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슬기로운 깽판 생활 제 1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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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예로부터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 그 자체. 위그드라실
기독교 하느님께서 에덴 동산 한가운데 심으신 영원의 삶을 주는 나무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탄생한 세피로트
단군신화의 신단수
국가와 민족, 인종에 차별 없이 언제나 신성시되어온 나무.
이는 테라 역시 다르지 않다.
세계수.
비록 이분께서는 종족 차별주의자 기질이 다분하시어, 엘프라는 종족만 예뻐하셨지만, 그만큼 엘프라는 종족에 한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베풂을 선사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령의 가호.
세계수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엘프들이 어느 종족보다도 뛰어난 정령사라는 건 태라에서 상식에 가까운 일.
기본적인 엘프들의 정령 친화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이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다우너라는 자들이다.
흔히 불려지길 진정한 정령사
자연계 4대 속성의 모든 정령을 다루는 자들을 총칭하는 이 칭호는, 오직 엘프에게서만, 알브 헤임의 세계수의 품에서만 탄생해왔다.
실질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세긴 정령사의 대부분이 다우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을 터.
그 밖에서 엘프들에게는 자잘한,
타종족들에게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세계수의 혜택은 무수히 많다.
그중 마력초는 제국에서 악명이 높지.
어지간해서는 검, 마술 둘 중 하나는 자녀에게 가르치는 제국의 귀족들에게 마력초는 영재교육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
엘프들은 이를 매우 영악하게 이용했는데 그들은 마력초를 단순히 높은 금전에 팔지 않았다.
오히려 판매 대상을 선별.
유력한 권력가, 강한 세력을 형성한 영주, 각 분야의 요직에 앉은 이들에 한에서만 금전과 함께 각종 이권 및 정보와 협력을 대가로 마력초를 넘겨왔다.
당연히 이를 용납할 리 없었던 황실은 제제에 나서려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니.
이름 좀 날린다는 기사, 마술사 중에 마력초를 먹어보지 않은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마력초는 제국의 전력을 구성하는 일부 중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
거기에 자식 교육에 눈이 먼 부모들을 어찌 막겠는가?
암암리에서 틀어지는 계획에 결국 황실은 독을 삼키는 심정으로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게 되었다고.
이 뒤에 엘프들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풍부한 광맥 역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인데.
엄청난 양의 미스릴은 물론 드문드문 발견되는 오리하르콘까지.....
드워프가 반쯤 엘프들의 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이처럼 엘프들은 세계수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아왔다.
엘프들 역시 이를 감사히 여기며, 세계수를 가꾸는데 성심과 정성을 다했고.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목숨 그 이상을 걸 정도지.
그런데.....
이런 베풂 뿐이 나무가 실존할 수 있는 것일까?
“쿠르악스의 변종. 저희가 추측하고 있는 세계수의 정체입니다. 직접적인 확인이 불가능해 단언하긴 힘들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이죠.”
“쿠르악스?”
“마계에서 마기를 빨아먹고 자생하는 괴식물 종 중 하나입니다. 나그나스가 다뤘고, 당신도 가지고 있는 죄악의 가시. 그게 쿠르악스의 원형이라 보시면 편할 겁니다.”
“헐......”
이것이 데지르의 입에서 튀어나온 세계수의 정체
난 할 말을 잃었다.
나그나스가 세계수이 뿌리를 타락시켰다고 일족의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고 했는데, 설마 세계수 자체가 이미 마계 식물이었다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정보에 고개를 젓고 있잖니, 데지르는 이에 그칠세라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독제독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독으로 독을 중화시킨다는 그거?”
“예, 세계수의 역할이 딱 그것일 겁니다.”
마기라고 꼭 마계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일종의 탁기의 한 종류라서 세상 어디든 조금씩이나마 존재하는 기운 중 하나니까.
세계수는 이런 타기의 형태로 흩어진 마기들을 모조리 빨아먹어 역으로 주변을 탁기 하나 없는 깨끗한 청정 구역으로 만들고 있던 것.
엘프들이 누렸던 모든 혜택은 그 부산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는 공기청정기를 들 수 있겠네.
공기청정기로 인해 집안은 매일매일 상쾌한 공기가 자리잡지만, 역으로 집안에서 가장 더러운 게 공기청정기의 필터인 것처럼 말이다.
대신 이 경우는 공기청정기가 필터의 먼지를 양분으로 살아간다는 게 다르겠지.
하지만 나는 이에 고개를 휙휙 저으며 데지르의 말에 의문을 제기했다.
“야, 세계수잖아. 세계수. 졸라 큰 거 아니야?”
“그렇겠죠? 아직 알브 헤임이 세계수 주변에 장막을 치기 전 기록에 따르면 하늘을 가릴 크기의 나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데, 그런 나무가 고작 탁기로 살아간다고? 그게 말이 돼?”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변종이라는 점. 효율이 좋을 수도 있단 거죠.”
단순 효율 좋다는 말로 퉁칠 수 있는 레벨이 아닌 거 같지만, 의외로 그 주장은 타당성이 있었다.
바로 엘프들 때문에.
마계 자생 식물인 만큼 무지막지한 양의 마기를 요구하는 쿠르악스지만, 그 양분의 주된 사용처는 생명을 유지하는 게 아닌 공격성에 치중되어 있다.
엘라임이, 그리고 과거 나그나스가 사용한 죄악의 가시의 힘이 마냥 거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지.
하지만 세계수는 그런 뿌리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상황.
그 이유인 즉슨.
“엘프들이 있으니까요.”
“과연 상부상조하는 격이네.”
엘프들이 지켜주니 뿌리를 쓸 필요가 없고. 그로 인해 탁기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 않냐는 것.
그러나 이는 너무 행복회로를 쌔게 돌린 이야기고 데지르는 다르게 생각한다.
정확히는 두 번째 가설에 좀 더 무게를 싣는 쪽.
“엘프들이 무슨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거 겠죠.”
애초에 그렇게 세계수를 싸고 도는 것부터가 의심스럽다.
순혈주의는 웬 말이고.
정말 첫 번째 가설데로라면 아무리 마계 식물이라고 하여도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
그의 말에 나도 오히려 두 번째 가설이 더 타당성 있다고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은 세계수를 봐야 안다는 소리네.”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건 사실상 알브 헤임에 대한 선전포고. 제가 말씀 드리지 않은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증명할 길이 없으니, 세계수는 결국 세계수일 뿐이다.
무한한 은혜를 내려주는 나무
알브 헤임의 신.
또한 증명한다 한들 어쩌자고?
마계의 식물을 활용하는 건 인간도 자주 하는 일인데.
“아니, 근데, 그러면 마계 나무가 정령의 가호를 내려주는 겨? 이 뭔 개소리도 아니고.”
“개소리 맞죠. 그건 확실한 개소리 입니다.”
“응?”
“정령의 힘은 엘프들의 순수한 능력이에요. 뭐, 정확히 따지면 다르지만, 다크 엘프와 엘프가 같은 종이니, 이건 명확히 증명된 사실입니다.”
듣자하니 엘프는 엄청난 자연 적응력을 가진 종족이라고 한다.
알브 헤임에 다우너가 나올 수 있던 것도 이 연장선상.
청정구역의 힘으로 정령이 많은 곳에 살아가니, 자연스레 그에 따라 적응력이 정령 쪽으로 발달된 것뿐이라고.
그에 반해 다크 엘프는 사막을 살아가면서 정령 대신, 특유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재능을 손에 넣었을 것이고.
“또 마냥 정령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정령 쓰는 다크 엘프는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이 주술이라 부르는 것들. 그건 정령술과 마술을 섞은 아류입니다. 사막이라는 환경과 이전 가난했던 과거. 이게 만났으니 정령 계약을 하고 싶어도 못했기에 만든 차선책인 거죠.”
“필요 없어진 정령술과 주워들은 마술을 뭉쳐 주술이라는 아류 문파를 만들었다는 거네.”
“다크 엘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탑의 주장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적응력과 척박한 환경이 만나 탄생한 태생이 전사의 일족.
그게 지금의 다크 엘프들이라는 소리.
엘프들은 천하다 여겼던 병장기를 다루는 재능이 되살아난 엘프라고 할 수 있겠지.
들어온 정보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난 눈을 감았다.
몇일 전 데지르에게 들었던 나그나스의 이야기.
나그나스라는 엘프가 세계수의 뿌리를 타락시켜 죄악의 가시를 만들어 최초의 카오스 엘프가 되었던 이야기.
그녀를 무찌른 건 애꿎게도 그녀의 가족, 그녀의 친우들인 같은 일족이었다.
동료의 타락을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일지.
아니면 그저 그녀의 타락과 자신들이 무관함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나그나스를 막아섰고, 수많은 피의 대가 끝에 나그나스를 처단.
전투 중 죄악의 가시에 의해 온 몸에 마기가 주입당한 그들은 정령의 가호를 잃고 은발이 되고 만다.
처음에는 이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한 줌의 친화력 뿐.
점차 이들은 더럽혀진 엘프라 여기지고 배척받아 알브 헤임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쫒겨는 길
그들은 다짐했지.
절대 오늘의 일을 잊지 않겠다고.
너희들을 위해 싸웠음에도 이런 대우를 것을 원망한다고.
이 증오는 뒤틀린 신앙으로 이어져, 처음으로 알브 헤임을 멸망의 길로 이끌고자 했던, 그리고 자신들이 쓰러트렸던 나그나스에 대한 신앙이 되었다.
“증오로 쌓아진 신앙은 많은 패단과 악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샤나 다크 엘프들에게 들었어. 이를 지우기 위해 현명했던 족장들이 부단히 노력했다고, 자신들도 그에 따라 악습을 지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고 했었지.”
“그 결과가 지금인 거겠죠.”
“악습을 지울 순 있었지만, 그 안에 든 증오마저 씻어내어. 정작 신앙이 탄생한 이유도, 나그나스가 누군지조차 잊어버린 신앙. 하! 다크 엘프들도 참 난감해.”
어찌보면 그들이 그리 살게된 원흉이 나그나스인 것일 텐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세계수의 배경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타락 같은 게 아니란 소리잖아?”
타락이라 보았던 가시나무는 애초부터 세계수의 진정한 정체였던 것.
뿌리는 처음부터 마기를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따지고 보면 그녀의 일족들이 나그나스를 막았을 거란 것도 웃긴 일이지.
알브 헤임에 살아가는 엘프는 많아도, 가족과 일족에 한하면 해봐야 몇 명 안 되니까.
인간처럼 수가 바글바글한 제국의 가문을 떠올리면 안 된다.
그런데 고작 그 몇 명에 엘라임의 원형이 될지도 모르는 나그나스가 쓰러졌다?
그것도 고작해야 가시로 마기를 주입하는 선에서 패배?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지.
“흥미 진진한 이야기네. 그 세계수란 걸 꼭 보고 싶어졌어. 역시 널 데려온 내 선견지명은 대단해!”
“자뻑의 정도가 지나치신 듯 한데.....”
“사실 진실 따위 흥미 위주였는데, 뭔가 일의 동기가 부여된 기분이야.”
“그......부캐, 그러니까 이중 신분을 만든다고 하셨죠? 고작 그런 일에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있습니까?”
이중 신분 따위.
제국의 황태자인 그의 말 한마디면 간단한 일.
이런 난장판을 벌여가며 할 일이 절대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는 데지르에게 난 피식 웃음을 터트린 후, 뭘 모른다는 듯 혀를 차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무릇 부캐는 본캐의 자식! 감히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해도 정도가 있지. 어딜 시답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 부캐가 초마녀인 이 몸의 부캐가 될 수 있겠냐?”
“뭔가 심히 불안합니다만.....”
“그리고 독자 분들이 원성이 들끓어. 마왕성 쳐들어갔는데, 고생만 오질나게 하고, 수확도 없이 돌아왔으니. 얼마 사이다가 고프시겠냐고.”
“마왕 시체는? 그것만 해도 돈이 얼마인데?!!”
“그러니 이번 기회에 우리 독자분들 마음도 달래드릴 겸, 부캐는 직업은 특별하게 지을 셈이야!!”
이름 짓길!!
초 거대 프로젝트
릴리의 슬기로운 깽판 생활
그 첫 번째.
부캐 양성!
우리 모두는 착한 어린이이기에 안다.
깽판이라고 부르는 그것들 다 범죄라는 걸.
이를 뒤집어 써줄 부캐는 무릇 깽판에서 필수적인 요소!
하지만 부캐라고 성의 없이 막 만들 수는 없다.
의심의 눈초리도 눈초리지만, 내 자존심이 살지 않으니까.
그 어떠한 악명에도 끄떡없는 내구도도 가질 겸, 저번 똥싸다 끊은 일의 마무리도 지을 겸.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이랑 알브 헤임. 니들한테 쌓인 스트레스도 좀 해소할 겸!! 부캐 직업은 마황으로 정했다!!”
“.........내 귀구녕이 썩었나? 마황? 마왕이 아니라?!!”
“남은 4개의 마왕성을 모조리 무너트려서 마계 통일을 이룩! 마황 부캐로 제국이랑 알브 헤임을 밀어버릴 거야!! 그동안 쌓인 게 좀 많거든!”
“어이!!!”
“겸사 겸사 세계수도 구경하고, 전에 니가 황궁도 구경시켜 준다고 했으니 그것도 보러가자!!”
“야 임마!!! 그건 아니지!!”
“릴리의 슬기로운 깽판 생활 시작이다!!”
프로젝트 제 1단계
마황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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