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사도 vs 용사 (完)
* * *
사실 말이 좋아서 인류 최강 결정전, 용사와 사도의 결투이지.
정작 가장 최강이라 여겨지는 성녀도 빠지고, 아직도 마황이 저기 버젓히 존재하는데 이게 무슨 개 뻘짓이냐는 것도 사실인지라.
두 팀간의 격돌은 그렇게까지 공개적으로는 진행되지 않았다.
뭐랄까......알사람은 다 알지만, 굳이 공문을 돌리진 않았다는 정도?
어차피 그런 공문보다는 아직도 구두에 의한 소문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테라인지라 딱히 의미는 없었지만.
하여튼 그렇게 성사된 용사와 사도 간의 결투.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의외야 양상을 보여주었다.
“야 임마! 내가 살살하라고 했지?!”
“아니, 야, 내가 어니부기인 거 이미 소문 쫙 깔렸잖아? 그래서 웬 불타입이 덤비길래 못해도 리자드, 리자몽은 될 줄 알았지. 파이리보다 약할 줄 알았냐고?”
뻘쭘뻘쭘한 얼굴로 뒤에서 동료들에게 까이는 철수는 억울한 듯 항변했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지 오래.
시합은 시합이란 말을 붙이기도 힘든 체 싱겁게 끝을 맞이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철수의 말과 표현에는 큰 오해가 있으니까.
용사의 불은 절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이 아니다.
성화, 말 그대로 용사가 가진 특별한 힘과 신성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화라는 것이다.
일종의 멀티 타입이란 거지.
철수가 생각한 건
불 타입 vs 물 타입이지만.
실상 상대의 정확한 속성은 불타입 + 신성 타입이었다는 의미.
그리고 이 신성력의 힘은 의표를 찌르기 최적화된 무기였다.
자연 연소가 아닌, 마력을 이용해 만든 마술과 같이 자연 현상을 구현한 것도 아닌.
신성력과 용사의 힘을 연료로 타오르는 성화.
이건 절대 물 따위로 끌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다.
불의 형태를 하였으나, 불이 아닌 힘.
형태와 상식에서 오는 착각.
카엘의 노림수는 이 착각을 이용해 철수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단기 결전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꼬래 불타입이 섞인 덕분일까, 연비는 최악을 달려도 파괴력, 단기전 만큼은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게 카엘이란 용사였으니.
나름 카엘은 다 생각이 있어서 제 1사도를 상대로 지명한 것이지.
그러나 철수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멍충아!! 너도 스킬 세팅 바꿔서 성수 쓰고 있잖아!!”””
“아........”
사도 코스프레 한다고 정작 본인도 성수를 쓰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그렇게 타입상 동급, 아니 우위에 들어가고 말았고
상대가 불리함을 앞세우고도 이렇게 자신을 지명했다는 오해까지 겹쳐, 손대중을 대충한 결과.
“워매......누가 저걸 물로 만든 결과물이라고 보노?”
부러진 성검과 함께 케이크 마냥 경기장에 거대한 참상이 세겨지고.
어찌저찌 피하긴 피했지만, 왼쪽 팔 다리가 모조리 잘려나간 체 실신해버린 용사만이 남고 말았다.
그리고 이걸 본 용사들의 표정이 시퍼렇게 죽어가는 건 덤.
참고로 오필리아로 변장 중인, 에리카도 설마 자기도 싸워야 하냐면 미친 듯이 예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여길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용사 중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지명을 먼저 받았으니,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그 다음 타자로 나온 성환은 허탈한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긴 장발의 용사를 지목했다.
“걱정마, 저게 비상식인 거지, 난 상식 범주의 사람이니까.”
“.........”
나지막히 상대에게 위로를 보낸 성환이었지만, 상대로 나온 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지긋이 감은 체 역시 여기 나와서는 안 되었다고 후회하고 있을 뿐.
그래도 이미 판이 벌어졌고, 여기서 물러나도 나락은 확정이었기에 용사 또한 검을 뽑아들었다.
“대체 너희들은 왜 이런 짓을...”
“뭘 그렇게 말하고 그래? 예지한테 들었는데, 너희도 웬만한 건 다 안다면서? 우리가 누군지도 얼추 알고 있고 그래서 개지랄을 해서 우릴 마왕 토벌대어 넣으려고 제국한테 생 때부린 거잖아.”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냐고 묻는 거다!! 그냥....굳이 제국과 협상하지 않고도 우리 손을 잡고 마황을 잡을 수도─”
“아, 그건 유감, 개인 사정이라서 말이지. 우리 말괄량이가 사고를 좀 거하게 쳐서 말이야.”
애초에 이 자리까지 온 이상 협상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걸 두 사람도 안다.
성환은 그저 착잡한 마음의 용사의 한탄에 성의껏 답변을 조금 해준 것일 뿐.
하려는 일에 변함은 없으니.
서로 검을 마주한 두 사람.
첫 수는 장발의 용사가 가져갔다.
“으아아아!!!”
카엘이 불이었다면 이자는 바람이라는 걸까.
돌풍, 거센 바람이 그의 그의 성검을 감싸며 그의 몸을 공중에 띄우기 시작한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저 주변에 서있기도 힘든 듯한 강력한 힘.
“카엘이 일격에 당했다고 나도 간단히 당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왜? 용사 4천왕 중 최약체라도 되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여, 미리 성녀의 가호를 받고 온 것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성수의 힘은 있을 수 없지.”
어.....그게 그렇게 설명이 되나?
성환은 뻘쭘한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굳이 희망을 부술 이유는 없으니까?
“그에 비해 너에게는 신성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오만하긴.....자기 잘못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죽어라!”
그의 신형이 사라지며 검과 바람의 윤무가 막을 오른다.
일반인 따위는, 아니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라고 해도 감히 쫓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
그야말로 바람 = 스피드 타입이라는 정석적인 루트의 전형적인 자태였다.
“와우~~”
성환은 그런 그의 모습에 옅은 감탄사를 보냈다.
확실히 빠르다.
보이지 않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지만 서도 확실하게 지구 기준으로도 랭킹, 그것도 중위 이상은 들만한 수준.
거기에 보이는 걸 보면 본인 속도에 압살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닌, 확실하게 컨트롤 하는 걸로 보아 이게 끝도 아닐 터이니, 충분히 용사의 이름을 내걸 만한 힘이다.
“하기사, 철수 그 새끼가 요즘 워낙 상식 밖으로 일탈하고 있어서 그렇지, 카엘이란 놈도 약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뭐라고 했더라?
스킬 커스터마이징?
처음에는 그냥 좀 부러운 수준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개사기급 성능을 자랑하고 있는 지 실감한 후로는 잘 하던 대련도 요즘 끊은지 오래다.
거기에 성장판이 다시 열리기라도 했는지, 요즘 부쩍 부쩍 강해지는 중이기도 하니.
역시 다른 용사들까지 그렇게 손 쉽게 정리할 수 있을리 없지.
단지.....딱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죽어라!!”
“너도 나랑은 상성이 영 별로다. 내가 찍기 운이 좀 좋은 편이거든.”
완벽한 사각.
최속의 스피드를 가지고 날아온 검격에 바람의 칼날이 덧씌워지니, 방금 철수 못지 않은 거대한 참상을 동반한 검격이 성환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무하기 그지 없었으니
“어?”
용사는 순간 상황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격을 피한 게 아니다.
분명 손 끝에 걸리는 감각이 있는 걸로 보아, 성환은 막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너무 조용하다
아무리 서로의 공격이 상쇄작용을 일으켰다고 해도 비상식적으로 손 끝에 걸리는 감각이 옅다.
“내가 천하제일에서 장 첸을 이길 수 있던 건 말이야. 극공세팅을 맞췄기 때문이거든? 근데, 그러면 몸이 유리가 되잖아? 내가 어떻게 했을 거 같냐?”
“대체 무슨...”
“우리 용어로는 패링이라고 하는데, 뭐, 넌 알 리가 없겠지. 예지가 뭔 이유에선지 일단 살려서 보내라고 했으니 죽이진 않을 게. 딱히 악감정도 없고, 좀 재수없는 거 가지고 사람 죽이는 악인은 아니거든.”
대신.
─서걱
“팔 정도만 가져가는 걸로 퉁치자고. 사람 가지고 그딴 외설적 소문 퍼트렸으니, X을 가져가고 싶기는 한데, 보는 사람이 많으니 내가 양보해야지.”
분명 성환은 검을 휘둘렀으니,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검격이 지나간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무 빨라서?
아니.
당장, 성환도 인정했다 시피, 용사의 그의 속도는 나름 랭킹 중위 이상의 걸물
순전히 스피드 타임으로 그 위치에 올랐으니, 속도면에서는 더 위를 바라봐도 좋으리라.
거기에 처음 검 끝이 분명히 보이기도 했고.
그러나
‘사라졌어?’
눈으로 쫓고 피할까, 아니면 막고 반격할까 싶었던 검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안개와도 같이.....
어떻게든 찾아야 겠다 싶었지만, 이미 검은 성환의 손에 늘어트린 체 있을 뿐.
“어디서 잔재주─ 어?”
그 말과 함께 툭 하고 들려오는 소리.
성검을 손에 쥔 검은 그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바닥에 떨어진다.
반대편 팔과 함께.
“으아아아!!!”
“많이 아픈가 보네. 마취 정도는 해줄 게,”
─퍼억!!
칼집에 꽃힌 검에 관자놀이가 붙이치며 자기 팔을 두고 저 멀리 날아가는 용사.
장르 불문 최고의 마취법.
뇌진탕 되시겠다.
혹, 점혈을 상상한 이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성환은 아내 전용용 말고는 그런 거 안 카운다고.....
* * *
제 3, 제 4 시합은 더더욱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위 두 시합의 결과물을 보고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용사는 가장 약한.
어음......일단 설정상 노예였던 엘프인 소라를 지목했는데.
나름 상당히 괜찮은 수 였긴 했지.
알다시피 소라가 강하기는 해도 철수나 성환 급은 아니니, 사도 중에서는 임시로 땜 빵 온 사람들 말고는 가장 약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소라는 정정당당하게 싸울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귀찮잖아?
힘 빼기도 싫고.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게 인맥이란 거 아니겠는가?
─콰아아아아!!!!
시합 시작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는 찬란한 빛의 기둥.
마치 경기장 전체를 지져버리겠다는 듯한 강력한 힘에 용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바싹 구워진 웰던 스테이크가 되었다.
웬 갑자기 빛의 기둥이냐고?
하늘에서 모선이 포격을 날려준 거지 뭐긴 뭐겠어.
스텔스 모드 켜놓고 대기하다 소라가 생쇼부리면서 콜 싸인 날리고, 유리가 바로 쏴준 것이다
미리 짠 거야
“약았네.”
“약았어.”
“역시 우리 딸,”
“그 언빠에 그 여동생이구만.”
참고로 그 시합 덕에 소라는 엘프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설의 대마술사가 되었다나 뭐라나.
여튼 멋들어 지게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소라와
그걸 보며 콧방귀를 내쉬는 유리도 팔짱을 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니.
어떻게 보면 가장 화려한.
또 어떻게 보면 가장 허무한 결말로 제 3시합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gg를 선언한 두 사람.
물론 한 사람은 에리카지만, 여튼 용사팀은 항복을 외쳤다.
하지만, 그걸 받아줄 사도들이 아니지.
예지가 아무리 같찮고 귀엽게 보았다고 해도, 그거야 예지 기준일 뿐.
상식 선에서 용사들이 도발이라는 명목으로 한 짓은 선을 넘어도 진작 넘었다.
용사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줄타기를 한 거야 그러려니 해도, 도발이랍시고 그 따위 외설적 소문을 퍼트린 건 실수한 거지.
결국 gg가 먹히지 않자 tt를 선언한 최후의 용사.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듬직한 아저씨 손에 붙들려, 가장 CG가 밑밑한 전투를 치르게 되었으니.
그 대신 구타 소리는 어느 경기보다도 끔찍하게 경기장에 울려퍼졌다고 한다.
오필리아, 에리카는 어떻게 됬냐고?
갑자기 이름 없는 성녀 버전 예지가 난입해 경기를 종료시켰다.
아 물론 구해준 건 아니고.
“제가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에?”
얼빠진 표정으로 선 에리카에게 다가간 예지의 한 마디.
“신고식은 치러야지.”
“이런 개─”
그리하여 용사와 사도간의 기나긴(?) 결투는 막을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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