마정석은 왜 꽁쳐두고 있는 건데?!”
“응? 그래도 시세는 쭉쭉 오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품질이 저품질이라고 했잖아? 개선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만들 수 있게 되어도 고가라는 건 똑같으니까. 뭐지, 일종의 금태크 같은 거였는데?”
“헐.......”
“뭐, 그래도 나쁘게만은 보지 않아. 비아그라도 원래는 협심증 치료약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부작용으로 발기부전 치료제가 된 거거든. 기술이라는 게 원래 헛짓거리에서 시작되는 거니, 꼭 헛짓거리인 건 아니지.”
물론 이 사실을 알면 학생들은 많이 좌절하시겠지만, 릴리는 그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코를 후비적후비적 파고는 손가락을 톡! 하고 튕긴 릴리는 다시금 침대로 돌아가며 말했다.
“에휴~~ 그래도 오늘은 좀 뿌듯하긴 하네. 나름 교수다운 일을 한 거 같아!”
“언빠, 지금 교수 맞거든?”
“아, 몰러, 너 잠깼으면 나랑 게임이나 하자! 둘이서 같이하는 꿀겜 찾았음!”
그렇게 어느새 교수실에서 조교와 같은 교수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릴리와 소라.
둘은 이게 시작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3일차부터 다음 수업 당일날까지.
“이....이건 아니야....”
“언빠....살려줘....”
세 학생을 시작으로 학생들의 파도는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맛집 마냥 줄을 길게 늘어선 학과 건물의 복도.
몇몇 교수들은 눈살을 찡그리며 바라보고, 다른 몇몇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릴리와 소라는 이미 한계에 도달할 지경.
“죽을 힘을 다해서 교수님과 함께 이 과제를 완성하겠습니다!”
“절대 교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어...그...그래, 그러니까 이제 제발 좀 가줄래? 겸사겸사 밖에 몇 팀있는지 좀 알려주고.”
“저희가 들어올 때는 32팀 정도 더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늘어난 거 같습니다.”
“이런 씹.....”
릴리는 얕보고 있었다.
학생들의 열정을, 그리고 열망을.
뭐든지 만들어도 괜찮다?
그걸 한국 최고의 마나 크레프트 집단.
아니, 어쩌면 세계 최고를 노리는 마녀의 기술 고문이 도와준다?
학생들의 상상의 날개는 이미 마력으로 로켓까지 쏘아보내는 걸로 모라자.
달까지 뚫어버리는 중이었다.
하물며 여기에 불을 지피는 게 릴리의 그간의 행보였으니.
“귀여운 응애교수님이다!!”
“나도 친해지고 싶다고!!”
“야, 너 과제 계획표 진심으로 낸 거 맞냐?”
“진심으로 냈지, 교수님 만나려고. 그래도 개인 면담인데,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주시 않을까?”
SNS을 안 하니 알 리가 있나.
지금 릴리가 얼마나 학교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고 있는지.
이미 바네사를 찾아갔을 때, 슬라임과 함께 팻말을 들었던 모습은 여기저기 퍼져나가
움짤에, 밈에, 캐릭터화까지 되어 여기저기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나마 전화선을 진즉에 뽑아버려서 몰랐지, 연애 기획사에서까지 연락을 가는 중이라는 걸 정말 릴리만 모르는 상황.
릴리는 그저 이 미친 듯이 밀려오는 학생들의 폭풍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흐뭇, 고소하게 지켜보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꿀잼.”
“우리 릴리, 정말 열심히 하네! 이미 훌륭한 선생님이야!”
“의외로 주먹이 안 나가는군요.”
“크크,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쟤 은근히 이런 거에 신경 많이 쓰잖아. 당장, 귀찮다고 툴툴거려도 결국 다 도와주고. 생각보다, 부탁에 약한 타입이야.”
“하긴, 생각해보면 그건 그렇군요.”
바네사, 데지르, 그리시아.
그들은 마력학과 공원 밴치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면서 창문 안으로 억지 미소를 활짝 짓고 있는 릴리와 소라를 감상 중이었다.
그나마 소라는 방송용 미소라도 있는데, 릴리는 그마저도 없어 대놓고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고 티가 나는 중,
그런데 웃긴 건, 나잇대와 특유의 압도적인 외모 때문에 그마저도 가려져 세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몰라보는 중이라는 거다.
거기에 더해 괜히 진짜 면담은 너무 잘해 학생들은 색안경을 끼고 동경은 눈빛으로만 릴리를 보고 있으니.
“슬슬 가서 도와드려야 하는게.......하, 쯧 저도 변했나 봅니다. 괜히 심술이 나서 가기 싫군요.”
“야, 너도? 나도!”
“후훗, 바네사도 여기와서 많이 변했지. 물론 나도 그렇고. 자~~~ 그럼 우리, 조금만 더 놀다가 도와주러 갈까?”
‘아무나 나 좀 살려줘!!’ 라는 아우성 속 오랜만에 낮술을 들어올리는 세 사람.
릴리에게 구원이 찾아오는 건 그로부터 무려 2시간이 지난 뒤였고.
그 뒤에도 숨통만 트였을 뿐, 릴리가 쉬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공포스러운 게 뭔지 아는가?
이건 어디까지나 과제 ‘계획표’ 상담이라는 거.
진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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