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입사 3개월만에 해고 당하는 법!
* * *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유럽식 건물들
화려한 분수대와 함께 싱그러운 산책로.
샹들리에가 가득한 파티장.
화려한 교복.
검을 찬 학생들
하늘을 날아 등교하는 이들
뭐......이런 걸 상상한 사람은 없겠지?
혹여나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도 그럴 게 한국 이능대학교는 말 그대로 대학교.
그저 대학교일 뿐이거든.
“좀 싱겁네.”
“대체 뭘 기대한 겁니까?”
“너네 학교요.”
“.........”
많은 것이 함축된 그 말에 데지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뭐, 사실 이상한 건 아니다.
우리 모두 알잖아?
여기 대한민국이다.
유럽이 아니고, 하물며 판타지도 아닌 동네.
현대 사회란 말이다.
비록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세상으로 변하긴 했다지만,
그 감성을 모두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 이제 와서 사는 모습이 바뀔 리 만무하지.
우리가 도착한 한국 이능대학교는 지극히 대학교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니, 뭐, 약간 추문은 더하면 돈을 좀 많이, 아주 많이 쳐바른 대학교?
딱 그 수준?
학생들의 나잇대가 상당히 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두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고.
건물 또한 세련되긴 했어도 배움터란 점을 감안하여 절제한 탓에 굉장히 현대적일 뿐이었다.
당연히 검을 찬 학생도 없고.
하물며 날아다니는 학생도 없었다.
아, 좀 빨리 달리는 학생은 드문드문 보이네.
하지만 실망한 나와는 다르게 소라는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좋아!!”
“넌 그렇겠지.”
알다시피 소라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뭐, 대학을 나올 필요도 없이 진작에 본인 살 길을 찾은 것도 있고.,
애초에 본인 자체가 공부머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단, 그렇다고 해도 내심 대학에 대한 로망까지 없던 것은 아닌지라.
지금 소라는 말 그대로 신입생의 파릇파릇한 분위기를 방출하고 있었다.
거기에 또 좋아하는 사람 둘이 있으니.
“우리도 마음에 드는데? 뭐랄까, 테라 쪽은 학교라기 보다는 사교장 같은 느낌이 강한데, 여긴 그렇지 않아서 좋아.”
“자유로운 배움터 같은 분위기. 난 엄청 좋은 거 같아.”
바네사와 그리시아.
그녀들은 매우 이곳을 마음에 들어했다.
애초부터 지구의 대학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현대 문물에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익숙해진 만큼, 이런 저런 시설들 모두 최신식에 고급으로 도배된 이곳은 말 그대로 그녀의 이상적인 대학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울쌍을 짓고 있는 건 나뿐이라는 소리.
난 왜 이러냐고?
대학생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곳이 얼마나 지옥인지를
“에이, 언빠, 우리 학생으로 온 거 아냐. 예비 교수로 온 거지! 팀플이나 레포트 같은 것도 없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야, 학생보다 곱절로 힘든 게 교수님이야. 알간?”
어디서 저런 막말을.
전국에 계신 모든 교수님들
제가 대신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는데, 대학의 교수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분들이 아니다.
그저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을 뿐이지, 본업은 어디까지나 학자, 연구.
준비하는 논문과 프로젝트는 한낱 학생이 하는 과제나 논문 따위와는 비교해서도 안 될 수준이며.
그 밖에 심사나 참여해야 하는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당연히 그런 요구치는 학교의 수준에 따라서도 올라가는 법이고.
그런 이런 겁나게 삐까 뻔쩍한 대학교에 예비 교수요?
벌써부터 헬게이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난 바로 몸을 돌렸다.
“난 탈주한다. 잘 있어라.”
당연한 소리지만, 바로 잡혔다.
* * *
참으로 유감스러운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나와 일행들이 함께하는 건 어디까지 학교 정문.
그러니까 딱 미리 나온 안내인을 만나기 직전까지였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던 게, 우리는 여기 일하러 온 것이고.
대학교라는 이름답게 학과별로 구역과 건물을 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
데지르는 무공이나 무술을 배우는 쪽으로 향해야 했고.
소라는 눈물을 머금으며 정령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그리고 나와 바네사, 그리시아는 거의 같은 구역으로 갔지만, 최종적으로는 정통과 응용으로서 서로 다른 길을 가야만 했다.
나는 응용 마술.
둘은 정통 마술이지.
굳이 비유하자면 물리학과와 공학과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은 정통이라는 이름 아래 마술을 학문으로서 심도 깊게 연구하는 분야이고.
나는 숙련된 마술사를 양성하고 마술 자체를 이용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릴리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굉장한 실력의 마술사라고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아, 그런가요?”
“예, 마녀의 도시의 연구 실장도 겸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내인의 말에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망할년.
남의 이력서를 어떻게 조작해둔 거지?
아니 애초에 이거 불법 아냐?
난 예지에게 분노와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더불어 눈 앞의 안내인에게는 무지막지한 부담을
그는 안내하는 내내 마치 나를 신으로 보는 것 같은 찬양의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뭘 했다더니
예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나를 직접 언급하며 칭찬했다더니 이러면서
거기에 드문드문 나오는 우리 아부지와 어무니의 이름들 속에서 한 번 더 경악을.
어디 바쁘게 사시나 싶었는데, 여기서 초빙 강사로 강의도 몇 번 뛰셨던 모양이었다.
대체 우리 가족이 언제 이렇게 된 거지?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그는 한참이나 입을 놀리고는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사장님의 눈을 의심하며 릴리 씨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지요.”
“당연하죠. 툭 까놓고 낙하산인데.”
난 오히려 당신이 이상해.
예지가 세뇌라도 시켜둔 양반인가?
뭔 놈의 찬양 15분 렙으로 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치피 이능력은 아직 밝혀진 분야가 적어요. 때문에 저희는 심사에 따른 점수제를 도입하고 있죠. 능력이 없다면 어차피 여기서 쫓겨날 텐데. 무슨.”
“........네? 시...뭐요?”
“심사요. 릴리 씨처럼 능력있는 분들이 굳이 귀찮게 학생들 상대하지 않아도 되겠금 하는 제도이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의 시험처럼 교수진들과 연구자들에게는 3개월에 한 번 성과에 따른 심사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그동안 한 것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경과를 보고하고 그에 따른 점수를 받는 식.
당연한 말이지만 점수가 부족하면 경고를 시작으로 서서히 해고와 가까워지고.
점수에 따른 연구비의 차등 지급과 진급에도 차별이 있어서 의외로 해고 걱정 뿐만이 아니라 상위권의 점수 경쟁도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초 능력지상주의인 셈.
“그....그럼 수업만 하면 점수는 꽁으로 받는다는 말이군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관심 있으신가요?”
“물론!!”
3개월 만에 해고라니.
인간적으로 여기 반쯤 끌려온 거긴 하지만, 그런 치욕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나, 그런 타이틀을 따면 대체 주변에서는 날 뭘로 보겠는가?
‘아, 생각해보면 깎일 평판도 없구나. 걍 때려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가 일단 넣어두었다.
뭐, 무튼 계속해서.
“학생들을 좋아하시는 거군요! 존경스럽습니다.”
“그만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러면 무분별하게 수업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또 수업의 질도 떨어질 테고.”
학생이 일정 수 이하면 수업 점수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뭐, 말 그대로 폐강이지.
단, 학교의 시설이 워낙 빵빵하기에 점수를 신경 쓰지만 않으면 수업 자체는 할 수는 있다고 한다.
대신 이 경우에는 점수만 포기하는 게 아닌, 무분별한 학생 학점 남용을 막기위해서 수업 보고서 및 체점 보고서, 학생 성과 보고서 등 많은 걸 제출해야 한다.
“그래도 수업은 마음대로 여실 수 있어요! 취미로 하시기에는 문제 없을 겁니다! 보고서 양식은 제가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하겠냐?!”
“예?”
“아...아니, 그 뭐랄까? 의무 수업 같은 건 없어요? 학생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 같은 거.”
난 최대한 날로 먹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의무 수업.
어지간한 학과라면 그리고 이곳이 대학의 틀을 따른다면 필시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 수업은 학생들이 무조건 들어야 하니 수업 인원을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을 테고.
실제로 안내인은 당연히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 쪽에도 있고, 저희 쪽에도 의무적으로 개설해야 하는 수업이 학과별로 있습니다. 나름 연구 시간을 강제로 뺏은 대가인지, 점수는 꽤 주는 모양이구요.”
“좋았어!!”
“근데 이미 다 찼어요.”
“제기랄!!!”
난 천국과 지옥을 단 2초만에 추파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보여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안내인.
그를 보자 괜스레 예지가 원망스러웠다.
난 그에게 왜 그렇게 날 믿는 건지 물었는데.
그는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는 개인적으로 이사장, 예지를 무척 존경한다고 말했다.
무려 발할라의 전신, 연맹을 일으켜 한국을 구한 영웅이고.
또 수많은 랭커들이 한국에서 빠져나갈 때도 발할라를 결성해 나라에 남았던 게 그녀라면서
“전 성녀파 입니다!!”
“성녀파?”
“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 분의 플레이어가 있지 않습니까? 이사장님! 충무공! 그리고 모선의 주인! 모두 발할라 소속의 위대한 영웅 분들이시죠! 전 이중 예지님이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무력으로만 따지면 약간 하자가 있는 건 사실이다.
개인 전투력에서는 예지보다는 철수가 앞서고.
집단 전투에서 모선은 그냥 반칙이니까.
하지만, 그 가운데 밸런스가 잡힌 게 예지인 것도 사실.
또한 그녀의 본질은 어차피 버퍼다.
말 그대로 성녀니까.
“발할라의 대표이기도 하시죠! 결국 다들 발할라 소속이시니, 대표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건 맞죠.”
결국 예지가 대빵이긴 하니까.
뭐, 대표와 대빵은 조금 다르겠지만.
“전 그런 이사장님의 눈을 믿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그럼 제가 기념품이라도 드려야겠네요.”
“기념품이요?”
“네, 제가 예지, 아니 이사장님에게 부탁해서 당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겸사겸사 소중한 걸로 하나 받아와 줄게요.”
그래 소중한 거.
주로 날 이곳에 임명한 손가락이라던가.
쟤 새끼마냥 소중이 여기는 황금창이라던가.
그도 아니면 예지 본인들.
.........썩을 년
이 원한, 결코 잊지 않으리라.
안내인은 이런 내 말에 감격이라도 한 듯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뭘 그정도 가지고! 반드시 가져올게요! 두들겨 패서라도!”
“예이, 농담도, 이사장님을 어떻게 두들겨 팹니까? 하하!”
“그렇죠? 하하!”
뭐, 두고보면 알겠지.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으로 내게 배당된 방과 방의 개인 출입 카드를 걷내받은 것을 끝으로 안내는 막을 내렸다.
난 잠시 숨을 고르고 개인 방이란 놈에 들어가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이전의 보았던 교수님의 개인실과 상당히 비슷한 곳이 준비되어 있었다.
뭐, 지금 당장은 기본 교재와 연구자료만 있어, 이후 주인에 따라 바뀔 여지가 상당히 많긴 했지만.
또 옆에 문이 있어 들어가보니, 간단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방 또한 있었다.
덕분 난 바로 버릇처럼 침대에 몸을 던지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는데.
나의 경우에는 안내가 매우 늦게 끝났던 건지, 소라에 할머니 둘, 그리고 데지르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언빠! 밥 먹자! 여기 밥 엄청 맛있데!]
[뭔가 이상한 눈으로 절 쳐다보는 분이 많군요. 식사는 두 분께서 하시길 바랍니다. 여기 분들이 먼저 식사를 권유해서 피하기가 곤란합니다.]
[야! 예지한테 항의 전화 걸어! 여기 책이 뭐 이런 거 밖에 없어? 요즘 애들 이런 거 배우니?]
[미안, 바네사가 눈이 높아서 그래. 그래도 책 보충은 좀 필요하긴 하겠다.]
다들 생각보다 잘 지내는 모양이다.
난 겸사겸사 바로 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당신의 천사, 성녀입니다. 우리 마녀님 출근은 잘 하셨어요?”
“넌 뒤졌다.”
“네? 갑자기 무슨 개소─”
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예지의 운명은 다음시간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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