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사냥이 키운 마녀님-64화 (64/116)

〈 64화 〉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1단계슬 (3)

* * *

‘최단기! 당신도 할 수 있다. 마황!’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작심삼일도 부족해 작심일일, 릴리가 된 이후로는 작심반나절의 경지를 노리는 나지만, 어쩌다 보니 생긴 잔소리꾼이 효과 발군이었지.

어찌나 쏘아대던지, 참......

해광심어 같은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경지였다면 내 귀가 터져나갔을게 틀림없다.

“덕분에 이렇게 온전히 마왕성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따라올 것까진 없잖아....... 너 지키는 것도 일이란 자각을 좀 하지?”

“나름 제가 제국 8검입니다. 당신 때문에 죽을 뻔 했지. 마족 때문에 죽을 뻔한 기억은 없습니다.”

“칫!!”

마왕 옥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난 그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재수 없는 엄친아 자식......

저게 사실이라 더 짜증나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난 데지르 덕분에 이렇게 마왕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또 개빡쳐서 불도저로 밀어버릴 뻔했거든.

내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는지 마지막 마왕성은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시답지 않은 잡담이나 나누며 걸어가던 우리는 그 모습에 상당히 놀랐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닌데 말이야.

남은 4체 중 3곳을 함락.....철거 시켰으니, 남은 자신들에게도 우리가 갈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

뭐, 나름 귀가 넓은 마왕이었단 거겠지.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굳건하게 닫힌 성문에 세워진 깃발.

그 깃발 위에 걸려진 무언가가 날 빡치게 만들었다.

꼬깔모자를 쓴 여인의 수급.

목적은 명확하다.

ver 아리아스타 코디를 하고 있어도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마녀모자는 항상 쓰고 있었으니, 나를 향한 일종의 경고장이겠지.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는 의미의 경고장 말이다.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어 시력을 강화했는데, 그걸 본 순간 나와 데지르 모두 숨을 삼켰다.

놀람.

당황

혼란스러운 마음 다음에 찾아온 건 역시나 분노더라.

참으로 마왕 다운 도발 아닌가?

응해주지 않고서는 예비 마황의 이름이 울지.

이마에 십자주름이 빠직빠직 돋아나면 부캐 양성 중이라는 것도 잊고 바로 불도저 코스, 카녹스와 용용이를 부르려고 했었다.

이를 겨우겨우 뜯어 말린 게 여기 데지르.

“참....그 정도 도발에 넘어가시면 어떻합니까?”

고개를 가로젓는 데지르의 모습에 난 입을 삐죽 내밀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잔소리 꾼 같으니라고.....

그걸 ‘그 정도’라 치부할 수 있는 건 니들 테라 감성이지, 지구 입장에서는 나름 강력한 도발이거든?

이런 문화 차이도 이해하지 못하는 황태자 같으니라고!

“내가 마음이 여려서 망정이지, 그때 확 돌아버려서, 미친 놈 마냥 날 뛰었으면 어쩔 뻔 했어?”

“마음이 여려.....”

데지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음이 여리기는 개뿔.

자신의 만류에 불도저 코스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녀의 분노가 사그라든 건 절대 아니었다.

당장 마왕성이 온전할 뿐, 외각 성벽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

문이 있던 자리가 통째로 증발해. 성문 자체가 없는게 지금의 마왕성이다.

그 후 마왕의 모습 또한 처참했지.

반병신이 되어 그녀의 손에 질질 끌려가 절벽에 박혀, 조금씩 흘러내리는 용암에 녹아 죽도록 그녀는 만들었다.

가뜩이나 마왕이라 몸도 튼튼한데.......

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어쩌면 지금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그녀를 향해 온갖 저주를 쏟아내던 마왕.

하지만 살갗이 타들어가기 시작하자, 이내 저주는 자비를 구하는 절규가 되었다.

아직도 그 마왕의 목소리가 귀가에 생생히 들리는 데지르는 그저 눈을 감을 뿐.

“두 번 자비로우면 대체 무슨 꼴이 날지....”

“뭐랬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눈치 198단의 데지르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이제 남은 건 이 성에서 적당히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입니다.”

마황의 명성이 천지를 진동시켜야 한다.

이미 업적은 충분하니, 나름의 액션을 취해주면 금방 소문이 날 터.

이를 위해 데지르를 데려온 것.

으래 모든 소문과 정보의 시작은 대부분 제국이니, 제국의 상황에 밝은 그라면 보다 빠르게 마황의 명성이 천지를 울리도록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데지에몽. 가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크게 할 일은 없습니다.”

“예? 막 정보상들에게 정보도 뿌리고 해야하는 거 아님? 그래서 내가 널 데려온 건데?”

그럴 걸 예상해서 인벤토리에 이것저것 돈 될 거 잔뜩 챙겨놨는데!!

설마 쓸모가 없다니?!!

그럴리가 없다는 듯 데지르를 향해 강력하고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국 황실을 얼마나 우습게 아시는 겁니까?”

그딴 정보상들이 들고 다니는 정보 쯤, 황실에서는 몇 배의 정확도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아무리 돌아다녀봐야, 황실 귀에는 이상한 놈이 돈 뿌려서 설치는구나 정도 밖에 안 되지.

혼란이 올 것 같으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뭐하러, 그런 괴상망직한 수고를 하십니까? 가끔 들어보면, 테라에 잘 아시는 거 같은데, 또 묘하게 어이없는 부분이 많으시군요. 대체 정보를 누구에게서 구한 건지......”

“웨....웹소설이요...”

“소설? 릴리 씨. 인생은 실전이지 소설이 아니에요.”

“이미 인생이 TS장르 먼치킨 판타지인데 그런 말을 해도...”

데지르의 지극히 인싸스러운 현실 조언에 난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무튼 저희가 굳이 수고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국이 알아서 소문을 낼 테니까요. 물론 저희가 적당히 거들면 시간은 단축되겠죠.”

“어떻게?”

“제국을 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치면 됩니다. 저희의 최강의 무기. 그건 마황이 허세도 허명도 아닌 진짜란 것이니.”

진실만큼 강한 무기가 어디 있을까?

데지르는 내 앞에 서서 그동안 생각해둔 내 계획에 살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에 디테일을 살리고.

제국과 각 국 및 알브 헤임의 정세에 밝은 머리를 활용해 보다 확실한 루트를 짜내 나를 향해 이야기한다.

이게 황태자 클라스라는 걸 보이듯 말이다.

그저 두루뭉슬하게 계획을 짜두고 상황이 닥치면 임기응변이라 생각했던 난, 그의 말에 점점 감회되고.

눈빛은 초롱초롱

과연, 이게 전문가의 카운셀링!

릴리의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1 마황 탄생.

마왕성 함락 완료.

다음은 제국이다.

* * *

─샤락

오늘도 어김없이 서류를 뒤적이며 업무를 보는 알리샤.

제국의 사신단이 돌아간 지 3일 째.

할 일은 이전보다 빠르게 쌓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여러 일이 겹쳤으니까.

제국 사신단은 아무리 말렸지만, 결국 딱 하루하고 반나절을 기다린 후 본국에 현 상황에 대한 연락을 시도했다.

황태자가 납치된 일이니 이 정도면 많이 기다려 준 셈.

눈을 질근 감고 어떤 소식이 돌아올까

역시 전쟁이겠지?

어린 아이들은 지구 측으로 피난부터 보내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눈에 비친 건 혼란에 빠진 사신단원들이었다.

듣자하니, 모든 마도구가 박살났거나 먹통이라고.

숨겨둔 비상 연락망까지 모조리 망가졌다고 한다.

이를 들은 자신과 지구 측 사람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한 소녀의 개구장이 같은 모습.

‘필시 그녀가 무슨 수를 쓴 거겠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돌아와 마도구를 부순 건지, 아니면 이미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이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녀 뿐이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아니나 다를까. 사신단은 즉시 돌아갈 준비에 착수했다.

통신이 안 되면 구두로라도.

사안이 사안이고 또 이렇게 공교롭게 마도구까지 먹통이 되었으니 더더욱 그들은 서둘러 제국으로 향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으니, 사막을 횡단하는 건 다크 엘프나 드높은 경지의 사람이 아닌 이상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단 사실.

그 준비에는 당연히 마도구도 포함된다.

모든 마도구가 작살난 시점에 사막을 넘을 때 쓰는 마도구가 포함되지 않을 리는 없으니,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

슬금슬금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알리샤는 눈을 감고 외면했다.

저들이 빨리 돌아가는 건 절대 달가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마냥 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럼 완전히 적대 관계에 놓여버린다.

알리샤는 이를 이용해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그 과정에서 보다 완만한 사태 해결을 위해 설득의 설득을 거듭했지.

물자를 핑계 삼으니 만나주지 않는 이는 없었지만, 역시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물자를 가지고 협박한다면 기분 나빠 했고.

몇몇은 알리샤와 지구 측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렇게 3일 정도를 준비라는 명목하에 시간을 번 후, 그들은 모든 채비를 마치고 제국으로 돌아갔다.

설득이 의미가 있었을까?

그건 돌아올 소식이 들려와야 알겠지.

─샤락.

“알브 헤임도 여전하군.”

공교롭게도 제국 사신단이 돌아가고 난 다다음날, 예정보다 조금 일찍 알브 헤임의 사신단이 샤말리아에 도착했다.

휴식시간도 없이 연속해서 오는 일정에 강대한 몸조차 정신의 피곤을 이기지 못할 지경

라그나는 그녀에게 휴식을 권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 측도 릴리가 갑작스럽게 빠져 성환이 급히 인수인계를 하는 중인데, 자신까지 빠지면 더 골치 아파질 터.

고집에 자존심 하나는 끝내주는 이들이니, 성의 없는 대우를 받으면 될 일도 되지 않을 테니, 성환과 알리샤는 이후 몸져누울 각오를 다지고 엘프 맞이를 서둘렸다.

그 결과가 좋았으면 좋으렸만.....

지구라는 새로운 세계의 소식에 알브 헤임 사신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마치 어쩌라는 거냐는 듯한 태도.

마계에 일어난 사단의 원인 따위 관심없다.

그게 지구 측에서 벌인 일이든 샤말리아가 벌인 일이든 간에, 마계 일만 처리해주면 그만.

지구 따위 하등 관심 가지지 않았다.

이에 성환은 지구에도 엘프와 하이엘프가 있음을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귀를 기울이긴 했지만.

‘지구의 모든 엘프와 하이엘프가 세계수의 그늘 아래 들어온다면 생각해보겠다.’

신사 같던 성환조차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 떨어지고.

회담은 즉시 파토나 두 집단은 갈라섰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지.

엘프들은 미령과 소라를 찾아다니며 지구의 엘프와 하이엘프를 이끌어 세계수에 올 것을 종용하니, 가뜩이나 가족이 사라져 마음이 심란한 둘은 참던 분노가 폭발.

알리샤가 급히 찾아와 말렸기에 다행이지, 자칫하면 인명사고까지 번질 뻔한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알브 헤임 측은 당연히 돌아갔으나, 마지막까지 엘프는 세계수의 품에 있어야 한다는 광기에 젖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아......”

피곤하다.

정말 오랜만에 드는 냐약한 생각.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 측에서도 황태자의 일을 빌미로 선전포고를 해올 지도 모르고.

알브 헤임은 벌써부터 이번 일에 책임을 물을 것이며, 지구라는 미지의 세계에 갇힌 엘프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서안을 보내왔으니, 어찌 피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대는 생각이 있기에 한 행동이겠지. 믿네. 날 친우로 여겨준 그대이니. 하지만........”

조금 서둘러 줄 순 없겠는가?

그리 오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

그녀의 가족들도, 동료들도 모두 걱정에 젖은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그저 돌아와주길 바랄 뿐.

잠시 팬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감상에 젖어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덜컹!!

“족장님!!”

가늘게 이어지는 여성의 목소리.

막사의 문을 젖히고 들어온 건 라그나의 부사수 셀피네였다.

그녀는 어떤 종이를 가지고 족장을 찾아오고, 그 뒤에 라그나, 성환까지 바로 따라 들어온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 호위를 서던 이들마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알리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다들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이거!! 이걸 보세요!!”

“이 죽일 년. 대체 무슨 사고를 치는 건지....”

“지금 제국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제국이 뒤집어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싶어 알리샤는 조심스럽게 셀피네가 가져온 종이를 받아들었다.

아직 제국 사신단이 도착하려면 한 참 남았는데, 무슨...

하지만 이내 종이를 바라보던 알리샤의 동공은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건!!!”

[마계 통일을 이룩한 종말의 마녀의 등장.

마황, 아리아스타의 전쟁 선포.

북방 마계 전선 붕괴

변경백, 카를로스 후작의 영지 함락.

수도를 향해 수만의 언데드 대군이 진격 중.

........]

알리샤는 이전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마녀는 각자의 고유한 특징에 맞춰 이명을 가지는데 릴리의 이명은 뭐냐고.

그때 그녀는 언젠가 생기면 그때 직접 보라고 했었지.

“종말의 마녀....”

친애하는 친우의 이명

그건 마황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