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성녀(기짜)의 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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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예지는 물론, 릴리의 가족들과 발할라의 모두는 당장이라도 릴리를 대려오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방식은 지나치게 과격하고 야만적이었으니까.
물론 효용성은 인정한다.
압도적인 힘을 휘두르는 마황의 등장.
제국에 찾아온 위기와 테라 전역에 확산되는 긴장감.
이러한 상황 속 새롭게 나타난 세계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또한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어느 나라, 어느 왕국이 발할라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깡패짓이랑 다를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힘으로 짓누르고, 힘을 미끼로 손을 내민다.
전형적인 야쿠자나, 조직 폭력배가 깡패들을 동료로 빨아들이는 방식이니까.
아무리 말귀가 안 통하고, 싸가지 밥 말아 먹은 것들이라고 해도 그런 방식을 취할 수는 없지.
거기다 이 과정에서 릴리는?
정체를 들킨 순간 나락행 확정이다.
테라에서 마왕에 대한 인식만 해도 최악인데, 하물며 마황이니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서도 그녀의 행동은 엄연한 전쟁범죄이니.....
발할라는 선택의 길목에 놓이겠지.
정체를 들킨 릴리를 감싼다면 같은 전쟁 범죄자 취급을 받을 것이고, 테라에서는 마황의 수하라는 낙인이 찍힐 터.
플레이어의 권위 신장을 위해 탄생한 연합의 전신이 IS 저리가라 할 수준의 테러 집단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릴리의 손을 놓으면?
그건 그것대로 더 최악.
일단 지구의 주적이라 할 수 있는 군주를 막을 키 카드인 릴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그거야 그것고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릴리 그 자체.
지구도, 테라도 받아줄 곳 없이 홀로 남겨진 릴리.
남은 것이라고는 거짓으로 앉았던 마황의 옥좌 뿐.
그 상황 속 그녀가 진심으로 마황이 된다면?
코스프레로 약한 척 오지게 하고 있던 걸 떨쳐버리고, 전심 전력으로.
모든 소환수를 해방과 함께 진정한 마황이 되어 날 뛰기 시작한다면?
장담하는데 군주가 귀엽게 보일 사태가 벌어지겠지.
제국?
이틀 안에 황궁이 불타고, 황제의 목이 광장에 내걸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상상만 해도 끔찍한 리스크를 짊어지고 마황 활동을 벌이는 릴리를 발할라가 얼마나 끌고 오고 싶었을까?
그러지 못했던 건 상황이 이미 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에휴.......일을 벌려도 좀 살살 벌릴 것이지.”
모선 에테르나의 지휘실에 앉은 체 지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여인.
우리의 성녀님 한예지 되시겠다.
그녀는 이리저리 푸름 화면 창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쳇! 모선이면 하루 만에 마황성까지 갈 수 있는데....”
지금 모선이 떠 있는 상공은 르누아 산맥.
즉, 테라다.
그것도 제국과 마황 릴리 간의 격전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제 7 마계 전선이 위치한 곳이지.
아무리 모선이 속도 면에서는 거지 같다고 해도 엄연히 이터널의 비행정.
여기서 마황성까지는 하루도 아닌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좌표 파악을 마치고 워프를 진행하면 수 초만에 도착할 수도 있겠지.
단지,
“그러면 안 되는 거 너가 가장 잘 알잖아?”
“뭐니 뭐니해도 다시 성녀님이 됐으니까.”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살짝 꾸짖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두 사람.
이 모선의 주인인 유리와 그 단짝 성환이었다.
둘은 인상을 찌푸린 예지의 옆에 의자를 당겨 앉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동안은 성녀의 힘 때문에 테라에 못 왔잖아? 직접 본 테라는 어때?”
“밖이 마계 전선인 건 알고 묻는 거야?”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보았던 풍경들은 굉장했다.
판타지와 대자연이 조화된 모습들.
그야말로 사진작가가 있었다면 쉬지않고 셔터를 눌렀을 듯한 그런 장면의 연속이었지.
하지만 그걸 지금 묻는 건 많이 하자가 있다.
“어휴......대체 언데드를 얼마나 보낸 건지. 매일매일 보냈다는 건 들었는데, 내려가기 무서울 지경이구만.”
“그래봐야 릴리 장난감들이지만.”
“그래도 수준 맞춰주는 솜씨는 매일매일 느는 거 같다. 며칠 간 나도 조사했었는데, 무슨 매일매일이 격전에 연속이라고 하더라고. 진심으로 하면 몇 분만에 함락시킬 걸 이렇게 조리돌림해서 노는 것도 재주야 재주.”
“뭐, 목적이 제국 멸망이 아닐 테니까. 그리고 릴리 힘조절 은근히 잘해. 또, 그 망할 씨XX 개XXX XXXX 같은 황태자 놈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 그 새끼 영향도 있겠지.”
사심이 크게 들어간 수식언에 유리와 성환은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그 황태자라는 양반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질투네’
‘질투겠지?’
릴리가 물론 최종적으로는 발할라를 위해서, 나아가 지구를 위해서 마황 행세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계획의 일부라고 해도 엄연히 지금 하는 행동의 1차적 목표가 데지르를 황제로 옹립시킬 기회를 만드는 것도 사실.
이걸 모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발할라에 없다.
그도 그럴 게 그게 아니라면 릴리가 데지르를 납치할 리도, 또한 데지르가 릴리에게 협력할 이유도 없으니까.
실제로 납치한 이유는 다르지만, 지금 릴리가 데지르를 황제로 만드려는 건 사실이니 틀린 추측은 아니다.
예지는 이러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내조를 해도 나를 해야야 잘 생긴 인간 하나 잡았다고......고백 받은 게 그렇게 좋냐? 궁시렁궁시렁......”
“궁시렁궁시렁을 본인 입으로 말하고 있어....”
“뭐, 인생의 봄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거니까. 나는 이해해. 물론 사고 친 건 빼고.”
“생각해보면 데지르라는 그 인간도 난 사람은 난 사람이다, 어떻게 자기 나라에 마황 침략을 걸어서 황제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지.”
“릴리가 부탁한 거 아닐까?”
“걔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이 나올 거 같지는 않은데....”
설득(물리)라면 몰라도.
팔짱을 낀 체 고민하는 부부에게 예지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허공에 쉐도우 복싱을 내지르며 말했다.
“당연히 그 재비 새끼가 꼬득였겠지! 우리 순수한 릴리를!!”
“야, 인간적으로 너가 지금 제정신인 아닌 건 알겠는데, 순수하다는 건 선 넘었지.”
“처음 고백도 전부 이걸 위한 설계가 틀림없어!”
“그때 두 사람 처음 만난 건데...”
성환과 유리는 예지를 포기했다.
이미 고장 나도 제대로 나버렸다.
릴리가 돌아오거나 자동 수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저 지경이겠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건 알았지만, 설마 저정도로 극성일 줄이야.”
“예지가 은근히 친구가 없거든. 독점욕 아닐까?”
“뭐, 그래도 할 땐 하니까 문제는 없지만,”
기본 기능이 너무 좋아서 고장이 나도 일은 잘하는 게 우리 성녀님이니까.
아니지, 지금은 오리혀 버프를 받으려나?
버프 본좌 성녀가 버프를 받으니 세상이 말세로군,
“아무튼 예지야, 근데 우리 진짜 이렇게 해도 되냐? 실상 릴리가 정체를 들키는 리스크 빼면 우린 죽치고 앉아있는게 답이긴 했잖아?”
“뭐.....그건 그렇지.”
지금이야 마황 토벌대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잡고 발할라의 손을 뿌리치는 제국이지, 마황 토벌군이 작살나면 제국은 부랴부랴 자신들을 찾을 게 틀림없다.
그때가 되면 철저한 갑의 위치에서 그동안 뻗댔던 것들 다 갚아주고, 천원 한 장으로 빵에다 딸기 우유 사오고 거스름돈 500원 남을 정도의 기적의 장사를 할 수 있겠지.
“또 그때 쯤이면 릴리도 자기가 알아서 마황 자리에서 내려올 계획도 세웠을 거라고 네가 그랬잖아?”
유리를 아직도 이번 작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리며 예지에게 물었다.
기실 리스크가 커서 그렇지 릴리가 일을 마치면 알아서 내려올 터.
마황이 죽지 않고 내려올 수 없는 자리라고 해도, 그러면 죽으면 그만이다.
아, 물론 실제로 죽는다는 게 아니라 위장 죽음.
마황을 죽일 수 있는 리스트가 너무 좁아 힘들긴 하지만, 또 마황의 현재 전투력이 미지수인 만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똑똑한 데지르라면 필시 릴리가 다시 마황에서 본래 신분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워두었을 터.
릴리도 마냥 멍청하진 않으니, 생각해둔 게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서 문제가 생기면 도와줘도 문제는 없었지.
그 편이 이득이기도 하고.
“그......그건 부정하지 않지만....그래! 걱정하는 가족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너! 성환이 너가 제국이 뭐 숨기는 거 같기도 하다면서?! 마황 토벌대가 진짜 릴리 목이라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해?!!”
“부랴부랴 만든 티가 물씬 풍기는 변명이구만, 평소 너 답지 않은 빈약한 발언이었어.”
“으음.....릴리가 진다라......그냥 우리가 제국 속국으로 들어가는 게 빠를지도?”
뭐 말을 이렇게 하지만 두 사람도 아주 작은 위험성을 남겨두지 않는 건 동의한다.
릴리가 질리는 없겠지.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까.
또 지지는 않더라도 의외로 고전해서 정체가 들키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되면 실상 최악은 똑같으니 이번 릴리를 다시 데려오는 작전에 동의한 것이다.
“여튼! 알고 있겠지만, 당장 릴리는 데려오고 싶어도 데려올 수 없어.”
“마황이니까.”
“우리가 지금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지구 = 마계, 발할라 = 마황의 수하가 될 테지.”
예지의 말에 두 사람은 한 마디씩 거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릴리를 데려오는 일이라고 해도 테라와 지구 간의 세계 전쟁의 단초를 남겨둘 순 없다.
마계는 그정도로 테라에서 인식이 나쁘니까.
가뜩이나 요즘 시끄러운 알브 헤임만 해도 골치 아픈데, 여기서 불씨를 더 키우는 행동인 이 번 작전만 해도 상당히 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것만 챙겨서 가자. 그게 이번 작전에 모토야.”
“버릴 건?”
“제국 황실. 윗대가리는 이제 필요 없어. 그동안은 최대한 친화적으로 나가고, 곧 이어질 테라와 지구 간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참아왔지만, 이 정도로 말귀가 안 통하면 버려야지.”
또한 무림과의 사태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뒤 다시 발발할 무림의 침략.
그때 또 다시 이방인에 대한 인식이 쓰레기가 될 터이니, 그때를 대비해 미리 제국 내부에 자리를 선점하여, 무림인들과 지구인들이 같지 않음을 상기시켜두려고 했었지.
더불어 무림에도 지구의 존재와 발할라의 힘을 알려주고.
하지만 사태가 바뀌었다.
“알브 헤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지랄발광을 시전 중이잖아?.”
“지구 엘프 누구도 세계수 같은 거에 관광지 이상의 흥미가 없는데 말이지.”
“성격도 나쁘면서....”
“그러니 시간이 부족해, 릴리 일도 정리하고, 무림도 신경 쓰고, 알브 헤임도 정리하기에는 말이야.”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무림과 테라간의 전쟁에서 우린 발을 뺄 거야. 그 전에 릴리만 챙겨두는 거지.”
“다시 테라로 돌아오기 힘들어 질 텐데?”
“그걸 위한 이번 작전. 말했잖아? ‘공식적으로라고’”
방금 전까지 조작하던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는 예지,
그리고
[어이~~~ 모선 성녀팀, 여기 우리도 도착했는데?]
[예지 언니, 여기도 대충 준비 끝났어.]
하나 둘씩 연결되는 통신과 함께 충무공 패션을 버리고 판타지 기사가 된 철수와 복면을 뒤집어 쓴 소라와 옆의 미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예지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두 사람에게 말하니.
“시작하자, 테라에 새롭게 탄생할 성녀의 이야기, 그 첫 번째 페이지를.”
어찌보면 릴리 이상의 악행일이 모르는 침략법.
종교 뺏기.
그리고
영웅 갈취.
용사 따위 개나 줘버린 성녀의 마황 토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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