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마황 퇴치?
* * *
발할라의 13인의 원정대.
나와 데지르, 그리고 엘라임의 대립 구도.
천천히 거대한 빙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온 철수는 발할라 진형 최강자의 면모를 보이듯 가장 앞에 서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뒤따르는 성환과 민준이를 비롯한 전위직 사람들
누가 골수 레이드 전문 유저들 아니랄까봐, 딱히 의식하지 않는데도 각자 레이드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군의 위치로 이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우리들 사이에 맴도는 순간.
딱 적당한 수준으로 거리에 도착한 철수는 그 풍체를 여실히 드러내며, 위풍당당하게 검을 바닥에 세우면서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매너요.”
“.,.........형 인간적으로 그건 좀.”
“폼이란 폼은 다 잡아놓고서.”
“철수 씨. 충무공이 이름이 울어.”
무슨 폼은 1대1 일기토라도 신청할 것처럼 굴어놓고 매너전 신청이라니.
발할라 사람들은 자기가 더 부끄러운지 얼굴을 감싸쥐며 탄식했다.
하지만, 철수는 개뿔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양, 도리어 그들에게 소리쳤으니.
“니들이 쟤랑 싸워봤어? 안 싸워 봤으며 말을 하지마. 쇼미더머니에 파워 오브 오버웰밍까지 쓴 게 쟤라고”
“야, 무적은 빼야지. 나 그 정도로 사기는 아니거든?”
“뻥까지마. 나 다 봤거든? 혈마술 만렙 찍었다고 개쌩쇼 떠는 거. 솔까 묻자. 님 뒤지긴 함? 무슨 대갈통 날아가도 그대로 회복되던데.”
머리가 날아갔다는 말에 경악하는 우리 가족들
하지만, 난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답했다.
“당연히 죽지. 세상에 무적이 어디있어? 다 마술 빨이야 마술 빨. 엠통 떨어지면 끝이지.”
“쓰벌 그럼 엠통 있는 동안은 오버웰밍 맞다는 소리잖아. 쓰레기 같은 치트 끄고 매너전 하셈.”
“스킬이 왜 치트냐? 그리고 너희도 알다시피 나 지금 마황 코스프레 중이라 소환수도 못 써. 이 정도면 충분히 매너전 아님?”
“응, 아니야. 신캐 보정으로 선 넘은 캐릭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리고 소환수 못 쓰기는 개뿔, 지금 나온 엘라임이랑 니 짝꿍은 뭐냐?”
아, 확실히.
난 고개를 돌려 내 뒤에 선 버전 나그나스 엘라임과 데지르 퓨전, 용용이를 바라봤다.
하긴 이러면 소환수 안 쓰는 것도 아니지.
엘라임은 서서히 세계수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중이라, 이곳 타락 알브 헤임, 스바트르 알브 헤임에서는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이고.
데지르 또한 예지와의 싸움에서 알 수 있듯, 인간화를 끝내 탈 것이로 놀던 그 용용이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으니까.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철수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그렇네.”
“그렇지?”
“근데 님들 능력치 상승폭을 생각하니까, 여기서 더 양보하면 모양 빠지게 진짜 질 거 같거든? 못 먹어도 고! OK?”
“이런 더러운 비터 같으니라고!!”
사실 말은 이렇게 장난스럽게 하고 있었지만, 난 반 이상은 진심이었다.
여타 놀았던 물 낮은 놈들과 내 앞의 친구들은 격이 다른 수준의 강자들
당장, 예지는 단신으로 데지르와 호각지세를 이뤘지 않은가?
물론 계속 싸웠으면 데지르가 이겼을 테지만, 한가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으니.
제아무리 전천후 플레이어, 가장 완벽한 플레이어라 불리는 예지라고 해도 그녀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성녀라는 거다.
성녀.......
예지는 본인의 또다른 최고 장기.
버프의 진짜 힘을 보이지 못했다는 거지.
과연 이 자리에 들어서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생각해 볼 일인 셈.
더불어, 예지의 상승폭이 저 정도라면 철수는?
단언컨대 더 강해져 있으리라.
난 오히려 가면까지 고쳐 쓰며 조금 진지해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야, 그래도 말은 맞추고 놀자. 어떻게 할 거야?”
“응? 어떻게 할 거냐니?”
“아씨, 이건 우리끼리 정하지 말고 지능캐가 나서서할 일이지. 데지에몽 출동!”
나는 감독 및 배우이지 스토리 작가가 아니다.
뭐? 감독이 아무리 멍청해도 스토리는 꿰고 있어야 한다고?
시꺼.
우리 데지에몽 졸라 만만세여서 그딴 거 없어도 됨.
여튼 그렇게 우리 진형에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나오는 데지르
발할라 측에서는 역시나 인력과 자금이 빵빵한지, 예지를 비롯한 성환, 어머니, 아버지에 연주까지 나왔다.
싸늘한 침묵 속에 모인 뒤처리 담당......앗! 아니지, 스토리 작가들.
어색한 분위기 속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데지르였다.
“그, 일단 반갑습니다. 데지르 폰 카이사르라고 합니다.”
“안녕! 황태자님. 난 지구에서 마녀의 도시라는 집단을 이끌고 있는 차연주라고 해. 아, 물론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고, 그냥 발할라 하청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여기 이 사람 쫄병.”
"저도 뭐, 집단을 이끄는 건 아니지만, 이하동문 발할라 이사직을 맡은 김성환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예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말이 없다.
예지는 부득부득 이를 갈며 노려보는 중이고, 부모님 쪽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
하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니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다.
“우린 딸내미를 데려갈 걸세. 명분상으로는 여기서 죽여서 말일세.”
“마황이라니........사고를 쳐도 보통 크게 친 게 아니니까요.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이해합니다. 저희도 이미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었구요.”
“흥! 그렇겠지. 누가봐도 마황 죽여줍쇼하는 액션을 취했는데 그걸 모를까? 하지만, 방식이 너무 거칠잖아? 나랑 같이 짰으면 훨씬 더 세련되게 제국을 날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댁 여동생한데 한 방 먹기나 하고.”
“아, 일레인 말이군요. 하지만 한 방에 끝난 게 전 오히려 대단해 보입니다. 그녀는 어지간해서는 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데, 깔끔하게 물러났다는 건 당신들이 그만큼 치밀하게 판을 움직였다는 반증이니까요.”
예지의 돌려까는 디스를 깔끔하게 무시한 데지르
그 뒤 성환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박박 긁으며 데지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우리야 제 죽인다고 치고? 댁은 어쩔 겁니까? 그쪽도 릴리에게 무언가 약속한 게 있으니 도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본의 아니기는 하지만, 그 요구 우리가 맞춰줄 순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당신도 우리 말괄량이의 피해자이니 합당한 배상을 하겠단 소리.
데지르는 이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워낙에 릴리 씨가 막장의 막장을 이어간 터라, 제가 생각하던 그림도 거의 엉망진창이 됐거든요. 지금 전 그냥 나 내려놓고 지구로 향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바라는 게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예지와 부모님 측은 눈을 번쩍.
바로 무어라 소리치려는 어머니와 예지였지만, 이래서야 끝도 없을 터이니, 성환과 연주는 두 사람의 입을 막고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쪽도 신분 말살하고 지구로 오겠다는 소리?”
“그렇죠.”
“어렵지 않은 요구네. 아직 퍼트려놓은 정보망 다 치우진 않았으니, 그정도 여력은 충분해. 연주 씨, 이쪽 시체도 한 구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껌이지. 근데, 이리저리 구르고 다녀서 그런데 마땅히 어디서 죽었냐는 당위성이 좀 떨어지는데? 대뜸 알브 헤임에서 황태자 시체 발견은 이상하지 않아?”
“아, 그부분이라면 그냥 일레인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굳이 그녀에게까지 제가 죽었다고 숨길 필요는 없어요.”
처음에는 일레인의 눈까지 피할 생각이었던 데지르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히려 그녀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가면 피곤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아예 그녀 한사람에게는 알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판단한 것이지.
뒷처리도 깔끔할 터이고 훗날 좋은 패가 될지도 모르기도 하니까.
‘어차피.......나 따위에게 연연할 그녀도 아니니까.’
데지르는 잠시 씁쓴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기분을 털어냈다.
“예, 어차피 알브 헤임의 멸망은 확정입니다. 마황성이든 알브 헤임이든 책임질 사람 자체가 없으니, 간단히 처리해주겠죠. 뭐, 어떻게 제 이름을 팔아먹을지 모르지만 관심도 없습니다.”
“.........당신도 이런저런 사정이 많은 거 같네, 뭐, 아무튼 그 요구 받도록 하지. 릴리 랑은 알아서 잘해보고.”
“근데, 하나 질문해도 돼? 왜 갑자기 알브 헤임에 테러를 한 거야?”
연주의 물음에 확실히 대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는 모두
하기사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은 아직도 왜 릴리가 폭주한 것인지도 모를 터이니, 이상하진 않은 질문이다.
오히려 모르고서도 이곳까지 온 걸 칭찬해야 마땅하겠지.
데지르 배려심이라고는 일절 없는 릴리를 속으로 까내리고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저건.......”
“릴리 소환수가 쓰는 죄악의 가시잖아?”
“아뇨. 세계수입니다.”
“““뭐?!!”””
“아무래도 이야기의 시작, 그러니 릴리 씨가 왜 폭주하게 되었는지 이야기 드릴 필요가 있겠군요.”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라며 말하는 그는 차근차근 왜 내가 폭주해서 탈주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 한 마디로 압축하면 나란 존재와 멀쩡한 엘프들은 곧 죽어도 양립할 수 없었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걸 넘어서 엘라임의 죄악의 가시가 드러나면 엘프 측이 먼저 선재 공격을 가할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는 말이었지.
거기에 더해 세계수의 진실까지.
이를 다 들은 사람들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냥......할 말이 없다.
아니, 어이가 없다?
뭐든 그런 해탈한 듯한 표정.
이내 입을 막던 성환과 연가 입을 막더 손을 놓고, 예지, 성환이 터벅터벅 내게 걸어왔는데.
둘은 날 조심스럽게 올려 들고는 바닥에 눕혔다.
“에?”
그리고 밟기 시작했다.
───퍼억! 퍽! 퍽!!
“으아아아!! 강릴리 살려줌매!!”
“야이, X미친년아!!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그냥 말하고 후퇴를 하면 되잖아!! 잘난 주둥이 어디다 팔어 먹었어?!”
“X발, 솔직히 말해! 그냥 마황하고 싶었던 거지? 그렇지? 개똥 같은 핑계 거리도 찾았겠다 그냥 아주 살 판났겠어!”
“어.....억울합니다 판사님! 전 오로지 발할라와 공익을 위해서!”
“지랄말라고!”
“넌 진짜 지구로 돌아가면 정신교육, 아니지 정신개조 확정이다.”
바야흐로 비는 오지 않지만, 먼지나도록 쳐 맞는다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나님.
데지르를 비롯한 발할라 사람들은 무슨 상쾌환이라도 먹은 듯한 편안한 표정을 즐기면서, 한동안 이어지는 구타를 감상했다.
“끄윽!! 사이다가 따로 없다.”
“이거지! 이게 바로 권선징악 아니겠나?!”
“합법 유녀는 밟아야 제맛이지, 여윽시 우리 회장님이랑 성환이! 최고다!!”
“내가중수법의 묘리를 답아서 더 질근질근 밟아라!!”
이런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
“구라까지마!”
“제길! 두고 보자!! 마황은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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