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존경 받는 교수님?
* * *
릴리는 제법 학생들을 꿰뚫고 있다고 자부한다.
당장, 릴리 역시도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고, 그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으니까.
‘학생들의 대다수는 사실 학점이 목표야.’
마력기초학이든 기초실습이든 그들에게 중요한 건 ‘기초’라는 부분이다.
어렵지 않은 수업.
그다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날먹할 수 있는 수업.
전형적인 릴리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인 셈이지.
‘사실 이런 얘들은 그리 큰 걱정을 할 필요 없어.’
애초에 그들은 릴리에게 관심이 없다.
릴리가 마녀의 도시에서 온 특급 강사라고?
어쩌라는 말인가?
그들에게 릴리는 그저 쉬운 강의를 하는 한 명의 교사일 뿐이니.
가볍게 일주일에 한 두 개 분량의 유익한 지식이 담긴 PPT와 Q/A시간을 가져주면 학생 수가 몇 명이던 간에 얼마든지 담당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른 걸 바라는 학생들이 있다는 점.
진심으로 마력에 대해 익히기 위해서 강의실의 문을 두드린 학생들
릴리의 거짓(?)된 스펙에 속아 넘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릴리’를 찾아온 학생들
이들이 릴리에게 있어서 골치 거리였다.
‘애매하게 능력도 재능도 있는데다가, 노력파. 한끝 차이로 길만 잘못 알려주면 인생 조지기 십상이 넘들’
이런 이들이 평범한 학생들의 틈 바구니 속에서 우글거리고 있으니.
릴리는 수업을 대관절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었던 거다.
그래서 OT를 가장해 그들은 알아보려고 했고, 어떻게 이들이 다른 학생들과 잘 동화되어 바르게 나갈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
그리고 그 결과는?
불가능이었다.
“기름이랑 물이랑 어떻게 섞어? 때려쳐.”
“어라? 유화제를 쓰거나 나노단위로 입자를 쪼개서 섞으면 이젠 섞을 수 있다고 하던─”
“우씨! 기름이랑 물이랑은 섞이지 않아!!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아무튼 그렇기에 릴리는 소라가 제안한 그 특별한 방식이라는 걸 기용해서 이 두 부류를 분리하기로 작정했다.
그들 각자의 욕구를 미끼로.
팀플이라는 함정을 설치해서 말이지.
* * *
“아아, 본 교수는 학생분들의 원활한 수업을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심했습니다.”
“어디서 순도 100%의 구라의 스멜이.....”
“교수님, 점심 먹을 때 고민하고 저녁에 튜브 보면서 잠깐 생각한 게 밤낮 가리지 않은 게 아니에요.”
“칫,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가 싫다고 했는데. 아무튼 그렇기에 본 교수는 학생들에게 특별 과제를 내기로 했어요.”
당연히 이 말이 나온 직후 수많은 아우성이 강의실을 가득 매웠다.
가뜩이나 한 강의에 수업 듣는 학생들도 많아 죽겠는데, 그야말로 강의실 전체가 울릴 지경.
소라는 후다닥 귀를 막아 살았지만, 릴리는 그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릴리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는 교탁을 탕탕! 내리치며 학생들의 입을 막고는.
보다 자세히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오, 특별 과제라고 특별 과제! 하든 안 하든 자유!”
“어음........교수님, 그러면 혹시 가산점이 있는 건가요?”
“아니, 가산점도 없어.”
“그럼 그딴 과제를 어느 미친 놈이 한다─”
“대신 시험도 없어.”
그 한 마디에 강의실은 일순간에 침묵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리고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릴리는 귀를 파고는 본격적으로 그 ‘특별 과제’란 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P/F 형식으로만 평가할 거야. Pass는 전원 모두 A를 줄 거고, 과제가 팀플인데, 팀장은 A+. 그리고 팀원 평가가 가장 좋은 한 명만 더 A+를 줄 거야.”
“그.....그러면 Fail은....”
“무조건 B. +는 가산 요소는 A랑 동일한 방식.”
“교수님?!! 그러면 과제 참여자는 무조건 B는 챙겨가지 않습니까?! 너무 유리하다고 봅니다!”
“뭐, 그렇지? 그래서 과제는 아무나 참여 못해.”
릴리는 빔프로젝트로 스크린 화면을 전환하여 과제에 대한 내용 및 공지 사항을 모두의 앞에 보여주었다.
“과제 내용은 창작물 과제야. 한 학기 내내 무언가를 만들어서 만든 과정과 결과물을 평가 받는 거지. 아까, 아무나 참여 못한다고 했던 건, 과제 계획서를 따로 받을 생각이라서 그래.”
릴리는 과제에 참여하고 싶으면 과제 내용에 따른 계획서를 작성해서 본인에게 기간 내에 제출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용을 보아, 유의미하며 진심이라고 보이는 이들에게만 과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당연히 창작물 과제인 만큼 필요한 경비는 모조리 릴리가 지원한다.
견적서만 때오면 대리 구매 형식으로 해줄 거라고.
“하지만 창작물 과제가 애들 소꿉장난은 아니잖아? 돈도 돈이지만, 필요한 지식도, 기술도, 그리고 마력에 대해 탐구하는 우리가 순수 기계를 만들 것은 아니니, 마력을 다루는 능력과 기교까지 필요하겠지.”
“...........”
“너희들에게 그런 게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아. 애초에 없으니까 이 학교에 있고, 내 수업을 들으러 온 거겠지. 당연히 팀플로 진행할 거야, 때문에 이런 어려운 길을 고른 학생들에게 난 특별한 혜택을 줄 것이고.”
특별한 혜택.
그건 바로 특별 면담과 과제 참여자만 들을 수 있는 세미나였다.
어차피 과제에 참여하면 출석 따위 고려할 필요도 없기에, 양질의 지식만 충족할 수 있으면 수업 따윈 불필요한 일.
릴리는 이를 개인 수업을 통해 채워줄 터이니, 수업 따위 들을 필요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사서 고생을 누구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몇몇은 오히려 눈을 번뜩이며 과제가 올라온 스크린은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몇몇의 존재에 만족한 듯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릴리.
그녀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름들을 걸러내겠다는 의지로, 최후의 일격을 내리꽂으니.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머저리들만 환영한다!”
* * *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력에 대한 이해와 마술간의 관계에 대한 강의를 마치니, 약 3할의 학생들은 강의실을 떠나지 않고, 함께 과제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싸 중에 인싸들.
더불어 진취심이 매우 강한 인싸들의 무리였다.
그리고 그 외에도 몇몇은 릴리와 소라를 찾아와 꼭 팀플로 참여해야 하는 건가 물었고.
릴리는 그에 대해 혼자 해보고 싶으면 상관없다는 말을 돌려주었다.
이 답변에 그들은 눈을 붉히면서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갔는데,
그 모습에 릴리는 만족한 표정을.
소라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언빠, 특별 면담이니 세미나니, 더 고생 아냐?”
“설마, 내가 사서 고생을 하겠니?”
“그럼?”
“과제에 관심 없는애들은 어차피 큰 걸 원하는 게 아냐. 딱히 마력에 진심인 것도 아니고, 걔들은 그저 기초 마력에 대한 수업을 원하는 것일 뿐이지.”
애초에 그들을 상대하는데는 굳이 릴리가 있을 필요도 없다.
유익한 강의 자료만 준비할 수 있다면 데지르나 바네사, 그리시아가 와도 상관없고, 여차하면 소라를 투입해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신경을 쓸 필요도 없고.
“수가 몇 명인지도 상관없지. 그냥 넓은 강의실에 채워두고 강의만 해주면 되니까.”
“그럼 과제 하는 얘들은?”
“그 넘들이 문제였지. 딱봐도 학기 내내 날 귀찮게 할 넘들이잖아? 뭐, 진심으로 자기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학생들이니, 나쁘게 보진 않지만 내 입장도 생각은 해줘야지.”
그런 그들에게는 말 그대도 양은 버리고 질의 강의를 제공하고자 하는 게 이번 과제의 취지다.
면담이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하겠는가?
아니, 아무리 자주한다고 해도 면담이라는 시점에서 릴리는 그들의 궁금증만 해결해주면 되고.
또한 여유롭게 관찰한 뒤, 혹 이상한데로 세고 있으면 바로잡아주면 될 뿐이다.
거기에 누가보아도 통상의 팀플과는 다르게 뭉치면 뭉칠수록 유리한 이번 과제는 가뜩이나 얼마 걸리지 않을 그 면담과 세미나의 횟수를 줄어둘 터이니.
더더욱 릴리에게는 간편한 일.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준비할 게 없잖아? 찾아와서 묻는 거에 답하면 될 뿐이니까!”
“우와.......능력이 있으면 개을러도 된다는 게 이건가?”
“그리고 학생 중에서도 나 같은 넘들 걸러낼 수 있는 게 이번 과제야.”
“언빠 같은 놈들? 무슨 의미야.”
“날먹충들 말이야. 날먹충들.”
이 수업에서 최고 효율을 내는 방법이 뭘까?
바로 B+를 노리는 거다.
과제에 참여는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서, 팀원들이랑 지지고 볶고는 잘해서 투표만 잘 받는 거지.
그러면 그야말로 처음 계획서를 제출하는 노력만으로 무려 B+를 따낼 수 있다.
심지어 출석도 없이!
“그마저도 방금 지나간 혼자서 진심인 애들한테 빌붙으면 계획서 제출하는 노력도 안 들일 수 있지! 이 얼마나 효율적이야?”
“개쓰렉...... 그런 얘들한테 학점을 준다고?”
“가져가라고 해. 인맥 관리나,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야. 어차피 지들 인생인데 내 알빠냐?”
오히려 릴리는 좋다.
그런 놈들이라도 강의실을 채우면 부담은 부담인데.
아예 수업에서 사라져주지 않은가?
학점 따위 퍼주든 말든 릴리에게는 손해볼 게 일절 없으니, 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거기다 그거 믿고 X같이 굴면, 마지막 과제 평가에서 빅엿을 먹여주면 그만이니.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우히히! 특히나 깝치다가 빅엿을 선사 먹었을 때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지 않냐?”
“어째 왜 언빠가 자기 같은 인간들 걸려주는 거라는 건지 알 거 같네......근데, 마지막에 한 말은?”
“아? 친하게 지내자는 거? 그건 강의 열기 전에 온 전화들 때문이야.”
어떻게든 릴리와 개인적인 접촉을 하려고 했던 시도들.
학생들 중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서 릴리와 친하게 지내라는 언질을 받은 이들이.
애초에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한국 이능대는 철저히 기업의 돈지랄로 만들어진 대학교이자 연구 시설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규슈집 자제들만이 허락되는 그런 엘리트 대학교인 셈.
물론 이미지 메이킹 및 학교의 질적 상향을 위해서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은 전액 장학금에 지원금까지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런‘돈’을 내고 있는 학생들은 대다수가 그쪽 부류라는 말이 된다.
“그치들이 수업에 진심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뭐, 그건 그렇지. 색안경을 좋지 않으니까. 근데, 좀이 쑤시는 건 똑같을 거야.”
릴리의 행보를 보면 딱봐도 정상인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데.
부모가 그런 인간이랑 친해지라고 한단다.
달가울 인간 따위 있을 리가 없지.
“어라? 이건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은─”
“걍 계속해.”
그런데 릴리의 과제에 참여하면 좋든 실든 릴리아와 면담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마지막 언질로서 그들에게는 부모에게 할 변명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방금 전 릴리가 말한 자기 부류의 인간들, 날먹충들을 끌어들이는 훌륭한 미끼가 되어줄 터이니.
“장담하지! 학생들 절반을 다시는 얼굴 볼일 없을 거다! 움하하하!!”
팔짱을 끼며 콧대를 세우는 우리 개쓰렉 마녀님.
하지만 소라는 가만히 이이기를 듣고 있다 보니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게 그리 말처럼 술술 풀릴지.......언빠는 항상 이상한 곳에서 미끄러진단 말이야.’
뭐, 결국 계획서 제출 기간 1주일 뒤에는 결과가 나올 일.
벌써부터 메일함이 시시각각으로 진동하고 있으니, 확실히과제 제출을 희망하는 학생은 언빠의 바람대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창작물 아이디어 훔치는 게 처음 내 목표였단 말이여! 이걸로 타락 마황 마녀 교수는 완성이다!”
“글쎄, 두고 봅시다.”
과연 이게 타락 마황 마녀 교수로 가는 길일지.
역대급 개고생을 사서하게 될 만인의 스승으로 향하는 길일지.
결과는 나와보면 알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