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앨리트? 개막장 대학교
* * *
강릴리의 타락 교수 생활기.
제 1장, 날먹 수업.
“으음.......어떻게 해야 학생들 어그로를 끌 수 있을까?”
일단 방침이 결정된 이상, 강의를 여는 건 확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래야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낼름 훔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귀찮기 그지없는 공짜 수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될 수 있으면 학생들 수도 채워서 점수도 날먹하고, 아이디어도 날먹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수업을 열어야 학생들이 오냐는 거지.
“일단, 쉬워야 해.”
쉬운 수업.
내가 대학생일 때 선호했던 수업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 학점은 모두에게 중요한 관심사일 터.
굳이 어려운 수업을 들어가며 시험기간에 고생을 따블로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수업은 무조건 쉬운 내용이 좋지.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너무 쉬운 것도 곤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곳, 한국 이능대학교가 돈으로 떡칠된 앨리트 대학이기 때문이지.
“의외로 학생들 보면 학구열이 높단 말이야. 아니지, 의외라고 생각하는 건 나 밖에 없겠구나.”
공용 도서관에도, 그리고 학교 단지 내 카페에도 학생들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귀를 열어 들어보니, 상당히 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있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이랴?
훈련장에는 더더욱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실기 시점장 전부를 훈련장으로 겸해서 쓰고 있는데도 따로 사설 훈련 시설을 찾는 학생들로 있을 정도였지.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는데
그도 그럴 게 현시대는 그만큼 힘이 중요한 시대.
범죄에 살아남기 위해서도, 향후의 미래를 위해서도 힘은 필수적인 교양이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힘을 주고, 가르쳐 주는 대학이 있다?
진심이 아닌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지.
즉, 이런 높은 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채워주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
아니, 정정.
이런 수준 높은 학생들의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강의명의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난 우선 우리학과와 다른 학과에 어떤 수업이 있는지 면밀히 알아보기로 하고, 컴퓨터.
그 안에서도 이능대의 교직원 아이디로 접속해 각 과목의 올라온 강의 계획서와 평가 계획서들을 면밀히 살펴보기로 했다.
“어디어디, 평가 비율은 달라도 다들 역시 이론에 실기까지 평가를 보는 구만, 거기에 이건 뭐야? 식충생물과 마력의 관계의 분석? 고대마술의 범위에 대한 고찰 및 연구? 시발, 이게 강의 제목이냐, 논문 제목이냐? 하여튼 아직 정립이 안 되있으니, 막 싸지르는 구나.”
전에 언급했든, 마술이든 무술이든, 그박에 모든 이능이 아직은 미개척 영역이다.
당연히 정형화된 학문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는 실정이지.
그렇기에 교수들은 각자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본인의 수준은 어필하기 위해서 상당히 심도 깊은 수업을 열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강의 계획서란 마지막 부분에 적힌, 강의 수강 전 이수해야할 과목.
“학교 수준 겁나게 높네. 아직도 연주네 사람들 나한테 마력 조작 배우러 오는데.......”
여긴 마력 조작 정도는 기본 중에 기본으로 깔고 가고.
거기에 더불어 기초 마술에 대한 지식, 실전 수업을 소화할 정도의 역량이 없으면 그냥 수업을 들어오지 말라는 수준이다.
심지어 이게 거의 모든 수업에 통용되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영어 수업을 기본 배이스로 깔고 가는 대학들처럼 학교의 클라스라는 거겠지.
난 절로 감탄하며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짝!짝!짝!
“대단 허이. 우리 학생들, 모두 하산해라.”
바네사, 그리시아.
이 미친 할망구들.
뭐라고?
학교 수준이 왜 이따위냐고?
지랄 염병, 하여튼 간에 꼴에 눈만 높아가지고 학생들 괴롭히지나 말 것이지.......
난 결국 의자 등받이에 푹 몸을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쓰발, 이러면 내가 뭘 가르친다고 한들 의미가 없잖아.”
나도 똑같이 다른 교수들처럼, 뭐, 흑마술과 인첸트 공학에 관한 고찰과 연구 이딴 걸 올려?
근데, 그런 걸 신입 교수가 올린다고 한들 학생들이 들으러 올까?
전혀, 당장 나 같아도 왠 꼬맹이가 귀여운 장난질이냐면서 쌩깔 것이다.
“후......생각하자 생각해. 강릴리 인생, 날먹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분명 찾아보면 빈틈이 있을 것이다.
난 다시금 인중을 손가락으로 잡고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지나가니.
“그래! 틈새시장!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거야!!”
생각해보면 나도 일단은 교수 직함 달고 있잖아?
아무리 다른 교수들 보다 신용은 없다고 해도 일단은 교수 아닌가 교수.
거기에 망할 예지 년이 조작해놓은 이력서가 어느 정도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후히히히!!! 멋들어지게 갈 필요 없든 거야. 알아서 상상하라고 그래. 난 날로 먹을 테니까.”
난 당당하게 컴퓨터에 내가 시작할 강의의 재목을 적었다.
그 이름 하여 ‘마력기초학’!!
“말이 기초지, 기초 기준을 누가 정하겠어?”
학생들은 이걸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말 그대로 교수가 정립하는 새로운 기초.
본인들이 모르는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
더불어 의외로 자신의 바닥을 검증해볼지 모르는 기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지.
“심지어 이건 우리학교 학생들 다 할 줄 아는 거 잖아? 날로먹기 최고의 수업이라는 거지!!”
할 수 아는 걸 가르치면 학생들도 알아서 따라와 줄 것이고, 나도 수업 준비도 대충해도 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
난 이에 기새를 올려 하나의 수업을 또 열었다.
“이건 마력기초실습! 크으......지렸다. 다른 교수들 십원짜리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야말로 날먹 수업!”
어차피 한 학기만 버티면 되지 않은가?
당당히 점수 쌓아서, 난 잘리는 게 아닌 내 발로 나가는 거라는 명분만 세우면 그만이다.
실상 학생들 수준이 높아서 가르칠 것이 없었다고?
완전 교수가 학생들보다 못하다고?
수업이 성의가 너무 없어서 학생들이 배운 게 없다고?
알빠냐?
난 타락 마녀 교수 강릴리다.
그야말로 월급 루팡의 대명사가 될 존재.
이 정도는 기본이지.
“은근히 어그로 성도 좋아. 학생들은 나름 커트라인까지는 모이겠지. 뭣하면, 양쪽에 모인 거 하나로 합쳐도 그만이고! 이야, 내 머리도 의외로 쓸만하잖아?”
자뻑이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콧대가 승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난 강의 2개를 개설하고 강의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계획서라고 해봐야 어차피 뭘 언제 가르치고 수업 전반을 어떻게 운영해 날갈 건지가 전부.
그러나 중요한 건 하나는 있었으니, 평가 방법이었다.
“평가라, 왕도는 중간 35 기말 35보 실기 20, 출석 10이겠지?”
하지만 왕도는 재미었다.
어그로도 없고.
난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실기 90 출석 10! 이론? 때려쳐!”
완폐아 교수 되는 이 몸께서 다른 교수들처럼 지루한 시험지나 만들고 있을 거 같은가?
걍 전부 실기로 퉁치는 거야!
출석은 내가 감히 교실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꼽잖아?
그러니까, 넣은 거고.
“완벽해!”
그야말로 날먹.
1회성 치트키.
다른 교수들은 눈치가 보여서 할 수 없는 글러먹은 교수의 길!
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학생들만 적당히 모이면 끝! 중간에 과제하나 던져서 아이디어 훔치고, 그걸로 대충 연구 성과 올려서 점수 챙기고 월급이랑 돋 받고 학교를 뜬다!”
난 한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 * *
“기초학! 떴냐?!!”
“기초실습 뗬냐?!!”
“떴다!!”
“만세!!! 교수님 만세!!”
학생들 수준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릴리는 떡칠한 돈과 삐까뻔쩍한 학교의 외관, 그리고 열성적인 학생들의 모습 때문에 이곳이 초특급 앨리트 대학인 줄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못했지.
그도 그럴 것이 이능은 미지의 영역이다.
동시에 재능이 생각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더불어 그만큼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게 어려운 분야이다.
데지르가 살던 테라처럼 교육 방식이 그동안 정립된 게 있으면 모를까.
지구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수련은 몰라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건 아직 극히 어려운 분야라는 뜻이지.
그리고 그 어렵다의 의미에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도 포함된다.
“다른 교수들은 인간도 아니야. 산수는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쳐야지, 지들 대갈통 속에 든 것만 토해내면 우리가 알아듣냐고!”
“산수 너무 많이 쳐줬다. 숫자지 숫자. 수업만 들어가면 무슨 외계어를 하는 건지 원.....”
“결국 뒤지로록 외우고, 실습한다는 것만 손가락 부러질 때까지 하는 수 밖에. 아니면 금수저들처럼 1대1 괴외를 받던지 따라가지”
무지막지한 학구열?
틀렸다.
그렇게 안하면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런 모양이 나오는 것이다.
하물며 어렵게 입학한 학교인데, 차마 학교에서 퇴학당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것이지.
“장담하는데, 마력 조작 할 줄 아는 놈 학교에 절반도 없을 걸?”
“거기서 할 줄만 하는 놈들이 또 절반이겠지.”
“아버지한테서 들었는데, 아버지가 다니는 마녀의 도시에는 그거만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특별 직원이 있데, 심지어 수준이랑 직급 존나게 높다던데? 연구 소장이라던가?”
“헐....소장이? 시발 그럼 우리들은 뭔데?”
“그래서 여기가 개막장이라고 하잖아.”
기실 이는 비단 한국 이능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계의 모든 교육 기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지.
체계화 되지 않은 학문과 부족한 지식인, 그 이상으로 더 부족한 교사진.
그나마 관련인들을 데려와 어찌저찌 꾸역꾸역 틀어막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의 과도기인 것이다.
실제로 학교 또한 이 문제를 알고 있고, 여기서 갈려나가는 학생들을 버리고 버텨내는 학생들만 그 다음과정으로 넘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거르고.
다시 수거하고.
또 거르고 다시 수거하고를 반복해서 ‘진짜’를 선발.
그들을 중심으로 이능이라는 학문의 체계화를 시작할 셈이었던 것이지.
당연히 블랜딩머신에 우수수 갈려나가는 학생들에게는 깊은 유감을 표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진짜’가 아니더라도 빛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많다.
학문이란 기초에서 한 장 한 장씩 쌓아 올라가는 것이지 않은가?
그 시작만 끊어주면 할 수 있는 이들은 충분이 있는 것!
그리고 지금
그 시작의 문이 열렸다.
“가자!! 이제야 제대로된 인간이 교수로 왔구나!!”
“이력서 보니까 이 사람 마녀의 도시 출신이래!! 대박이다!!”
“좋았어!! 이제 우리도 노력의 결실을 피는 거야.”
그러나.
“앗, 수업 다 찼다.”
수강신청은 언제나 전쟁인 법.
“...........”
“............”
“...........”
학생들에게는 다시금 깊은 유감을 표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