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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95화 (95/116)

〈 95화 〉 레이드 시작

* * *

레디........액션

* * *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혈무 속에서 정신을 차린 엘프들과 카오스 엘프들.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깨어진 하늘과 그 안에서 빛의 기둥을 따라 내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당연하지만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붉은 갑주를 두른 기사도 있었고, 자신들과 같은 엘프도 있었다.

전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검사와 전사도 있었다.

세상과 동떨어졌던 카오스 엘프들은 몰라도 다른 엘프들은 나름 알브 헤임의 거주를 허락 받을 정도의 인물인 만큼, 테라에서 제법 잘나가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의 얼굴 중 익숙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들이 누군지 알아차리는 못하는 이도 없었으니.

각양각색의 인물들의 틈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오는 단 한 장의 천을 몸에 두른 체 창을 든 인물.

세 쌍의 날개

빛을 부르는 자.

이름 없는 성녀라 불리는 그 사람의 광체는 이미 그 자체로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마치 구원이 찾아온 듯한 광경 속, 그녀를 업신여겼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이제는 되었다’ ‘이제 알브 헤임은 구원 받을 것이다!’ 라고 엘프들은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구원자가 오기 전에 자신들이 누굴 마주하고 있었는지 망각하고 말았기에.

───콰아아아!!!!

“이...이건!!”

“이게 정녕 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부디.....부디!!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밀어닥치는 절망.

질식할 듯한 검붉은 마력.

구세주의 등장을 조롱하듯, 어린 마녀는 가면 아래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뭔가. 등쪽이 발자국 같은 걸로 묘하게 더러웠는데

다행히도 분위기 때문인지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은 성녀와 사도들에게 다가가는 마녀, 마황.

그리고 그녀를 뒤따르는 마황의 기사와 부활한 나그나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신화가 시작될 거라는 것을

“먼저 가볼까?”

첫 출수를 연 건 성녀도 다른 누구도 아닌, 붉은 갑주의 기사.

그는 검신이 비쳐 보일 정도의 투명한 검을 머리 위로 높이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솟구치는 거대한 수맥이 그의 검신을 따라 용오름을 만드니,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얼음의 검.

그러나 저것이 단순히 크기만 키운 빙검이 아니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으니, 시린 냉기보다도 피부를 전릿하게 만드는 신성력이 그 검에 있었다.

성수의 검.

그런 검을 무슨 장난감 다루듯 휘둘러 마황의 머리에 정면으로 내려치자, 대기가 갈라지며 엄청난 검압이 마황을 압박했지만.

소녀는 코웃음을 치며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라”

이미 움직이고 있던 이가 있었기에

옆에 있던 마황 기사는 장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힘은 더더욱 장난이 아니었고.

마기와 신성이라는 상성 차이는 대체 어디다 던져버린 건지, 아무렇지 않게 허리 춤의 검을 뽑아 자기 몸의 수십 배가 넘는 검을 쳐내는 그는 곧바로 검을 따라 사도의 무리들에게 달려갔다.

1대 13이라는 구도에 아무리 그래도 설마......라고 모두가 생각했지만.

이를 비웃듯 뒤에 선 나그나스가 가세하니, 땅이 갈라지며 타락한 세계수의 뿌리가 13인의 구세주들을 휩쓸었다.

피한 이라고는 전위직으로 보이는 붉은 기사와 전사, 검사들 뿐.

나머지는 모두 검은 뿌리의 파도에 집어 삼켜지고 말았다.

심지어 이름 없는 성녀조차도.

“아....안 돼!!”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어서 가세해야─”

비록 벌레처럼 짓눌려 비참하게 죽을지라도 그들이 없다면 알브 헤임의 미래도 없다.

어차피 나그나스, 그리고 그 위의 마황의 앞에 섰을 때 죽음을 각오했으니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그때의 각오를 다시 보여줄 순간일 터.

그렇게 엘프들은 제빠르게 무리를 이루며 싸움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짙어지는 마력의 울림과 농도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싸움터에 끼는 것조차

목숨을 바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본인의 나약함.

하지만, 그런 그들의 용기가 힘이 된 것일까.

파도 치는 뿌리들 사이로 빛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디바인 생츄어리]”

“[장난감을 위한 낙원]”

휩쓸린 사람들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은 성녀와 한 보랏빛 마녀였다.

순식간에 모든 뿌리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마녀의 등 뒤에서 기괴한 인형들이 손에 든 무시무시한 도끼날로 타락한 세계수의 뿌리들을 찢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이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하니.

희미하게 몸에 두른 황금빛 신성력에서 그들 전원이 모두 성녀의 축복을 둘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이.

그리고 시작되는 13 대 3이라는 작고도 거대한 전쟁.

나그나스가 부리는 타락한 세계수의 뿌리는 빠른 속도로 의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그나스 홀로 부리는 힘의 단위가 크긴 했다.

하지만, 그 질, 그리고 밀도가 확연히 차이 났으니.

아무렇지 않고 이 모든 걸 지워내는 사도들의 마술들에 뿌리는 서서히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거기에 전위직들까지 성녀의 축복을 두르자 그들의 검과 창은 별다른 기술을 쓰지도 않고, 버터처럼 뿌리들을 썰어내며 차분하게 마황 기사를 압박하고 있었으니.

“이거 이거 싱겁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어디서 패배 플래그를 입에 담고 있어?”

여유만만해진 성녀와 사도들

그러나 실상 안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음에도 홀로 팔장까지 낀 체 여유를 부리는 마황.

대체 저 자신감의 근원이 뭔지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그녀는 처음 싸움의 시작 때보다도 더욱 기분 나쁜 웃음을 입가에 그리더니, 이내 앞으로 여린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손가락을 튕기었다

─타각!

마황이 내었다고 보기 힘든 맑은 울림.

하지만, 그 결과는 끔찍했다.

그녀가 행한 것의 정체.

아니, 정확히는 준비하고 있던 것의 정체.

그건 이미 엘프들도 보았던 것이었으니.

“구오오오!!!”

엘프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괴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마치 세계수를 통째로 뚫어버릴 것 같은 거대한 마력포가 모든 것을 지워내며 성녀와 사도 무리를 덥쳐온 것이었다.

“젠장!! 이걸 왜 잊고 있었지?!!”

“아...안 돼!!”

엘프들의 신전

그곳에서 날아온 마력포를 정면에서 받아쳤던 마황의 그 공격.

그렇다.

아직 마황이 알브 헤임을 침략하려 이끌고 온 마수는 잠들지 않았던 것이다.

잠들기는 커녕 입 속에 거대한 마력을 응축하며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타락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소멸의 빛.

그래도 나름 떨어져 있던 건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괴수의 입부터 이곳 세계수의 바로 옆까지 길을 뚫듯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미리 이를 알아차린 전위직들은 어떻게든 공격을 회피했지만.

후위직 전원이 이 공격에 휩쓸리고 말았다.

거기에

“한 눈 팔아도 괜찮습니까?”

어느세 하늘 위에서 처음 붉은 기사의 빙검처럼 마력을 모으고 있던 마황 기사의 참격이 날아오니.

당황하던 전위직 전원이 이번에야 말로 그의 0공격에 적중하고 말았다.

단 한 방에 현세를 역전 시켜버리는 위용.

여유만만하다는 걸 넘어서 싸움 자체를 장난으로 보는 저 웃음.

마황은 강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그리고 불합리할 정도로

하지만

“2페이즈는 먼저 꺼내는 놈이 항상 진다던데.”

“쯧쯧, 제 봐라, 아까 밟혔다고 자비가 없어 자비가. 이게 어디 매너전이냐고.”

“약해서 서럽고 오늘도 웁니다.”

“씨불리 시간에 아무나 힐 좀. 졸라 아파.”

“광역 도트힐 걸어 놨잖아. 랭커 쯤되면 알아서 받아먹어.”

불합리함을 뒤집기에 이들이 용사와 성녀, 그리고 구세주라 불리는 이들일지니.

백의 천사로 변화한 성녀.

정령들을 소환하며 군세를 전개하는 엘프 둘과 나그나스보단 범위가 작지만, 꽃과 넝쿨을 전개하며 마녀는 일행들을 지켜냈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었는지 숨을 헐떡이며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마황을 바라보곤 있었지만.

저 정도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막았다는 사실에 이 광경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물론 순전히 이들의 위 네 사람의 힘 만으로 막은 건 아니었다.

당장 지켜야 할 이들이 다들 한 튼튼하는 인간들이라는 것도 있었고.

미리 그들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전개했다는 게 현 상태의 원인이었지.

거기에 마황 기사의 참격 또한 빠르게 반격이 날아왔으니.

알 수 없는 양식의 갑주와 창, 검을 든 남자가 참격을 홀로 막아내는 사이, 검사가 기척을 감추고 그의 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눈을 크게 뜨며 마황 기사 역시 검을 쏟아내며 반격했지만.

───팅!

“어?”

“댁도 용사랑 나랑 붙는 거 봤지? 패링이라는 거야. 그쪽 탬포도 슬슬 보이거든”

아무런 충격조차 없이 모든 검을 받아친 검사.

그는 마황 기사의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몸을 어깨죽지부터 허리까지 갈라버렸다.

──서걱!!

“크윽!!!”

솟구치는 피보라.

운이 좋게 살짝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누가 보아도 치명상이었다.

거기에 대관절 사냥꾼인지 사도인지 모르는 그들은 적의 목숨이 떨어지기 전까지 방심 또한 하지 않는 건지.

마황기사가 검사를 떨쳐내는 타이밍에 맞추어 그를 마무리 짓기 위한 무리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막타 가져갑니다.”

“니가?”

“니 템으로?”

“막타를?”

“쓰벌, 뭔 말을 못해요.”

희미하게 풍겨오는 죽음의 내음에 마황 기사는 등꼴이 서늘해지면서 깨달았다.

아, 이건 죽겠다는 사실을.

기꺼운 것일까, 아니면 적들의 위용에 감탄하는 것일까?

나름 선방했다고 했지만, 역시나 다수 대 1은 무리였다.

실상 따지고 보면 적들 중 타격을 입은 이가 거의 없으니, 그야말로 객기를 부렸던 셈

기껏해야 마지막 공격을 홀로 감당했어야 했던 전사만이 전열을 이탈해야 할 정도로 상처를 입었을 뿐.

심지어 그마저도

“어휴......아파 뒤지겠다. 나중에 누님한테 따져야지. 인간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따지기 전에 우리가 뒤지지 않을까요? 보니까, 저 사람 여기부터 여기까지 그대로 잘린 거 같은데. 문주도 그렇게 잘리는 거 아니에요?”

“야, 내가 잘랐냐?! 성환이 형이 잘랐잖아!!”

“낸 들 아나.”

무림에서 연검이라 불리는 검을 든 여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빛나고 있는 그의 몸과 사라지는 상처에서 벌써 성녀의 치료가 그에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바라본 마황 기사는 기분좋게 탄식하며 말했다.

“어쩐지,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었군요. 바보같기는”

그래도, 무의 수준은 떨어진다고 여겼는데.

실상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집단 사냥의 전문가들이 이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마황 기사는 패배를 인정한 것인지 눈을 감았고.

어느새 본격적인 공세를 밀어가고 시작한 후위직 무리들에 의해 세계수가 봉인.

나그나스마저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보는 작은 소녀는 결국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

“설마.......마황이 항복을 한다고?”

물론 부하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밀려버렸으니 상황이 절망적이긴 하지만, 설마 항복이라니

엘프들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애였던 건가?

나이가 어려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녀이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이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항복해버리다니.

이겼다는 기쁨보다는 뭔가 분노가 차올랐다.

결국 알브 헤임은 그런 그녀에게 패배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손을 들어 올림은 항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녀는 들어 올린 손을 가볍게 마주쳤다.

───짝!

손가락을 튕겼던 것과 같이 비슷하게, 이번에는 박수소리가 전장에 퍼져갔다.

그와 함께 한줌의 혈액이 되어 녹아내리는 나그나스와 마황 기사.

이에 성녀와 사도들은 혀를 찼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 다음 대응을 준비했다.

그리고.

“2페이즈 공략은 같은 2페이즈가 국룰이지.”

마황의 등에 그녀의 기사의 날개가 돋아났다.

바야흐로 진정한 혈투의 막이 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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