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2단계
* * *
얼추 제국을 상대로 한 컨셉용 여황 흉내가 끝나고, 난 즉시 내 발언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였다.
모 오토바이 타고 쇠사슬 휘두르시는 분을 닳은 내 신작 스켈레톤들.
그들을 이끌고 향한 곳은 가장 활발히 마왕 쟁탈전이 벌어지는 전장이었다.
“저.....저게 뭐야?!”
마치 산불처럼 서서히 시야를 잠식해 가는 불꽃의 무리.
천?
만?
수를 가늠할 수는 없다.
내뿜는 화염은 서로 엉키고 엉켜 개별 간의 구분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압도적인 수라는 확신은 할 수 있었으니, 마치 산 전체를 휘감는 듯한 불길의 모습은 절로 마족들에게 공포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으아아아!!”
“젠장!! 제에엔장!!!”
“싸우라고!! 싸워!!!”
대부분의 마족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지만, 남아 싸우는 무리도 만만치 않았으니.
사실상 저들이 가장 유력한 마왕 후보들.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지가 코앞인데, 갑자기 왜 마녀가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서 훼방을 놓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겠지.
그들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쉴 세 없이 검을 휘두르고, 마술을 퍼부으며 내 스켈레톤들을 박살냈지.
그리고는 깨닫는 하나의 사실.
“하하!! 별 거 아니잖아?!!”
“이딴 걸로 감히 마녀 따위가 마왕을 넘보는 거냐?!!”
“흐흐.....오랜만에 마녀 살점을 맛보겠군.”
나름 불길을 머금어 강력할 줄 알았던 내 군대가 실상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
그저 그런 스켈레톤보다 좀 강한 수준?
불길 때문에 공격이 좀 매섭긴 하지만, 마왕의 자리를 노릴 자신들에게는 닿지 않는 수준의 위력일 뿐이었다.
검격 한 번에 수 십마리가 뼛조각이 되어 흩어지고
마술이 터질 때마다 추풍낙엽마냥 나가떨어지는 스켈레톤들의 모습.
그들은 서서히 자신감이 얻어갔다.
물론 이만한 수를 상대하면 필패.
그러나 술자가 저기 버젓이 있는데 상대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바로 나를 노리며 그들은 돌진하기 시작했다.
막아서는 모든 군세를 밀어버리며 ‘너만 네년만 죽이면 이것들도 끝이다’ 같은 말을 지껄이면서 말이다.
“등신들.”
그래, 확실히 내 군대는 별 볼일 없는 것들이지.
내가 괜히 이런 군대를 부릴 줄 알면서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효율도 성능도 병신이라서 그런 거지.
나름 신경써서 만들긴 했지만, 이 따위 군대 몰살하는데, 용용이 혼자서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이보면 내 소환수가 비정상적으로 강하고 효율적인 거라 말하겠지만, 여튼, 술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단 의미.
하지만, 방금 말을 들었으면 알 수 있는 사실.
반나절.
용용이가 몰살시키는데, 반나절이 걸린다는 부분.
역으로 말하면 이 군대는 용용이를 상대로 수시간은 버틸 수 있단 의미다.
“어?”
“이게 무슨?!!”
“이것들은 대체 뭐야?!!”
나를 향한 분노의 질수를 선보이던 마족들의 발목을 잡는 무언가.
그들이 깨고 부수어 짓밟던 스켈레톤들의 손이었다.
불꽃이 꺼져 당연히 기능이 정지했을 것이라 여겼던 것들은 어느샌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고.
이미 죽은 망자답게, 머리가 없든, 팔이 없든 상관치 않고 주인을 향해 다가가는 존재들을 붙잡고 늘어진다.
“떨어져!!”
“한낱 스켈레톤 따위가!!”
가볍게 발목을 비틀어 떨쳐내기도 하고, 검과 마술로 완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기도 하지만, 도무지 끊이지 않는 나의 군대는 마치 늪과 같았다.
저항하여 몸을 움직일 수록 더더욱 잠식되는 늪
시간이 걸리면 걸릴수록 다가오는 해골은 오히려 배로 불어나 그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니.
하물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어느샌가 뭉쳐버린 뼈간지들은 더더욱 거대하고 흉흉한 모습으로 부활하여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으로 어깨, 허리, 손 순으로 달라붙기 손길과 뜨거운 열기에 그들은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로 성장한 스켈레톤 한 마리의 거대한 손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씨익
어리석은 것들
시체술사가 시체무리가 갈려 나가는 걸 보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면, 뭔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마왕이 될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망집.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존감.
죽음은 이토록 허무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살려─”
“줄 리가 없지요.”
─콰직!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저항하던 마족은 결국 온몸이 불타는 고통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머리를 내려찍는 스태프의 뒷편.
마왕 쟁탈전 하나를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 * *
이후는 모두의 예상대로.
단지, 조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모든 마왕성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스켈레톤을 만들면서 처음 쓸어버린 것 하나.
이후 군대를 풀어 쓸어버린 것 둘.
이거면 충분했다.
마계에서 이제 나를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마왕의 권좌를 노리는 이들을 참혹하게 죽였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마왕의 자리는 더이상, 명예와 성공의 자리가 아닌.
오로지 필연적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으니까.
이 가운데 난 마족들을 향해 선포했다.
“들어라.”
나 아리아스타
마계 유일무이의 마황이니.
어리석게도 날 부정했던 7마리의 조무래기들을 척살한 마계의 진정한 주인이다.
너희들이 마왕의 자리를 노리는 것은 잘 보았다.
감히 무례하게도 내가 비워둔 잔을 취하려는 승냥이 같은 더러운 모습 말이다.
마황의 자리에 오른 내가 있음에도 왕을 참칭하려 하다니, 아주 작은 본보기를 보여줬으니, 이후 처신을 어찌해야 할지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여는 자비로운 마황이다.
탐이 나겠지?
마왕의 영지, 마왕의 자리.......
길어지는 수명과 쌓여가는 힘.
샘솟는 욕망을 주체하는 건 어려운 일임을 나도 안다.
그러니 여를 찾아오거라.
여의 성에 찾아와 자격을 증명하고 머리를 조아려라.
한쪽 머리의 뿔을 부러트려 내게 바침으로 충심을 증명하고
앞으로 있을 여의 명예를 드높힐 전쟁의 선봉이 되어라,
그리 하여 공을 세운이에게는 친히 마왕의 좌를 하사하도록 하마.
마계 전역을 떨친 나의 선언 아닌 선언.
마왕 쟁탈전으로 불타오르던 마계는 다른 의미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반응은 대계 두 종류
그 첫 번째.
“지랄하지 마라!! 한낱 마녀 따위가 감히!!”
“죽여!!”
“마황?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마족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뿔을 바치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전에는 자격을 증명하고, 그 후에는 사축병사가 되어 나가 싸우라는 말,
분노하지 않은 마족이 없을 수 없지.
지금까지의 마왕들도 상당한 지랄꾼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만큼 역대급인 적은 없었다.
화가 임계점을 넘어버린 그들은 결국 폭발하고, 무리를 모아 내 성을 향한 침공을 계시했다.
“이야아아아아아!!”
“돌격!!”
“성문조차 없는 성 따위, 박살을 내주마!!”
아직 수리를 다 마치지 않는 마황성으로 돌격하는 수많은 마족들.
결과는 뭐......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단지, 내 군대에 신참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것 정도만 알려줄 게.
두 번 째 반응은 정말 머리를 조아리러 온 이들.
“추....충성을 바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뿔이 부러진 고통과 꺾인 자존심의 대한 분함을 상징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니.
온몸을 적시는 피와 여기저기 난도질 당한 상처들.
내가 말한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이 결코 자비롭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들이지.
미안하지만 마족에게 보일 자비심 따위 진작에 쓰레기통에 쳐박은 뒤라서 말이야.
마왕?
개소리.
내가 진짜 마왕을 세워줄 리가 없지 않는가?
이건 선별이다.
싹수가 노란 것들은 어차피 내가 마계를 떠나 부캐에서 본캐로 전환되면, 땅을 차지해 마왕이 될 녀석들
이렇게 미리 선별해서 제국과의 전쟁으로 처리하는 거지.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1 단계는 거의 완료인가?”
제국에서도 슬슬 아리아스타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고. 제국 전선에 세워둔 불어난 내 군대는 연일 전선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상황.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지만, 아쉽게도 데지르가 오지 않았다.
“이놈은 대체 뭘 한다고 이렇게 늦는 건지.........소드 맛스타 그거 완전 순 뻥 아니야?”
난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옥좌에 팔을 걸친 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푸념해도 데지르가 없으면 이후 계획이 진행될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
지금까지야 데지르가 거의 잔소리꾼, 심부름꾼 역할이었지.
이제는 그가 주역이니.
처음 샤말리아를 뛰쳐나오면서 생각했던 나의 슬기로운 깽판 생활 계획
이건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는 매운 단순한 방법론이었다.
알브 헤임이 앨라임, 죄악의 가시의 존재로 날 거부할 것이 명확해진 상황.
하지만 이는 그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름 제국과는 관계를 체결했으니 문제없는 거 아니냐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
데지르가 황태자이기는 하나, 현 제국 내부는 황태자의 주장 쯤 가볍게 뒤집어 버릴 황자, 황녀가 판을 치고 있거든.
알브 헤임이 단순 거부 정도였으면 모르겠는데, 앨라임의 존재를 알면 그치들 무조건 전쟁 확정이란 말이야.
어떻게든 내 존재를 말살하려고 기겁을 할 게 분명했지.
만약 우리와 알브 헤임이 전쟁을 벌이면, 제국에서 화친을 계속 유지하자고 할까?
미쳤다고 걔네들이 그러겠어?
기껏해야 황태자 한 명의 주장이다라고 하며 무시하고 없던 일로 하려하겠지.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골 때리냐?
별 시답지 않은 쌩쇼란 쌩쇼는 다 벌여가며 겨우 제국과 관계를 체결했는데, 이건 뭐 운명의 장난 레벨의 불운으로 모든 게 날라가게 생겼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결국 난 해결책을 찾다 말고 빡쳐서 탈주했다.
이게 내 처음 탈주의 원인이었지.
화가 나는 거 반
결국 내 존재가 문제이니 내가 없으며 되는 거 아니냐는 심정이 반 정도.
그렇게 용용이를 타고 새벽 바람을 맞고 있으니 마계가 보이더라고,
그러자 문뜩 알리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지.
알브 헤임 이 망할 새끼들, 신앙이니 순혈주의니 뭐니 하면서 결국 아크 리치 쳐들어왔을 때, 알리샤한테 손 벌렸잖아?
결국 급하면 ‘이건 이래서 어쩔 수 없었다’ 소리나 하는 족속들이란 의미.
그제서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더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만들어 주면 되겠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마황 계획이다.
마황이 등장해 제국도 알브 헤임도 갈아버리기 시작하면, 두 대국이 과연 우리의 손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역대급 대마황의 침공이 시작되어도?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무림 때문이 아니라, 당장 마족들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면 화친이든 불평등 조약이든 다 받아 줄 것이란 게 내 생각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좀 미친 게 아닌가 싶지만........
이해해 주시길.
당시는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쩝, 내가 남정네를 이토록 기다릴 줄이야. 빨리 와라.”
나는 고개를 뒤로 저치며 푸념을 쏟아냈다.
이런 화김에 만들어진 구멍 투성이 계획.
이를 완성시켜 준 건 다름 아닌 정보 수집용으로 납치했던 데지르였으니.
이제는 그가 계획일 실행시킬 단계가 온 것이다.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2단계.
황제
연극의 주인공이 오늘 따라 좀 바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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