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만만한 지원군
* * *
나의 교육법을 들었던 데지르, 바네사, 그리시아는 떠나갔다.
그야말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자기가 여기 왜 왔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알아서 하세요.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고생”
“수고해~~~”
당연한 말이지만, 난 그들을 붙잡았다.
아니, 사람은 지금 뒤지기 일보 직전인데, 대관절 무슨 이렇게 허방하게 지원군이 사라진단 말인가?
난 그걸 용납할 수 없었고, 절대로 가지 못하도록 문 앞으로 가서 그들을 막았다.
더불어 최강의 필살기를 시전!
“서....설마 날 버리고 가는 거야? 그...그런 거야?”
이제는 내가 여자라는 자각 정도는 생겼다 이거야.
흑역사를 감수하고 나중에 화장실에서 구역질 몇 번 할 각오만 마친다면 이딴 애교 정도는 떨어줄 수 있지.
무엇보다 쟤 들이 가면 내가 나락행 직행 열차 1등석인데, 뭔들 못할까.
‘후훗! 알맹이는 좀 글러먹었어도 이래뵈도 얼굴 빨은 좀 자신한다고.’
성환이랑 철수가 그러지 않던가.
입만 쳐 닫고 있으면, 초 마녀가 아니라, 초 미소녀라고.
외모평균이 지극히 높아진, 지구에서도 릴리의 얼굴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먹힌다.
오죽했으면, 마황 시절에도 내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테라에 나돌 정도였고.
데지르도 솔까, 초반에는 내 얼굴에 한 방 먹었잖아?
그런 내가 애교를 부린다니. 감히 누가 거절할 수 있을─
“저리 안 꺼져요?”
“우에에엑!!!”
“.......우리 살아가는데 선은 지켜야지?”
마치 오물을 보는 것마냥 경멸이 담긴 시선들.
사랑하는 임을 보내는 황진이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니, 황진이라고 한들 나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도 그럴 게 황진이를 버리고 가신 임이라는 사람은 진달래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갔지.
황진이 본인을 무참히 짓밟고 가진 않았을 터이니.
“쿡!! 쿠엑! 으악!!”
나를 떠나가지는 임들은 날 무참이 짓밟고, 얼굴과 뒤통수에 깨끗하게 찍힌 발자국 도망만을 남기고 본인들의 일 터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남은 건 바닥에 덩그러니 쓰러진 강릴리 한 마리뿐
“에잇!! 언빠, 살아있나? 오버.”
소라는 어느새 왠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오더니 그런 날 꾹꾹 찌르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사....살아는 있다. 오버.”
“인간적으로 좀 심했던 거 같다, 오버. 언빠가 애교라니, 엄마도 반사적으로 주먹이 날아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버.”
“소....솔까 얼굴만 보면 깡패 아니냐?”
“그 말이 본인의 알맹이가 얼마나 글러먹었는지 반증하는 셈이지.”
“크으으.......”
사람이 알맹이가 중요하더니.
역시 얼굴로 밀어붙이는 시대는 지났다는 걸 다시한 번 깨달았다.
뭐, 아니면 그 세 사람만 나한테 시달려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백퍼 그쪽이지.”
“시꺼.”
여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원군이 사라진 건 분명한 사실.
하물며 그들은 내게 도와주겠다는 희망을 심어준 뒤 사라졌다.
이건 뭐다?
배신이다!!
난 눈에 불을 짚히기 시작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얼굴에 찍힌 발자국이나 지우고 말해. 하나도 위험이 안 살아.”
“복수해주지!! 이번 일만 끝나면, 예지랑 싸잡아서, 전부 응분의 대가를 묻게 하겠다.”
“예지 언니는 몰라도, 세 사람은 안 도와줬다고 그러다니, 양심 밥 말아 먹었구나.”
“에잇!! 이건 안 도와줘서 그런 게 아냐! 내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을 도로 가져가는 절망을 줬기 때문이지!”
“하여튼 갖다 붙이기는. 어라?”
그때 소라는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에 이를 켜서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녀는 내게 스마트폰에 온 문자를 내밀며 헤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하여튼 다들 츤데레라니까. 서류 작업 정도는 도와줄 거니까. 일 생기면 대신 연락달라는데. 어때? 언빠가 지금 실시간으로 복수를 외치고 있다고 답장해.”
하! 도와준다고?
이 강릴리를 뭘로 보는 것인가?
설마 그런 것 따위로 이번 일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리네! 내가 직접 보내겠어!”
타락 마황 마녀 교수 강릴리의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난 손가락을 빛의 속도로 두드리며 그들에게 겨우 이런 걸로 용서 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띠링! [곰탱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이모티콘]
띠링! [곰탱이가 양팔로 하트를 그리는 이모티콘]
띠링! [곰탱이가 눈에서 하트를 발사하는 이모티콘]
“..........언빠, 입이랑 손이랑 따로 놀고 있어.”
“아니......생각해보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얼굴도 밟을 수 있고 희망고문도 할 수 있는 거 같아서......”
“언빠.....”
“소라야.....”
난 조용히 말없이 소라의 품에 다가갔고.
소라는 그런 나를 품에 앉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 주었다.
“씨....씨X 학교 미친 새끼들. 실시간으로 수강 신청자 수가 1200명을 돌파했어.”
“이해해, 하물며 그거 기초학이랑 실습 둘 다지?”
“어....”
“그래, 그래. 상대가 너무 강했던 거 뿐이야.”
한 방에 100명씩 잡고 수업해도, 12개의 강의 분.
하물며 이게 두 종류가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24개의 강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고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는 거였다.
물론 강의 종료가 두 개 밖에 없는 만큼 진짜 준비 분량이 24개 씩이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마력 강의의 특성상 사실 100명을 한 방에 넣는 것도 가능할지가 의문.
여기서 그 학생들의 서류 작업까지 진행한다.
“..........언빠, 울지마, 적이 너무 강했을 뿐이라니까.”
“흐흑!!”
나 강릴리.......결국 몸(얼굴)을 팔아서 지원군을 얻었다.
엄마, 아빠 자식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장하죠?
* * *
릴리는 양심이 없다.
하물며 이전 일로 인해서 자존심까지 버렸다.
이로 인해 릴리는 완전체로 진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너 이제 교수야.”
“엉”
“........이제 학교 홈페이지에 니 얼굴도 올라왔다고.”
“엉.”
“당장 안 꺼져?!! 학생들 몰려와서 구경하고 있잖아?!!”
머리 위에 올려진 검붉은 슬라임.
그리고 슬라임에 머리 위로 팸플랫처럼 올라온 글씨.
[응애 교수를 도와주세요~~~(˚ )·º]
하물며 옷은 그래도 나름 차려입고 왔었던 전날에 비해, 대놓고 본래의 마녀 소녀스타일로 돌아온 릴리는 그런 꼬라지를 하고는 바네사의 개인실 앞에서 진을 쳤다.
당연히 현재 학교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는 강의를 연 교수님이 다른 신입 교수님 방에 찾아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여기저기 난리가 났고.
복도 끝에서는 벽에 숨어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로 이미 아수라장이니.
바네사는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마를 세수를 하듯 얼굴을 가리면서
동시에 손가락 틈사이로는 살벌한 눈빛을 릴리에게 보내며 아무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죽고 싶냐? 왜 하필 첫 타자가 난데?!! 황태자 도련님은? 그리시아는?!”
“황태자 도련님은 뒤졌고, 이제는 그냥 데지르지. 아무튼 그쪽은 싫어서, 제일 만만한 사람으로 찾아온 거야.”
“제일 만만.....아...아....혈압. 뒤꼴. 너 진짜 나한테 원수졌냐?!”
“아니! 대신 얼굴에 철판을 깔았어!!”
사실 얼굴 철판깔지는 만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굳이 바네사를 가장 먼저 찾은 게 그 이유.
데지르를 왜 먼저 찾아가지 않았냐고?
안 찾아갔을 리가 없잖아?
우리 데지에몽은 만능인데 말이야.
그저 찾아가자마자 발길을 돌렸을 뿐이지.
“저기, 너무 다가오시면 불편합니다만?”
“에이 튕긴다! 아직 일이 어렵죠. 제가 뭐 도와드릴 거라도 없을까요?”
“점심시간인데 저...저랑 오늘 식사라도 같이.”
“데지르 씨! 제 수업 조교가 오늘 늦는다고 해서 그런데 데지스 씨가 대신 와주시면 안 될─”
“머리가 있으면 핑계는 어제랑 좀 바꾸지 그러냐? 난 오늘 진짜 조교 땜빵 났거든? 나부터야 저리 꺼져!”
저런 상황에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남자들의 피눈물 어린 시선들
단언한다.
내 마빡에 바람구멍이 난다고 할지라도 저긴 가지 않을 거라고.
그리시아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해봐.
우리 그리시아, 솔까 사기거든?
들어갈대는 쫙 들어갔고, 거기에 나올 대는 좀 과하게 나와주시고.
하물며 태그로는 청순, 가련, 모성미, 유부남 킬러.....어음 마지막은 빼고, 여튼 그렇단 말이야.
그런 그녀를 지금처럼 점심시간에 찾아간다.
이건 이것대로 못할 짓이지.
애초에 그 때문인지, 벌써부터 주변 동려 여직원들의 바리게이트가 단단하기도 하고.
“난?!”
“솔까, 님도 나랑 같은 아싸과잖아. 자, 여기 마녀의 점심, 샌드‘위치’. 무려 2300원이나 하는 뇌물이다. 음료수는 아몬드랑 딸기 우유로 사왔는데, 뭐 먹을래? 참고로 난 딸기우유.”
“나보고 고르라고 하는 의미가 없잖아?! 그리고 니가 몰라서 그러는데, 솜털도 안 자란 너랑 다르게 난 대쉬 많이 받았거든? 누가 누굴보고 아싸라는 거야?”
오해하지 말지어다 중생들이여
허세가 아니고 진짜다.
바네사도 무척 예쁘긴 하고 나름 걸크러쉬한 매력을 어필하며 주변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틱틱거리는게 좀 다가가기 힘든 장벽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결국은 도와줄 거 다 도와주고, 해줄 것도 다해주는 사람이 바네사니까.
마황 시절에도 입으로는 욕하면서 맨날 라면만 먹는 내게 밥을 만들어 준 것도 바네사, 그 다음이 그리시아였지!
물론.
“그러니까, 내가 여기 왔지!”
“이런 개─”
“언빠!! 뚫었어?!!”
“어, 마침 뚫기 직전이야.”
그 와중에 도착한 소라는 이미 벽 뒤로 모여있는 인파를 지나 나와 바네사가 있는 곳까지 후다닥 달려왔다.
그런 소라의 모습에 한 번 더 이마에 십자주름이 돋아나는 바네사.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너......소라 알지? 학교에서 지금 나 다음으로 화제의 대상인 게 우리 소라인 거.”
능력이 되니 이곳에 오긴 왔지만, 소라는 이미 자체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게 랭커가 작정하면 돈을 얼마나 버는데, 그 와중에서도 한국 랭커.
거기에 자기보다 윗줄 랭커에게도 높은 재능을 가진 인재가 아직도 인터넷 방송에서 뛰어다닌다?
오죽하면 소라 인방의 회장님이 진짜 회장이 아니냐, 국가 정부가 아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라는 유명하고.
발할라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스코트화 시킨 이가 소라다.
이번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을 빼면, 실질적 어그로 만렙은 소라라는 의미.
“그런 제가 여기 왔어. 과연 구경꾼이 몇 명이 더 추가될가?”
“나중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바네스는 길을 비켜서고 문을 열었다.
그렇게 환호하면 방에 입장하는 나와 소라.
그리고는 바네사는 주변의 몰려든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다.
“다 꺼져!!”
뭐, 좀 소란스럽지만, 이러니저러니.
한국이능대학교는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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