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타락 마녀 교수 강릴리 각성
* * *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 입사 3개월만에 무성과 해고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이곳이 능력지상주의, 결과만을 요구하고 점수제라는 경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해도.
연구라는 건, 그리고 프로젝트라는 건 결코 혼자만 할 수는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아예 혼자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실제로 여기 사람들 모두 각자의 점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 연구나 프로젝트 쯤은 하나씩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 역시 성과가 없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보다 높은 점수를 위해서는 눈에 띄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흔히 대형 프로젝트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비단, 머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각자에게 배당된 연구를 한 대 모으기 위해서.
당연히 나 역시 이런 제안을 받았어야 정상이다.
신입이라 그런지 내게도 나름의 평균적인 연구비가 제공되었고.
여기 온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능력을 입증한 인물들인만큼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우리, 이미 같이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너도 어때? 생각 있어?’
같은 권유를 받으면서, 꼽사리도 끼고 점수도 놈 날로먹었어야 했지.
겸사겸사 이런 과정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배우고 말이다.
하지만, 난 달랐다.
──푸욱!!
“우씨! 나....난 절대 아싸가 아냐! 이...이건 순전히 직장 따돌림 때문이라고!”
분노의 포크질로 죄 없는 돈가스를 능지처참하며 난 울쌍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은 대학 내의 식당
내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바로 앞 테이블에는 교수진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바로 뒤에서는 여대생들이 모여 하하호호 거리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마치 철통 같은 접근 금지구역만이 존재하고 있으니.
시끌벅적함 속의 고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만 홀로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난 노력했다.
나라고 모를까? 내가 낙하산이라는 걸.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여길 거라는 걸 알았고, 나 역시도 새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때문에 우리 동생의 같이 밥 먹자는 제안까지 뿌리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억지로 그려가며 같은 학과 사람들에게 부탁했지.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겠냐고.
오늘 처음와서 그런데 식당이 어딨는지 가르쳐 줄 수 있냐고.
시간 좀 괜찮으냐고.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으래 그러한 성의 없는 거절이었으니.
‘죄송합니다. 제가 선약이 있어서.’
‘아, 제가 점심을 안 먹는 주의거든요.’
‘오늘은 바빠서. 다음 기회에 부탁드립니다.’
때문에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터벅터벅 혼자 걸으며, 초라하게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식당까지 왔고.
이렇게 혼밥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치이........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물론 그 심정 이해는 한다.
불편하겠지.
낙하산도 낙하산 나름이라고 무려 이사장 특채를 타고 이곳에 착지한 게 나다.
그것도 이사장이 보통 이사장이 아니라 한국을 주름 잡는 대표적인 플레이어.
세계에서 어지간한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플레이어 연합. 발할라의 대표인 그녀의 추천으로 떨어진 사람이 나라는 거다.
괜히 엮였다가 봉변이라고 당하면 큰 일이니 차라리 관여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겠지.
거기에 어차피 이곳의 시스템은 개인주의를 용납하는 곳.
딱히 날 혼자 둔다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뭐, 특채면 얼마나 잘났길래 특채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아니꼽기도 했을 터이니.
이런 태도.
이런 무시.
정말로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한들 지금 내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니.
난 결국 울쌍을 지으며 다시금 돈가스 한조각을 입에 우겨넣었다.
“젠장.......”
설마 정말 이대로 혼밥 90번.
아니, 실질적으로 심사까지는 이제 2달 반이 남았고, 하루 두 번 정도는 대부분 여기사 식사를 마친다고 하니.
얼추 150번 정도 혼밥을 하고 해고를 절차를 밝는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필시,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온갖 비웃음을 당하겠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호!!’ 거리는 예지의 모습이 벌써부터 선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제대로된 직장 생활도 수행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실테고.
성환이는 그러면 그렇지라 말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철수는 배꼽까지 잡고 웃음을 터트리겠지.
유리는 분명 따뜻한 말로 위로를 전하겠지만, 특유의 성격 탓에 중간중간 내 가슴에 팩트를 쑤셔 박을 테고.
난 하나의 걸래가 되어 모든 것을 하얗게 불태운 체, 덩그러니 홀로 집에 남게될 것이다.
“우득! 나 강릴리의 이름으로 절대 그런 건 용납 못해!”
잘려도 내가 잘린다.
나가도 내 발로 나갈 것이다.
무조건 이 3개월 버티고 버텨서 당당하게 내 손으로 사표를 던지면 던졌지.
거기에 그들이 바라는 게 애초에 이런 거 아닌가?
내가 제 뿔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거.
자존심 때문이라도 절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난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해쳐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쫒겨난 게 아닌, 내 발로 나간 거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연구를 해볼까? 아냐, 나 같은 놈이 이제와서 무슨 연구냐? 때려쳐”
연구는 뭐 아무나 하는 건가?
하던 사람이 하는 일이지, 난 연구 같은 건 해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기껏해야 대학교 졸업과제와 논문을 해본 게 전부이지.
나름 학생 수준에서는 맞췄다고 생각하지만, 교수 수준으로는 어럼도 없는 완성도였는데 그런 내가 이제와서 연구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것이다.
거기에 이곳을 돈을 떡칠해서 만든 한국 이능대 아니신가?
수준이나 지식의 깊히는 제체두고 여기에 어울리는 완성도를 보여줄 자신이 없다.
때문에 연구는 기각.
그렇다면 그다음은 프로젝트
“내가 있는 곳이 응용마술학과니까. 으음.....마도구 같은 것도 우리 학과 분야겠지? 마도구는 좀 만져보긴 했지.”
마도구.
말 그대로 마술을 이용한 기술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물건.
뭐, 정확히 따지면 응용마술에서는 단순한 마도구 뿐만이 아닌 마술 그 자체를 현대의 과학과 인프라에 적용하는 연구 전반을 말하는데.
자세한 건 일단 제쳐두고 마도구는 제법 만들어본 적이 있다.
데지르를 납치할 때 썼던 릴리ver 전화기 파괴기.
데지르에게 툭하고 던져줬던 릴리ver 코스프레 가면
데지르 걱정되서 줬다가 다시 돌려받은 릴리ver 보조 배터리.
으음.......어째 전부 데지르랑 연관된 것 같기는 하지만, 여튼
마도구는 제법 만져봤다고 자부한다.
애초에 다크엘프의 마을에 있을 때도 타칭 황금손이라 불리우며 여러 마도구를 수리해주신 게 이 몸 아닌가?
대마녀 둘을 사로 잡았을 때도. 지극히 사심이 잔뜩 담긴 구속구도 내 수제였던 거니까 마도구 제작은 좀 친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막상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도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잡해. 3개월이나 걸쳐서 만들만한 물건은 아니었어.”
솔직히 말하면 손장난 같은 거였지.
물론 뛰어난 마력 센스 덕분에 그 손장난에 수준이 높긴 했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프로젝트라 불릴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무릇 교수가 만들었다고 할 만한 정도의 작품이면, 연주에게서 쌔벼왔던 사이비 점집용 마녀 구슬 정도는 되어야 할 터.
애석하게도 내게는 그런 수준의 마도구는 만들 자신이 없다.
있는 걸 개량하는 거면 모를까.
“연주한테 손 좀 빌려달라고 하면 해결되긴 하겠지만.”
난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그것대로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이번 시련은 내가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해쳐나갔을 때만이 그 의미가 있는 거다.
그리고 솔까, 연주도 못 믿어.
걔도 예지 못지 않게 어떻게하면 날 골릴까 항상 고민하는 년인데.
아마 부탁하자마자, 입꼬리 씩 말아올리면서 3개월 그 이상으로 우려 먹을 걸?
그 짓을 하느니, 때려치고 말지.
“아이디어....아이디어가 필요해.”
지금 내가 해매는 건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그 자체를 모르니까. 길이 보이지 않는 거지.
연구비도 있겠다.
누가 최소한의 지침표만 주어도 어떻게든 시작은 해볼 자신이 있는데, 문제는 그 지침표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대체 이걸 어찌하면 좋으리오......에? 잠깐만, 아이디어?”
난 그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디어면 구할 구석이 있잖아?”
아니, 차고 넘치지.
여기가 어디인가?
대학교 아니신가?
하물며 난 누구?
예비 따까리가 좀 붙기는 해도 엄연히 교수 아니신가.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학생들 등쳐먹으면 되는 거였어!”
지금 이 순간 쓰레기 릴리가 다시 한 번 깨어났다.
말 그대로 학생들 아이디어 훔쳐먹는 전형적이 쓰레기 교수가 되는 것!
어차피 교수 아니신가?
과제 같은 걸 빌미로 아이디어 훔쳐올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나중에 이게 들키면 좀 욕을 먹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건 나중의 내가 해결할 일이고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뭣하면 우연이었다고 퉁쳐도 그만이고.
“거기에 수업을 열어서 운 좋게 학생 수도 채우면 수업 점수도 챙길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
콩 먹고 알 먹고.
난 참혹하게 살해당한 돈가스를 포크로 들어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흐흐흐......날 이렇게 만든 건 전부 너희들이야.”
강릴리, 지금 이 순간 타락 마녀가 된다.
어차피 테라에서는 마황이었던 나 아니던가.
이 정도는 양반이지.
“타락 마녀, 아니 타락 교수 릴리! 간다!! 학생들 등쳐먹는 최악의 교수가 먼지 똑똑히 보여주지!! 반드시 점수 날로 먹고 월급 루팡이 되고 말겠다!!”
그렇게 후다닥 입에 남은 돈가스를 쓸어넣으면서
예지에게 복수를, 모두에게 타락 마녀 교수 강릴리의 탄생을 알렸다.
그렇게 일단은 내일부터 나빠지기로 했으니 오늘은 깨끗이 식판을 정리하고 나온 나.
참고로 그 뒤 식당에서는
“졸귀”
“입에 소스 붙은 거 봤냐? 할짝이고 싶다.”
“미친 새끼. 내꺼거든?”
“도른자 새끼들. 아청법은 뭐하냐? 이런 놈들 안 잡아가고.”
“근데 신입생이면 성인 아니냐? 아청법 들어감? 합법 로리 같은데.”
“합법 로리 이지랄 거리고 있노. 여기 학년 구분도 마땅치 않은데, 어린 애들 졸라 많이오잖아. 딱봐도 중딩이더구만, 아......마술학과 놈들 부럽다. 저런 신입생도 받고”
같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고 한다.
뭐.......좋은 의미로 타락 마녀 교수 강릴리의 이름이 알려지는 순간이었으니,
릴리는 만족했을 것이다.
아, 물론.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과 댓글을 보고는 알아 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긴 했지만.
TMI) 릴리ver 전화기 파괴기는 신세대 EMP 군사 물자 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