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불도저의 불은 불꽃의 불
* * *
데지르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더는 망설일 것이 없는 나는 손에 쥔 낫을 바닥에 내리 꽂았다.
이에 시몬과 엘라임도 가세.
동시에 3자루의 지팡이가 바닥에 세워지며 3개의 원을 그리니.
서서히 각자의 형태를 잡아가며 넓어지는 마술진이 교차하고, 마술이 시작되었다.
“난 항상 생각했지, 왜 불도저에는 불이 없을까 하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박한 개소리임은 틀림 없을 거 같군요.”
“왜 불도저면서 겨우 흙을 미는 것에 지나지 않는냐고!!”
“그만 하라고”
아! 로망이 없다. 로망이!
그렇기에 난 이 마술을 개발했다.
불도저의 꿈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도저의 멋진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서서히 지반이 부서지고 솟아 오르는 엘라임의 죄악의 가시와 함께 우리들 또한 나무를 타고 솟아 오르니,
데지르는 엘라임의 가시들이 무언가 뼈대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짜리몽땅한 다리.
그와 어울리는 있는게 쓸모나 있을까 싶은 작은 날게.
더불에 이런 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상상을 초월할 크기의 몸집.
“하지만 테라에 오면서 스타일을 변경했지. 왜냐?! 난 문명 시민이니까! 테라 사람들의 로망도 지켜줘야 하니까!”
“저희가 언제 그런 로망을 가졌다고.....”
판타지의 로망은 뭐니뭐니해도 드래곤 아니겠는가?
하지만 으래 있을 법한 드래곤은 식상하니, 내가 선택한 디자인은 거북이, 혹은 악어였으니.
서서히 만들어 져가는 물체는 지룡이었다.
정확히는 엘라임의 죄악의 가시로 만들어진 목지룡!
자신의 역할을 끝낸 엘라임이 자팡이를 들어올리자, 그 다음주자로 나서는 건 시몬.
시몬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손가락 튕기기를 시전하며 완성된 뼈대에 살을 가져다 붙이기 시작했다.
시몬의 지팡이 끝에서 차오르는 검은 마력 터져나오자.
주변의 지형지물들이 분쇄되며 파괴된 바위나 나무 대지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목지룡에게 모이며 살과 피부가 되어갔다.
난 이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시몬에게 손짓을 보내자.
시몬 또한 역할을 마치고 지팡이 바닥에서 때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는 바로 나.
“[레비언트 블러드 스피릿]”
융합마술의 산물로 태어난 나의 영혈마술.
거기에 그동안 마황으로서 장난감 병정을 움직이며 쌓아온 노하우를 이 거대한 조형물에 담는다.
검붉은 액체가 날 중심으로 목지룡에게 퍼져나가자 그저 조형물에 지나지 않았을 거대한 괴수는 생기를 얻기 시작하니.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목지룡은 자라와 같이 목을 내밀며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
“미친.....”
공기를 타고 흐르는 음성이 아닌 마력을 타고 전해지는 파동에 데지르는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이 사용되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겠지.
실제로 나도 그러니까.
장난 삼아 만든 마술이기는 해도, 엄연히 진심 또한 담아서 만든 작품이기에.
난 품에서 데지르에게 전해주었던 마력용 보조 베터리를 2개나 꺼내 보이며 내가 얼마나 이 마술에 정성을 쏟았는지 보여줬다.
그렇게 내가 던진 텅빈 보조 베터리를 받아든 데지르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니.
난 그런 그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는 마무리, 시작의 폭죽을 쏘아 올렸다.
─타각!
“불도저 시동합니다!”
경쾌하게 튕기는 손가락 소리와 함께 무지막지한 크기의 화염구가 목지룡의 머리 위에 생겨났다.
데지르는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엘라임은 조용히 내 그림자 속으로
시몬은 나와 데지르 사이로 걸어와 베리어를 펼쳤다.
그리고 화염구가 목지룡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움하하하!! 가라. 릴리표 불도저. 아포칼립스 파이어 터틀 드래곤!!”
불 붙은 악어 거북의 탄생했다.
크기가 심각하게 큰 악어 거북이.
* * *
세계수의 그늘 아래 도시.
알브 헤임.
사실 알브 헤임은 중의적의 의미를 가진다.
엘프들의 나라를 알브 헤임이라고 하도, 그와 동시에 나라의 수도, 세계수 아래의 땅을 또한 알브 헤임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엘프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지 나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위성 도시로 불리는 다른 알브 헤임의 땅에는 순혈 엘프 뿐만이 아닌 다른 종족들 또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교류하고 있기에
진정한 엘프, 하이 엘프와 그런 하이 엘프의 피를 이은 순혈 엘프만이 거주할 수 있는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엘프의 나라이며 엘프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니.
하지만, 그런 엘프의 땅의 한가운데.
세계수에 모인 하이엘프들의 표정은 그리 밟지 못했다.
“얼마나 버틸 것 같소.”
“길어야 1년, 아니 반년 정도겠군.”
“제길 왜 하필이면 마왕이란 자는 마왕들을 죽어버려서 이 사단이 난 건지.”
사실 세계수가 마계에서 비롯된 식물이라는 건 엘프들도 알고 있다.
비단 이곳에 모인 하이엘프의 장로들 뿐만이 아닌 알브 헤임에 거주하는 모든 엘프들은 여타 다른 엘프들보다 높은 지위의 존재들인 만큼
제국의 황태자가 간단히 추측하고 있는 정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다.
애초에 신앙의 영역에 이른 믿음이니.
오히려 다른 종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신화로서 기록되어 조심스럽게 전파되는 비밀일 뿐.
허나 반쯤 불노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하이엘프이기에.
그리고 세계수의 관리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이기에 이 문제가 단순히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환영마술로 버티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금세 다시금 알브 헤임에 뿌리를 내리겠지.”
“이번에 마왕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쩌겠소, 이미 마황이란 자가 마계 전체에 마왕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 선포를 해버린 것을.”
마계의 식물인 세계수를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마기가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곳에 마기가 있을 리 없지.
세계수가 작을 때는 어떻게 든 정성으로 그리고 세계수 자체가 마기 대신 탁기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여 이를 만회할 수 있었으나.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 되어 버렀으니.
엘프들은 그동안 마계로부터 마기를 공수해왔다.
그리고 그 마기 공수의 최고의 기회가 마왕 쟁탈전.
마왕 후보, 혹은 자리를 빼앗긴 마왕의 시체를 얻을 기회였었지.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 모든 건 허사가 되었으니.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황이 모든 마왕을 참살하고 그 시체까지 가져가 버리고 거기에 더해 마왕 쟁탈전의 발생 자체를 틀어 막아 버린 것.
덕분에 엘프들은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저번과 같은 방법을 써보는 건 어떻겠소?”
“저번이라면.......다크 엘프를 이용했던 그때 말이오?”
다크 엘프를 고용해 마왕 후보였던 아크 리치를 막았었던 일을 언급하는 한 장로.
그는 나지막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때처럼 적당한 마족을 유인할 수만 있다면, 문제 없으리라 본다만.”
“하지만, 마황 때문에 마왕 모두가 죽었소, 대체 어떤 마족을 유인한단 말이오, 거기에 유인하기에 시기도 나쁘지 않소.”
“예, 마황은 자신의 위험을 세우기 위해 마계 전역에 선포를 했습니다. 그 어떤 반항도 용서치 않겠다고. 세계수의 가시를 움직여도 마족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당시 아크 리치를 유인하는 건 매우 쉬웠다.
애초에 리치 자체가 마술에 통달한 존재이고, 거기에 대해 마술의 촉매나 재료로서 세계수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과실이었으니.
뭐, 아크 리치가 생각 이상의 힘을 발휘해 세계수의 결계가 흔들릴 염려가 생겨,
부득이 하게 다크 엘프들에게 손을 뻗는 수치를 맛보긴 했지만, 그 덕에 상당한 ‘거름’을 획득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 말한 장로의 말처럼 현 시기에는 쓸 수 없는 방법이다.
마황이 그걸 용납할 리가 없으니까.
이미 마왕 7명의 목을 쳐 위험을 세운 체 제국과 붙이치는 그 불세출의 악마에게는 마족조차 두려움에 머리를 조아리는 중이니.
아무리 달콤한 과실을 내밀어도 달려들 리가 없겠지.
또 달려들어도 문제.
“마왕만 죽었을 뿐, 마황은 생각보다 많은 마족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전의 아크 리치와 같은 마족들이 종종 있죠.”
“그것들이 움직이며 우리들의 힘만으로 싸워야 한다. 마황이 준동 중인 지금 다크 엘프든 여타 다른 종족들이든 움직일 여유가 없을 터이니.”
“잘못하면 결계가 흔들리겠지.”
뭐, 어차피 한 번 다크 엘프들이 크게 데인 전적이 있는데, 또 다시 엘프들을 믿고 싸워줄 자들이 있을리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대로 세계수를 방치하고 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결국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데.
“수호대를 움직여 우리가 직접 마족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오. 양질의 마족을 잡기에는 힘이, 수로 마기를 체우기에는 분명 제국의 눈에 들킬 것이외다.”
“결국 마황 토벌을 거들어 주고 마황의 시체를 가져와야 한다는 건가.”
그러나 사실 이 방안도 가능하지 않다.
“용사들과 사도들의 결판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소, 실상 우리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지.”
“허허, 사도라고 한들 비루한 종족들 뿐이지 않소? 우리 신족들이 힘을 보태어 준다는데 감히 거절한단 말이오?”
“어리석게도 그 무지한 자들도 거짓된 신을 등에 업고 싸우는 것이니”
“쯧쯧”
신족, 하이엘프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
이 단어가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진 이들인지 대변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회의가 길어지는 와중, 한 장로는 무언가를 떠올린 것이인지 손을 들어 올리더니.
다른 장로들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도라는 것들 중에 엘프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소.”
“뭐라? 허허, 척봐도 알겠군, 순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잡종인가?”
“거기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엘프는 엘프라고 하더이다. 그렇다면 그 자를 이용해보는 게 어떻소?”
사도와 협력하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하이엘프로서 수치스러운 일임은 매한가지이기에 그는 말을 아껴가며 발언했다.
요는, 그 사도의 자리에 앉은 엘프에게 명예를 주어 마황을 토벌한 공을 사사하고.
그 대가로서 마황의 시체를 받아온 다는 것.
더불에 운이 좋게도 사도 중에 엘프는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릴리의 어머니와 그 동생인 소라 총 둘에 뺌빵으로 사도 역에 들어간 발할라의 한 사람까지 엘프였기에.
그들 전원의 마음을 돌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
물론 마황의 시체이니 가치를 감히 따지기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12 분의 3, 4분의 1의 공적은 받을 수 있을 테니, 충분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황이지 않은가?
마왕과는 급부터가 다를 터.
“그래도 순혈도 되지 못하는 엘프를 알브 헤임에 드리는 건....”
“뭐, 치하 정도만 해주면 될 일 아니오.”
“그럼 알브 헤임에는 들이지 않겠다?”
“당연한 소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증명도 되지 않은 잡종을 드린단 말이오?”
어차피 마황의 시체 말고는 딱히 대우해줘야 할 필요도 없는 자들
아니 그걸 넘어서 세계수 이외의 신앙을 섬기 죄인이다.
살려주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지.
적당히 달콤한 말 몇 마디 던져주고 마황의 시체만 받아서 쳐내면 될 것이다.
다른 사도나 특히, 그 이름 없는 성녀라는 자가 조금 걸리긴 해도, 결국 비루한 종족들은 건 다를 바 없으니까.
그렇게 회의의 방향이 갖춰지며 점점 끝나가는 와중.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의 신전에 불빛이 사라지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그럴 리가........세계수가 뿌리내리는 이 땅이 흔들릴 리가 없지 않은가.”
“잠깐, 잠시 기다려 보게.”
결계와 세계수 직속 수호대를 담당하는 장로가 손들 들어 그들을 막아서더니, 그는 품에 넣어둔 통신구를 귀에 가져갔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하고 이내 경악으로 물드니.
다른 장로들 또한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서둘러 회의실을 나와 신전 밖으로 향하는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아차렸으니.
“하하하!! 불도저님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내게 황제가 못 된 게 천추의 한이네요. 이딴 게 제국으로 향하는 걸 막았는데, 그 공만으로도 황제는 이미 제 자리였을 텐데.”
흡사 타오르는 거대한 성.
아니, 괴수.
그와 함께 불길 위에서 작은 장막을 펼친 체 폭소하는 마녀과 남자.
수 백년간 단 한 번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은 요정에 땅에 마황이 불 타는 지룡을 이끌고 나타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