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2단계 (4)
* * *
예상은 했지만 예상을 아득히 넘어버렸다.
그게 지금 대마녀, 그리시아와 바네사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비록 자신들은 대마녀이고 마황의 이름을 내건 마녀가 아직 견습 딱지도 체 때지 못한 어린 마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둘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없었지.
상대는 지난 수백년간 군림해오던 마왕 전원의 목을 떨어뜨리고, 피와 쾌락, 광기에 사무친 마족들을 힘으로 찍어누른 존재.
방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은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합동으로 이번 마황 습격을 계획했고, 또 그 이전부터 철저한 준비까지 한 만반의 상태였다.
“그런데 설마 이 정도 격차가 날 줄이야.....”
“하하....그러게. 대마녀 꼴이 말이 아니네. 에휴~~~”
자신들을 속박한 검붉은 무언가에 손이 뒤로 묶인 두 사람.
그녀들은 차디찬 지하감옥에서고 허탈하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무슨 변덕인지, 마황의 자비로 인해 살아남긴 했지만,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아니, 사실 자비라고 보기도 예매한 상황이지.
지하감옥.
그것도 마왕성의 지하감옥 아닌가?
세간에 알려진 것도 끔찍하고, 실제로는 더더욱 끔찍한 지옥이 바로 이곳이니, 자비라기 보다 오히려 유희일 수도 있다.
한참이나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는......
“크윽!! 이건 말랑말랑하면서 왜 이렇게 질긴 거야?!!”
“바네사, 헛고생하지마, 그거 때문에 마력도 못 쓰는데, 간단히 풀릴리가 없잖아?”
손과 발을 결박한 검붉은 무언가, 영혈은 끊임없이 두 사람의 마력을 빨아먹는 중이다.
덕분에 대마녀라는 이름이 무색하기 지금은 그저 그런 한 명의 여자일 뿐.
보통 이런 결박용 마도구는 역으로 강력한 마력을 주입하며 터져버리는 게 일상인데, 이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아무리 마력을 주입해도 그 이상의 마력을 갈취하고.
짜증나게 더더욱 말캉말캉해진다.
손목이 아프지 않은 건 좀 다행이긴 하네.
“쩝, 이제 어떻게 되려나......”
토벌대와 함께 오지 않는 게 역시 실수였던 것일까?
하지만 딱히 토벌대와 같이 와도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서걱서걱 시원하게 썰려나가는 마술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게 대체 뭔지 싶을 수준이었으니까.
그러고는 낫을 꺼낸 건 실수라면서 다시 부랴부랴 다시 스태프를 바꿔 끼고 있었으니, 그만큼 여유가 넘쳤다는 거겠지.
“이것저것 많이 묻긴 했는데.......대체 뭘까?”
“그건 나도 좀 의문이긴 했어.”
벽에 털썩 몸을 기댄 바네사는 그리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사로잡은 마황소녀.
그녀는 간단한 응급처지를 걸어준 후 많은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누구냐 부터 시작해.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제국이랑 마녀랑 사이가 나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협력이라도 하는 거냐며.
“이상해......별천지에서 살다 오기라도 했나?”
던진 질문들 전부 이상했다.
마녀면서 대마녀인 자신들을 모른다?
이건 뭐 그럴 수 있다 치자.
반쯤 은퇴하고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게 꽤 되었으니. 나이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어리다면야 뭐......
하지만 습격 이유를 묻는다?
아니, 본인이 마녀의 역사 자체를 부정했으면서 마녀가 자기 목을 노리거에 분노가 아닌 의문을 느낀다고?
하물며 제국이랑 마녀랑 사이가 나쁜 적은 별로 없다.
탑이랑 사이가 나쁜 거지.
모르는 사람은 그게 그거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실상 뜯어보면 많이 다르다는 건 마녀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일이니, 의문이 들 수 밖에.
“누구 제자지? 가면을 쓰고 있으니, 얼굴을 알 수가 있나.”
“우리가 아는 마녀인지도 확실치 않아. 그만한 힘과 재능이라면 당연히 귀에 들어와야 정상이잖아?”
부자연스럽지않게 질문의 답을 돌려주긴 했지만, 여전히 마황의 정체의 의문을 가진 두 사람이었다.
그 순간
─또각또각
지하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발소리.
깜짝 놀란 둘이 즉각 몸을 일으키자, 철창 문이 열리면서 기묘한 가면의 소녀가 지하감옥으로 들어왔다.
“여어~~~ 선배님들 잘 지냈어?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고?”
“잘도 불편하지 않았겠군.”
“딱딱하고 차갑고 불편해. 빵점이야. 후배님.”
서로 안부 인사라로 묻는 양, 대화를 주고받는 모양이지만, 경계치는 최고 수준이다.
입가에 미소를 띄운 그리시아조차 등과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으니.
마황소녀는 그런 그녀들을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린 후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타각!
스르르 녹아내리며 다시금 주인에게 돌아가는 영혈들.
돌아온 손과 발의 자유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소녀는 입을 열었다.
“처후가 결정되었어. 역시 내가 잘못한 게 있는 모양이야”
““뭐?””
마왕도 아니고 마황입에서 설마 자기 잘못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소녀는 이마에 손을 집은 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녀랑 마족 사이는 알고 있었는데,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지, 하여간 세상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니까. 여튼 결국 내 잘못도 있긴 있다는 건 인정해.”
“그.....그럼.”
“풀어주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나름에 이유가 있다고 횡포를 부리면 쓰나, 선배님들 잘못도 있잖아. 그래서 나름 합의안을 마련했어.”
합의안......
그게 뭐가 될진 모르지만,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마황이 된 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래도 아직 마녀는 마녀라는 것인가?
잘하면 설득해서 이런 일 그만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
그러나
“능욕, 조교, 타락 루트로 가자.”
““예?””
“내가 생각한 최고의 방법이야. 능욕 당하는 모습을 마황 토벌군 전체에게 보여서, 마녀가 마족의 피해자라는 걸 보이는 거지.”
마황에게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는 모습을 만천하에 보인다면, 그 누가 마녀를 마족이라고 여길까?
일종의 공주님 포지션?
물론 공주를 칭하기에는 두 분께서 연세가 많으시긴 하지만, 얼굴이 되시니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을 것이다.
대마녀로써의 명예는 어떻하냐고?
알빠임?
“그 다음은 조교!! 헤헤! 사실 내가 요즘 심심하거든.”
잔소리꾼이 그리워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동안은 개소리도 척척 받아주는 데지르가 있었기에 나름 이 슬기로운 마황생활도 잘 버티고 있었으니, 떨어지니 세삼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있으니.
심심풀이로 성벽에 세긴 마술진이 이제는 자리도 없을 지경이다.
“거기다, 내가 사정이 있어서, 소환수를 못 쓰거든. 이렇게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지. 거기다, 님들 자취 경력 쩔지?”
““자.....취?””
“혼자 사는 거 말이야. 한동안 귀찮아서 라면만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해, 맛있는 집밥이 그립단 말이야.”
사실 나도 자취 경력이 꽤 되는 만큼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는데, 막상 불판 앞에서 서기만 하면 결국 라면을 꺼낸다.
뭐랄까.
귀찮아서.......
하지만, 남이 해준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지!
김치랑 된장, 고추장은 이미 인벤토리에 포진하고 있으니, 마녀중의 마녀, 대마녀라면 능히 최고의 퓨전식을 만들어 줄 것이다!
“어디서 들었는데, 마녀는 다들 요리를 엄청 잘한데!!”
‘너도 마녀잖아.......’
심지어 둘은 모르지만, 대마녀를 넘어선 초마녀인게 릴리
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넋을 잃었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들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가기 시작하니.
“우린 분명 좋은 선후배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야.”
짜리 몽땅, 보들보들한 마황의 손길이 공주님(나이 XXX)를 향해 뻗어갔다.
* * *
3일 뒤 데지르가 돌아왔다.
“경축! 데지르 환영!!”
가히 돌아오신 서방님을 반기는......아 선 넘었다.
이건 아니지.
다시다시
가히 돌아온 친한 전우를 반기는 듯이 난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답지도 않게 성문 앞까지 마중을 갈 정도로.
아니, 잔소리 꾼도 없으면 서운하더라고.
정확히는 서운보다는 심심이지겠지만.
“그동안 무슨 사고 치시진 않았지요?”
“너나 사고 친 거 아니냐? 왜 이렇게 늦어?”
“하하, 제국에서 이런 저런 것들 조사 좀 하느라 늦었습니다.”
“에휴, 그럴 거 같긴 했지.”
늦는데 이유를 생각하니 하나 밖에 없지.
이놈의 워커홀릭한테 능력을 줬다 생각하니, 어찌보면 당연하더라고.
물론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기에 며칠 더 늦었으면 찾으러 갈 생각이긴 했지만, 데지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적절한 시간에 돌아왔다.
“이거, 이번 마황 토벌군의 세부 정보입니다.”
“이얼~~~ 이런 걸 어떻게 조사했다냐? 황태자라고 밝히기도 못하잖아?”
품에서 한 서류를 꺼내며 건네는 데지르
난 그런 그의 수완에 감탄을 보냈다.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데지르도 나름 자부심이 있긴 한가보지 조금 상기된 얼굴.
“뭐, 사실 별 것 없기는 하지만, 상세 내용이나 정확한 토벌 군의 위치는 파악했으니, 요격하고자 하면 요격할 수도 있을 거에요.”
“요격은 무슨 다 받아 줄 건데. 오히려 이거, 용사나, 성녀? 얘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걱정이다.”
“저도 그 부분은 많이 고민했죠. 결론은 성녀 제외, 몰살하시면 됩니다. 아, 어색하지 않게, 수하로 따라온 온 흑사단 단장이나 부단장 몇 명만 살려주시고.”
건들면 상당한 불똥이 예상되는 리스트 1 순위.
성녀.
제국 쪽 인사들은 데지르가 합의 보기로 했다.
그들의 목숨까지 욕심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이 가장 뒤처리가 깔끔한 자들이니.
“이거, 제 1검. 너희 나라 최강 병기 아니냐? 진짜 죽여도 돼?”
“아쉽지요. 안 죽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어쩔 수 없어요. 성녀를 둘이나 살려야 하는데, 아예 져주지 않고서는 무리입니다.”
“으음........뭐, 내가 처리해볼 게. 그것보다 용사는 진짜 다 죽여도 됨?”
“똘끼들, 돈만 받아먹는 축생. 이번에도 당신 목을 노리는 거에 숫가락만 놓을 작정했더군요. 싹 다 죽이세요. 사실상 마왕 토벌을 포기했던 시점에서 죽어 마땅한 놈들입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죽이라 말하는 데지르
그는 이후 조사해온 정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풀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녀가 토벌군에 아예 합류하는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우선 이 마녀들부터 선수를 칠 겁니다.”
“........예?”
“미리 마녀들을 물러나게 하는 거죠. 물러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릴리씨의 장기중에 저주가 있다고 하셨죠? 그걸 이용해야 할 거에요.”
조절이 중요하다.
회복은 가능하나, 물러설 수 밖에 없는 미묘한 위력
이를 대마녀에게 밖아 넣어야만 마녀들을 이번 일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
“.........”
“마녀들 까지 죽이는 걸 고려했지만, 여파가 너무 클 것 같아 이 방법 말고는 없더군요. 그 다음은 언데드 군대과 제국 군의 충돌로 시키면서 고의적으로 마황성의 문을 여는 겁니다. 성녀와 용사, 제국에게 기회를 주는 척하는 거죠.”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는 강력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확실한 약점을 가진다.
바로 술자 본인.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더 몰아쳐야 합니다. 변경백까지 치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해서 좀 더 파고 들죠. 노골적으로 보이는 작전인 만큼 상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어선 안 됩니다.”
“.......”
“저....릴리씨? 아까부터 말이 없으신데, 계획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면 저주를 제가 너무 형편 좋게 생각─”
“아니! 아니.....그건 아닌데.......”
갑자기 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피하자, 데지르는 등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휩싸였다.
“.........사고.....치셨군요.”
“아니, 들어봐. 내가 일이 이렇게 될 줄─”
후다닥 나를 지나쳐 왕홀로 달려가기 시작한 데지르
아무도 없는 황량한 성을 지나는 그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처음과는 다른 공기.
묘하게 밝아진 분위기.
차이점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청소?”
그래 청소가 되어있다.
복도부터 이곳 저곳 전부. 매우 깔끔하게
그럴리가.
릴리가 청소를 한다고?
그녀가 불청결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성 전부를 청소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데지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상황에 멈춰선 그를 내가 잡으려했지만, 용용이의 힘을 빌린 데지르는 더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고,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나는 건....
“어라? 데지르? 황태자 나으리가 여긴 왠 일이야?”
“그리시아, 아는 사람인가?”
익숙한 얼굴의 메이드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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